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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축구를 너무 잘해-33화 (3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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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3. 멋진 아빠란 (10) >

아빠는 축구인생 2회차

33화 멋진 아빠란 (10)

“5억? 지금 5억이라고? 내가 잘못 들은 거지?”

강경민은 단장을 바라보며 되묻다 말고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금액이 너무 커서인지 반말은 인지하지 못했나 보다.

단장은 구단주의 눈치를 살피며 인구를 향해 조심스레 말했다.

“저, 마인구 선수? 연봉 5억 4천만 원은 좀 많이 과하지 않나 싶은데요. 그 정도 수준은 K리그2에서도 없습니다. 아니, K리그1에서도 상위권에 속한다고요. 그만한 연봉을 지급할 구단도..., 솔직히 말해 K리그1에선 두, 세 구단이 전부일 겁니다.”

“아유, 압니다. 알아요.”

인구는 뻔뻔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알고 있었다.

당장 2018시즌 K리그1에서 구단별 평균 연봉액이 가장 높은 팀은 전북으로 4억 3000만 원 수준이었다.

반면에 수원, 대구와 같은 클럽의 평균 연봉액은 1억 3천만 원.

같은 리그 내에 속했으면서도 세 배 이상 차이가 났다.

‘물론 평균일 뿐이긴 하다만.’

전북 내 최고 연봉자는 김보겸으로 약 13억 규모의 연봉을 수령 받는다.

단순히 연봉액으로 비교해봐도 5억 원은 주전급이었다.

그렇듯 K리그2 내 평균 연봉액이 가장 낮은 한강을 상대로 5억 원을 제시했다는 건, 과해도 너무 과했다.

그때, 참다못한 강경민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투덜거렸다.

“장난해? 나랑 지금?”

“넌 이게 장난으로 보이니.”

“뭐, 뭐?”

그제야 강경민은 자신이 반말 모드라는 것을 인지한 모양이었다.

얼굴 근육이 꿈틀되는 게 어지간히 분노하고 당황한 것 같았다.

마주한 단장도 놀란 눈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구는 두 눈에 힘주어 덧붙였다.

“내 1년 치, 또는 그 이상의 생계가 걸린 문제인데. 이런 거로 장난을 치겠냐고. 매사 진지하고도 적극적이게, 또 내게 이로운 쪽으로 협상을 해야지. 안 그래?”

“...”

“근데 어떤 병신은 누구를 호구로 알고 뇌를 거치지 않고 막 말을 내뱉더라? 어후!”

인구는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난 그런 애들이랑은 협상에 협 자도 언급할 생각이 없어. 직장 상사든 말든.”

인구는 자신의 현 위치에 대해서도 은근히 언급했다.

“결국엔 이 축구판에선 축구 잘하는 놈이 갑 아닌가? 거기에 계약 기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면..., 거의 뭐 슈퍼 갑이지. 구단 입장에선 말이야.”

“자, 잠깐만요.”

단장이 퍼뜩 말을 걸어왔으나 인구는 검지 끝을 좌우로 휙휙 저으며 잘랐다.

“물론 이게 예의에서 벗어난 행위라는 것도 알아. 근데, 그 예의를 먼저 밥 말아 먹은 게 상대거든. 난 원래 성격이 되로 주고 배로 갚는 성격이고.”

“..., 마인구 너 인마 지금, 그렇게 생각 없이 나대다간 벤치만 데우는 수가 있다는 걸 알아야지.”

경민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실제로 유럽에선 구단주 또는 감독과의 마찰로 인해 실력과 별개로 출전 자체를 못하는 사례도 많았다.

선수가 감독에게 욕을 퍼붓는 장면도 흔치 않지만 있었고 말이다.

인구는 과장되게 어깨를 흠칫 떨었다.

“어이쿠, 무서워라.”

“제안 오는 계약 조건을 몽땅 다 무시할 수도 있다고.”

이젠 협박 모드였다.

허나 인구는 도리어 슬그머니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딱 잘라 말했다.

“정 그러고 싶으면 그렇게 해.”

“뭐?”

“그렇게 하라고. 어차피 6개월 밖에 안 남은 거. 남은 기간 동안 돈 받으며 푹 쉬지 뭐.”

그 뒤에 이적하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그때쯤이면..., 세나와도 작별일 테니까.

“....”

금세 울적함이 밀려들었다.

*       *       *

6월.

EPL의 시즌은 끝났지만 K리그2의 시즌은 이제 막 전반기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인구는 부엌, 식탁 테이블 위 도마 앞에 서서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두 손은 팔목 높이까지 약 20초간 씻은 뒤.

“후우!”

짧게 숨을 쉰 그는 곧 세나가 어린이집에서 만들었다는 곰 무늬로 추정되는 캐릭터가 새겨진 앞치마를 허리에 둘렀다.

촵! 촵!

이어 위생 장갑을 착용하고선 도마 옆에 둔 식칼에 손을 뻗었다.

탁, 탁, 탁!

직후 칼질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어묵을 먹기 좋게 일자로 잘라내고 맛살 역시 잘게 썰어냈다.

이 어묵은 고급 생선살과 국내산 쌀가루로 만든 것이었다.

시간이 날 때 인구가 직접 부산에서 공수해온!

인구는 어느 때보다 진지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당근은 꼭지가 작은 게 좋지. 꼭지가 작은 게 식감과 맛, 향이 좋으니까. 오이 또한 윤기가 돌며 단단하다. 속이 알차다는 증거...!”

세나가 좋아하는 딱딱하지 않은, 부드러운 질감의 진미채도 적당량을 더욱이 칼질로 다졌다.

‘만에 하나라도 이가 아프면...,’

인구는 이 진미채를 절대로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았다.

“후우...!”

얼마 지나지 않아 인구는 기분 좋은 옅은 숨을 토해냈다.

입가엔 미약한 미소가 걸렸다.

도마 위엔 그새 김밥 세 줄이 완성되었으니까.

“뜨뜻한 오뎅국도 완성됐고...!”

이 모든 건 나들이를 위함이었다.

*       *       *

전날 17라운드 판교 FC를 상대로 인구는 또 해트트릭을 작렬했다.

판교의 핵심 수비수 홍석구는 이날 후반전 18분에 조기 교체아웃되었다.

해트트릭 모두 석구의 앞에서 이루어진 거였으니까.

‘하필 왜 걔가 거기 있어가지고, 쩝.’

전날 경기를 떠올린 인구는 볼가를 긁적거리다 말고 이내 헤벌쭉 웃었다.

‘날씨 한 번 죽이네.’

새파란 하늘 아래, 인구는 세나와 함께 집 근처 공원 한편에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잠자리다아!”

세나는 금세 뛰쳐나갔다.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고추 잠자리를 잡기 위해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모습이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딱히 두 사람이 무언가를 하고 그러진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은 편안하고 기분이 좋았다.

‘푹신해.’

그냥 세나와 함께 있는 곳이라면 이 잔디 바닥도 푹신한 솜 같았다.

‘바라만 봐도 세상이 아름다워보이고...’

인구는 흐뭇하게 웃었다.

이런 게, 아빠란 걸까?

‘자식이 생기면 사람이 달라진다더니. 진짜였어.’

그러다 문득, 인구는 조심스레 물었다.

“세나야. 세나는 아빠가 한강에서 계속 뛰었으면 해?”

“그것도 좋아.”

“그래?”

“웅. 아빠는 한강을 늘 뜨뜻하게 데운데! 또또 아저씨들이 좋아한대!”

“또또? 그런 말은 누구한테서 들었어?”

“대뿌가!”

“대뿌 이 개...! 크흠!”

마음 같아선 세나와 함께 하는 시간 동안은 이동은 되도록 멀리하고 싶었다.

‘내가 버티면 그만이잖아.’

구단은 강제로 자신을 이적시킬 수 없다.

‘이미 협상도 결렬됐고.’

막말을 퍼부었음에도 인구는 직전 경기에 선발로 출전했다.

강경민 구단주로선 일말의 희망이라도 붙들고 싶은 모양이었다.

결국 축구는 실력이 장땡이란 게 맞았다.

‘내 경기력 유지시키고, 여럿 구단들 경쟁 붙여서 어떡해서든 이적을 시키겠다는 거네.’

발등에 불 떨어진 강경민과 달리 인구는 여유로웠다.

남은 계약 기간이라고 해봤자 겨우 6개월이었고, 이 기간만 다 채우게 되면 가슴 아픈 건 한강일 테니.

계약이 만료되면 자신은 FA 상태가 되며, 이는 곧 더 많은 구단의 구애를 받게 될 것이니 말이다.

‘이적료가 들지 않게 되니까.’

또 이게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궁금했다.

이 작고 여린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끔뻑, 끔뻑. 세나는 유아용 김밥을 오물오물 씹어 삼키더니 말했다.

“나는..., 아빠가 유럽에서 뛰었으면 조케써.”

“유럽?”

“웅. 손흥빈처럼!”

“손흥빈은 월클인데?”

일전에도 한 말이었다. 불가능하다고는 하지 않았지만..., 인구는 속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내년에 내 나이 29살이야.’

K리그2에서 암만 40골 가까이 때려 넣는다고 해도...,

‘여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물일 뿐이라고.’

만약 챔피언십이나 다른 리그에서 30골, 40골을 기록 중이라면 진즉에 유럽 구단에서 오퍼가 왔을 것이다.

‘그래도 K리그1에선 거진 다 제안이 오긴 했다만.’

허나 이런 수준 차이를 세나에게 알리고 싶진 않았다.

‘울 것 같잖아.’

우는 것도 이쁜 세나지만 해맑은 세나가 더 이뻤다.

그러던 순간, 세나는 제게 뜻밖의 말을 건넸다.

“아빠두 월드클래스인데?”

“아빠가?”

“웅.”

“우리 딸. 아빠 축구 잘하는 것 같아?”

“아빠는 손흥빈 보다 더 잘해!”

불끈 쥔 작은 손을 가슴께까지 올리며 말하는 딸에 인구는 마음 한구석이 기분 좋게 뜨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식은 아빠 편이라더니.’

감동이었다.

울적함도 함께 밀려들었다.

지금 코와 입으로 들어오는 공기는 시원하고도 달콤했다.

굳이 맑은 하늘이 아니라 먹구름 낀 하늘이어도, 최근 1년 6개월간은 마냥 아름답게 비쳤다.

‘모든 날, 모든 게 예뻐 보였지.’

인구는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긍정적인 감정은, 세나가 곁에 있기에 가능한 일이란 걸.

그런 세나와의 이별이 이제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       *       *

리그 18라운드. 다시 마주한 목동 원정에서 인구는 경기 초반부터 중거리 포를 구사했다.

뻐어어어엉!

촤라악!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올! 마인구우우우우우!]

[페널티 아크 바깥에서 때린 중거리포에 수비수며 골키퍼며 모두 한순간에 얼어버렸습니다아아!]

[전반전 2분 만에 기록한 한강의 선취 고오오오오오올!]

이후로도 인구는 상대 문전 부근에서 무시무시한 플레이를 뽐냈다.

툭, 탓!

[마인구! 라보나 페이크에 이어 넛 메그로 눈 깜짝할 사이 수비수를 제칩...!]

스윽!

[측면에서 달려든 풀백마저 크루이프턴으로...!]

뻐어엉!

[돌아서자마자 왼발 인프런트 키익!]

[골키퍼 방향을 예측하고 파 포스트를 향해 몸을 날렸...!]

촤라악~!

[고오오오오오오오올!]

[골키퍼가 내지른 손끝을 맞고도 강하게 감긴 공이 그대로 골문 구석으로 쏙 들어갔습니다아아아!]

[전반전 12분 만에 7경기 연속 멀티골을 성공시키는 마인구우우우우!]

[K리그2의 진정한 괴물이군요오오!]

*       *       *

경기가 종료됐을 때 최종 스코어는 9 : 1.

첫 개막전에서 무승부를 거뒀던 목동은 오늘 홈경기에서 역사적인 패배를 당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해당 경기가 끝난 직후, 목동의 김철민 감독은 다이렉트 경질 통보를 받았다.

쏴아아아아아아아~

경기가 끝난 뒤, 인구는 홀로 샤워장에서 땀에 젖은 몸을 개운하게 씻어내는 중이었다.

“흐허헝~ 흐허허허헝~”

기분이 너무 좋아 콧노래가 절로 터져 나왔다.

오늘 경기에서마저 해트트릭에 2어시를 작렬했으니까.

그러다 문득, 의문이 어렸다.

‘왜 나 혼자 샤워해?’

한강 FC에 속한 이후로 인구는 줄곧 혼자서 샤워를 했다.

처음엔 몇몇 동료들이 생각 없이 들어왔다가 깜짝 놀라고는 그 뒤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다.

인구는 그 이유를 몰랐다.

한편.

쏴아아아아아~

뜨거운 물줄기 소리가 고막을 간질였다.

샤워장 바깥, 벽면에 등을 대고 있던 염동규는 땀에 눌어붙은 머리를 쓸어넘기며 작게 중얼거렸다.

“괴물 같은 놈...”

그러다 말고 힐끗, 옆을 보았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한강의 선수들이 벽에 등을 붙인 채 일렬로 쭉 서 있었다.

새삼 동규는 동질감을 느끼며 쓴웃음을 머금었다.

나름의 위로라도 건네고 싶었다.

‘괜찮아. 저 새끼가 비정상적으로 큰 거니까. 그러니까..., 용기를 가져. 우리가 작은 게 아니야.’

라고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구는 주차장에 세워둔 자전거에 향했다.

바로 그때였다.

“마인구 선수?”

“음?”

인구는 고개만 돌려 소리가 난 방향을 보았다.

그곳엔 웬 금발머리칼의 외국인과 동양인 남자가 나란히 서 있었다.

< 033. 멋진 아빠란 (10) > 끝

ⓒ 강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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