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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축구를 너무 잘해-34화 (3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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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4. 멋진 아빠란 (11) >

아빠는 축구인생 2회차

34화 멋진 아빠란 (11)

인구는 두 눈을 가느스름하게 떠 손에 쥔 명함을 보았다.

‘로보트 파이기...’

영문으로 되어있었지만 읽을 줄 알았다.

세나에게 부족함 없는 아빠가 되고자 장정 6개월간이나 매일 꼬박꼬박 영어를 배우지 않았던가.

‘영 단어만 하루에 100개씩 외웠지.’

그러다 보니 원어민 수준의 발음까진 아니나 적정 수준의 의사소통은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힐끗.

인구는 앞을 보았다.

두 사람이 식탁 테이블을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금발 머리의 중년 신사는 자신을 로보트 파이기라 소개했다.

그리고 그 옆엔 한국인 통역사가 함께.

“이거 맛있네요, 아주 맛있어요. 몇 달 전에 우연히 접한 음식인데..., 영국에 돌아가서도 계속 그리웠답니다.”

로보트 파이기는 순대 국밥을 크게 한 입 떠먹고는 황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으음~ 이 고기 수프...! 푸짐하고도 맛이 깊어!”

옆 통역사는 그걸 그대로 통역해 알려주었다.

인구는 의심쩍은 눈초리로 깍두기를 집어 콰드득 씹었다.

“그러니까, 스카우트라고요?”

“맞습니다. 뉴캐슬 유나이티드요. 호주에 있는 뉴캐슬 제츠가 아닌, 영국 노스이스트 잉글랜드 타인 위어 주에 있는...!”

“아아, 압니다, 알아요.”

“축구 영화에서도 주인공이 소속된 구단으로 유명했죠.”

“본 적은 없어서.”

대뜸 로보트 파이기는 두 팔 벌려 목청을 굵직하게 높였다.

“영국에서 축구는 종교 그 자체야! 런던에도 팀이 여럿 있고 중부 지방도 마찬가지! 하지만...! 툰에는 오직 하나뿐~! 바로 뉴캐슬이지!”

근처에 자리한 손님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곳으로 집중됐다.

“좀 조용히 해주세요!”

가게 점원은 소리죽여 외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씨익, 파이기는 하얀 이가 드러나게 웃어 보였다.

“축구 영화 <스코어>의 명대사 중 하나입니다. 우리 뉴캐슬의 정체성을 이 짧은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지요. 제 꿈은..., 산티아구 무네즈, 개빈 해리스같은 선수를 실제로 영입하는 거고. 흐흐흣.”

상상만으로 행복한지 파이기는 음흉한 미소를 흘렸다.

“아...,”

인구의 의심 섞인 눈초리가 더 커졌다.

‘미친놈인가?’

*       *       *

뉴캐슬 유나이티드가 제게 접근한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린 오랜 시간 동안 당신을 지켜봐 왔습니다. 마. 당신의 플레이는 내게 감동을 선사할 만큼 역동적이며 강렬했어요.”

“예, 칭찬 감사합니다.”

“상대 디펜시브 안에서의 기민하고도 간결한 동작은..., 한순간에 수비수의 스탠스를 무너뜨리곤 했지요. 타고난 발목 힘은···. 장담하건대 영국에서도 먹힐 겁니다.”

거듭된 칭찬에도 인구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혹여나 사기가 아닐까 싶어서였다.

그간 인구는 숱한 스카우트를 만나왔다.

k리그2에서 득점 행진을 이어가니 k리그1 소속 구단의 스카우트들이 줄기차게 만남을 요청한 것이다.

‘에이전트가 없으니 죄다 나한테 오네.’

계약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도 한몫했다.

몇몇은 보다 더 저렴하게 영입하고자 구단 몰래 선수에게 접촉해 사전 협상을 벌여왔다. 아예 공짜로 데려가고자 한 자도 있었다.

[마인구 선수? 내년 시즌을 앞두고 계약이 끝나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계약이 끝난 직후 저희와 계약을 체결하시는 건 어떠십니까?]

한강엔 한 푼이라도 안 주겠단 심보였다.

대신 그만큼 선수에겐 메리트란 게 있었다.

계약금을 아끼면 선수에게 보다 더 많은 연봉을 지급하는 게 가능해지니까.

하지만,

‘사기꾼 새끼들도 한 둘이 아니었어.’

에이전트가 없다는 걸 알고서 몇몇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해오는 이들이 있었다.

[마인구 선수? 솔직히 말해..., 한국에서 뛰기에 우리 마인구 선수의 수준이 너무 아까워요. 그러니 유럽으로 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당장 저만 해도 크로아티아의 명문 구단과 연이 닿아 있어...!]

[세르비아로 가시죠. 세르비아와 저희 에이전시는 협력 관계에 있습니다. 한국 리그보단 세르비아에서 한 시즌 정도 뛰면..., 필시 보다 더 높은 유럽 구단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거에요!]

축구 선수라면 한 번쯤은 들어볼 법한 사기꾼들의 전형적인 수법이었다.

실사례도 있었고 말이다.

‘가서 뺑이만 오지게 돌리다가 훈련비, 생활비 기타 명목으로 돈만 쪽쪽 빼먹는다지?’

와중에 눈앞에 뉴캐슬 유나이티드 소속 스카우트라는 작자가 나타났다.

‘뉴캐슬이라.’

현재 그 팀은 지난 시즌 강등을 당하며 잉글랜드 챔피언십에 속해 있었다.

하지만 잉글랜드의 2부 리그일지언정, k리그2와는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그 수준은 높았다.

‘아니. k리그1보다도 훨씬 수준 높아.’

각 클럽별 수준 차야 있을 것이다.

혹자들은 말한다.

‘k리그1 최강 전북이 잉글랜드 챔피언십 소속이었다면..., 하위권을 전전했을 거라고.’

일단, 유럽 내 스카우트들이 관심을 끄는 빈도부터가 변방인 k리그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았다.

그리고 로보트 파이기는 말했다. 통역사는 곧장 통역해주었다.

“우리 뉴캐슬 유나이티드는 마 선수와 3년 계약에 연봉 15만 파운드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아아, 한국 돈으로는 약 2억 4천 만 원 수준이 되겠군요.”

충분히 만족할 만한 제안이었다.

일전에 강경민을 상대로 5억 4천만 원을 불렀던 건 그냥 막 질러댄 거였다.

‘애초에 그 새끼랑은 협상할 마음이 싹 사라졌으니까.’

즉, 계약할 의사가 없어 과한 요구를 한 것이다.

‘받아들였으면 좋은 거고.’

그렇듯 방금 제안은 인구의 마음을 들썩이기에 충분했다.

‘챔피언십 평균 연봉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다만, 확실히 나쁘지 않은 금액인 거는 같아.’

마치 제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로보트 파이기는 덧붙였다.

“최근에 잉글랜드 챔피언십으로 강등되면서, 선수단 일부를 정리하긴 했습니다. 그로 인해 전체 선수단 연봉 수준이 꽤 하락하긴 했죠. 우리 마인구 선수에게 제안한 연봉 수준은..., 으음. 현 팀 내에선 중간급은 되겠군요.”

“오...”

인구는 작게 탄성을 터뜨렸다.

‘생각 이상으로 높게 쳐줬네?’

그걸 떠나 유럽 리그에서 뛸 수 있다는 것만으로 기적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것도 챔피언십이라니?’

이제 막 강등당한 뉴캐슬의 순수 전력 자체만 본다면 챔피언십에서도 수준급이라 할 수 있었다.

‘암만 선수 몇몇을 정리했다 해도 말이야.’

더욱이 대개 아시아권 선수들은 유럽에서 뛰기 위해서라도 자진해서 연봉을 삭감할 정도가 아니던가.

그러나, 돌연 인구는 쓴 것을 먹은 것 같은 얼굴로 가슴 부근을 한 손으로 쓸어내며 중얼거렸다.

“하~ 이야~ 좋네요. 아주 좋아요. 근데요.”

“예, 마인구 선수.”

“왜 전 확 와닿지가 않을까요?”

“뭐가 말입니까?”

“아니. 상상 이상의 클럽에서 제안이 왔는데. 막 발밑에서 전율이 차오르지도 않고, 딱 기쁘지도 않고 그러네?”

“....?”

로보트 파이기와 통역사 두 사람 모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 인구는 의자 등받이에 등을 붙이더니 두 눈을 매섭게 치떴다.

“세상이 참 흉흉해요. 그죠? 사기꾼도 차암 많고~”

“그게 무슨...?”

“아니. 말이 안 되잖아. 겨우 k리그2에서 잘하는 것뿐인데 선수단 연봉 순위에서 중간쯤 되는 연봉을 선뜻 제안한다고? 내가 이래 보여도 눈치 하나는 오지게 좋거든?”

똥촉이었다.

*       *       *

다음 날, 저녁.

[리버풀을 상대로 역습을 가동하는 토트넘 홋스퍼어어!]

타앙!

[오오! 해리 캐인! 우측 하프라인과 사이드라인이 맞닿는 지점에서 크로스으으~!]

[손흥빈! 리버풀의 핸더슨을 속도를 제치는 데 성공...!]

타앙!

촤락!

[고오오오오오오올! 손흥비이이인! 와아아아! 해리 캐인과의 환상의 호흡입니다아!]

[엄청난 스피드에 환상적인 크로스으으!]

“우오오오오! 코이뚜우우우우!”

앉아서 지난날에 했던 경기를 재방 중인 세나가 벌떡 일어나 환호성을 터뜨렸다.

“후흣, 녀석, 참.”

바로 옆, 좌식 테이블 앞에 앉아 직접 공수해온 수박을 먹기 좋게 썰고 있던 인구는 피식하니 웃었다.

그러다 말고 물었다.

“세나야. 저거 봐. 손흥빈 무지 빠른데? 아빠보다 무지 빠르잖아. 그래도 아빠가 저 친구보다 더 잘 해?”

두 눈엔 은근한 기대가 섞였다.

세나는 이쪽을 돌아보고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외쳤다.

“웅! 아빠가 더 잘 해! 훨씬 멋져!”

“흐헝.”

빙구 미소가 절로 나왔다. 딸의 칭찬은 인구를 춤추게 하는 법이었다.

그러던 일순간, 세나가 고운 미간을 살포시 모았다.

아이는 뜸 들이듯 하다가 말했다.

“하지만..., 솔직히, 솔찍히 유럽에서 뛰는 아빠가 더 멋질 거 가타.”

“아빠가, 가서 잘 할 수 있을까? 아니, 우리 세나 말대로 유럽에서 뛸 만한 실력이 되긴 할까?”

넌지시 묻는 질문에 세나는 도리어 순수한 눈망울로 물었다.

“갈 수 있지 않아?”

“응?”

“왜? 못 가? 아빠 갈 수 있자나. 아빠 멋진데? 잘하는데?”

“...”

“내가 아는 선수 중에 아빠가 최곤데?”

촵!

그새 세나는 양반다리를 한 자신을 향해 나무늘보처럼 타고 올라와 찹살떡 같은 볼을 가슴에 붙이듯 안겼다.

“...!”

기습적으로 심장이 훅 찔린 것 같았다.

한 치 거짓 없는 아이의 눈망울을 빤히 보자니, 의문을 표해서도 안 될 것 같았다.

문득, 전날 뉴캐슬 스카우트와의 만남이 머릿속을 스쳤다.

[하하하.]

당시 로보트 파이기는 웃어넘겼다.

그리곤 재차 제안했다.

[언제든, 확신이 들고 마음이 바뀌면 제게 연락해주세요. 정 의심 가시면 여기 사이트에 한 번 접속해보시고요. 스카우트 명단에 제 사진과 제 경력이 있을 겁니다.]

당일 집으로 돌아간 인구는 혹시나 해 영문 사이트에 접속해보았고 사실임을 인지했다.

‘진짜 뉴캐슬에게서 제안이 온 거였어.’

새삼 그 당시엔 느끼지 못했던 전율이 머리털을 주뼛 세웠다.

혹하는 거야 당연했다.

‘영국이라니.’

축구 선수라면 누구나 꿈꿀만한 유럽 무대가 아니던가.

적어도, 17세 시절 마인구는 유럽에서 뛰는 것을 간절히 열망했었다.

‘그땐, 최연소로 진출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는데.’

누구보다 잘 나가고 싶었고 말이다.

그때만큼은 아니나 k리그2에서 경기를 소화할수록 잃었던 열망이란 게 조금씩 자라나긴 했다.

더 수준 높은 리그에서 뛰고 싶다는 그런 열망.

여기엔 세나도 크게 한몫했다.

‘딸한테 더 멋진 아빠로 보이고 싶으니까.’

인구에게 있어 멋지다는 정의는, 딸에게 있어 최고가 되는 거였다.

그러니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뉴캐슬과 계약을 하고 싶었다.

기분 좋은 상상도 하였다.

‘우리 세나. 내가 뉴캐슬에서 뛰면..., 경기 때마다 토트넘 경기 대신 뉴캐슬 경기 보며 코이뚜 거릴 텐데.’

“흐헛...”

상상만으로 빙구 웃음이 재차 나왔다.

허나, 상상과 현실의 괴리는 큰 법이다.

딸아이를 내려다보던 인구는 애써 밝게 웃었다.

‘영국으로 가면..., 세나랑은 이별인 거잖아.’

*       *       *

리그 20라운드.

인구는 4연속 해트트릭을 작성하는 데 성공했다.

2위와의 승점 차는 자그마치 16점.

인구는 k리그2 최초 40골의 고지를 넘어섰다.

경기가 끝나고 샤워까지 마무리한 뒤, 인구는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기 위해 주차장으로 향했다.

허나 그 걸음은 몇 걸음 내딛다 말고 우뚝, 멈췄다.

부우우우웅!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3일 만에 가은이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었다.

그리고, 전화를 받자마자 그녀는 뜻밖의 말을 전했다.

< 034. 멋진 아빠란 (11) > 끝

ⓒ 강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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