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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축구를 너무 잘해-35화 (3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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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5. 멋진 아빠란 (12) >

아빠는 축구인생 2회차

35화 멋진 아빠란 (12)

“무슨 일이야?”

[잘 지냈어? 세나는?]

“어린이집에 있지. 지금 데리러 가려던 참이야.”

[엄마 보고 싶다고 울지는 않구?]

“딱히? 아빠가 엄마 몫까지 너무 잘해줘서 별로 생각 안 나는 거 같던데?”

[다행이네, 후훗. 아기 돌보는 거, 힘들진 않아?]

“뭐. 가끔은 힘들지만 어쩌겠어. 아빤데. 아빠로서의 도리는 묵묵히 다 해내야지.”

여기까진 평소의 대화와 같았다.

생색 아닌 생색도 냈고 말이다.

속으론 진실을 고했다.

‘힘들기는 무슨! 너무 좋아.’

그냥 세나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 힐링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수화기 너머 들려온 그녀의 목소리에 인구는 그만 충격을 받았다.

[다행이네. 아아, 그리고 나, 일주일 뒤에 한국 가.]

고개를 갸웃, 거렸다.

“...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기에 잠깐의 딜레이가 있었다. 인구가 알기로 그녀가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아직 6개월 가까이 남아 있었으니까.

“한국, 한국을 온다고? 아니 왜?”

[그렇게 됐어. 4년 만에 나타나서 대뜸 아이를 맡아달라 했었는데..., 크게 고민 없이 받아줘서 나 너무 기뻤다?]

“...”

[그리고 미안했어. 오빠한테 죄짓는 기분이었거든. 여기 와서도..., 다 포기하고 그냥 한국 가버릴까? 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구. 이기적인 엄마인 것 같단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

“아니, 무슨 그런 나약한 생각을 해? 미안해서 오는 거라면 안 그래도 돼.”

[하지만...,]

“에헤이! 그냥 거기 있어. 벌써 1년하고도 반년 지났거든? 네가 갑자기 이렇게 돌아온다고 하면 내가 뭐가 돼? 1년 6개월 동안 난 헛수고 한 거밖에 더 돼?”

헛수고는 결단코 아니나 지금으로선 어떤 말로라도 그녀의 두 다리를 미국에 꽈악 붙들고 싶었다.

“너 만약 다 포기하고 한국 오면, 세나는 누가 먹여 살려? 가은아. 현실적으로 생각하라고. 나 시실 힘들지도 않아. 너어무 좋아.”

인구는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로 그녀를 설득하고자 했다. 속은 진심으로, 당황스러웠다.

‘이, 이게 뭔 소리야?’

세나와의 작별까지 6개월을 앞둔 시점부터 인구의 마음은 멀쩡하다고도 갑자기 소용돌이가 들이닥치곤 했다.

벌써부터 딸과의 이별을 생각하니 의욕마저 몽땅 사라졌고 말이다.

물론, 작별한다고 해서 영영 이떨어져 지내는 건 아닐 거다.

‘어차피 같은 한국 내에 있을 텐데.’

정 보고 싶을 땐 가은이와의 이야기를 통해 찾아가면 그만이었다.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인구의 눈썹이 불편하게 꿈틀거렸다.

‘이건 아니지.’

느닷없이 전화해서는 일주일 뒤에 귀국한단다.

마음의 준비도 안 됐을뿐더러, 작별 시간이 더욱 빨라졌다.

허나, 그녀는 자의에 의해 돌아오는 게 아니었다.

[주재원 발령이 났어.]

“주재원이 뭔데?”

회사생활을 비롯해 공부와는 담을 쌓았기에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그녀는 부드럽게 설명했다.

[해외 현지 법인으로 파견 명령이 떨어졌다구.]

“...”

[내가 미국으로 발령 났던 것처럼, 회사에서 다른 나라로 또 발령을 냈단 소리야. 그쪽에 일손이 부족해졌대.]

“...하?”

쿵! 하고 심장을 누군가 때린 것처럼 아팠다.

한순간 가슴 한구석은 먹먹해졌다.

어느 때보다 맑아 보였던 하늘은 또 왜 이렇게 울적해 보이는 건지...,

인구는 입을 벙긋대다가 말고 물었다.

“그러면, 그러면 세나도 데려가는 거야?”

[응. 한국에 가서 일주일 정도만 있다가 세나랑 함께 떠나려구.]

앞으로의 계획이 완전히 어그러지는 발언이었다.

‘이러면..., 보고 싶을 때도 못 보는 거잖아?’

지금 그녀는 또다시 해외로의 발령을 받았다고 했다.

이번엔 세나까지 데려가겠다며 선언했고 말이다.

순간 쿠궁! 하고 머리 위로 벼락이 내리꽂히는 것 같았다.

[이번 발령은 기간이 정해진 것도 아닌 데다가..., 또 오빠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더라.]

“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글로벌 시대라는 거.]

“글로벌..., 시대?”

[오빠가 예전에 말했잖아. 요즘은 어릴 때부터 영어를 배운다며. 근데 이왕 배울 거 영어권 나라에서 자연스레 습득하는 게 환경적으로도 더 좋지 않냐구.]

“...”

지난 말이 부메랑이 되어 날아온 격이었다.

그걸 떠나, 그녀를 설득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기간을 정해두고 파견이 아닌 거잖아. 이번엔...’

그러니 아예 딸을 데려갈 계획이었던 거다.

문득, 인구는 유리문에 얼핏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

초조하고도 애타는, 잔뜩 구겨진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모습은, 모래성 같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지금은 잔잔한 물살에도 와르르 무너질 것처럼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허, 참...”

황당한 웃음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처음 세나를 맡았을 때만 하더라도 담담히 이 순간을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여겼는데, 막상 당면하니 아니었다.

‘손이 다 떨려.’

억지를 써서라도 세나와 더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기 그지없는 법이다.

인구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말고 한참 뒤에야 힘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어딘데? 어디로 가는 건데?”

수화기 너머, 그녀는 나직이 답했다.

[영국.]

*       *       *

오전 8시.

뉴캐슬 유나이티드 스카우트, 로보트 파이기는 서울 내 한 호텔에서 조식을 즐기는 중이었다.

그런 그는 이틀 후면 영국으로 복귀할 예정이었다.

꿀꺽, 꿀꺽, 꿀꺽!

파이기는 간단한 식사 후 달달한 주스로 입가심을 했다.

막 자리에서 일어날 시점엔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예. 파이기입니다.”

[어떻게 됐나?]

수화기 너머로 동굴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파이기의 상관이자 뉴캐슬의 단장, 댄 라셀스였다.

“생각보다 쉽지는 않습니다.”

[왜? 제안한 연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던가?]

“그건 아니고요. 무슨 연유에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선뜻 해외로의 이적을 할 생각이 없어 보이더라고요. 구단이야 잘 설득하면 그만이지만.]

두 사람이 언급하는 선수는 다름 아닌 마인구였다.

로보트 파이기는 최근 몇 달간 그를 면밀하게 관찰하였고 스카우트 리포팅을 작성해 단장에게 수 차례 건넸다.

[어떤 연유?]

“예. 이유에 대해선 묻지 않았습니다. 그냥 느낌이 그랬다는 거지요.”

오랜 시간 유럽 및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런 파이기는 유독 촉 하나는 유별나게 뛰어난 편이었다.

바지 주머니에 한 손을 쏙 집어넣은 파이기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며 말을 이었다.

“뭐랄까요. 확실한 건, 뉴캐슬로의 도전을 두려워서 제안을 망설이는 것 같진 않았습니다. 그 외 혹할 만한 제안이 온 것도 아닌 것 같고요.”

[그래서, 이제 이틀 후면 영국으로 돌아올텐데..., 어쩔 건가?]

“한 번 더 만나봐야겠지요.”

[난 아직도 의구심이 일긴 해.]

“의구심이요?”

[자네가 왜 어찌하여 그 동양인 선수에게 그리도 집착하는지 말이야.]

댄 라셀스에게 있어 로보트 파이기는 가장 신뢰하는 스카우트 중 한 명이었다.

지난 10년간, 그가 영입한 대상은 늘 뉴캐슬에 이로움을 가져다주었으니까.

그렇듯 댄 라셀스로선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자네처럼 깐깐한 스카우트가, 28살이 되도록 유럽 무대에 언급 한 번 안 된 자에게 이렇게 매달리는 것도 웃기잖나.]

“청대 시절엔 화려했잖습니까.”

[유소년과 성인 레벨은 별개지. 유소년에서 암만 날고 긴다 해도 성인 무대에서 죽 쒀버리는 선수가 어디 한 둘인가.]

“하긴, 청대 시절에 제2의 매시, 제2의 로날두가 성인 무대에 와서는 한순간 저물어버리는 게 이 축구판이죠.”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파이기는 두 눈을 가느스름하게 떠 정정할 부분을 정정했다.

“마인구 선수한테는 해당되지 않는 거지만요.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여타 선수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선수라는 걸 말입니다.”

[k리그2의 수준은...,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얕을 텐데. 그런 곳에선 지금 뉴캐슬에서 벤치만 뜨뜻하게 데우고 있는 에디 캐롤도 뛰어난 활약을 보일 거야.]

“마인구만큼은 아닐 겁니다.”

일순 파이기의 목소리에 묘한 기대감이 어렸다.

“잉글랜드 챔피언십의 압박 수준에도 충분히 버틸 테니까요. 28살임에도 불구하고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데다가, 축구 지능 영역에서도 감탄을 불러올 수준입니다.”

[그렇게나 확신하는 건가?]

“예. 물론이죠. 그러니 이틀 안에 어떡해서든 협상을 끝낼 겁니다. 그 친구는..., 분명 우리 뉴캐슬에 큰 도움이 되어줄 테니까요.”

뚝!

얼마 지나지 않아 통화는 끝났다.

어느덧 객실에 발을 들인 파이기는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은 채 유리창 너머의 풍경을 감상했다.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마인구...”

그를 관찰한 지도 벌써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한 선수를 이리도 오랫동안 관찰한 건 그로선 처음이었다.

대개 그는 몇 경기만을 보고 곧장 영입을 추진하는 편이었으니까.

그만큼 선수 보는 안목이 뛰어났다.

하지만 마인구는 다른 케이스였다.

‘선수의 문제가 아니지.’

이는 리그의 문제라 할 수 있었다.

‘리그 수준이 낮아도 너무 낮아.’

고로, 뉴캐슬을 설득하기 위해선 보다 더 많은 시간을 써가며 마인구를 관찰하고 분석할 필요가 있었다.

‘구단을 확실하게 납득시킬 필요가 있었다고.’

그 결과는, 실로 놀라웠다.

매번 관찰할 때마다 마인구의 폼은 놀랍도록 발전했으니까.

‘거진 라운드마다 성장하는 수준이었다.’

28살에 이런 성장세를 보이는 건 또 처음이었다.

그 성장세만으로도 충분히 영입할 만하다는 확신이 일었다.

현재에 이르러 마인구는 k리그2 뿐만 아니라 k리그1에서도 적수가 없어 보일 정도였다.

‘플레이 스타일에 있어서도 다채로워,’

스트라이커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격 전 지역에서 임무 수행이 가능할 것 같았다.

‘실제로 한강은 그를 다양한 포지션에서 뛰게 했지.’

때때론 플레이 메이커가 됐다가도, 어느 순간 최전방에서 강력한 타켓터로 변모해 상대의 허를 찔렀다.

파이기는 생각을 이어가다 말고 입 밖으로 말을 내뱉었다.

“움직임도, 제법 빨라졌어.”

190cm에 달하는 키답게, 처음 그를 분석했을 땐 속도에 있어선 딱히 뛰어나다고 생각지 않았다.

허나, 6개월이 지난 현재.

“라인 브레이킹이 특출나더군.”

지속적인 스피드는 평균 수준이지만, 상대 디펜시브 안에서 순간적인 스프린트로 라인을 깨는 움직임이 매우 기민해졌다.

“마치 애딘손 카바니처럼 상대 라인을 부숴버리는 것 같이...,”

파이기는 채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부우우우우우웅!

재차 울린 진동에 그는 호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음?”

발신인은 모르는 번호.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 조금은 어눌한 영어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마인쿠입니다. 저어, 일전에 한 제안. 아직 유효합니까?]

파이기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끌어 올라갔다.

< 035. 멋진 아빠란 (12) > 끝

ⓒ 강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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