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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축구를 너무 잘해-42화 (4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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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2. 멋진 아빠란 (19) >

아빠는 축구인생 2회차

42화 멋진 아빠란 (19)

영국에서 벌써 10년째 택시기사 일을 하고 있는 심 짐슨은 룸미러 너머의 남자를 힐끗, 힐끗 살폈다.

째깍, 째깍, 째각!

검은 머리칼을 올백으로 넘긴 덩치 큰 남자는 예리하게 뜬 눈으로 차창 너머의 풍경과 시간을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있었다.

남자는 무언가 못마땅한 듯 두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며 중얼거렸다.

“여기까지 10분 11초라. 조금 멀군. 이 시간대엔 지나다니는 차도 많고. 주변에 높다란 건물도 많다. 이건 다행인 건가. 자외선을 적절하게 차단할 수는 있으니. 흐흠.”

짐슨은 속으로 생각했다.

‘뭐, 뭐지 군인인 건가...? 자외선은 또 뭐야?’

워낙에 몸뚱이가 좋아 보이는 남자였다.

‘어쩌면 설마...?’

높으신 분을 경호하는 경호원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일정을 앞두고 사전에 가는 길목을 답사하는 걸지도?

‘그러고 보니 로만 아저씨도 손님으로 경호원을 태운 적이 있댔잖아.’

당시 손님은 자신을 경호원이라 소개했고 내일 있을 임무를 위해 주변 지형을 사전 답사 중 이랬었다.

택시기사에게 이런 걸 말해도 되냐고 물으니 사실은 농담이었다, 라며 웃으며 넘겼었고 말이다.

그러나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건만, 실제 tv 화면에 해당 경호원이 유명인사를 경호하는 게 나왔단다.

“...!”

최근 보디가드 영화에 심취해 있던 만큼 짐슨은 뒷좌석에 앉은 남자에게 유독 관심이 갔다.

지금도 봐라.

남자는 계속해서 손목시계의 타이머를 체크하며 세상 진지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저 건물은..., 저격수가 위치하기 딱 좋을 것 같은데?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만에 하나의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하니 버스가 방탄으로 되어 있길 바라야겠군.”

스슥, 스슥!

남자는 뒷좌석 옆에 두었던 수첩을 집어 들어 동선까지 하나하나 체크했다.

“여기, 여기, 여기가 중요 포인트야.”

짐슨은 눈동자만 굴리며 생각했다.

‘중요 포인트라는 게 무슨 의미지? 거기다 저격수라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기사 양반.”

“예, 옙?”

“저기선 우회전합시다. 예정된 루트가 딱 저 길이라서요.”

“아, 알겠습니다.”

보다 빠른 길로 나아가고자 했던 짐슨을 향해 남자가 날카로운 눈을 빛내며 말했다.

룸미러 너머로 본 그 눈빛은..., 진정 전사의 눈빛이었다.

꿀꺽!

짐슨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방탄에 저격수...!’

제 생각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어떤 높으신 분인지는 몰라도..!’

짐슨은 아주 간만에 자신이 나름 중요한 일에 가담하고 있다고 여겼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서였을까.

“여기서 멈춥시다.”

목적지에 채 도달하기 직전에 검은 머리 남자가 말했다.

짐슨은 이제 반문 없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속으론 생각했다.

‘목적지를 알려주지 않는 거구나...!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두고서...! 어쩌면 내가 적일지도 모르니까! 지금 말한 루트도..., 여러 루트 중에 하나일 지도! 적에게 혼란함을 주고자 말이야. ...치밀하군.’

영화를 상당히 많이 본 짐슨이었다.

“여기. 돈.”

“어엇? 이, 이렇게 많은 돈을?”

짐슨은 화들짝 놀랐다.

미터기에 찍힌 금액은 14파운드(한화 2만 2,900원)였다.

그런데 남자가 내민 금액은 20파운드(3만 2700원).

함께 동행해준 것에 대한 보상이 아닌가 싶었다.

“감사합니다!”

짐슨은 기쁜 마음에 20파운드 지폐를 두 손으로 넙죽 받았다.

그런데 검은 머리 남자는 빤히 자신을 쳐다볼 뿐, 내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제 앞좌석 등받이 턱에 양팔까지 걸친 채 뚜렷이 자신을 쳐다보는 남자에 짐슨은 두 눈을 끔뻑이며 반문했다.

“왜, 왜 그러시죠?”

“거슬러줘야죠.”

“어...?”

“거슬러달라고.”

“아, 옙!”

이건 착각이었나 보다.

돈을 거슬러 받자마자 남자는 인사를 건넸다.

“아아, 수고했습니다.”

보통은 그냥 내리기 마련이건만, 남자는 내릴 듯하다 말고 대뜸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로 커다란 손 하나를 내밀었다.

“아, 예. 조심히 가십쇼!”

짐슨은 그래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전우였던 만큼 해맑게 그 손을 맞잡았다.

꽈악.

“...?”

짐슨은 당황했다. 악수를 받았는데 갑자기 손님이 놓지를 않았으니.

“왜, 왜요?”

혹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걸까?

오만 잡생각이 드는 와중에 검은 머리 남자는 슬그머니 얼굴을 가까이 가져와 나직이 말했다.

“오전 9시 10분. 아까 내가 이 택시를 딱 탔을 때의 시간입니다.”

“...!?”

“장소는 동일. 내일 저는 검정색 정장 차림을 하고 있을 거요.”

기사, 짐슨은 묘한 설렘에 이어 사명감이란 게 발밑에서 꿈틀꿈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굳이 묻지 않아도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지금 나..., 캐스팅된 거잖아?!’

감동이 물밀 듯이 치솟았다.

손님을 목적지까지 태워다 주는 것에 나름 투철한 직업정신을 지녔다지만, 지금 이 순간엔 어쩌면 인생에 한 번밖에 없을 특별 임무에 배정된 게 아닌가!

‘마치..., 영화 대드풀의 그 택시 드라이버처럼!’

영화광인 짐슨으로선 언젠가 이런 현실적이고도 판타지적인 삶이 한 번이라도 이뤄지기를 꿈꿔왔었다.

촵!

곧 짐슨은 다른 한 손으로 남자의 커다랗고도 거친 손을 포개어 잡으며 말했다.

“영광입니다!”

*       *       *

다음 날.

부우우우웅!

택시기사가 우즈번 지역을 벗어나 제스먼드로 향하고 있었다.

짐슨의 설렜던 마음은 확 사라졌다.

대신 그는 믿기지 않는 눈으로 룸미러 너머, 검은 머리 남자를 바라보았다.

전날만 해도 진지하고도 남자답기 그지없었는데...,

“흐헛. 세나야. 저기 봐, 저기. 건물 무지 높다랗지?”

“우웅! 완전 높아!”

“저기도 봐 볼래?”

“와. 저건 모야아?”

“게이츠헤드 밀레니엄 브리지라는 거야.”

“그게 몬데?”

“배가 지나갈 수 있게 다리가 움직이는 도개교!”

“아빠 똑똑해!”

“흐허허헣!”

자그마한 아이를 옆에 둔 남자는..., 세상 바보 같은 미소를 연신 띠고 있었다.

“...”

이젠 몇 가지 의문이 생길 정도였다.

‘어제 말한 중요포인트는 대체...?’

마치 제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검은 머리 남자, 마인구는 때맞춰 손끝으로 차창 너머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세나야. 저길 봐.”

“우오오?”

자그마한 아이의 두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햄버그 가게다아!”

신이 난 아이의 외침에 인구는 흐뭇한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저기가 무지 유명한 햄버거 가게래. 우리 세나. 앞으로 아빠가 유아학교에 데려다줄 때마다 배고프면 말해. 저기서 햄버거 사다 줄 테니까! 저기 말고도 먹거리 포인트 여러 곳 다 파악해놨어.”

흐뭇해하던 인구는 일순 조금은 씁쓸하게 덧붙였다.

“아빠가 훈련이랑 경기 때문에 매일 데려다줄 수는 없겠지만..., 시간 나면 무조건 운전기사가 되어줄 테니까! 알았지?”

“웅!”

“아아 그리고 그 셔틀버스! 기사님한테 방탄으로 된 건지 반드시 물어보고.”

“아라쒀!”

“...”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와, 아이 앞에선 사납던 눈빛마저 세상 온순해진 남자를 본 기사 짐슨은 그만 할 말을 잃었다.

*       *       *

영국은 6-5-2-3 학제로 구성되어 있었다.

초등학교 6년, 중등교육 5년. 대학 예비 2년. 그리고 학사 3년까지.

‘그렇게 해서 의무는 총 11년.’

조금 전 유아 학교에 입학신청서를 낸 인구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진지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되뇌었다.

“초등 취학연령은 만 5세부터.”

혼자 살았을 시절엔 이런 거에 관심이 전무했겠으나 이젠 아니었다.

제 곁엔 세상 가장 소중한 딸이 있었으니까.

그런 만큼 아빠로서 많은 것들을 알 필요가 있었다.

셔틀버스가 집에서 출발해 학교까지 가는 루트까지 말이다.

“가는 길에 딱히 위험요소는 없어 보였어.”

방금 언급했다시피 초등학교의 취학연령은 5세부터였다.

그렇듯 세나가 다닐 학교는 초등학교가 아닌 유아 학교.

“유아 학교는 의무는 아니야.”

인구는 소파 아래, 그새 축구 경기 재방송을 보고 있는 세나를 보며 중얼거렸다.

“대신, 무상 교육이 지원되지.”

단지 무상 교육이라서 세나를 유아 학교에 보내는 건 또 아니었다.

“논문에도 실려 있어. 어릴 때부터 유치원 및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아동의 인지 발달과 학업 수행 능력 태도가 향상된다고.”

더 나아가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며 가장 중요한 친구를 만들고, 친화력 역시 키운다.

그런 만큼 그는 기타 수업은 제하더라도 유아 학교만은 보내고 싶었다.

인구는 조금 전 유아 학교에서 받아온 설명 책자를 보며 혼잣말을 이었다.

“만3세부터 4세까지는 널서리라는 반에서 교육을 받는다라.”

한국과는 달리 널서리에서 2살까지는 놀이 위주가 주였다.

3살부터는 단어, 중요 표현에 중점을 두고 말이다.

“언어 익히는 게 중요하긴 하니까.”

입학 시기는 9월로 결정이 났다.

물론 인구가 본 세나는 영국인이 아닐까 싶을 만큼 영어를 잘했다.

입꼬리가 대번에 끌어 올라갔다.

“후흣, 날 닮아서 천재니까.”

그러다 말고 인구는 물었다.

“안 떨려?”

“뭐가아?”

세나는 축구경기에 심취한 얼굴로 입을 헤 벌린 채 되물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거잖아. 그것도 같은 한국인이 아니라 외국인.”

세나의 나이 이제 4살이었다.

환경이 갑자기 바뀌어버렸으니 적응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었다.

‘하물며 다 큰 어른들도 외국나가서 적응하기가 힘든데...’

그렇게 생각하니 세나가 다 안쓰러웠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세나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웅, 안 떨려.”

“정말?”

“웅.”

“왜?”

“난 아빠 닮았으니까!”

“...!?”

인구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가, 감동...!’

기습적으로 훅 찔러온 세나의 발언에 인구는 쉽사리 말조차 잇지 못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세나는 스윽! 고개만 돌려 이쪽을 돌아보고는 엄지를 쳐드는 가불기를 날렸다.

“아빠는 강하자나! 그래서 세나도 강해! 강해서 떨리 지가 않아!”

심장마비가 올 것 같았다.

*       *       *

인구가 뉴캐슬 유나이티드에 합류한 시기는 프리시즌의 끝자락을 달리고 있을 때였다.

남은 경기는 3부 리그 소속 구단과의 한 경기.

그리고 인구는 해당 경기에 후반전 34분에 출전해 1골 1도움을 기록했다.

짧은 시간 공격포인트를 생산한 만큼 평은 좋았다.

[뉴캐슬의 새로운 신입생들! 후반전 대거 출전하며 나쁘지 활약 펼쳐!]

[뉴캐슬의 신입생 마인쿠! 3부 리그 선덜랜드 상대로 1골 1도움 기록해!]

[나름 성공적인 프리시즌 경기를 치른 마인쿠!]

허나 상대가 3부였던 만큼 이슈까진 되지 못했다.

*       *       *

시간은 더욱 흘러 잉글랜드 챔피언십 개막전이 코앞으로 도래했다.

뉴캐슬의 툰들은 지난 몇 년간 라파엘 배니테즈의 성향을 보아왔기에 새로운 신입생들에 대한 기대가 거의 없었다.

하물며 영입한 개개인의 선수 몸값은 채 500만 파운드(한화 81억)도 넘지 않았다.

영입한 4명의 선수를 다 합하더라도 마찬가지.

즉, 단순 가치만으로 툰들에게 있어 그들은 벤치 자원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던 거다.

경기를 며칠 앞두고서 툰들은 유추했다.

- : 이번 신입생들은 내 생각에 라파엘 배니테즈가 지휘봉 잡는 동안엔 필드에서 볼 일 없을 듯.

- : 솔직히 까놓고 말하자. 영입생 중에 주전급은 없어.

- : 제일 비싼 동양인 몸값이 100만 파운드(한화 16억) 수준인데 뭐..., 말 다했지.

여기에 라파앨은 쓰던 선수만 집요하게 써먹는 유형.

더욱이 이적생들의 퀄리티 자체가 떨어지기까지 했고 말이다.

그럼에도 소수는 은근한 기대를 보였다.

- : 연습경기랑 지난 프리시즌 마지막 경기를 직관했어. 짧은 시간이었지만..., 인쿠 플레이 괜찮던데? 적어도 살로몬 런던보다는 나아보였다구.

- : 아추나 런던보단 인쿠를 한 번 기용해보는 게 어때?

- : 인쿠 진짜 나쁘지 않다. 로보트 파아기가 간만에 물건 건졌어!

물론 상당수는 아예 인구의 이름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지만.

당장 지난 시즌부터 삽질하느라 욕먹는 경쟁 포지션의 살로몬 런던만 하더라도 몸값이 1200만 파운드(한화 196억)가 아니던가.

그러나 경기 당일.

뉴캐슬 유나이티드는 원정길, 브렌트포드전에 마인구를 당당히 멤버로 포함시켰다.

< 042. 멋진 아빠란 (19) > 끝

ⓒ 강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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