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빠는 축구를 너무 잘해-55화 (5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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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5. 마! (12) >

아빠는 축구를 너무 잘해!

55화 마! (12)

EFL컵은 EPL, 챔피언십, EFL 리그1, EFL 리그2, 이렇게 총 4개 리그가 참여하는 대회였다.

그렇듯 얼마든지 32강 전에서도 하위 리그 팀과 맞부딪칠 수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브라이튼이다.”

화창한 오후.

라파엘 배니테즈는 트레이닝복 차림새로 훈련장에 자리한 선수들을 향해 말했다.

“현재 브라이튼은 EPL에서 순위 12위를 기록 중인 중위권 팀이지. 불과 4년 사이에 우리 뉴캐슬과는 입지가 완전히 바뀐 팀이고 말이야.”

이어 말했다.

브라이튼은 32강 상대가 뉴캐슬이라는 것에 더없이 기뻐하는 중이라고 말이다.

선수들은 곧장 반응했다.

“FUCK!”

“아주 본때를 보여줘야겠네.”

“빌어먹을 새대가리 놈들. 지들 2부, 3부에서 전전할 때 우린 EPL을 헤쳐나가고 있었는데.”

라파엘은 벌써부터 승부 욕이 끌어 오른 선수들을 보며 나름 만족한 미소를 띠었다.

특히나...,

‘인쿠...!’

이미 땀에 젖은 모습인 그는 상체를 홀라당 깐 채로 성난 근육을 뽐내고 있었다.

표정은 어느 때보다 화가 나 있는 것 같았고 말이다.

‘승부 근성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풍기는 기세부터가 사나워졌다.

이는 매번 동료들에게 이로운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승리욕과 더불어 활활 타오르는 연대감이란 걸 더욱 뚜렷하게 느끼게 만들었으니까.

‘툰이 다 되었군.’

반면 인구는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서서 이틀 전 일화를 떠올렸다.

[세나야. 오늘은 아빠 경기 봐쒀?]

[우움...?]

첫 질문부터 세나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거기서부터 인구는 불안함을 느꼈다.

[사실 안 봐써...]

[왜? 어째서?]

인구는 최대한 상냥한 미소를 띠며 반문했다.

진짜 보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으니까.

마음 같아선 경기장에 데려가고도 싶었으나..., 꾹 참았다.

유아 학교 일정도 일정인 데다, 경기장 내 사람들이 너무 빽빽이 차 있었으니까.

‘한 살 더 먹으면 데려가든가 해야지.’

세나가 답하기 전에 친절히 전날 일정표에 관해서도 설명하였다.

[우리 세나가 대체 왜 안 봤을까아? 아니, 아빠가 절대 화내는 건 아니구. 그냥 궁금해서. 일정표만 봐도 딱히 빅경기 간에 대결이란 게 없었거든.]

[우웅..]

[어제자 경기라고 해봤자 EPL 토트넘 VS 브라이튼 경기가 있었고, 리버풀도 본머스라는 하위권 팀과 붙었고. 첼시도 리그 꼴등이랑 붙었잖아. 라리가의 바르셀로나나 레알 마드리드는 그날 경기 자체가 없었고.]

인구는 눈웃음까지 지으며 가벼이 손사래를 쳤다.

[절대 아빠가 따지는 건 아니고. 진짜 궁금해서야. 바이에른 뮌헨도 리그 최하위 팀이랑 붙었는데. 설마 우리 세나. 파리 생제르맹 경기 본 거야? 거긴 진짜 한 팀이서 다 해 먹는 리그인데? 그런 거야? 응?]

[토트넘 경기 봐써...]

[...토트넘이 빅팀이야?]

[손흥빈이 있자나.]

[...]

[그래서 재미쒀.]

[아빠 경기는? 그때 아빠 경기도 같이 했는데?]

[하지만..., 토트넘 대 브라이튼 경기가 더 재밌눈걸...]

[...]

쿠쿠쿵-! 쿠쿠쿵-!

천둥이 정수리 위로 다발로 내리꽂힌 순간이었다.

와중에 EFL 32강 상대가 바로 브라이튼이다.

으득!

이틀 전 일을 떠올린 것만으로 대뜸, 인구는 불끈 쥔 오른 주먹을 들어 보이며 소리쳤다.

“브라이튼, 그 새다가리놈들을 쳐부수자아아!”

때맞춰 라파엘의 간단한 연설이 끝났다.

“우오, 우오오오오오!”

그리고 인구를 빅 브라더라 첫 번째로 인정한 디안드루 예들린이 가장 먼저 호응했다.

그가 옆에서 흠칫 떨었다가 말고 똑같이 불끈 쥔 주먹을 들어 포효한 것이다.

“으어어어어!”

“우오오오오!”

이어 인구에게 처음부터 호감을 보였던 자말 라셀스와, 인구의 합류 후 공격포인트 생산이 더욱 쉬워진 아유세가 따라 외쳤다.

우오오오오오!

으어어어어어!

주장과 팀의 에이스까지 합세하자 금세 선수단은 전염되어 모두가 한마음 한목소리로 소리를 내질렀다.

*       *       *

실전 경기에선 관중들의 함성에 의해 선수들의 리딩 목소리가 묻힐 수 있었다.

더욱이 암만 뉴캐슬의 플랜 전체가 공수 간격이 좁고, 라인이 높더라도 공격수와 수비수 간의 소통은 한계가 있는 법.

그렇듯 훈련 간에도 인구는 외침과 더불어 손동작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스윽, 숙!

“올라와!”

투웅!

순간 우측면의 디안드루 예들린이 오버래핑을 시도했다.

숙!

인구는 검지 끝으로 우측 윙어 멧 리치를 가리키더니 전진 지시를 내렸다.

리치는 곧장 해석했다.

‘Hurry Up...!’

투웅!

그 역시 해석과 동시에 우측 사이드에서부터 빠르게 적진 깊숙이 뛰어들었다.

투웅!

“패스!”

인구는 외쳤다. 수비수를 등진 발아래론 그새 존조 셀비의 땅볼 패스가 배달되었다.

‘오케이.’

예들린이 미끼 역할로 상대측 풀백을 붙든 것을 본 인구는 보다 뒤쪽에 자리를 점한 멧 리치에게 크로스를 올렸다.

투웃, 탓!

리치는 가슴 트래핑으로 볼을 받은 뒤 망설임 없이 문전으로 볼을 띄웠다.

우다다다다다!

타켓터, 살로몬 런던이 좌측 박스 뒤쪽에서 어슬렁대다 머리부터 들먹이며 안으로 뛰어든 것도 바로 그 순간이었다.

타앙!

이윽고 낙하한 공은 정확히 런던의 이마에 맞아떨어졌고 크로스바 중앙 아래로 정확히 꽂혔다.

촤락!

“예에에!”

전술 훈련 간 첫 득점에 성공한 런던은 양팔을 들썩여가며 환호를 내질렀다.

이후로도 전술 훈련은 계속되었다.

이 팀의 중추이자 공격의 탄두는 다른 누구도 아닌 인구였다.

자말 라셀스는 보았다.

인구가 왼손을 오른팔을 감싸듯 가벼이 가져가는 것을.

이는 인구가 선수들에게 축구 버전에 맞게끔 각색한 수신호였다.

‘스트라이커에게 대인마크를 실시하라!’

투욱!

그 즉시 자말은 한 걸음 떨어져 있던 아유세 페레즈에게 바짝 붙었다.

“이런...”

아유세의 입에서 짧게 탄식이 터져 나왔다.

순간 스프린트로 센터백 배후 공간을 파고들려는 참에 도리어 자말 라셀스가 밀착해 템포를 끊어버렸으니.

인구는 이번엔 왼팔을 활짝 옆으로 펼쳤다.

벌어진 입으론 침을 튀겨가며 외쳤다.

“옆으로 나란히!”

그 순간 수비수들의 대형이 지그재그에서 세로로 일치하게 줄지어 섰다.

투욱, 투웃!

삐이이이이이이!

“아으!”

상대 윙어, 제이코 머피는 동료가 반대편에서부터 기습적으로 찔러준 대각 패스에 왼편에서 침투했다가 말고 허탈한 표정으로 멈춰섰다.

코치가 휘슬을 불며 오프사이드를 선언한 것이다.

코치들은 어려움 없이 선수들을 실시간 리딩하는 인구를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대단한데요.”

“맙소사.”

“인쿠는 진짜 뒤에도 눈이 달린 건가?”

“내가 볼 땐 귀도 눈 역할을 하는 것 같아.”

과거, 인구의 선발 유무를 두고 다퉜던 두 코치도 다를 바 없었다.

“라파엘 감독님의 전술 아래에서, 저런 수신호가 가미되니 선수들의 움직임이 뭐랄까, 한 몸 같이 움직이게 됐다랄까요?”

인구의 선발을 반대했던 공격전담 코치, 닐슨 오클리는 이제 인구를 세상 애정 어린 눈길로 보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수비전담 코치 애런 롤백이 고개를 주억대며 거들었다.

“리더십이 보통이 아닙니다.”

“그러니 말이오.”

닐슨 오클리는 긍정했다.

애런 롤백의 말처럼 선수 중엔 간혹 응집력과 리더십이 유별나게 타고난 이들이 있으니까.

거기에 실력까지 갖췄다면 응당 주변 선수들은 따르기 마련이었다.

롤백은 두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며 말을 이었다.

“저 수신호는 또 군대에서 배운 거라더군요.”

“군대요? 아아, 그러고 보니 한국은 의무 복무랬던가.”

“분명, 인쿠는 군대에서도 엘리트였을 겁니다.”

“듣기론 사격도 만발이라던데.”

“인쿠가 그러던가요?”

“예. 특등사수였답니다.”

롤백은 감탄에 겨운 얼굴로 혀를 내둘렀다.

“스나이퍼로서의 재능까지 타고났다니...”

팀 성적도 좋은 데다 그러한 성적의 일등공신이 인구인 만큼 코치들은 그만 사랑에 빠져버렸다.

물론 필드 바깥에선 라파엘의 실시간 교정이 지속됐다.

그는 터치라인을 이리저리 걸으며 선수들의 대형과 상황에 따른 움직임을 조율하였다.

“포올 간격 좁혀어!”

“자말도 마찬가지!”

“사이사이 공간을 최대한 좁혀 들어서 밀집도를 높인다! 그래야 상대에게 패스를 주고받을 시간과 공간을 내주지 않을 수 있으니까!”

협업 플레이 시 개개인의 움직임까지 지시했다.

“런던이 등지고 있고 몇 미터 거리에서 상대가 볼을 몰고 오면 내가 뭐라고 했나! 폴! 너는 하프로! 키어론! 너는 옆에 있는 런던을 견제하면서도 폴과 너 사이 공간으로 패스가 들어오지 못하게 위치해야지! 왜 반대쪽에 위치해서 공간을 열어두는 거야! 어?!”

그뿐만 아니라 측면에서의 압박, 커버, 지원에 관해 어긋남이 있으면 라파엘은 어김없이 교정했다.

그에 맞춰 인구는 수신호로 보다 더 빠르게 움직임을 가져가게 만들었고 말이다.

*       *       *

11월.

브라이튼 알비온은 EFL컵 32강 상대가 뉴캐슬이라는 것에 다행이라 여기고 있었다.

- : 애스턴 빌라 안 만난 게 어디야.

ㄴ : 인정. 가능하다면 더 하위권 팀과 붙었으면 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아. 차선은 된다고.

- : 3부나 4부 팀과 붙는 게 그래도 낫다 싶지만..., 우리가 딱히 EFL컵에 신경 쓸 급은 아니잖아?

- : 그냥 리그에 집중하는 게 낫지. 아아, 물론 이번 뉴캐슬은 제물로 삼고.

EFL컵은 EPL 팀들에게 있어선 딱히 매력적인 대회가 아니었다.

특히나 브라이튼과 같은 중위권, 때때론 하위권에 머무는 팀이라면 더욱이.

상금도 FA컵과 비교해 적을뿐더러, 브라이튼이 리그에 집중해도 모자랄 얇은 스쿼드 댑스를 갖춘 게 원인이라면 원인이었다.

“그런 만큼, 로테이션을 가동해야겠지.”

브라이튼 감독 크리스 휴턴은 중역 의자에 느슨하게 앉아 중얼거렸다.

사무책상 앞엔 조금 전 뉴캐슬에 관한 리포트를 건넨 수석코치 네이선 포옛이 서 있었다.

“예, 저도 같은 의견입니다.”

“EFL컵에서 우승하면..., 유로파 리그 2차 예선권을 획득할 수 있다지만...”

브라이튼과 같은 팀은 리그 잔류가 1순위였다.

“더욱이 우리가 우승할 확률은 거의 없지.”

EFL컵엔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EPL 소속 구단도 참여한다.

맨체스터 시티, 첼시, 리버풀과 같은 소위 빅팀들.

냉정히 보건대 그 팀들을 상대로 브라이튼은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그렇듯 EFL컵에 집중했다가 체력 저하로 도리어 리그 성적에 문제를 일으킬 수가 있었다.

그러니 일찍이 단념한 것이다.

허나, 크리스 휴턴은 살포시 미간을 좁히며 중얼거렸다.

“물론 뉴캐슬 상대로 질 수는 없고 말이야.”

그에게 있어 뉴캐슬은 빌어먹을 전 직장이었다.

라파엘 배니테즈가 부임하기 전 뉴캐슬을 이끌었던 감독이 바로 그였으니까.

그로선 팀을 그런대로 이끌어가는 와중에 대뜸 라파엘이라는 이름값에 밀려 방출당했었다.

으득.

그때만 생각하면 절로 이가 갈렸다.

애초에 2부 팀인 뉴캐슬을 상대로 진다는 것부터가 자존심이 상할 일이었다.

< 055. 마! (1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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