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056. 마! (13) >
아빠는 축구를 너무 잘해!
56화 마! (13)
화창한 오후. 인구는 소파에 앉아 물었다.
“오늘은 어땠어?”
“우우우우~”
수우욱!
“오느을?”
거실 한편에 아무렇게나 놓인 미끄럼틀을 타던 세나가 내려오자마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인구는 한 손에 리모컨을 쥔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뭐, 괴롭히는 사람은 없었지? 힘들었던 일이 있었다거나.”
“우움. 없었써.”
“진짜?”
“웅.”
“그럼 재미난 일은?”
“우움...!”
잠시 고민하던 세나가 이윽고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토미가 나한테 꽃 선물로 줘써!”
“토.미.”
순간 인구는 나직이 그 이름을 씹듯이 중얼거렸다.
두 눈은 가늘어졌다.
“토.미.라.”
세나가 유아 학교, 널서리반에 입학한 지도 벌써 2개월 가까이 흘렀다.
자신을 닮아서인지 딸은 곧장 적응했다.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는 것 같고.’
유아 학교 담임도 칭찬할 정도였다.
[애가 학습력이 무지 빠르네요~]
하지만 요 며칠 사이, 인구는 새끼 늑대 한 마리가 슬금슬금, 귀엽고 사랑스러운 세나에게 접근한다는 것을 인지했다.
“토미, 랄라나 말이지?”
“웅, 마자.”
“걔 나이가 다섯 살이었던가?”
“웅웅. 오빠야.”
오빠들 중에 가장 위험하다는 유아 학교 오빠에 인구는 으음, 이라며 옅게 신음을 터뜨렸다.
그도 그럴 게 그 꼬맹이 녀석이 며칠 내내 세나에게 갖은 애정 공세를 퍼붓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틀 전에는 인형을 줬잖아.”
“마자. 이거! 헤헷!”
세나는 이미 손에 쥐고 있던 조그마한 곰돌이 인형을 들어 해맑게 흔들었다.
인구는 애써 상냥한 웃음을 지었다.
허나 속은 달랐다.
‘싹을 잘라야 하는데...’
토미 랄라나는 금발 머리에 초록 눈을 한 작고 귀여운 꼬맹이였다.
‘세나에 말에 의하면 말이지.’
세나는 유독 그 아이에 관해 자주 언급하곤 했다.
[토미는 세상에서 제일 잘생겨쒀.]
[토미 오빠는 날 잘 챙겨줘!]
[토미 오빠는 무지무지 착해!]
“...”
왠지, 인구는 서운함을 느꼈다.
‘언제는 아빠가 최고라더니..’
‘내가 제일 잘생겼다라고 했으면서...’
“허, 참.”
문득, 인구는 스스로 생각해봐도 황당한 지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거에 서운함을 다 느끼네?’
간간이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딸이 다른 남자랑 사귀게 된 것을 아빠가 알았을 때, 부정적인 반응이 이해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막상 아빠가 되어보니까...,
‘느껴지네. 아주 자알 느껴져. 질투? 서운함? 그런 비슷한 감정이 꿀렁인다고.’
더욱이 세상 남자들은 죄다 늑대라는 게, 딸이 생기고 보니 진짜 그래 보였다.
토미 랄라나라는 꼬맹이를 처음 봤을 때도 그랬다.
세나는 세상에서 정말 멋진 남자라고 했지만..., 요리 보고 저리 봐도 새끼 늑대였을 뿐이니까.
얼마의 시간이 지나서였을까?
토미 랄라나에 관한 건 잠시 미뤄두고 인구는 슬쩍 슬쩍 눈치를 보더니 tv를 켰다.
그리곤 꽤 과장되게 화들짝 놀랐다.
“오옷! 세나야 이거 봐!”
“웅? 모야!”
tv 화면 속, 뉴캐슬 관련 매체에서 내일 있을 경기에 대해 패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일 뉴캐슬 유나이티드는 브라이튼 원정길에 오르게 됩니다!]
[상대 브라이튼은 현재 epl에서 12위를 기록 중에 있지요!]
[브라이튼은 역동적인 축구를 구사하는 팀입니다. 그리고, 상당히 거칠지요!]
“와~ 내일 브라이튼 vs 뉴캐슬 경기가 예정되어 있네? 그것도 우리 세나 딱 유아 학교 다녀오고 나서 1시간 뒤에. 밥 먹고 씻고 하면 따악 소파에 앉아서 시청하기 적당한 시간에 말이야.”
“우웅. 그렇네에~?”
세나가 관심을 보이자 인구는 빠르게 덧붙였다.
“내일 예정된 경기를 보니까..., 오옷. 그 시간대엔 딱히 빅 경기가 없어!”
“우웅.”
“있어봤자 애스턴 빌라 경기랑 본머스, 에버턴급 정도네.”
힐끗.
인구는 눈동자를 굴려 세나를 보았다.
어느덧 전동자동차 마쎄라튀의 운전석에 자리한 세나는 tv 화면을 보며 커다란 두 눈을 끔뻑 끔뻑거렸다.
패널들은 브라이튼을 분석하고 있었다.
[브라이튼엔 거친 선수들이 상당히 많은데요. 한때 뉴캐슬에서 뛰었던 잔셀 음벰바 선수도 그 중 한 명이지요.]
[올 시즌, 음벰바는 가장 많은 파울 수를 기록 중인 선수입니다.]
[또 다른 한 명은 제퍼손 레르마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레반테 시절부터 악명이 자자한 선수입니다.]
[아아. 이 선수..., 경기마다 상대 선수의 발이나 손을 밟으려는 행위가 포착되는 선수죠!]
“와. 상대 선수들 무지 거친 놈들이네. 이거이거 위험하겠는데?”
인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러면서도 세나의 눈치를 살피며 속으론 간절히 바랐다.
‘세나야, 아빠 경기 볼 거지? 꼭 봐야 해.’
딸이 챔피언십 경기보단 epl 경기를 선호한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인구는 적잖게 충격을 받았었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
그나마 내일 경기 시간대엔 빅 6구단 및 해외 빅 팀의 경기가 없었다.
그런 만큼 인구는 딸이 내일 경기만큼은 꼭 봐줬으면 했다.
비록 빅 경기는 아니긴 하나 자신의 첫 EFL컵 데뷔전이 아니던가.
‘데려가고 싶지만...’
시간대도 맞지 않은 데다, 위험했다.
‘원정길은 특히나 위험하지.’
이때쯤 인구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볼 거야? 아빠 경기?”
스윽.
세나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순두부같은 볼에 커다랗고도 순수하기 그지없는 눈을 한 세나는 이윽고 환하게 웃어주었다.
“웅. 볼꺼야! 아빠 경기! 집에서 응원할꼬야!”
“흐헣”
세상이 새하얗게 밝아진 순간이었다.
* * *
경기 전부터 커뮤니티 사이트에선 툰(뉴캐슬 서포터)들과 갈매기(브라이튼 서포터)들이 전투를 벌였다.
- : 갈매기 놈들. 내일 경기에서 날개 꺾이겠네.
ㄴ : 네놈들은 우리 날개 꺾을 손도 없잖아?
- : 뉴캐슬이 이길 겁니다. 역대 전적에서도 뉴캐슬은 브라이튼에 앞서니까요!
ㄴ : 응~ 언제적 뉴캐슬~? 얘들은 아직도 과거에 살고 있나 봐. 딱 잘라 말할게. 너넨 지금 챔피언십이고 우린 EPL에 있어.
ㄴ : 그래서 뭐. 어쩌라고!
- : 지금 뉴캐슬에 아유세 페레즈 말고는 몸값 2000만 파운드(한화 319억) 넘어가는 선수 전무하지 않냐?
ㄴ : 선수 몸값 높다고 잘하는 건 아닌데? 멍청한 새대가리 놈들,
ㄴ : 누가 뭐래? 그냥 물어본 거잖아. :)
툰들은 열띠게 맞서 싸운 반면, 갈매기들은 비교적 여유롭게 받아치고 있었다.
이는 당연했다.
양 팀의 입지는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으니까.
상당수가 아닌, 모든 언론사가 뉴캐슬을 언더독으로 평가하고 있을 정도가 아니던가.
일부 매체는 브라이튼이 뉴캐슬을 상대로 주전 자원 대신 1.5군, 더 나아가선 2군을 가동할지도 모른다고 예측하였다.
경기 전 기자회견장.
언론의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브라이튼 감독, 크리스 휴턴은 기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내일 경기에선 일부 주전 자원들에게 휴식을 부여할 예정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선수들에게 휴식을 부여할 예정인가요?”
“알리래자 자한바크슈, 플로린 안두네, 이브 비소마, 그리고 레오 발로군까지요.”
언급한 선수 모두 공격과 수비수, 중앙에서 핵심으로 자리 잡은 선수들이었다.
휴턴은 입가에 미끈한 미소를 띠며 덧붙였다.
“그들 대신 그간 출전 시간이 적었던 선수들에게 기회를 줘볼 참입니다.”
“글랜 머레이도 내일 경기에서 출전할 수 있습니까?”
브라이튼 지역 기자가 물었다.
글랜 머레이는 올해 서른네 살로 베테랑 중에 베테랑이었다.
브라이튼에서만 지난 2008년부터 2018년, 현재까지 동행 중에 있었고 말이다.
중간중간 임대 신분으로 팀을 떠나긴 했으나 갈매기들에게 있어선 레전드 그 자체였다.
휴턴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는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고, 또 브라이튼에 많은 도움이 되는 선수니까요.”
그 외에도 휴턴은 몇몇 선수들에 관해 언급했다.
한 기자는 이런 질문도 건넸다.
“그러다 자칫 뉴캐슬에 패하면요?”
듣고 보니 감독이 너무 많은 주축을 제외시키겠다고 한 것이다.
휴턴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어쩔 수 없는 거죠. 하지만, 딱히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브라이튼은 매 시즌 발전한 반면에, 뉴캐슬은 시즌을 치를수록 내려앉은 팀이니까요.”
“감독님의 전 소속 구단인 데다, 팀을 떠날 당시 구단주와도 마찰이 있지 않았습니까? 이와 관련해 개인적인 감정이 남아있지는...,”
“그런 건 없습니다.”
휴턴은 딱 잘라 말했다. 물론 속으론 벼르고 있었다.
‘아주 박살을 내주지.’
뉴캐슬에 쪽이란 쪽은 다 선사하고 싶었다.
이 인터뷰도 그러한 과정 중 하나였다.
그때, 뉴캐슬을 연고로 한 기자는 자존심이 상한 얼굴로 물었다.
“뉴캐슬을 너무 만만하게 보고 있는 것 아닙니까?”
경기 전부터 선발 명단을 저리 세세히 언급하는 것 자체가 진정 뉴캐슬을 얕잡아보고 있다는 소리였다.
툰이기도 한 기자는 이 상황이 굉장히 불쾌했다.
허나 크리스 휴턴은 어깨를 으쓱이더니 씨익 웃어 보였다.
“만만하게 보는 거, 맞습니다.”
* * *
경기 당일.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커뮤니티 스타디움.
약 3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곳에 갈매기(브라이튼 서포터즈)들 몇몇은 웃통을 홀라당 깐 채 열띤 응원을 펼쳤다.
해설진은 흥에 겨워 외쳤다.
[브라이튼 홈에서 치러지는 EFL컵 32강전!]
[약 2만 명에 이르는 관중들이 이곳 홈구장에 방문했습니다!]
평소보다는 비교적 적은 수치라 할 수 있었다.
그만큼 브라이튼에게 있어 뉴캐슬은 그저 밟고 지나갈 계단 한 칸 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거다.
한편 브라이튼에서 40년째 살아가고 있는 찐 갈매기, 롭 케인은 우락부락한 근육을 뽐내다 말고 한쪽 눈을 부라렸다.
“저놈이 인쿠라고?”
올 시즌 브라이튼이 뉴캐슬을 상대하는 건 처음이었다.
거기다 챔피언십으로 떨어진 뉴캐슬 선수진에 관해 아는 갈매기들은 거의 전무.
그럼에도 그 입에서 인구가 언급된 건, 그 옆에 있는 친구 토니 바버가 몇 번씩이나 언급했기 때문이었다.
“맞아. 지금 챔피언십에서 16골이나 넣은 녀석.”
“참 재수없게 생긴 놈이네.”
16골이나 기록 중이라고 해서 딱히 견제할 선수라고는 보이지지 않았다.
그만큼 롭 케인을 비롯해 다수의 갈매기들은 뉴캐슬을 말 그대로 당연하게, 이겨야 할 상대로 여기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케인은 갈매기로서 자신의 책무를 다하고자 했다.
그렇듯 경기 전, 펜스 가까이 있던 그는 인구가 터치라인에서 잠시 뉴캐슬 감독과 이야기하는 것을 보자마자 외쳤다.
“어이이이이이!”
스윽.
지근거리였던 만큼 소리를 들었는지 인구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툭!
케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가운데 손가락 두 개를 들먹이며 세상 악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살골이나 넣으라고. 이 동양인 놈아!”
대개는 무시하거나, 분노에 치미는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케인은 인구 역시 그러리라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툭!
“어엇?”
갑자기 인구가 주먹 감자를 들먹이더니 눈알을 부라리며 카운터를 먹였다.
순간 멀리서도 살기가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다.
“모공이란 모공은 꽉 막힌 대머리 새끼가 나대네? 손가락뼈 마디마디를 꺾어버릴라.”
케인은 자기도 모르게 두 손을 퍼뜩 접었다.
‘모공 꽉 막힌’에서 마음엔 크나큰 상처를 입었다.
< 056. 마! (13) > 끝
ⓒ 강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