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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2. 인구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23) >
아빠는 축구를 너무 잘해!
82화 인구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23)
우오오오오옷- - -!
오오오오오 - - -!
세임트 제임스 파크에 자리한 툰들과 스퍼스 모두가 자리에서 엉덩이를 들고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오오옷...!]
해설진조차 찰나지만 중계하는 것을 잊고 입을 떡하니 벌렸다.
페널티 우측 아크와 맞닿는 지점인 우측 하프에서, 인구의 왼발 발리킥을 맞고 공이 앞으로 쏘아졌다.
투읏-!
겨우 수비 지역으로 복귀한 토트넘의 토비 알데르배이럴트는 페널티 에어리어를 넘어서자마자 활어처럼 튀어올랐다.
헤더로 기습적인 슈팅을 굴절시키기 위함이었다.
“윽...!”
하지만 이내 그 입에선 짧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힘껏 뛰어올라 머리를 휘둘렀음에도 공은 제 머리 위를 손마디 한 뼘 차로 지나쳐버렸으니까.
각도 상이라면 그대로 크로스바 위, 또는 포스트 바깥으로 비켜나갈 것 같았다.
그러나 토비의 일그러진 표정은 펴질 새가 없었다.
오랜 경험상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이건 골이잖아...’
공에 걸린 강력한 스핀부터가, 우리집은 골망이에요!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생각대로였다.
토트넘의 골키퍼, 미셀 봄은 골라인에서 뛰쳐나오듯 힘껏 오른손을 뻗어 다이빙했다.
허나 내지른 손끝은 허공만 휙! 휙! 휘저었다.
그도 그럴 게 손끝에 닿을 것 같던 공이 딱 손을 뻗은 시점부터 일순 방향을 안으로 크게 꺾어버렸으니까.
“하...!”
벌어진 잇새론 짙은 탄식만 터져 나왔다.
속으론 생각했다.
‘3순위 골리로 까지 밀리겠네.’
기어이 공은 인사이드로 크게 휘어져 골망 중앙을 흔들었다.
촤락-!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조마조마하고도 기대어린 표정으로 지켜보던 툰들이 단체로 폴짝 뛰어오르며 포효를 내질렀다.
반면 초조한 얼굴 일색이던 스퍼스들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충격에 빠진 얼굴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토트넘 진영, 마우리시오 포채티노는 할 말을 잃었다.
인쿠! 인쿠-! 인쿠우-!
세임트 제임스 파크는 이제 축제의 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허나 포채티노의 귀엔 그들의 함성이 들리지 않았다.
두 눈은 아까부터 지금까지 쭉 인구에게 고정됐다.
‘발리 상태에서..., 인사이드로 공을 감았다고?’
그것도 왼발로 감아 찼다.
토비 알데르배이럴트가 위치한 지점에 도달할 때만 하더라도 직선상으로 향하던 공이 아니던가?
그런데 한순간 골키퍼에 도달한 순간에 방향이 안으로 크게 꺾였다.
‘그 직전 플레이도..., 굉장했어.’
부정확한 공을 달려가는 그대로 오른발 아웃프런트로 퉁겨내 밴 데이비스를 손쉽게 무력화시켰다.
“....”
포채티노의 입매는 이제로 축 늘어졌다.
쏴아아아 아아 ! 득점 후 무릎 슬라이딩을 뽐내는 인구를 보자 문득 이런 확신이 엄습했다.
경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인구만 집중 견제하면 어려움 없이 승리를 차지할 수 있으리라 여겼건만...,
‘역으로 당해버렸군.’
그 생각대로였다.
“예에! 예에에!”
인구는 무릎 슬라이딩 뽐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쉐도우 복싱 세레머니까지 과시했다.
동료들은 단체로 달려와 그런 인구를 사방에서 끌어안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구는 웃음 띤 얼굴로 어느 한 지점을 보았다.
테크니컬 에어리어에 포채티노가 침울한 얼굴로 서 있는 게 보였다.
‘계획은 좋았단 말이지.’
뉴캐슬의 키플레이어가 자신인 만큼 두 발과 체력을 묶겠다는 전략이 아닐까 싶었다.
실제로 경기 초, 중반까지는 막혔다.
그들의 커버플레이와 협력 수비, 맨 마킹에 이렇다 할 키패스를 구사할 수조차 없었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어.’
그건 바로 체력이었다.
대뜸 인구는 한껏 두 눈썹을 성나게 끌어올리며 사악한 웃음을 머금었다.
“우리 세나가 내 체력을 과하게 끌어올려줬거드은! 크하핫!”
머릿속으론 정규 훈련 후 돌아서 그간 주 7회 이어져 온 세나와의 놀이가 떠올랐다.
[아빠 비행기이이!]
[그, 그래에!]
[아빠 고속 회전목마아아! 10분 동안 태워줘어!]
[...10분씩이나...!]
[아빤 강해에에!]
[오오오오옷! 해보자아아!]
[아빠아! 업어줄 수 이써?]
[어이쿠! 우리 딸 당연하지! 말만 해! 아빠가 언제든 업어줄 테니까!]
[그럼 업어서 뛰어줘!]
[...?]
[달려어어! 달려어어어!]
* * *
토트넘 홋스퍼는 반전을 꾀하기 위해 후반전 35분이 지나 교체카드를 꺼내 들었다.
[해리 캐인! 손흥빈을 투입시키는 토트넘 홋스퍼입니다!]
핵심 자원을 투입시켜 어떡해서든 승리를 쟁취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미 그 시기, 뉴캐슬은 스코어 2 : 0으로 앞서나간 만큼 아예 수비적으로 전환한 상태였다.
더 나아가 라파엘은 살로몬 런던을 비롯해 크리스티안 아추까지 빼며 수비수를 대폭 늘렸다.
그 결과...,
삐, 삐, 삐이이이이이-!
최종 스코어 2 : 1.
경기 종료 직전 손흥빈이 수비수 배후 침투 끝에 득점을 기록해냈으나 1점차를 뒤집진 못했다.
* * *
경기 후 언론은 난리였다.
[뉴캐슬 유나이티드! 토트넘 홋스퍼 잡고 FA 8강행...!]
[로테이션 가동한 토트넘! 뉴캐슬에 된통 당해...!]
[또 다시 우승컵에서 멀어진 토트넘 홋스퍼!]
기사의 메인이라 한다면 단연 2골을 기록한 인구였다.
[멀티 골 작렬한 인쿠! 그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10년 가까이 축구와 담쌓았던 마인쿠! 27세의 나이에 다시 축구계로 돌아온 그...! 1년 반 사이에 K리그3에서 잉글랜드 챔피업십 핵심 반열에 올라...!]
[역대급 재능! 인쿠우!]
언론과 여론은 그의 서사에 관해 언급하기 시작했을 정도다.
- : 사실 난 인쿠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어. 10년도 더 된 시기에, 청소년 월드컵에서 약소국이라 평가되는 한국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독일, 잉글랜드 같은 강팀을 잡는데 핵심인 녀석이던 녀석이 바로 인쿠였거든.
ㄴ : 오...? 얘가 그때 걔야?
ㄴ : 이렇게 말하니까 기억나! 브라질 전 골 넣고 삼바 춤 추던 애잖아!
- : 인쿠는 27살에 축구를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1년 반 사이에 잉글랜드 챔피언십, 그것도 우승권 팀의 핵심으로 비상...? 그럼 10년이라는 공백기에도 불구하고 저런 폼을 보인다는 거냐? 그게 가능해?
- : 저도 한때 축구선수를 꿈꾸긴 했습니다만..., 요즘은 초등학교 4학년때 배워도 늦었다! 라고 하는 시기에요. 그리고 전 한 학년 올라갈 때마다 벽에 부딪혔었습니다. 진짜..., 이 축구판엔 타고난 재능들이 넘쳐나거든요. 그리고 인쿠는.., 그 재능들 중에서도 하이레벨 위치에 있는 친구가 아닌가 싶어요.
- : FUCK! 나는 7살부터 축구 시작했고, 공부도 다 제쳐두고 오직 축구에만 올인했는데도 아마추어 리그에서 뛰는데...., 진짜 재능이란 건 넘을 수 없는 벽 같은 건가 보네. 부럽다...!
- : 인쿠. 일반인 시절 사진 보고 왔어. 완전 뚱뚱한 갱스터던데...;;;
한 통계 매체는 인구의 뛴 거리를 보고는 이런 멘트를 남겼다.
[지송 팍에 이어 세 개의 폐를 지닌 마인쿠의 등장!]
토트넘 경기에서 보여준 인구의 활동량이 양 팀 통틀어 가장 높은 15.7km나 기록한 것이다.
이는 양 팀 통틀어 최고일뿐만 아니라 올 시즌 EPL, 챔피언십 기준에서도 최고 수치였다.
* * *
다음 날, 유아 학교.
자그마한 교실에서 인구는 몸에 적당히 달라붙는 검은 정장 차림새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맞은편엔 세나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오늘은 부모 참여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힐끗, 힐끗.
함께 참여한 주변 부모들은 인구를 눈치 보기 바빴다.
엄마를 대신하여 참여한 아빠들은 특히나 인구를 견제했다.
몇몇 친분을 다진, 축구에 문외한인 이들은 눈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무슨 덩치가..’
‘갱스터인가? 갱스터 맞지? 필립.’
‘내가 보기엔 갱스터 맞는 거 같아. 저 덩치를 봐. 저 눈빛은..., 어후! 그냥 눈빛으로 사람 죽일 것처럼 생겼잖아.’
물론 몇몇은 인구가 뉴캐슬 소속 선수라는 것을 진즉에 알아보고서 당장은 설렘을 감추기 바빴다.
‘이, 인쿠! 인쿠잖아!’
‘대박!
‘자식이 있었던 거야?’
‘오케이! 이따가 사인 요청해야지!’
‘이따 수업 끝나고 사진 촬영해달라고 하면 해줄까?’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든, 인구는 오직 맞은편에 앉아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는 딸과 새하얀 도화지를 번갈아 보았다.
‘신기해, 보면 볼수록 신기해...!’
저 자그마한 손으로 크레파스를 쥐고 있다는 것부터 신기했다.
또박, 또박, 또박.
어여쁜 금발의 여선생님은 온화한 미소를 띠며 한 번 더 강조했다.
“여러분, 오늘의 주제는 자유에요. 여러분들이 당장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면 됩니다! 딸기를 그려도 되고, 저기 저 창 밖 너머의 풍경을 보고 그려도 되요. 물론~ 부모님과 함께 그림을 그려나가도 되고!”
반면 인구는 딸이 그림 그리는 걸 지켜봤다.
세나가 함께 그림 그리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서운하진 않았다.
‘피카소의 작품에 먹물을 끼얹을 순 없으니까...!’
얼마의 시간이 지나서였을까.
“나 거의 다 그려써!”
세나가 집중하느라 살짝 달아오른 뺨으로 입을 열었다.
“오오, 그래? 어디 한 번 아빠가 볼까?”
인구는 얼굴을 테이블 가까이 스윽 가져가 그림을 내려다 보았다.
‘이건..., 미지의 동물인가?’
송곳니가 있는 것을 보니 육식동물이 아닌가 싶었다.
‘발도 네 개에. 그런데 덩치는 또 곰 같고...,’
얼굴은 고양이상이었다.
인구의 두 눈매가 좁혀졌다.
‘흐음.’
이번엔 맞추고 싶었지만 선뜻 입밖으로 정답을 꺼낼 수가 없었다.
‘도저히, 모르겠다.’
예술의 세계는 영 자신과 맞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듯 대충 그림이 완성된 것 같아 인구는 기대에 들뜬 표정으로 직접 물었다.
“딸, 그건 뭐야?”
“늑대야.”
“늑...,대.”
전혀 늑대 같지 않았으나 인구는 이내 감탄에 겨워했다.
“역시...! 우리 세나야. 늑대를 이런 식으로 표현하다니...!”
“웅웅! 멋지지?”
“완전!”
인구는 엄지를 치켜들고는 재차 물었다.
“그런데 왜 늑대를 그린 건데?”
“선생님이 그래쒀. 늑대는 목표한 것을 끝까지 쫒아간다구. 그리고 순정파래!”
“순정파?”
“웅!”
“우리 세나. 순정파가 무슨 뜻인지 알아?”
“웅웅! 죽을 때까지 한 사람만 보는 거!”
이어 세나는 세상 해맑은 얼굴로 덧붙였다.
“순정파 멋져! 헤헷!”
이 순간 딸의 순수한 웃음에 세상이 환해지는 것 같으면서도, 인구는 한 가지 단어가 관자놀이를 강타하듯 떠올랐다.
‘로맨티시스트...?’
딸이 사랑하는 늑대와 오직 한 구단을 위해 헌신하는 필드의 로맨티시스트가 겹쳐 보인 거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타 구단으로의 이적 대신, 뉴캐슬을 빅 구단으로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세나가, 더 좋아할 것 같은데?’
여기에 세나는 확인 사살을 가했다.
그새 그림을 완성한 딸이 도화지를 스윽 내밀며 순진무구하게 말한 거다.
“아빠 닮아쒀! 아빠는 나만 보자나! 멋져!”
< 082. 인구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2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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