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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7. 늑대가 되기로 했다 (5) >
아빠는 축구를 너무 잘해!
87화 늑대가 되기로 했다 (5)
약 2개월 전, 뉴캐슬 어폰타인에 미용실을 오픈한 톰 로버트슨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힐끗, 거울 너머를 보니 손님용 소파엔 네 사람이 질서정연하게 앉아 있는 게 보였다.
하나같이 팔짱을 낀 채 표정 변화조차 없이 말이다.
“...”
“...”
“...”
“...”
평소였다면 로버트슨은 농담도 주고받으며 여유롭게 미용 의자에 앉은 이 꼬마 숙녀의 머리칼을 손질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까, 깡패인가...?’
네 남자 모두 험상궂음을 넘어 얼굴에 대문짝만하게 나 깡패요, 라고 써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이 뚜렷이 쳐다보는 것만으로 로버트슨은 자신이 무언가 심각한 잘못을 저지른 것만 같았고 말이다.
왼쪽 끝에 앉은 까무잡잡한 피부의 남자(예들린)는 목 부위만 해도 ‘죽음’ 이라는 문신이 큼지막하게 있었다.
바로 그 오른쪽에 앉은 아프리카인으로 추정되는 아주 작은 키의 남자(아추)는 멋들어진 레게 헤어를...!
선글라스를 착용해 눈빛은 볼 수 없었으나 셔츠 핏 사이로 드러난 단단한 몸과 온통 도배된 팔 문신은...,
‘까, 깡패야...!’
톰 로버트슨을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들만이 아니었다.
레게 머리의 우측엔 180cm 후반에 달하는 큰 키를 지닌 까무잡잡한, 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남자(런던)가 앉아 있었으니까.
앞선 두 남자와 달리 그의 몸엔 문신 하나 없었다.
하지만 큰 덩치를 비롯해 눈빛부터가 매우 험상궂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명.
꿀꺽...!
가위를 집는 척 힐끗 거울 너머의 마지막 남자를 본 로버트슨은 다시 한번 마른 침을 삼켰다.
‘이 남자가..., 보스인가?’
190cm가 넘어 보이는 키에 검은 머리칼을 올백으로 넘긴...! 눈빛부터가 예사 눈빛이 아닌 남자였다.
크고 단단한 체격도 체격이었지만 사납게 치켜 올라간 눈썹과 산전수전 다 겪은 탁하고도 매서운 눈빛은 진정 살을 떨리게 만들었으니!
‘사자 눈 같아...!’
그런 네 사람은 하얀 셔츠에 검은 정장 차림새로 오직 이쪽만을 바라보고 있었고 말이다.
특히, 검은 머리 외국인은 제게서 단 한 번도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이래선..., 제대로 머리를 다듬을 수가...’
“이봐, 주인장.”
흠칫!
“네, 넵?”
로버트슨은 몸을 떨며 곧장 답했다.
잠자코 지켜만 보던 검은 머리 외국인의 입에서 다소 차가운 음성이 들려왔으니까.
겁먹은 눈으로 쳐다보자 그는 살포시 미간을 좁히곤 물었다.
“저 아이는 내게 아주 소중한 아이요. 그러니 다치지 않게, 장인의 정신을 발휘해서 부탁합니다.”
“아, 아.. 네, 넵!”
“실수는 용납하지 못합니다.”
“무, 물론이죠. 혹시, 원하는 스타일이, 있을까요?”
로버트슨은 용기를 내어 물었다.
그때, 질문을 건넨 순간 검은 머리 외국인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로버트슨은 손에 든 가위를 호신용삼아 외쳤다.
“왜, 왜 갑자기 일어나시는 건지...!”
“스타이일-?”
말꼬리를 늘어뜨린 남자는 그럼에도 성큼, 성큼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로버트슨은 기겁했다.
“아, 아니. 제가 뭐 잘못 말한 거라도..., 아니. 저기 그냥 제가 잘못했습니다!”
손사래까지 치며 뒷걸음질 친 그였지만 검은 머리 외국인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어, 엄청 크잖아...!’
170cm 초반밖에 되지 않는, 왜소한 체형의 로버트슨이 가까이서 본 남자는 훨씬 커 보였다.
마치 성난 곰처럼 보일 정도였으니까.
내려다보는 표정과 눈빛은..., 먹이를 발견한 맹수의 그것과 같았다.
‘내, 내가 뭔 실수를...!’
로버트슨의 동공은 크게 흔들렸다.
지금이라도 살려달라 소리라도 지를까 싶었다.
고민하는 사이 약 한 걸음 차까지 거리가 좁혀졌다.
스윽-!
일순 커다랗고도 투박한 손 하나가 앞으로 빠르게 뻗어졌다.
“흐익...!”
기겁한 로버트슨은 그만 몸을 웅크리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
하지만 몇 초가 지나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으음...?”
로버트슨은 슬그머니 한쪽 눈을 가늘게 떠보았다.
어느덧 검은 머리 남자는 미용 의자 팔걸이에 내질렀던 한 손을 얹은 채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자신에게서 등진 남자의 시선은 미용 의자에 앉아 있는 꼬마 숙녀, 세나에 향했다.
그것도 조금 전과는 달리 아주 꿀 떨어지는 눈으로.
헤벌쭉하게 끌어 올라간 입으로는 말하고 있었다.
“흐헣. 세나야. 아빠가 깜빡했네. 우리 세나. 어떤 머리스타일 하고 시퍼어? 아빠가 원하는 것보다는 세나가 원하는 머리스타일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아? 물론 아빠는 단발머리 세나도 이쁠거 같구. 머리에 살짝 웨이브를 줘도 이쁠 거 같긴 한데. 흐허허허헣.”
잠자코 있던 꼬마 숙녀, 세나는 우움, 이라며 고민에 찬 표정을 짓더니 이내 헤헷 웃으며 답했다.
“그냥 다듬을 꼬야! 난 지금 머리가 조으니까!”
“흐허헣. 그래? 그러자! 그럼!”
“흐헷.”
“흐훗.”
“흐헛.”
힐끗 본 거울 너머 세 남자도 그새 검은 머리 남자와 비슷한 빙구 미소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
로버트슨은 그만 충격을 받고 말았다.
‘이, 이 미친놈들은 대체 뭐지...?’
* * *
디안드루 예들린(미국/라트비아), 살로몬 런던(베네수엘라), 크리스티안 아추(가나)가 세나를 알게 된 건 몇 개월 전이었다.
세 사람은 인구와 함께 훈련하면 할수록 경기력이 올라감을 온몸으로 체감했다.
전반기만 하더라도 교체 출전이 주였지만 지금에 이르러선 주전 자원으로 비상했고 말이다.
그렇듯 세 사람은 인구를 동경의 대상으로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인쿠는 나의 스승이야...!] <런던>
[인쿠! 싸랑해요!] <아추>
[인쿠 형! 형만 따라갈게...!] <예들린>
때때로 그들은 집까지 찾아갔다.
맛난 음식물을 싸 들고 말이다.
[아니, 우리 와이프가 남는다고 싸줬지 뭐야~] <런던>
[형! 저 미국이랑 라트비아 이중국적자인 거 알죠? 그래서 오늘은 라트비아 음식 좀 가져와 봤어요!] <예들린>
[검색을 해보니까, 가나 음식이 한국 음식이랑 맛이 비슷하다더라고. 그래서 졸로프를 좀 만들어 와봤지. 아마, 한국의 김취볶음밥? 이랑 비슷할걸?] <아추>
그러는 중에 인간 놀이기구, 인구 회전목마를 타고 있던 세나를 세 사람은 발견하고야 말았다.
[어쩜 이리 귀여울 수가...!] <런던>
[말도 안 돼. 저 얼굴에 저렇게 귀여운 딸이 있다고...? 이건 기적이잖아..!] <아추>
[아니, 형. 우리 세나 배우해도 되겠는데요?] <예들린>
첫 만남부터 세 사람은 세나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더불어 그 시점부터 틈틈이 세나의 또 다른 놀이기구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중이었고 말이다.
삼촌으로서 인형, 장난감과 같은 선물 공세는 현재도 진행형...!
물론 세 사람의 근본적인 목표는 따로 있었다.
바로 인구와의 훈련을 통한 발전...!
“자, 자아. 다들 모여봐.”
세나의 미용이 끝난 이후 인구는 뉴캐슬 훈련장에 발을 들였다.
어느덧 네 사람은 트레이닝복으로 환복한 상태였으며, 벤치 쪽엔 세나가 과자를 먹으며 앉아 있었다.
인구는 딸이 보고 있는 만큼 평소보다 더욱 근엄하게 말했다.
“큼큼! 살로몬. 네 장점은 예전에도 말했다시피 제공권 장악이야. 그런데 때때로는 부정확하게 연결된 패스도 곧잘 동료에게, 또는 다이렉트 슈팅으로 연결지어야 할 때가 있는 법이지. 축구는 변수의 스포츠니까.”
인구는 덧붙였다.
이번 훈련은 부정확한 패스를 순두부 터치로 동료에게 연결하는 훈련이라고 말이다.
“크리스티안. 넌 오른발로 패스 하고 슛 때리는 연습하자.”
“좋아!”
“오른발도 기본적인 컨트롤을 할 수 있을 정도는 끌어올려야 이 바닥에서 오래도록 살아남지.”
디안드루 예들린에겐 크로스 및, 공수 전환 훈련 지시를 내렸다.
예전과 달리 누구 하나 불만을 품거나 반문하지는 않았다.
인구의 실시간 훈련 리딩이 반복해서 이어질수록, 세 사람은 확신했으니까.
머지않아 거친 파도와 같은 epl에서 당당히 경쟁할 수 있노라...!
또 간절히도 그러고 싶었고 말이다.
그렇듯,
“자 가즈아아!”
인구의 외침에 세 사람은 우레와 같은 포효를 내질렀다.
“우오오오오!”
“으어어!”
“으아아아!”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맑았던 하늘은 주홍빛 노을이 졌다.
세나는 큼지막한 두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아빠아. 왜 삼춘들 꼼짝두 안 해?”
그새 세나의 옆자리를 꿰차고 앉은 인구는 벤치 등받이에 편히 기댄 채 훈련장을 보았다.
그곳엔 3구의 시체가 엎드리거나, 대자로 뻗거나 기이한 자세로 누워 있었다.
벌써 10분째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고 말이다.
인구는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남자니까.”
“남자니까아?”
“응. 세나야. 남자로서 모든 걸 쏟아내면 한동안 저렇게 되거든.”
“우웅.”
세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훈련장 잔디에 얼굴을 파묻은 그대로, 살로몬 런던의 다소 진중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왜지?”
“뭐가?”
인구는 세나를 꿀 떨어지는 눈으로 보며 물었다.
런던은 얼굴을 들 생각도 없는지 재차 물었다.
“왜 이렇게까지 우리를 도와주는 거야?”
그 뒤쪽, 대자로 뻗은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예들린.
두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한쪽 다리만 안으로 굽힌 채 누워서 꼼짝 않는 아추도 궁금한 부분이었다.
“이 축구판은 경쟁 사회잖아. 상대팀이나 동료들 사이에서도..., 그런데, 왜 이렇게 우리를 도와주냐고.”
런던을 비롯한 세 사람으로선 예전부터 궁금했던 거다.
인구는 자신들을 거절하지 않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훈련 리딩에 임했었다.
지쳐서 주저앉을 것 같으면 여지없이 손을 내밀어주었다.
때때론 거칠게 옷깃을 잡아서라도 이끌어주었고 말이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난 교체 멤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잖아!’
핵심 중의 핵심인 인구에게 있어선 당시의 런던은 그저 팀에 속한 말 그대로 그저 그런 ‘동료’였을 뿐이었을 거다.
그때, 인구는 새삼 진지한 얼굴이 되어 주홍빛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세나가 너희들을 좋아하니까.”
“...!”
잠깐이지만 런던의 고개가 들렸다가 다시 잔디에 얼굴을 묻었다.
“크흡...!”
순간 감정이 벅차올랐다.
예들린은 눈동자를 최대한 위로 향하게 하여 벤치에 앉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금방 눈시울은 붉어졌다.
아추 또한 입을 앙다물며 울음을 참았다.
이 순간 세 사람의 마음은 같았다.
런던은 잔디에 얼굴을 파묻은 채 생각했다.
‘인쿠. 이녀석...! 세나를 들먹였지만..., 결국은 우리를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료 그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거잖아!’
아추는 힘겹게 한 손을 들어 붉어질 대로 붉어진 눈가를 가렸다.
‘민망해서 세나를 들먹이기는...! 이런 게 진정 우정이란 건가...? 크흡...!’
예들린은 아예 세나가 아닌 내가 너희들을 좋아하니까, 라고 잘못 들었다.
‘횽..., 크흡! 나도 형 좋아해! 아니, 사랑해!’
물론 인구의 숨은 뜻은 아주 달랐다.
‘세나가, 너희들을 놀이기구로 삼았잖냐.’
그 덕에 인구의 피로도가 크게 줄었다.
< 087. 늑대가 되기로 했다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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