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빠는 축구를 너무 잘해-94화 (94/200)

=======================================

< 094. 늑대가 되기로 했다 (12) >

아빠는 축구를 너무 잘해!

94화 늑대가 되기로 했다 (12)

영국 유소년 센터에 입단할 수 있는 최소 나이는 5살이었다.

말이 다섯 살이지 상당수는 6살로, 5살이 센터에 입단한다는 건 그만큼 재능이 뛰어나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그 나이 때의 재능이라면 대부분은 피지컬이었고 말이다.

뉴캐슬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u-6세 유소년 코치 리키 제임스는 공을 처음 만져보는 아이들에게 충분히 적응할 시간을 주었다.

본격적인 입단 테스트는 한 달이 흐른 뒤 진행될 예정.

“자자, 다들 따라해봐. "

고로, 코치 리키 제임스는 공을 앞에 두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축구에서 가장 기본시되는 건 뭐다? 공을 얼마나 잘 다루냐야. 공을 너희들 몸의 일부처럼 다룰 줄 알아야 슈팅도 하고 패스도 하고, 볼도 안 뺏기고, 때로는 상대를 드리블로 따돌리기도 하는 거라고.”

리키 제임스는 한 가지 동작을 시연했다.

바닥에 디딘 왼발로는 제자리에서 콩콩 가볍게 점프!

반면에 정지한 공 위에 올려진 오른 발로는 공의 윗면을 인사이드로 굴리고, 또 바깥 아웃사이드로 점프에 맞춰 쓸어주는 동작을.

“느껴! 느껴봐! 발등, 인사이드 아웃사이드에 촵촵! 너희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공의 감각을 느껴보라구!”

매사 열정적인 제임스가 시연과 함께 외치자 열 몇 명의 아이들이 따라 콩콩! 뛰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부터 잘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투웃-!

“으윽!”

“아우!”

인사이드에서 아웃사이드로 공을 바깥으로 쓸어내는 과정에서 그만 멀찍이 보내버린 것이다.

어느 아이는 콩! 한 번 뛴 후에 제자리에 멈춰 인사이드에서 아웃사이드로 공의 윗등을 쓸어냈다.

그러더니 스윽, 불안한 눈으로 눈치를 본다.

코치인 리키 제임스는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해도 돼. 그렇게 하고 좀 적응 됐다 싶으면 조금씩 빠르게. 내가 말 한대로 콩콩 뛰면서 슥슥! 오케이?”

이후로도 리키 제임스는 아이들에게 기본적인 것들을 가르쳤다.

“이번은 앞으로 좀 나아가보자. 코치님이 하는 거 봐봐. 오른 발 인사이드로 공을 아주 살짝 툭 쳤다가 왼발을 좌측으로 크게 가져가! 그리고 다시 오른발 스터드로 볼을 좌측으로 드래그백 하는 거지!”

“다음 건 월패스 훈련이야. 월패스가 뭔지는 다들 알지? 그래도 이 코치님이 한 번 더 가르쳐줄게!”

어른들과 달리 습득이 빠른 아이들은 몇 번 실수하더니 금새금새 따라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훈련 뒤 간단한 풋볼 게임도 끝나며 제임스의 일과가 종료되었다.

아이들은 경기를 소화하고도 지친 기색 없이 해맑은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코치님 내일 또 봐요~!”

“바이! 바이!”

“우하하핫!”

“어어, 그래! 조심히들 가!”

리키 제임스는 마주 화답해주었다.

바깥에서 기다리던 부모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하나 둘씩 떠났다.

모두가 사라지자 그는 짧게 숨을 토해내며 자그마한 사무실 안에 자리한 중역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제기랄...’

사실 리키 제임스가 뉴캐슬 유나이티드 유스 센터에 몸담은 시기는 고작해야 일주일이었다.

그리고 u-6세 레벨은 자신이 지원한 레벨이 아니었다.

‘원래는 최소 u-15세 레벨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었는데... 쩝.’

애석하게도 u-15세엔 자리가 없었다.

‘U-10세도..., U-12세도 없었지.’

결국 제임스는 U-6세 팀을 맡았다.

문득 그는 살짝 찡그린 눈으로 사무실 주변을 살폈다.

“뭔 죄다 녹슬어서는...”

2평 정도 되는 사무실 안 가구들부터가 최소 15년 이상은 된 것 같았다.

반쯤 열린 유리창 너머의 훈련장 역시 낡기는 마찬가지였다.

뉴캐슬 토박이에다가 3대째 툰이었던 만큼 제임스는 이 팀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있었다.

그래서 타 구단에서 꽤 좋은 제안이 왔어도 그는 거들떠보지 않고 이 팀을 택했다.

‘여기서 내 모든 걸 쏟아 내고자...’

최고의 유스를 양성하여 뉴캐슬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했던 거다.

하지만 막상 시설에 발을 들인 시점부터 리키 제임스는 실망의 연속이었다.

“유스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어.”

아이들의 수준도..., 비난할 생각은 없으나 여타 다른 클럽의 아이들과 비교해선 단지 취미 삼아 축구를 하는 정도였다.

아마 한 달 후면..., 아까 본 아이들 중 삼 분의 일이 입단 테스트에서 떨어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재능은 커녕 그냥 부모가 시켜서, 또는 재미로 오는 아이들도 많았고.'

거기다 규모가 워낙 적은 탓에 뉴캐슬의 U-6세 팀은 혼성 그룹이었다.

U-6세만이 아니었다.

“U-10세까지는 혼성이야.”

뉴캐슬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선덜랜드(3부 리그), 미들즈브러(2부 리그)만 해도 남아 여아가 딱딱 구분되어 있는 데 말이다.

제임스의 입매는 축 늘어졌다.

“뉴캐슬이 유스에 투자가 적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이건 구단주가 돈 아끼려고 형식상 대충 테두리만 갖춘 수준이 아닌가 싶었다.

“마이크 애슬리 개같은 놈...”

왜 뉴캐슬 소속 선수들이 자기 자식을 뉴캐슬이 아닌 다른 구단으로 보내는지도, 직접 경험해보니 이해가 갔다.

“오기 전엔 욕했었는데.”

당장 U-6세의 코치만 하더라도 이 시간대엔 자신 하나가 아니던가.

대개는 최소 3명 이상이 갖춰지는 데 말이다!

그래서일까.

기대 보다 실망이 큰 만큼 리키 제임스는 내일이라도 관둘까 싶었다.

‘열렬한 툰이신 우리 아빠랑 할아버지가 원망할 테지만...’

학부모들이 바라는 것은 간단했다.

'좋은 코치.'

그리고 좋은 시설!

이런저런 바람에 반해 역대 EPL 구단 중에서 소속 유스를 성인 무대로 진출시킨 횟수가 가장 적은 구단이 바로 뉴캐슬!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니까. 유스 시스템에 투자할 생각은 쥐뿔도 없어보이고...’

한참 속앓이를 하는 중에 낡은 출입문이 앓는 소리를 냈다.

끼이이익-

벌떡!

리키 제임스는 언제 하소연했냐는 듯 퍼지게 앉아 있다가 말고 그새 일어났다.

“누구..., 어?”

훈련장 출입문 쪽으로 허겁지겁 나간 제임스는 그만 우뚝 서 입을 벙긋거렸다.

문이 닫히기 직전, 새어 든 따사로운 햇살과 함께, 양갈 머리를 한 작은 꼬마 공주님이 이곳에 발을 들였으니까.

검은 머리칼에 순두부 같은 새하얀 얼굴을 한 꼬마는 자신을 향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헤! 안뇽하세요?”

여타 아이들과 달리 90도로 허리를 숙여 가며 인사한 꼬마 공주는 천사 같은 얼굴로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세나에요!”

“어억...!”

리키 제임스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충 봐줘도 5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 아이건만, 이리 예절이 바를 줄이야!

저 인사와 함께 배꼽 아래 가지런히 포개어진 자그마한 두 손조차...!

‘귀, 귀여워...!’

그러나 몇 초 뒤, 리키 제임스는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끼이이익-!

닫혔던 문이 재차 열리며, 스며드는 햇살 틈으로 커다란 덩치의 갱스터 한 명이 이곳에 발을 내디뎠으니까.

“어어어억...?!”

3대째 툰인 리키 제임스는 검은 머리칼을 올백으로 넘긴 남자가 누구인지 대번에 알아챘다.

“다, 당신은...!?”

이제 그는 너무 놀란 나머지 검지 끝으로 특유의 사나운 눈매를 지닌 남자를 가리켜 흥분에 겨워 외쳤다.

“인쿠 마아...?!”

*       *       *

시즌이 종료된 만큼 인구는 세나에게 보다 집중하고 싶었다.

‘그간..., 세나에게 소홀했던 것 같아. 아빠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고...!’

주변 지인들이 본 인구는 딸바보 중에서도 딸바보였으나, 그 스스로는 아직 자신이 부족하다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세나와 함께 유스 센터를 방문한 날이었다.

이유야 간단했다.

‘세나가 축구를 하고 싶어해...!’

전날, 똑똑히 보았다.

축구공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을 하찮게 보면서도, 은근히 함께 뛰어놀고 싶어 하는 그 부러운 감정을...!

또, 궁금했다.

전날 세나는 평소와 달리 아주 살얼음이 뚝 뚝 묻어나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내가 뛰어도 저것보단 잘 뛸 거 같고든. 죄다 세모발이야. 쟤들은 이미 싹이 트기도 전에 밟혀쒀. 꾸욱.]

순두부 같은 볼살에,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얼굴을 하고서 그런 말을 하니 더욱 심장이 아팠던 인구였다.

'그냥 모든 행동 말투 하나 하나가 귀엽잖아...!'

어쨌든, 그 날 이후로 인구는 세나의 축구 실력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현재.

그는 헤벌쭉하게 벌어진 입을 제대로 컨트롤 할 수조차 없었다.

그도 그럴 게 훈련장 한편.

자신이 선물한 커다란 뉴캐슬 상의를 입은 세나가 벌써 22개째 공을 떨구지 않고 리프팅을 하고 있었으니까.

통, 통, 통, 통-!

일반적인 리프팅도 아니었다.

‘저건 인싸 아싸잖아...!’

인싸, 아싸란 인사이드 리프팅, 아웃사이드 리프팅을 말함이었다.

이제 막 축구를 접한 아이, 아니 어느 정도 축구를 배운 성인이라도 절대 해낼 수 없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토옹-!

보다 공을 높게 띄어 올린 세나가 돌연 오른발을 활대처럼 휘었다가 말고 앞으로 휘둘렀다.

타앙-!

촤라악-!

“아, 아니. 세나야...!”

헤벌쭉한 얼굴 그대로 인구는 딸을 불렀다.

정확히 휘두른 발등을 맞고 날아간 공이 골망 중앙을 물결쳤으니까.

저벅, 저벅!

인구는 헤벌쭉한 얼굴을 띠면서도 혼란함에 물었다.

“뭐, 뭐야. 우리 세나. 나 몰래 축구 연습이라도 했던 거야? 아니, 가은이가 나 몰래 축구 교실이라도 보냈던 건가?”

방금 전 아웃사이드 리프팅엔 군더더기가 없었다.

‘발리킥도 마찬가지야...!’

슈팅 스탠스부터 발등에 딱 감기듯 찬 슈팅까지...! 결단코 독학으로 이뤄낼 수 없는 동작이 아니던가.

그때, 아빠의 부름에 세나는 반달 눈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혼자 연습해쒀!”

“호, 혼자. 언제? 난 못 봤는데?”

“아빠 경기 집에서 볼 때나. 다른 경기 볼 때!”

“와... 아, 아니. 아빠 있을 때는 공 한 번 안 찼었잖아?”

“그야...,”

말끝을 늘어뜨린 세나는 이내 배시시 웃으며 덧붙였다.

“아빠랑 있을 때는, 아빠랑 노는 게 조으니까?”

“이야....”

인구의 입 밖으로 진심 어린 감탄이 터져 나왔다.

어째 하루가 다르게 세나는 자신의 마음을 아주 능수능란하게 주물럭대는 것 같았다.

인구는 가슴 부근을 손으로 쓸었다.

‘방금 거, 심장이 너무너무 아팠다고.’

더군다나 세나 말대로 정말 독학한 거라면..., 볼 감각 하나는 타고났다는 소리였다.

그새 인구의 두 뺨은 발그스름하게 붉어졌다.

‘피는 못 속인다니..., 크흣.’

입꼬리는 우쭐하니 끌어 올라갔다.

이어 이 정도면 입단 테스트는 끝난 것 같아 인구는 고개를 돌렸다.

“응?”

원래 있었던 자리에 리키 제임스 코치가 없었다.

‘이 인간 어디 간 거야?’

고개를 몇 번 두리번거린 끝에 인구는 리키 제임스를 발견했다.

그는 언제 이동했는지 세나에게 딱 맞는 어린이용 유니폼 상하의 세트를 손에 쥔 채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 그는 얼굴에 설렘을 한가득 머금은 채 인구를 향해 말했다.

“아버님. 유니폼 사이즈는 이 정도면 될 것 같고. 혹 ‘우리’ 세나는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유스 센터에서 훈련을 할 수 있을까요? 가능하시면 내일부터도 괜찮은데요. 헤헷. 아아. 이 유니폼은 우리 세나에게 제가 주는 선물입니다!”

오늘, 그것도 세나를 알게 된 지 20분 정도밖에 되지 않은 리키 제임스의 입에서 ‘우리’ 가 나왔다.

< 094. 늑대가 되기로 했다 (12) > 끝

ⓒ 강로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