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빠는 축구를 너무 잘해-100화 (100/200)

=======================================

< 100. 늑대가 되기로 했다 (18) >

아빠는 축구를 너무 잘해!

100화 늑대가 되기로 했다 (18)

화창한 오후.

뉴캐슬 유소년 센터.

“으아아아!”

“우오오오!”

u-6세 아이들이 5 vs 5 경기에 한창이었다.

심판이자 코치인 리키 제임스는 최대한 아이들이 다치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뛸 수 있게끔 조율에 집중했다.

“오옷, 어엇, 오오옷...!”

하지만 그 벌어진 입에선 자꾸만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양갈 머리를 한 세나가 남자아이들 틈에서도 발군의 기량을 뽐내고 있었으니까.

“얍!”

한 아이가 오른발 프런트 태클을 가하자마자 세나는 오른발 아웃사이드로 공의 위치를 퍼뜩 옮겼다.

스윽!

프런트 태클에 실패한 남자아이는 반사적으로 어깨부터 들이밀었다.

‘몸을 부닥쳐서 다음 동작을 이어가지 못하게 만들려는 거야!’

리키 제임스의 입꼬리는 뿌듯하니 올라갔다.

자신이 가르쳐준 다음 동작을 그대로 수행하지 않았나.

하지만 곧바로 제임스의 입은 재차 턱! 하니 열렸다.

“와...!”

툭, 타앗-!

남자아이의 어깨 푸싱이 가해지기 직전, 세나가 오른발 인스텝으로 공을 툭 쳐 배후 공간으로 빠르게 나아간 것이다.

“속도 봐...!”

리키 제임스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 말처럼 순식간에 세나와 남자아이와의 거리가 2m나 벌어졌다.

타앙-!

직후 세나는 골문과의 거리까지 5m를 남겨두고 오른발 강슛을 때렸다.

골키퍼가 왼손을 위로 홱! 뻗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은 손끝을 뒤로 꺾어서까지 밀고 들어가 골망 속으로 쏙 향했다.

촤락!

“와.”

“이야~”

“여자아이가 대단하네.”

짝 짝 짝! 짝!

u-6세 연습 경기장 바깥에서 구경하던 부모들이 박수 갈채를 보내주었다.

“우오오오!”

득점에 성공한 세나는 폴짝, 폴짝 뛰어가더니 이윽고 팬들을 향해 돌아섰다.

이어 어깨 위로 들어 올린 양 엄지로 등 번호를 가리켰다.

“흐헣.”

다른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세나의 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던 인구의 입가에 빙구 미소가 걸렸다.

그도 그럴 게 세나의 등번호는 9번이었으니까.

자신과 같은...!

*       *       *

얼마의 시간이 지나서였을까.

톡, 톡, 톡-!

훈련 시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세나와 몇몇 아이들은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인구는 훈련장 펜스 바깥 벤치에 앉아 그런 딸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옆에서 코치인 리키 제임스는 설렘을 가득 머금은 얼굴로 말했다.

“아시죠, 아버님? 세나는 유전적으로, 아니 그냥 타고났어요. 폭발성 띤 속도는..., 말 그대로 유전적 영향을 아주 많이 받거든요. 아마 아버님의 재능을 물려받은 게 아닌가 싶은...,”

“아아, 그래요?”

인구는 우쭐하니 끌어 올라간 미소 그대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알다마다.’

짧은 거리에서 폭발성을 띤 스피드는 노력으로 향상시키기엔 한계가 있는 법이다.

하지만 세나는 처음부터 타고났다고 볼 수 있었다.

‘마치 어린 시절의 날 보는 것 같네.’

평균적인 속도도 나름 빠른 편에 속했다.

‘강약 조절도 잘해.’

빠르게 치고 나갔다가 돌연 속도를 급히 늦춰버리며 따라붙는 상대를 곤혹스럽게 만들지 않나.

저런 강 약 조절은 연습한다고 해서 쉬이 해낼 수 있는 움직임이 아니었다.

‘팔도 잘 활용하고...!’

그뿐만 아니라..., 인구는 세나의 드리블 패턴을 보며 두 눈을 가늘게 좁혔다.

‘발가락으로 공을 건드리고 있잖아.’

상당수 선수들은 공을 발등으로 소유하려 든다.

그러나 일부 선수들은 달랐다.

그 중 대표되는 선수가 바로 리오넬 매시라 할 수 있었다.

발가락으로 공을 소유하게 되면 보다 더 세밀한 컨트롤이 가능해지니까.

‘그만큼 숙달하기 어려운데...,’

세나는 처음부터 발가락으로 공을 컨트롤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말이야.’

그래서 드리블 시 마치 공과 발이 달라붙은 것처럼 보였고 말이다.

‘무엇보다, 밸런스가 좋아.’

드리블 시 상체가 앞으로 쏠려 있었다.

상체가 앞으로 기울게 되면 그만큼 무게중심이 흔들리기 마련이건만, 세나는 타고난 밸런스 덕에 끄떡도 없었다.

남자아이가 부닥쳐와도 살짝 휘청거릴 뿐 끝끝내 버텨낸 것이다.

‘도리어 무게중심을 앞으로 쏟으면서 더 빨리 치고 나갈 수 있어.’

이를 옆에 앉은 리키 제임스도 신랄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마치 조카 칭찬하듯...!

딱 잘라 말해...,

“흐헣.”

인구는 그만 또 다시 빙구 미소를 흘려버렸다.

세나는, 타고난 천재였다.

‘마치 매시처럼...!’

처음 매시를 발굴한 감독이 이런 느낌이 아닐까도 싶었다.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오지를 않아...’

그때였다.

“곧 있으면 울버햄튼과의 리그 개막전인데..., 반드시 이겨주십시여! 그 강아지 놈들을 아주 완벽히 짓밟아버리는 거죠!”

세나 칭찬이 끝난 리키 제임스가 불끈 쥔 주먹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인구는 힐끗 고개를 돌려 제임스를 보았다.

두 눈에 힘을 팍 주고 있는 게, 반드시 이겼으면 하는 바람이 강하게 담겨 있는 것 같았다.

‘3대째 툰이랬나.’

인구는 다시 양학 중인 세나를 향해 시선을 고정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전에 할 일이 있지만요.”

“그전에, 할 일이요?”

의아한 제임스의 물음에 인구는 피식하니 웃으며 답했다.

“새로운 얼굴들도 왔으니까, 개막전 앞두고 결속을 좀 단단히 다져야지.”

*       *       *

탓, 탓, 탓, 탓-!

서슬 퍼런 칼이 잔혹하게 시뻘건 고기를 썰어나갔다.

인구는 특유의 서늘하고도 매서운 눈을 한 채 중얼거렸다.

“국거리용을 살까도 싶었지만..., 난 원래 날 끝에 생고기를 썰어내는 감각을 좋아해. 그래서 통으로 샀지. 직접 자르려고.”

인구는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식탁 테이블 좌우로 여러 명의 선수가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새로운 이적생인 알폰스 데이비스, 아미르 라흐마뉘, 추아매니, 부팔, 그리고 암라바트까지!

왠지 긴장한 표정의 그들을 향해 인구는 씨익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걱정하지 마. 일찍이 핏물은 제거했으니까. 피 맛은 안 날 거야. 아아, 난 응혈된 피를 좋아하긴 하지만.(선지)”

응혈된 피라는 데서 자리한 선수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구는 잡지식을 뽐냈다.

“응혈 된 피는..., 1도에서 5도에서 보관하는 게 가장 좋아. 아아, 물론 신선한 게 최고니까 바로 요리하는 게 좋지만 말이야.”

결속 다지기란 바로, 식사 자리를 만드는 거였다.

‘훈련이야 뭐 늘 하는 거니까.’

대신 인구는 흔치 않은 식사 자리를 통해 새로운 얼굴들과 친해질 겸 유대감을 형성하기로 한 것이다.

꿀꺽!

한편 식탁 테이블 앞에 앉은 알폰스 데이비스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단순 요리를 준비하는 건 줄 알았는데...,

‘응혈된 피라니...’

칼질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스릉, 스릉-!

중간중간 칼을 갈기까지 하는 그 모습은..., 언제든 누군가를 도륙 내버릴 것처럼 매서웠다.

‘왜 칼 갈 때마다 눈을 마주치는 건데...! 또 어느 때보다 경건해...!’

잘게 잘게 썰어낸 고기를 키친 타월 위에 올려둔 인구는 이어 물속에 담궈 불린 검은 물체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는 매서운 눈으로 자신을 비롯해 한 명 한 명 훑으며 바락바락 검은 물체를 문질렀다.

그러자 거품이 일어났다.

인구는 입꼬리를 씰룩대며 말했다.

“이 빌어먹을 거품은 우리 인체에 참 해롭지. 그래서 이렇게 바락바락 문대면서 아예 멸족을 시켜줘야 해.”

이어 인구는 노란, 마른 물고기 같은 재료에 손을 뻗었다.

꾸욱, 꾸욱-!

몇 번 손으로 만져보더니 인구는 가차 없이 가위로 난도질을 했다.

“와...!”

“대박!”

“요, 요리를 잘하네?”

얼마 지나지 않아 알폰스를 비롯한 선수들의 입에서 감탄이 쏟아졌다.

슥, 삭, 슥!

인구의 칼질 실력을 비롯해 손 움직임 자체가 요리사를 방불케 할 만큼 정교하고도 빨랐으니까.

지금도 그는 한쪽 손으로는 칼질을, 다른 손으로는 반죽을 빠르게 해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더 지나서였을까.

식탁 테이블 위에 각가지 음식들이 놓여졌다.

“이건...”

“수프인가?”

“바다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인구는 의아하고도 구수한 냄새가 나는 국에 코를 킁킁대는 동료들을 향해 자랑스레 설명했다.

“소고기 황태 미역국이야. 이건 굴튀김. 요건 진미채. 요거는 우리 세나가 가장 좋아하는 감자볶음.”

미역국과 기타 음식들이 몽땅 비워지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알폰스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음에도 국물에 밥까지 말아 먹으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조금 전의 긴장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정말, 정말 맛있어요!”

암라바트는 입안에 들어가는 순간 녹아 없어지는 소고기에 감탄에 겨워 물었다.

“이건 어느 나라 소야? 한국산? 영국에서 주로 먹는 소랑은 아예 다른데?”

라흐마뉘는 입가에 묻은 음식물을 티슈로 닦아내며 행복에 겨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따스하고도 푸짐한 음식은 간만이야.”

추아매니는 눈치보듯이 빈 밥그릇을 들어보이며 물었다.

“혹시..., 한 그릇 더 먹어도 되나요?”

부팔은 일찍이 흰 쌀밥을 비운 채 밥솥 쪽에 시선을 두고 있었고 말이다.

그때였다.

탁!

인구가 돌연 커다란 손을 탁상 위에 올려놓았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이쪽으로 향하자, 인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자, 밥도 먹었으니..., 우리 한 번 진정한 결속 다지기에 돌입해 볼까? 아아, 밥은 그만 먹어. 이따가 지치면 또 다른 간식으로 열량 보충을 해야 하니까.”

“지치면...?”

“열량보충?”

알폰스와 암라바트가 의문을 표했지만 그들의 말은 금세 묻혔다.

인구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터덜터덜 걸어갔으니까.

*       *       *

택배 기사로만 벌써 4년째 일하고 있는 베넷 오스틴은 오늘도 어김없이 택배차를 몰고 가다 어느 한 가정집에 정차했다.

운전석에 내려서서는 미리 조수석으로 옮겨둔 택배 상자 하나를 가슴 품에 안아 들었다.

“인쿠...!”

그 두 눈은 동경의 빛을 가득 담았다.

그도 그럴 게 저 붉은 벽돌집의 주인은 다름 아닌 현시점, 뉴캐슬 최고의 스트라이커라 할 수 있는 마인구의 집이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제발 우연히 마주치기라도 했으면...’

이 지역에만 오면 늘 바라고 바라는 소원이었다.

제발 우연이라도 마주쳤으면 하는...!

‘사진 촬영이라도 해보고 싶어.’

‘아니면 사인이라도...’

혹시 몰라 늘 사인펜까지 가슴 품에 고이 모셔두고 있었다.

한편으로, 오랜 툰인 만큼 궁금했다.

‘인쿠는 집에서 뭐하며 지낼까?’

어쩌면 저 집 내부는 또 다른 훈련장일지도 몰랐다.

‘tv에서 봤어.’

유명 선수들의 집엔 상상치 못할 수준의 훈련 장비들이 갖춰져 있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크리스티아누 로날두만 해도 집안에 냉각 사우나가 있을 정도잖아...!’

하물며 인구는 평상시에도 훈련에 미친 자로 유명했다.

‘출퇴근도 사이클 자전거로 해...!’

뉴캐슬 최고의 스트라이커인 만큼, 필시 오스틴은 인구의 집이 평범하리라곤 생각지 않았다.

그때였다.

혹여나 마주할 수 있을까, 느릿하게 택배 상자를 들고 문 쪽으로 걸어가던 중,

딸칵-!

노크를 하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어억...!”

순간 인구를 마주할 수 있겠다 라는 기대에 설렘을 한가득 머금었던 오스틴은 돌연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열린 문 너머, 우락부락한 근육들을 지닌 남정네들 여럿이 요상한 동물 복장을 한 채 연극 중인 게 보였으니까.

그 중심엔, 양갈 머리를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잠옷 차림새로 외쳤다.

“우아아! 피카추 백만 볼트으으으!”

그러자 노란 복장을 한 험상궂은 사내가 앞으로 튀어나와 몸을 부를 떨더니 외쳤고 말이다.

“으아아아! 백만 볼트으으!”

맞은편에 서 있던..., 고양이 복장의 남자는 갑자기 전기에 감전된 것마냥 비명과 함께 바닥을 뒹굴었다.

“아아아아아악!”

양갈 머리 꼬마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외쳤다.

“리자몬! 너도 나와아!”

그리고 그 순간, 오스틴은 세상 초연해졌다.

“리자, 리자아모온!”

붉은 날개에 공룡 모양의 후드 모자를 쓴 검은 머리칼의 남자, 인구가 앞으로 뛰쳐나와 누구보다 진지한 얼굴로 외쳤으니까.

“받아라! 회오리 불꼬오오옻...!”

< 100. 늑대가 되기로 했다 (18) > 끝

ⓒ 강로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