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5. 늑대가 되기로 했다 (23) >
아빠는 축구를 너무 잘해!
105화 늑대가 되기로 했다 (23)
울버햄튼전 승리에 툰 뿐만 아니라 기타 팬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는 같은 시간에 열린 함께 승격한 애스턴 빌라와 브렌트포드가 패배하며 더 대조되었다.
- 뉴캐슬이 운이 좋아서 이긴 경기가 아니라 진짜 순수 실력으로 울버햄튼을 잡은 것 같은데요. 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
ㄴ 제 생각도 그래요. 경기 초반엔 살짝 밀리는 것 같았는데 전반전 20분 이후부터는 확실히 대등하게 싸움. 무엇보다 결정력에선 더 앞섰죠!
- 암라바트랑 추아매니, 알폰스, 그리고 라흐마뉘, 부팔까지 아주 물건이던데? 첫 epl 데뷔전임에도 불구하고 다들 잘해줬어!
특히 인구를 향한 영국 팬들의 평가는 상당히 긍정적이었다.
- 축구 경력 20년 차인 내가 보기에..., 인쿠는 절대 반짝 스타는 아닌 것 같다. 양발잡이란 것도 그렇고. 순간 스프린트 속도가 무지 빠른 것도 그렇고. 쉽게 저무는 타입은 아니야.
- 한국에선 인쿠를 한반도스키라 부른다던데?
ㄴ 한반도스키가 뭔데?
ㄴ 래반도프스키 말하는 거임.
ㄴ 오...! 뭔가 골 잘 넣는 게 비슷한 것 같기도!
- 개막전 해트트릭 기록했으면 말 다 한 거 아닌가?
물론 아직 적절한 평가를 하기엔 이르다는 입장도 있었다.
누군가는 여지없이 뉴캐슬의 승리를 깎아내렸고 말이다.
- 울버햄튼이 못했고 뉴캐슬이 기대보다 잘한 것뿐이지.
- 애스턴 빌라 개막전 상대는 첼시. 브렌트포드 개막전 상대는 리버풀이었습니다. 반면에 뉴캐슬은 울버햄튼...,
- 개인적으로 감독 차이로 졌다고 생각해요. 누노 산투는 라파엘 배니테즈에 비빌 수준이 못되니까. 경기 봤으면 알지 않나? 누노 그 인간 그냥 테크니컬 에어리어에서 관중처럼 구경만 하던데?
- 적어도 15경기는 뛰고 나서 평가해도 늦지 않다!
- 딱 봐라. 10경기 뒤에 울버햄튼은 강등 걱정하고 있을걸? 그 정도로 못했어! 뉴캐슬은 그냥 좀 잘하는 정도일 뿐이지. 고작 한 경기 치른 게 다지만 말이야.
* * *
짹, 짹! 짹! 짹!
새들이 기분 좋게 지저귀는 오전.
저벅, 저벅, 저벅.
한 손에 커다란 스포츠 백팩을 든 한 남자가 뉴캐슬 유소년 센터 앞에 발을 들였다.
곧 그는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멈춰섰다.
“여긴가?”
그의 이름은 매튜 헨리.
한때 잉글랜드 챔피언십과 변방 리그를 전전하다 일찍이 선수 생활을 마감한 남자였다.
‘그것도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지.’
28세에 선수 생활의 종지부를 찍은 그는 아직 축구계를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일찍이 코치 라이센스 자격증을 획득하며 인생 제2막을 거닐었다.
바로 영국 내 내로라하는 수준의 유소년 코치로 성장한 것이다.
한 달 전, 개인적인 이유로 스스로 사표를 내고 나왔지만 말이다.
“그런데 여긴...”
매튜 헨리는 주변 전경을 살펴보았다.
나름 1부 구단으로 승격했으면서, 또 오랜 전통을 지녔으면서 건물 외관이 낡아도 너무 낡았으니.
“3부 리그의 선덜랜드보다 못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더니..., 진짜로군.”
외관 곳곳부터가 녹이 슬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무슨 30년은 더 된 건물 같아.”
유소년의 중요성을 아는 만큼 헨리의 눈 밑은 불편하게 꿈틀거렸다.
“그냥 행색만 갖춘 수준이잖아.”
그러다 문득, 매튜 헨리는 히죽 웃었다.
그런 그는 유소년 센터를 지그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벤자민?”
벤자민이란 이름을 부르자 자신의 허리보다 조금 더 큰 이제 6살 된 자신의 아들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답했다.
“웅?”
“자신 있어?”
그 질문에 자신의 소중한 아들은 의문을 표하기보단 가슴께에 들어 올린 두 손을 불끈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웅! 자신이써!”
“흐훗!”
슥, 슥!
매튜 헨리는 아들의 갈색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벤자민을 내려다보는 매튜의 두 눈엔 진한 애정을 비롯해 자부심마저 담겼다.
속으론 생각했다.
‘이 아이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야!’
평범한 재능을 지녔던 자신과는 달리, 아들은 소위 떡잎부터 다른 재능을 뽐냈다.
‘마치 매시처럼...!’
공을 처음 잡았을 때부터 아들은 공과 누구보다 친숙했다.
6살이 된 지금에선 웬만한 7살, 8살짜리를 상대로도 농락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말이다.
‘혼자서 드리블로 머리 한 뼘 더 큰 세 명을 연달아 제칠 땐..., 진짜 크으...!’
부르르르!
아들의 지난 경기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매튜 헨리는 몸을 떨었다.
그리고 오늘.
매튜 헨리가 이 뉴캐슬 유소년 센터에 방문한 이유는 간단했다.
일찍이 그는 미들즈브러, 선덜랜드, 애스턴 빌라 등.
수많은 유소년 클럽에 발을 들였고 그들의 자부심을 무참히 짓밟았다.
일명, 도장깨기로!
아들의 재능을 이 영국이라는 땅에 널리 퍼뜨림과 동시에 거쳐 간 유소년 구단 중 가장 뛰어난 구단에 입단시킬 계획이었던 거다.
곧 매튜 헨리는 아들의 재능에 감복할 코치들의 표정을 상상하며 말했다.
“그럼, 가볼까. 아들?”
* * *
막상 뉴캐슬 유소년 센터에 발을 들였을 때, 매튜 헨리는 바깥에서 실망한 것보다 더욱 크게 실망했다.
“수준이 참...!”
이미 경기를 뛰고 있던 아이들의 수준이 생각 이상으로 떨어졌던 거다.
‘이건 그냥 동네 꼬마들끼리 뛰어노는 레벨이잖아...!’
“이야아!”
탓!
“아야!”
털썩!
슬쩍 부딪친 것만으로 아이들 중 가장 덩치가 큰 남자아이가 속절없이 무너졌다.
순간 매튜 헨리는 그냥 돌아갈까도 싶었다.
“...”
더군다나 혼성경기가 아닌가?
딱 눈대중으로 훑어만 봐도..., 여기서 아들을 이길 재능은 없어 보였다.
‘이건 뭐.’
다른 구단에서 입단테스트에 탈락한 아이들만 모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코치도 한 명이고.’
힐끗 눈동자를 굴렸다.
자신을 u-6세 코치라 소개한 리키 제임스가 필드 안에서 열정적으로 심판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메튜 헨리는 이내 쓴 것을 먹은 것 같은 얼굴로 아들의 손을 꼬옥 잡고 돌아섰다.
“그만 가자.”
도장깨기도 나름 대상이 적정한 수준에 올라 있어야 맛나게 깨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매튜 헨리가 본 뉴캐슬은..., 행색만 갖춘 삼류 구단에 지나지 않았다.
적어도 유소년 센터는.
그러니 더는 볼 필요도 없었다.
‘시간 낭비, 재능 낭비, 감정 낭비...!’
유소년 코치로서 뉴캐슬의 수준에 분노마저 치밀었다.
허나 그 발걸음은 얼마 못 가 멈춰섰다.
“오, 오셨어요?”
한창 심판 역할을 해내던 리키 제임스가 퍼뜩 헨리 부자를 지나쳐 출입구 쪽으로 달려나갔다.
“...”
매튜 헨리는 두 방문객을 보고서도 이내 걸음을 옮기려 했으나 이어진 리키의 발언이 발목을 꼬옥 붙들었다.
“이틀 전 경기는 정말 최고였어요! 그 늑대 놈들을 아주 작살을 내버렸잖아요!”
“늑대라니? 늑대는 난데?”
“마자요, 아빠가 늑대야!”
“아앗, 그렇죠! 인쿠! 인쿠가 늑대죠! 흐핫!”
마치 우상을 만나기라도 한 양 리키 제임스는 붉어진 얼굴로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매튜 헨리는 이 순간 눈앞의 방문객이 누구인지 알아챘다.
‘검은 머리칼에 저 특유의 사나운 눈...!’
190cm에 달하는 우수한 피지컬.
매튜 헨리의 동공은 이제 크게 흔들렸다.
누가 봐도 현재 뉴캐슬 어폰타인에서 제일 잘 나가는 스트라이커가 아닌가?
그 이름은 바로,
‘인쿠...?!’
눈앞 존재를 확인한 매튜 헨리는 너무 놀라 입을 벙긋거렸다.
‘이런대서 볼 줄이야...!’
아들의 자그마한 손을 쥔 커다란 손에는 자기도 모르게 꽈악 힘이 들어갔다.
단순히 뉴캐슬 내 가장 뛰어난 축구선수를 만나서가 아니었다.
‘지난 시즌 챔피언십에서만 70골을 때려 박은 괴물 스트라이커...’
이틀 전 울버햄튼을 상대로도 해트트릭을 기록한 남자가 바로 저 남자였다.
일찍이 부상으로 축구선수로서의 꿈을 접어야 했던 자신과는 아예 대조되는 남자의 등장에, 가슴 속 불편함 감정이 꿈틀거렸다.
매튜 헨리는 이 감정이 질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인구처럼 뛰어난 선수를 볼 때면 늘 이런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곤 했으니까.
‘그럴 때마다 아들에게 의지했어.’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축구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벤자민 헨리가 대신 이루는 꿈을 늘 꾸며 앞으로 나아간 것이다.
물론 벤자민이 원하지 않았다면 그 역시 지금 이 자리에 없었다.
‘아들은 축구를 사랑한다.’
똑똑히 보았다.
축구를 통해 세상 행복에 겨워하는 아들의 모습을...!
그리고, 또래 아이들, 혹은 그 이상의 형들을 상대로 우위를 점하는 아들을 보며 우월감과 대리만족을 느끼던 자신을 말이다.
하지만 헨리의 두 눈은 이내 시들해졌다.
‘여자아이군.’
인구의 옆에 서 있는 자그마한 꼬마 아이는 누가 봐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아이일 뿐이었다.
‘이제 5살쯤 됐으려나?’
남자아이라면 붙어볼 만했지만, 인구의 딸은 축구와는 아예 거리가 있어 보였다.
‘그냥 소꿉놀이에 인형 놀이를 딱 좋아할 것 같네.’
공을 제대로 컨트롤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살짝 부딪쳐도 나가떨어질 것 같아.’
고로 인구를 마주한 것만으로 질투가 일긴 했으나 헨리는 재차 가던 길을 마저 가려 했다.
그러나 그는 채 몇 걸음 걸어가다 말고 또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나도 뛸래요오!”
“오오, 그래! 뛰자! 뛰어!”
세나라 불린 양갈 머리 꼬마가 필드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보곤 해맑게 참전한 것이다.
투욱-!
때마침 하프라인에 발을 딛자마자 세나에게 패스가 연결되었다.
“으아아!”
아까 전, 덩치 큰 남자아이를 밀어냈던 또 다른 남자아이가 공을 소유한 세나에게 달려든 것도 바로 그때였다.
매튜 헨리의 시선은 절로 필드로 향했다.
궁금하긴 했으니까.
“!”
두 눈은 순식간에 크게 떠졌다.
스윽!
세나가 한 걸음 차 간격에서 폴짝 뛰어올라 오른발 슈팅 스탠스를 취했다.
화들짝 놀란 남자아이는 달려드는 그대로 몸을 사선으로 틀었다.
그 순간,
툭!
오른발 인사이드 슈팅일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공의 우측면에 빠르게 도달한 세나의 발끝이 아주 약하게 공을 터치해 굴린 것이다!
츠윽-!
왼발은 공의 좌측면에 딛더니 안으로 틀었다.
동시에 오른발은 굴러가는 공의 안쪽을 쓸듯 옮겨가 아웃사이드로 툭 차 방향 전환을 꾀했고 말이다.
투웅-!
직후 세나는 순식간에 밸런스를 잃은 남자아이의 배후를 파고들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으어어!”
“으아아!”“이야아압!”
한 아이를 제치자마자 연달아 세 명의 남자아이들이 불나방처럼 세나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세나는 팬텀 드리블로 한 명을.
툭, 탓!
이어 정면에서 달려든 아이를 상대로는 알까기로 농락을!
투욱-!
페널티 에어리어를 주파했을 때 뛰쳐나온 골키퍼를 상대로는 슈팅 페이크로 한 번 미끄러트린 뒤...!
툭!
촤락!
가볍게 칩샷으로 골망을 물결쳐버렸다.
5명을 제치고 득점을 기록하는 과정까지의 시간은 정말 찰나에 지나지 않았다.
득점에 성공한 세나는 아빠를 돌아보며 하얀 이를 드러내 브이를 취했고 말이다.
“예에에에!”
“흐헣.”
인구는 빙구같은 미소로 화답해주었다.
진정 매시를 연상케 한 돌파에, 매튜 헨리의 두 눈은 금세 승부욕으로 불타올랐다.
< 105. 늑대가 되기로 했다 (23) > 끝
ⓒ 강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