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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6. 늑대가 되기로 했다 (24) >
아빠는 축구를 너무 잘해!
106화 늑대가 되기로 했다 (24)
얼마의 시간이 지나서였을까?
“매튜 헨리라고 합니다.”
인구는 헤벌쭉한 얼굴로 세나의 원맨쇼를 보다 말고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보았다.
갈색 머리칼에 왜소한 체격, 축 처진 눈매의 남자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세나 칭찬에 한창이던 코치, 리키 제임스가 움찔하며 껴들었다.
“아! 소개가 늦었네요! 이쪽은 매튜 헨리씨! 아들 벤자민 헨리의 경기 테스트차 방문하셨습니다. 벤자민은 다른 지역에서도 이미 축구로 유명한 아이에요. 그리고 요쪽은...,”
“압니다. 인쿠 마, 뉴캐슬 최고의 스트라이커 아닙니까?”
매튜 헨리는 속과 달리 겉으론 세상 착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리고 칭찬은 인구도 춤추게 하는 법.
또 같은 축구선수가 될 재목을 갖춘 자식을 뒀다는 것에서 나름 정감이 갔다.
그래서 인구는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인쿠입니다. 잘 지내봐요.”
“뭐어, 그러죠.”
매튜 헨리는 무어라 더 말하고 싶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했다.
‘아주 기고만장 해있구만.’
그 말처럼 인구는 지금 딸의 활약에 누구보다 우쭐해하고 있었다.
매튜 헨리를 힐끗거리면서도 눈으로 말하고 있었고 말이다.
‘봤지? 우리 딸 지금 매시 놀이하는 거 봤지?’
‘얼른 칭찬해! 나 말고 세나 칭찬도 해달라고!’
입꼬리는 씰룩하니 절로 끌어 올라갔다.
허나 매튜는 칭찬 대신 이후 있을 벤자민의 활약에 속으로 음험한 웃음을 지었다.
‘당신 딸이 뛰고 있다면, 우리 아들은 하늘을 나는 새야. 똑똑히 보여주지!’
조금 전 세나의 활약상은 분명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건 벤자민도 할 수 있는 퍼포먼스!
‘아니. 그보다 더 강하고 저돌적인 플레이를 펼칠 수 있다!’
고로 매튜는 어서 빨리 자신의 아들이 이 축구선수의 딸을 경기력으로 짓밟아줬으면 했다.
그리고 보고 싶었다.
저 우쭐한 아빠의 미소가 한순간 증발하는 것을!
때마침 전반전 경기가 끝이 났다.
세나는 별로 지친 기색 없이 필드를 가로질러 아빠에게 향했다.
아빠 딸 아니랄까 봐 우쭐우쭐한 표정을 띠고서.
바로 그때였다.
저벅, 저벅!
“벤자민?”
매튜 헨리는 누구에게 단 한 번도 관심을 보이지 않던 아들이 세나에게 먼저 걸어가는 것을 보며 조금은 놀랐다.
반면 인구는 빙구 미소를 띤 그대로 속으론 살얼음 같은 목소리로 생각했다.
‘아아, 이해한다. 저 벤자민이라는 꼬맹이. 우리 귀엽고 사랑스럽고 꽃 그 자체인 세나에게 첫눈에 반한 거잖아.’
발갛게 달아오른 볼과 눈빛만 봐도..., 나 반했쪄요! 라고 말하고 있었다.
흔히 있는 일이었다.
유아 학교에서도 이미 인구의 레이더망에 걸린 남자아이가 한 둘이 아니었으니.
지금도 봐라.
필드 가운데서 마주한 두 아이 중 벤자민이 먼저 수줍게 입을 열었다.
“너, 너 축구 무지 잘하네? 이름이 모야?”
세나는 머리 한 뼘 더 큰 오빠의 물음에 큼직한 두 눈을 끔뻑이며 답했다.
“세나.”
“세, 세나. 너 이뻐! 이름도 이뻐!”
“웅, 알아.”
벤자민은 전혀 쑥스러워하지 않는 세나에 도리어 두 뺨이 더욱 붉게 물들어버렸다.
또랑또랑한 눈을 피하지도 않자 벤자민의 두 눈이 절로 옆으로 데구르르 내려갔고 말이다.
‘부, 부끄러워...!’
제 시선을 마주하고도 이처럼 요지부동인 아이는 처음이었던 거다.
또, 축구 실력도 실력이지만 이렇게 이쁜 아이는 세상 처음 봤다.
실제로 벤자민은 세나가 이곳 유소년 센터에 발을 들인 그 순간 주변 정경이 화사하게 밝아지는 기현상을 겪었다.
샤랄랄라 라랄라~ 라는 멜로디가 다 울리는 것 같았고 말이다.
그러면서도 궁금한 것을 물었다.
“축구, 어디서 배웠어? 세나.”
허나 세나는 대답 대신 역으로 물었다.
“오빠는 축구 잘해?”
“나, 난 잘하지! 무지 잘해!”
언제 수줍어 눈길을 돌렸나는 듯 벤자민이 힘차게 외쳤다.
늘 어른들에게 감탄과 칭찬을 받아왔던 만큼, 가장 잘하는 종목에 대한 자신감은 차고도 넘쳤다.
오늘 처음 만난 세나에게 뽐내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았고 말이다.
그러나 세나는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조금 전의 깜찍한 모습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젠 큰 눈망울을 서늘하고도 가늘게 떠 마치 사람을 분간하는 것처럼 벤자민을 훑어보기까지.
그러다 말고 세나는 뜻밖의 말을 건넸다.
“그래? 그럼 한 판 붙자. 내가 밟아주께. 아마, 다시는 축구 잘한다는 소리가 안 나오꺼야.”
“...응?”
코맹맹이가 옵션으로 들어가 있던 세나의 목소리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씨익.
슬며시 끌어 올라간 한쪽 입꼬리는, 악랄함 그 자체였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지 못한 매튜 헨리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축구만 좋아하는 숙맥인 줄 알았더니...’
지금 보니 그래도 남자이긴 한 모양이었다.
코치 리키 제임스는 두 유망한 아이의 만남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기념 촬영이라도 미리 찍어놔야...! 혹시 또 모르잖아. 희대의 사진으로 남을지!’
물론 인구는 어느덧 입매를 축 늘어뜨린 채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적이 날이 가면 갈수록 많아 지네.’
딸이 생긴 이후로 남자라는 족속은 다 인구의 적이었다.
* * *
매튜 헨리는 적어도 이 영국 땅 안에선 자신의 아들보다 뛰어난 아이는 없다고 생각했다.
매번 도장 깨기를 밥 먹듯이 하고 다닐 때마다 아들을 향해 여러 코치들은 감탄에 또 감탄을 터뜨렸다.
그리고 모두가 다 간절히 원했다.
[와...! 아버님. 벤자민을 저희 선덜랜드에 입단시키는 게 어떠실까요?]
[엄청난 재능입니다. 어린 나이에 타고난 시야를 비롯해 감각적으로 볼을 다루고 있어요!]
[저희 웨스트햄은 이미 영국에서도 유스로 정평이 났으며...]
[저희 팀에서 성장한 대표적인 선수로는 리오 퍼디난드가 있습니다! 비록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서도 여전히 우리 유스 센터에선 뛰어난 선수들이 성인 데뷔전까지...!]
유스 축구판 사이에서 벤자민의 소문은 퍼지고 퍼져 머나먼 독일 땅에서까지 제안이 왔을 정도였다.
매튜 헨리는 그저 최고의 구단을 선택해 들어가면 그만이었고 말이다.
‘그만큼 우리 아들은 최고의 재능을 지녔으니까...!’
하지만 지금, 매튜는 테크니컬 에어리어에 위치한 채 벌어진 입을 쉬이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툭!
노란 조끼를 입은 세나라는 여자아이가 또다시 우측 사이드에서부터 공을 잡고 질주하기 시작했다.
타앙!
순간 벤자민이 측면에서부터 달려들었다.
공격 능력뿐만 아니라 수비적인 능력에서도 특출난 아들인 만큼 원래라면 딱 좋은 타이밍에 발을 뻗어 컷팅에 성공했을 터.
그러나.
툭, 툿, 투욱-!
세나는 한 걸음 차까지 붙은 벤자민을 상대로 돌연 등진 채 어깨로 그 가슴팍을 막아 세웠다.
매튜의 두 눈 밑은 꿈틀거렸다.
‘공에 접촉하지 못하게 몸으로 거리를 두는 거야...!’
특히 몸을 등지고 팔로 상대를 막아 세우는 건 드리블에 있어 가장 기본되는 한 가지라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매튜가 놀란 건 다른 이유에서였다.
‘우리 아들이 머리 한 뼘이 더 큰데...!’
대충 훑어봐도 세나는 왜소했고 벤자민은 머리 한 뼘 더 컸다.
단순 키가 아니라 피지컬적으로도 차이가 나 보였고 말이다.
그런데, 암만 벤자민이 이를 악물며 공을 터치하고자 발을 뻗고 파고들려 해도 세나는 휘청거릴 뿐 밀리지 않았다.
“이익...!”
가만 보니 벤자민은 당혹스런 표정마저 짓고 있었다.
그러다 일순간,
투웃-!
세나가 왼발을 앞으로 힘차게 내디뎠다.
벤자민의 상체가 따라 전방으로 튀어나갔다.
그리고 이는 세나의 설계였다.
스윽-!
세나가 전방으로 뛰어들 것 같은 스탠스를 취했다가 말고 불시에 오른발 스터드로 우측 바깥으로 공을 굴려버린 거다.
투웅-!
돌려세운 그 즉시 폭발적인 스퍼트로 이미 페인트 스탠스에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린 벤자민의 배후를 통과하기까지!
“베, 벤자미인...!”
매튜 헨리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벤자민이 즉시 밸런스를 되찾고 이미 두 걸음 이상 거리를 벌린 세나를 붙들었으면 하는 바람은 굴뚝 같았다.
하지만 그건 단지 바람에 지나지 않았다.
투욱-!
이후 세나는 달려든 또 다른 아이를 마르세유턴으로 제쳤다.
수비 지역에 있던 세 아이가 전면, 좌우 측방에서 힘차게 달려들었으나 그보단 세나가 한 템포 더 빨랐다.
뻐어엉!
급작스레 페널티 아크 바깥에서 왼발 중거리 슈팅을 때린 것이다.
촤라악-!
공은 시원하게 파 포스트 상단 구석 골망을 물결쳐버렸다.
“어어억...!”
매튜 헨리의 입이 더욱이 떡하니 벌어졌다.
방금 전 슈팅은 가히 경이적이다 싶을 만큼 크게 감겨 들어갔으니.
‘저 왜소한 체격에 저런 슈팅 파워는 대체...,’
매튜 헨리는 고개를 급히 절레절레 저으며 상황을 부정했다.
‘수비도 잘하긴 하지만..., 벤자민의 장기는 공격이야! 그리고 가만 보니 우리 아들 팀에 속한 아이들이 저 꼬맹이가 속한 팀 아이들보다 수준이 낮아!’
수비에 있어서도 아들이 다른 아이들보다 세 걸음 이상 더 뛰고 있잖은가!
그렇게 생각하니 나름대로 위안이 되었다.
또 확신했다.
공격 찬스에선 아들은 세나가 했던 것보다 더한 방식으로 상대를 무력화시킬 수 있으리라!
* * *
10분이라는 시간이 훌쩍 흘렀다.
“...”
매튜 헨리의 기대감에 차올랐던 두 눈은 그새 시들어지다 못해 꺼졌다.
그도 그럴 게.
투욱-!
“오! 방금 세나가 슬라이딩 태클로 벤자민의 발밑에서 딱 공만 걷어냈어요! 와! 사내티인가!”
리키 제임스는 테크니컬 에어리어 바깥에서 마치 중계진마냥 열띠게 중얼대고 있었다.
투웅-!
“이야! 역습! 세나의 역습이 이어지는데요오! 오오! 아버님! 벤자민이 쫓아갑니다아!”
그 말처럼 벤자민이 급히 돌아서 세나를 향해 몸을 던지듯 어깨 푸싱을 가했다.
퍼억!
허나 세나는 좌측으로 살짝 휘청일 뿐,
투우웅-!
도리어 공을 아웃풋으로 전방으로 길게 차더니 속도를 높였다.
속도전을 벌인 것이다.
마치 부스터가 가동된 것마냥!
이에 맞서 벤자민도 필드를 박차 속도를 끌어올렸다.
그러나 두 아이의 거리만 3걸음 이상 벌어졌을 뿐이다.
매튜 헨리의 눈 밑은 꿈틀거렸다.
‘저렇게 스피드가 빠르다고...?’
아예 벤자민이 쫓을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철렁! 하고 또다시 골망은 물결쳤다.
“예에에에! 우리 쎄나 잘한다아아!”
옆에 있던 인구는 극렬 서포터마냥 즐거워하고 있었다.
요상한 구호도 외쳤다.
“코이뚜우우우우~!”
반면 매튜 헨리는 맥이 빠지다 못해 두 다리에 힘마저 풀려 휘청거렸다.
“허윽...!”
자기도 모르게 살짝 열린 입 밖으론 충격에 따른 신음이 새어나왔다.
이유야 간단했다.
10분 사이에 벌써 세나가 5골을 뽑아냈으니까.
그것도 세 차례는 아들, 벤자민의 공을 직접 강탈하고서!
난생처음 겪는 상황에 벤자민은 언제 세나를 보고 수줍어했냐는 듯 으헝! 으허헝! 이라며 울면서 경기를 뛰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툭-!
1분 뒤에도 세나는 직접 수비 지역까지 내려가 어깨 푸싱으로 벤자민을 흔들었고 발밑에서 쏙 공만 빼냈다.
뻐어어엉-!
이번엔 직접 드리블로 몰고 갈 새도 없이 골키퍼가 튀어나온 것을 보곤 장거리 슈팅으로 추가 골을 작렬했고 말이다.
“쁘이이이이!”
그제야 세나는 인구를 향해 브이 세레머니를 취했다.
세상 개운하고도 행복한 얼굴로!
“헤헷!”
< 106. 늑대가 되기로 했다 (2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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