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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8. 늑대가 되기로 했다 (26) >
아빠는 축구를 너무 잘해!
108화 늑대가 되기로 했다 (26)
“흐헣. 흐허헣.”
인구는 뛰고 또 뛰었다.
오늘은 세나가 가은이와 함께 하는 날이었으니까.
그 벌어진 잇새론 옅은 숨과 함께 빙구웃음이 자꾸만 흘러나왔다.
그도 그럴 게 지금 입고 있는 트레이닝복은 딸이 선물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흐헣 흐허헣!”
조깅에 임하며 그는 전날 일을 떠올렸다.
당시 인구는 훈련 후 집에 돌아와 딸과 놀아준 뒤 늘 그래왔듯 소파와 물아일체가 되어있었다.
그때, 세나는 대뜸 옷장에서 검정 트레이닝복 하나를 꺼내와 말했다.
[아빠아! 요기에 글씨 새겨도 대?]
[글씨? 무슨 글씨?]
[우움, 그냥 아무거나!]
[그래? 우리 세나가 또 무슨 바람이 들어서 아빠 옷에다가 글씨를 새기고 싶어 하나~?]
인구는 소파에 새우잠 자세로 누워 흔쾌히 응했다.
그 결과 세나는 잘 지워지지 않는 화이트 마카 펜으로 이런 글귀를 남겼다.
[세나 아빠 인구임. >.
글귀를 새긴 뒤 세나는 헤헷 거리며 청개구리 같은 표정으로 당당히 외쳤다.
[짜안! 이제 이거 입고 뛰어두 사람들은 아빠가 세나 아빠라는 걸 알고야! 자, 선물이야!]
이때쯤 이미 인구는 귀여움에 못 이겨 소파에서 반쯤 몸을 일으켰다.
세나가 건넨 글씨가 새겨진 트레이닝복을 보고는 진정 감동한 얼굴로 물었다.
[오옷...! 우리 세나. 아빠 무지 감동 먹었는데? 나 세나 아빠라고 도장 쾅 찍은 거야?]
[웅! 도장 쾅 찌어써!]
[왜에~?]
인구는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을 작품에 절대 세탁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며 물었다.
세나는 커다란 눈망울을 데구르르~ 좌측으로 굴리더니 갑자기 소파 위로 폴짝 뛰어 올라와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야..., 세나는 아빠를 조아하니까!]
“흐헛, 흐허헣!”
전날 일을 떠올리자 자꾸만 빙구웃음이 흘러나왔다.
‘어쩜, 어쩜...! 이렇게 아빠 마음을 살살 녹이는 건지...!’
세나의 계획대로 러닝에 임하는 내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알아봤다.
지금도 사이클에 임하던 한 남자가 속도를 늦추며 인사를 건넸다.
“인쿠우우우우! 뉴캐슬의 영웅!”
이어 남자는 엄지를 치켜들어주곤 빠르게 달려나갔다.
풀밭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커플들, 아이들도 자신을 금방 알아봤다.
“오옷, 인쿠다!”
“와아...! 실물로 보니 훨씬 크네?”
“저 트레이닝복은 모야? 새로나온 건가? 세나 아빠..., 인쿠임?”
“검색해봐. 구매할 수 있는지!”
바로 그때였다.
“인쿠..?!”
맞은편에서 뛰어오던 백발의 중년인이 돌연 휘청이며 외쳤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마냥.
인구는 그 남자의 부름에 뿌듯한 미소를 띠고서 한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아, 허헣! 예. 세나 아빠 인쿠입니다! 날씨 참 좋죠오?”
그길로 그대로 지나쳐버렸다.
인구는 단순히 자신의 팬이라고 생각했다.
* * *
“자, 잠깐만...!”
급정거하듯 멈춰선 데이비드 모에스는 몸을 돌려 외쳤다.
허나 인구는 멈출 새 없이 점점 더 멀어지더니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
모에스는 얼빠진 얼굴로 그가 사라진 곳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말고 이내 감탄했다.
‘가벼운 러닝 정도가 아니군...!’
결코 장거리를 오랫동안 유지할 만한 속도가 아니었다.
하지만 인구는 시야에서 사라지는 내내 해당 속도를 유지했다.
‘별로 힘들어 보이지도 않았어.’
뛰는 폼도 육상선수를 방불케 할 정도로 깔끔했다.
모에스는 뉴캐슬과의 경기를 앞두고 지난 챔피언십 경기 영상을 수없이 돌려보곤 했었다.
단연 핵심은 인구였다.
‘시즌 전반기의 활동량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필드 전지역을 커버할 만큼 활동량이 늘어났다.’
이는 당시 뉴캐슬의 포지션 곳곳이 약점이었기에 이를 메우고자 인구가 남들보다 두 발 더 뛴 영향이었다.
‘마치 그 옛날 지송 팍처럼 말이야.’
처음엔 타고난 체력이라고 생각했는데, 방금 전 짤막한 러닝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모에스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노력의 결실이었군!’
그래서일까?
데이비드 모에스는 인구가 더욱 탐이 났다.
집무실에 돌아와서도 그 머릿속엔 오직 인구밖에 없었다.
“라파엘은 참 부럽습니다.”
“라파엘 배니테즈 말입니까?”
사무책상 앞에 자리하자마자 접객용 소파에 앉아 있던 수석코치 마크 웸블이 반문했다.
두 살 많은 웸블의 물음에 모에스는 입가에 주름진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버풀 때도 그랬지만, 라파엘은 선수 운이 좋지 않습니까?”
모에스는 중역 의자에 앉아 등받이에 느슨하게 등을 기대며 말을 이었다.
“리버풀 시절엔 페르난도 토래스부터 스티븐 재라드, 알론수 등..., 월드클래스 선수들을 지도했고. 이후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선 사무엘 에토, 디에고 밀리투를 지도했죠.”
“하지만 그 시기 라파엘은 갖은 욕은 다 먹지 않았습니까? 전 시즌 모리뉴가 인테르 밀란에 트레블을 선사했음에도, 그 바톤을 이어받았던 라파엘은 순위 6위라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으니.”
웸블의 중얼거림에 모에스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선수만 놓고 보자는 겁니다.”
확실히 모에스는 선수에 있어 항상 아쉬움이 따랐다.
웨스트햄을 이끄는 중에도 자신은 원하는 선수를 영입하지 못했다.
‘구단주가 원하는 영입이지.’
백이면 백 월드클래스와는 거리가 있었고 말이다.
반면 라파엘이 지도했던 선수들 가운데엔 월드클래스 수준에 이른 자들이 많았다.
그에 반해 자신은 맨유 시절이 다라면 다다.
‘반 패르시, 웨힌 루니 정도인가.’
맨유 시절만 생각하면 짜증이 치밀었다.
‘난 피해자다!’
알랙스 퍼거슨 시대가 저문 뒤 자신의 시대가 도래하긴 했지만..., 팀의 스쿼드는 이름값만 높았을 뿐이던 시기니까.
‘반 패르시, 웨힌 루니 모두 에이징 커브가 왔을 때지.’
리오 퍼디난드도 그랬고, 그 외 나이를 떠나 하파앨 다 실바, 하비애르 에르난데스 등 기존 선수들 마저 폼이 확 죽었던 시절이었다.
으득!
상승세에 있던 자신의 커리어에 급제동을 걸었던 맨유 시절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모에스의 표정은 처참히 구겨졌다.
‘제대로 된 세대교체가 되지 않은 상태였어!’
모에스는 생각했다.
반복 숙달 끝에 전술을 입혀놔도 당시 맨유는 자신이 원하는 움직임을 제대로 보이지 못했다.
‘체력적으로도..., 멘탈적으로도!’
그러다 얼마 못 가 졸전에 졸전을 펼치며 경질당했고 말이다.
이후 모에스가 거친 팀들은 중위권, 또는 셀링 클럽이 전부였다.
맨유 시절의 실패로 더는 빅클럽이 자신을 탐내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어디를 가든 선수 운만큼은 좋은 라파엘이 더욱이 부러웠다.
지금에선 다 죽어가던 뉴캐슬에 인쿠라는 혜성이 뚝 떨어져 EPL까지 승격하지 않았는가?
“인쿠는 정말이지..., 매력적인 스트라이커입니다.”“뉴캐슬의 스트라이커를 원하십니까?”
오랜 시간 동업자로서 함께 해왔던 만큼 웸블은 모에스의 눈빛에서부터 그가 인구를 간절히 원하는 것을 알아챘다.
모에스는 한치 부정 없이 답했다.
“물론입니다. 제가 본 스트라이커 중에서 그보다 뛰어난 선수는 없어 보였으니까요. 일찍이 그를 알아보지 못한 게 지금에선 후회스러울 정도군요.”
“우리 스카우트들을 야단쳐야겠군요.”
“하하.”
웸블의 농담에 모에스는 웃음을 지었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호샙 과르디올라가 처음 리오넬 매시를 보았을 때, 이런 요상하고도 짜릿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그리고 모에스는 지금 웨스트햄 수준으로는 인구를 절대 영입할 수 없으리라 못 박았다.
‘명성 부분에선 웨스트햄이 뉴캐슬보다 우위이긴 하나.’
크게 보면 거기서 거기인 팀이었다.
머지않아 인구는 더욱 큰 레벨에서 뛰놀 대어였고 말이다.
그러니 현재로선 웨스트햄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웨스트햄에서 뛰어난 성적을 보인 뒤 다시금 빅클럽에 관심을 받는 것이다!’
꽈악!
무릎 께에 가 있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면서 인쿠와 친분을 다지고 말이야.’
선수를 영입하는 데 있어 선수와의 교류는 매우 중요한 요소였으니까.
* * *
경기 전날.
모에스는 기자회견장에 입장했고, 여지없이 속에 있는 생각을 기자들에게 전했다.
“솔직히 부럽습니다. 현재 우리 스쿼드도 훌륭하지만..., 라파엘은 확실히 선수 운이 좋은 것 같거든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그야, 그 주변엔 항상 뛰어난 선수들이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당장 라파엘 하면 떠오르는 월드클래스들이 몇 명입니까? 예?”
물론 도발도 잊지 않았다.
“선수 면면이 좋았던 반면에..., 지난 몇몇 팀에서 라파엘은 선수 플레이에 맞지 않은 전술로 꽤 먼 길을 돌아와야 했지만 말입니다.”
대외적으로 인구를 향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인쿠는 뉴캐슬 최고의 선수입니다. 그는 머지않아 빅클럽으로 향할 테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인쿠는 뉴캐슬에 아주 과분한 선수라는 거에요. 사설입니다만. 인쿠가 현재 뉴캐슬에서 받는 연봉 수준도 불만입니다.”
“연봉 수준 말입니까? 어째서죠?”
“적어도 인쿠는 지금 연봉에 두 배 이상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만한 실력을 갖췄으니까.”
인구를 향해 사탕발림 소리를 하면서도 은근히 뉴캐슬을 깎아내리는 법도 잊지 않았다.
“뉴캐슬은 인쿠에게 제대로 된 대우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후 라파엘 배니테즈는 모에스의 인터뷰 내용을 듣고는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제가 선수 운이 좋다는 건 인정합니다. 그런데 모에스는요? 맨유 시절은 기억에서 삭제라도 한 겁니까?”
* * *
모에스는 선 인터뷰가 끝나고 자동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곤 곧장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화면 속엔 라파엘 배니테즈의 열띤 인터뷰가 라이브로 진행되고 있었다.
[모에스의 그 발언은 조금 아쉽군요. 그에게 지도를 받아왔던 선수들이 불쌍할 지경입니다.]
라파엘은 먹이를 덥석 문 것마냥 신랄하게 입을 털었다.
허나 라파엘 배니테즈의 발언과는 별개로 모에스는 오직 인구만을 신경 쓰고 있었다.
‘도발에 넘어갈 내가 아니지.’
나름 산전수전 다 겪어오지 않았던가.
그저 모에스는 이 인터뷰 자체도 스타트 발판으로 삼고 싶었을 뿐이다.
인구와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발전시키기는 시작을.
이는 일종의 빌드업이었다.
머지않아 다시금 빅팀을 맡게 됐을 때, 보다 수월하게 인구라는 월드클래스를 영입하기 위해서.
‘그라면..., 내가 추구하는 전술에 완벽히 부합한다!’
감독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베스트 플레이어가 있는 법이었다.
모에스에게 있어 1순위 픽은 다른 누구도 아닌 인쿠였고 말이다.
그리고 그런 인쿠는 라파엘 배니테즈에 이어 마이크를 잡고는 특유의 도발로 웨스트햄을 흔들었다.
[딱 봐봐요. 내일 경기에서 데이비드 모에스는 또 뻥축구만 지시할 겁니다. 딱 보라니까? 전방에 뻥뻥 차주면 공격수들이 주야장천 우리 박스 안으로 파고들어서 득점만 노릴 거라니까?
그러다가 역습 한 방에 자멸할 거고. 그 양반 맨유 때 그렇게 고집스레 뻥축구만 지시하다가 나가리 된 거 아닙니까? 제 말이 틀렸어요? 예?]
“...”
< 108. 늑대가 되기로 했다 (2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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