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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3. 빅클럽 (1) >
아빠는 축구를 너무 잘해!
113화 빅클럽 (1)
웨스트햄과의 경기 후 다음 날, 초저녁.
뉴캐슬어폰타인에 위치한 어느 한인 식당.
달그락, 달그락!
남은 건더기를 밥숟가락에 가득 담아 입안으로 가져갔다.
이어 남자는 그릇째 입안으로 기울여 사골 국물까지 들이켰다.
꿀꺽, 꿀꺽!
“크으으...!”
뉴캐슬의 스카우트, 로보트 파이기는 미간을 좁히며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이렇게 맛난 음식은 진작에 알아봤어야 했는데.”
로보트 파이기가 이 한인 식당에서 깔끔하게 비운 음식은 다름 아닌 순대국밥이었다.
일전에 한국에서 처음 알게 된 이 음식은 어느덧 파이기의 최애 음식이 되었다.
파이기는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은 그릇을 보며 뿌듯하니 말했다.
“이 시원하고, 속을 꽉 채우게 해주는 푸짐함이 좋다니까. 후훗.”
배도 기분좋게 불렀다.
그때였다.
한인 식당 구석에 위치한 벽걸이 TV 속.
어제 경기의 하이라이트가 중계되고 있었다.
화면 속 인구는 에단 아자르를 떠올리게 하는 단독 드리블 질주로 첫 번째 골을 기록했다.
[고오오오오오올! 인쿠우우우우!]
[웨스트햄을 완전히 찢어버리는 단독 드리블 질주 후 원더 고오오오오오올! 환상적입니다! 말도 안 되는...! 아니, 푸스카스에 도전할 만한 경이적인 득점이에요오오!]
“역시 인쿠야.”
“이야~”
“와...!”
식당에 자리한 동양인 팬부터 현지팬들까지 국밥을 먹다 말고 연신 감탄을 연발했다.
씰룩.
인구를 한국에서부터 데려온 이가 바로 자신인 만큼 파이기의 입꼬리는 우쭐하니 끌어 올라갔다.
‘물론..., 이렇게까지 단 시간 내 잘할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만.’
파이기가 본 인구는 적응기라고는 필요치 않았다.
‘오자마자 뉴캐슬을 완벽히 장악해버렸지.’
지금에서 인구는 고작 2경기를 뛰고서 7골로 득점 랭킹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EPL에서 난다긴다하는 모하매드 살라, 해리 캐인까지 제쳐가며 말이야.’
현재 득점 랭킹 2위는 해리 캐인으로 5골.
3위는 4골로 모하매드 살라였다.
4위는 세르히우 아구에로(3골), 5위는 피에르 오바매양(2골).
인구를 제외하고선 지난 몇 시즌 간 EPL에서 득점왕을 겨룬 쟁쟁한 베테랑들이었다.
‘그리고 하나같이 다 빅클럽에 속한 스트라이커고 말이야.’
그래서 인구의 현 득점 랭킹은 의미가 더 컸다.
‘뉴캐슬은 아직 빅클럽이 아니니까.’
그만큼 동료의 지원을 덜 받은 상태에서 인구는 2경기 동안 가장 많은 유효슈팅과 득점을 기록해냈다.
‘필드 안에서 영향력도 엄청나다.’
단순 득점뿐만 아니라 키패스, 제공권 승리, 위치선정, 리딩 부분에서도 인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을 뽐냈다.
그래서일까?
‘기대되는군.’
머지않아 인구는 진짜 시험무대에 오르게 된다.
바로 리그 3라운드 상대가 강호 첼시와의 일전이었으니까.
‘확실히 앞선 울버햄튼, 웨스트햄과는 궤를 달리하는 상대야.’
문득 파이기는 피식하니 웃음을 흘렸다.
‘불과 1년, 2년 전이었다면 기대도 하지 않았을 거다만.’
냉정히 보건대 당시 뉴캐슬은 빅클럽은 커녕 하위권 팀을 상대로도 쉬이 승리를 쟁취하기가 어려웠었다.
허나 이젠 달랐다.
인구와 뉴캐슬의 거듭된 활약에 실로 오랜만에 빅클럽을 상대로도 승리에 대한 기대감이 물씬 피어올랐으니.
‘더는 쉽게 질 것 같지는 않아.’
지금도 봐라.
TV 화면 속 인구의 활약상에 일부 사람들은 황홀함에 취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전천후네, 전천후야!”
“크으~ 인쿠 같은 선수는 대체 어떻게 발굴해낸 건지! 우리 스카우트한테 감사 인사라도 전하고 싶을 정도라니까.”
“은근 한국엔 재능 넘치는 선수들이 많아! 소니도 그렇고 인쿠도 그렇고. 그 어디냐. 스페인에서 뛰고 있는 캉인도!”
“오오! 캉인! 그 친구 물건이더니만!”
인구의 활약만으로 툰(뉴캐슬 서포터즈)들은 다른 한국인뿐만 아니라 한국 자체를 긍정적이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물론 성적을 떠나 마냥 비난하는 자도 있었다.
“고작 두 경기 잘한 거로 이리 설레발은. 쯧!”
민머리 남자의 주절거림에 식당 내 자리한 일부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돌아갔다.
파이기의 눈길도 자연스레 향했다.
사실 처음부터 눈길이 갔던 자였다.
‘키가 무슨...’
앉은키가 워낙 큰 만큼 얼추 봐도 대충 190CM 후반대에 달하는 큰 키를 지녔을 것 같은 남자였다.
온몸은 우락부락한 근육질.
남자는 한국 음식만큼은 입맛에 맞는지 순대국밥, 그리고 편육을 안주 삼아 소주만 4병째 들이켜고 있었다.
그러면서 반쯤 취한 얼굴로 불평을 이어갔다.
“솔직히 아직 강팀들이랑은 안 붙어 봤잖아? 첼시, 리버풀, 아스널, 맨체스터 시티, 맨유, 토트넘 같은 팀 말이야.”
“아아...! 토트넘은 제외하고서. 암튼 빅5랑 붙었을 때가 진짜인 거지!”
“내가 축구 경력만 30년째야! 선수 보는 안목도 스카우트 수준이라고. 그러니 딱 보기엔 그래. 인쿠는 그냥 약팀 상대로나 잘하는 놈이야. 그러다 한순간에 귀신같이 버로우 탈걸?”
원래 목청이 큰 건지 민머리 남자의 까칠까칠한 목소리는 가게 안을 다 울릴 정도였다.
“거기다..., 그 새끼 성격도 완전 개떡같잖아! 아니, 축구 좀 잘한다고 그렇게 생각 없이 추앙만 하면 우째? 그 빌어먹을 동양인 놈이 갈수록 거만해지는 게 이런 이유라고! 잘못한 게 있으면 잘못했다! 정확히 지적해주고 말이야. 그 예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상대로도 경기 전부터 갖은 도발로 ... 후우! 생각만 해도 열 받네.”
잠자코 듣고 있던 파이기의 두 눈은 가늘어졌다.
문득 남자의 불평불만에선 약간의 시기와 부러움, 증오마저 느껴졌으니까.
그건 자리한 툰들도 다르지 않았다.
스윽. 드르륵.
어느덧 일부 툰들은 입매를 축 늘어뜨린 채 서서히 의자를 뒤로 끌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이기는 의자 등받이에 느슨하게 등을 기대며 팔짱을 꼈다.
이를 아직 인지하지 못한 민머리 남자는 계속해서 인구를 까내리기 바빴다.
“줘엇같은 인쿠놈...! 주둥이만 살아서는! 가만 보면 우리 뉴캐슬도 좀 병신 같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고작 한 번 승리해놓고선 라이벌이니 뭐니! ...으음?”
주저리주저리 떠들던 민머리 남자는 문득 엄습한 그림자에 말을 멈췄다.
두 눈을 끔뻑이며 고개를 들어서야 그제야 주변 분위기가 확 바뀌었음을 알아챘다.
“뭐, 뭔...? 왜, 왜 이래?”
그새 여러 명의 툰들이 민머리 남자를 둘러싸듯이 자리해 있었던 거다.
당황한 남자를 향해 한 툰은 스윽,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나지막이 물었다.
“누구냐 넌.”
“누, 누구냐니? 나, 난 툰이지!”
뒤늦게 위험을 감지한 민머리 남자는 억지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속으론 자책했다.
‘제, 제기랄! 술을 마셔도 너무 많이 마셨나...?!’
쭉 쭉 들이켜다 말고 자기도 모르게 속에 있는 불만이 터져 나온 모양이었다.
허나 자신을 둘러싼 이들의 의심의 눈초리는 거둬지긴커녕 점점 더 확신에 차올랐다.
그건 잠자코 자리한 로보트 파이기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물컵에 졸졸졸 물을 따라 한 모금 입가에 가져가며 생각했다.
‘툰이면서 인쿠를 욕하는 것도 그렇고. 강팀들을 언급할 때 강팀이 아닌 한 팀을 슬며시 집어넣은 것도 그렇고...’
질문에 대한 정답은 처음 민머리 남자에게 질문을 건넸던 남자가 했다.
아주 살얼음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로.
“너, 툰인 척하는 레드 데빌스(맨유 서포터즈)지?”
“그, 그럴 리...!”
민머리 남자는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을 둘러싼 이들의 입꼬리가 누가 먼저랄 새 없이 세상 악랄하게 끌어 올라갔으니까.
방금 전 질문을 건넸던 툰은 언제 차분한 표정을 지었냐는 듯 먹이를 발견한 맹수처럼 두 눈을 번뜩였다.
입에선 상스러운 어투가 튀어나왔다.
“하~ 쒸. 여기에 쥐새끼 한 마리가 찍찍대고 있었네.”
멀지 않은 거리에서 그들을 보던 로보트 파이기는 이내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적지 한복판에서 매복이 들통난 상황이 아닌가?
적어도 툰들은 레드 데빌스를 빌어먹을 라이벌이라 여기고 이었다.
‘더욱이 적지 한복판에서 인쿠와 뉴캐슬을 욕보이기까지...!’
이건 더는 돌이킬 수가 없었다.
열렬까진 아니나 기독교인이긴 했기에, 파이기는 속으로 나직히 저 민머리 남자의 명복을 빌었다.
‘아멘.’
* * *
몇 분 뒤.
“세나야. 오늘날 좋지?”
“웅웅. 날 좋아. 하늘에 구름 한 점이 엄써!”
웨스트햄과의 경기 다음 날.
인구는 세나와 단둘이서 뉴캐슬 어폰타인 내 시내를 거닐고 있었다.
함께 거니는 것만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와, 인쿠다!”
“세나도 있어!”“어쩜, 저렇게 귀여울 수가...!”
“아니, 인쿠한테 딸이 있었어?”
“천사네, 꼬마 천사야!”
지난 챔피언십에서부터의 활약에 이어 올 시즌 EPL에서 2경기 연속 해트트릭을 작성했다.
그렇듯 적어도 뉴캐슬 어폰타인 내에선 인구를 모르는 자가 없던 거다.
몇몇은 적정 거리를 두고 신기한 것을 본 것마냥 아까부터 졸졸졸 따라오기까지.
인구는 우쭐하니 미소지었다.
‘마치, 연예인 된 기분이야.’
다행히 누구 하나 다가와 사진 요청을 하진 않았다.
찰칵, 찰칵!
멀지 않은 거리에서 알아서 찍을 뿐.
이는 인구와 세나가 입고 있는 티셔츠 덕이었다.
티셔츠 앞과 뒤에는 세나가 작성한 영어 글귀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었다.
[아빠랑 힐링 중이에여!]
[멀리서 사진 촬용 부탁해여!]
[캄사합니다아! >.
힐끗 손을 맞잡은 세나를 내려다보았다.
다행히 딸도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부담감은 일절 없어 보였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욱 해맑은 얼굴로 총총걸음을 딛고 있었다.
인구는 뿌듯하니 생각했다.
‘우리 세나. 연예인 해도 되겠는데...? 사람들 시선에 이리 익숙한 거 보면? 흐흫’
주변에 맛난 음식이나 관심 가는 장난감이 있으면 곧장 인구의 손을 꽈악 잡고 끌었다.
“우아~! 아빠아! 토끼 인형이야!”
“토끼 인형?”
“웅! 저거!”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외치는 세나에, 인구는 일체 망설임 없이 지갑을 꺼내 들었다.
“사자!”
“우아아~ 아빠. 맛난 꼬치야!”
“이야~ 이제 영국에도 한국식 닭꼬치를 파네? 우리 세나 먹고 싶어?”
“웅!”“그래! 이것도 사자아!”
“아빠 최고!”
그렇게 한 블록, 두 블록마다 먹을 것, 장난감 등을 섭렵하는 그때였다.
“음?”
길을 거니는 중에 자주 가는 한인식당 입구 옆, 한 민머리 남자가 바닥에 얼굴을 묻고서 엎드린 채 누워 있는 게 보였다.
새하얀 상의 등짝에는 ‘나 레드 데빌스요.’ 라고 붉은색으로 락카칠이 되어 있었다.
“허 참.”
인구는 대낮부터 술에 취해 길바닥에 뻗은 남자에 황당한 웃음을 머금었다.
‘간도 크다.’
곧 인구는 세나의 눈을 한 손으로 슬며시 가렸다.
속으론 생각했다.
‘우리 귀엽고 이쁜 세나. 좋은 거만 봐요옹~ 흐헣.’
< 113. 빅클럽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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