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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6. 빅클럽 (4) >
아빠는 축구를 너무 잘해!
116화 빅클럽 (4)
아추와 예들린 모두 런던과 같은 마음에서 인구의 집을 방문한 거였다.
그리고 5시간이라는 시간이 지나 현재.
“....”
“....”
“....”
세 사람은 세나와 한참을 놀다 액체 슬라임까지 모두 정리한 뒤 거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누워 있었다.
거의 반 기절상태라고 봐도 무방하였다.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는 살로몬 런던은 두 눈만 천천히 끔뻑이며 생각했다.
‘팔이 안 움직여...’
고강도도 이런 고강도 훈련도 없었다.
늘 세나랑 놀 때면 이처럼 체력이 갈려 나가는 기현상을 겪었다.
‘어째 정규 훈련 때보다 더 힘든 건지.’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
세나와 놀아주는 것만으로 최근 들어 체력이 급상승했으니까.
힐끗.
런던은 눈동자만 굴려 옆을 보았다.
세나는 지친 기색 없이 소파 위에 엎드리고 누워 새하얀 도화지에 그림 그리기에 한창이었다.
“흐흐흥~ 흐흐흐흥~!”
스슥! 스스슥!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이쪽을 틈틈이 살피는 것을 보니 자신들을 그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 봤자 못 알아보겠지만.’
일전에 인구는 세나가 그림에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났다고 했다. 허나 런던이 보기엔 아니었다.
런던은 입매를 축 늘어뜨렸다.
‘그건..., 진짜 인쿠의 눈깔이 삔 거야.’
웬만해선 사랑스럽고 귀여운 세나를 위해서라도 동조해주고 싶으나 그림 실력만큼은 정말 엉망진창이었으니까.
킁킁!
문득 런던은 코를 킁킁댔다.
눈동자는 이제 아래로 향했다. 고개는 힘겹게나마 살짝 들렸다.
주방에선 인구가 앞치마를 두른 채 맛난 저녁 요리에 한창이었다.
탓탓탓탓탓!
도마 위 야채들을 유려한 칼질로 썰어냈고 오븐에선 육즙이 좔좔한 치킨이 나왔다.
꿀꺽!
거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퍼져있던 모두가 군침을 삼키는 순간이었다.
* * *
요리사, 인구가 내놓은 요리는 오븐 치킨을 비롯해 맑은 조개탕, 치즈폭탄계란찜, 삼겹살로 만든 제육볶음 등이었다.
그 외 10가지 반찬들도 포함.
상석에 앉은 인구는 식탁 위를 가득 채운 음식들을 향해 흡족한 미소를 띠며 덧붙였다.
“이 치즈폭탄계란찜에 들어간 치즈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등급의 유기농 농업 인증평가기관에서 인증을 받은 치즈로...!”
“삼겹살에도 등급이 있다는 거 알지? 그리고 이 제육볶음에 들어간 삼겹살은 투플이야. 거기다 출하, 운송, 도축, 가공 과정에서의 결함이 없다는 것도 이 몸이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끝에 공수해온...!”
세나와 함께 한 이후 좋은 것만 먹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긴 인구였다.
과정에서 스스로조차 이제 훌륭한 재료들을 발견하고 공수해오는 데서 자부심이 넘쳐났다.
물론 런던, 아추, 예들린은 이에 적응이 됐기에 한 귀로 듣는 척, 다른 한 귀로 흘려냈다.
이어 인구의 자랑이 잠깐 끊어짐 틈을 타 세 사람은 거의 동시에 외쳤다.
“잘 먹겠습니다!”
“감사히 먹을게요!”
“내가 좋아하는 치즈폭탄계란찜...! 크으!”
누가 먼저랄 새 없이 수저와 젓가락이 식탁 위를 공략했다.
식사 시간은 고작 10분 만에 끝났다.
런던은 공깃밥 세 공기를 비워서야 포만감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물론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어느덧 자리에서 일어난 인구가 주방에서부터 후식으로 떠먹는 젤리를 개인당 하나씩 내어다 주었으니까.
“후후훗.”
상석에 스윽 앉은 인구는 우쭐한 미소를 띠며 설명을 이어갔다.
“이 떠먹는 젤리로 말할 것 같으면...!”
세 사람은 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한 움큼 젤리를 퍼 입안으로 가져갔다.
직후 세 사람은 감동에 겨워했다.
‘역시 인쿠 횽님...! 축구 관두면 요리사해도 되겠어!’ <디안드루 예들린>
‘무지 달달한데 건강한 맛이야! 어쩜 이럴 수가 있지?’ <살로몬 런던>
‘살살 녹네, 살살 녹아!’ <크리스티안 아추>
문득 세 사람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주에 3번, 4번 인구의 집을 방문하는 데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이 음식 때문이라는 것을.
얼마의 시간이 지나서였을까?
세나가 소파 위에 새근새근 잠이 들어서야 런던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인쿠. 맨체스터 시티에서 제안이 왔다며.”
식탁 위엔 떠먹는 젤리 대신 따끈한 대추차가 놓여 있었다.
런던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찻잔을 내려다본 채 조금은 진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축하한다고 직접 얼굴 보고 말하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온 거야.”
런던의 맞은편에 앉은 아추는 픽하니 웃으며 중얼거렸다.
“맨체스터 시티로 가면..., 이제 적인 건가?”
그러자 그 오른편에 앉은 예들린이 곧장 부정했다.
“적이라니! 맨체스터 시티로 간다 해도 한 번 동료는 영원한 동료지!”
“맞아. 동료! 아니 내 스승이야!”
런던은 벌써 이별을 목전에 앞둔 사람마냥 꽉 쥔 주먹을 들어 보이며 외쳤다.
두 눈시울은 붉어지기까지 했다.
세 사람이 인구와 함께 한 시즌은 고작해야 한 시즌이 다였다.
그럼에도 이처럼 아쉬움이 따르는 데는 인구가 그만큼 세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디안드루 예들린은 뜨거운 눈길로 인구를 바라보았다.
‘인쿠 횽은 나를 완전히 바꿔놨어.’
인구를 만나기 전 자신은 그저 빠른 쓰레기에 불과했다.
‘크로스를 올려야 되는 상황에서 크로스를 올리기는커녕 단독 돌파를 강행하다가 공을 빼앗기기 일쑤였다고.’
단연 풀백인 자신이 적진 깊숙이 올라가니 뉴캐슬의 사이드 공간은 허허벌판일 수밖에 없었다.
언론과 여론은 매일같이 질타했었다.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는 수비수는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인구를 만나고부터는 달라졌다.
‘인쿠 형은..., 마치 자기 일처럼 나를 곁에서 리드해줬잖아.’
크로스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와줬으며, 공수 전환에 필요한 가장 1순위라 할 수 있는 체력 상승에도 큰 기여를 해주었다.
‘지쳐 쓰러지면 언제나 손을 내밀어줬고!’
무엇보다 인구와 함께라면 부족한 부분이 실시간 포지션 리딩으로 메워졌다.
‘마치 체스 말을 옮기듯이 상대의 변화에 대응했어.’
이를 곁에서 보고 느끼며 또 실천하면서 많은 부분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고 말이다.
크리스티안 아추와 살로몬 런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듯 고작 1년이라는 시간이라 할지라도 인구에 대한 세 사람의 애정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가족같아.’
‘가족이지.’
‘가족처럼 대해줬어.’
속으로나마 세 사람의 의견이 일치하는 순간이었다.
축구에서의 주전 경쟁은 냉정하고도 서슬 퍼렇기 그지없건만, 인구는 가족처럼 자신들을 대해줬으니까.
축구 인생을 통틀어봐도 인구처럼 자신들을 이처럼 대해주는 동료는 여태 없었다.
‘같이 한국식 사우나라는 목욕탕도 가보고, 밥도 먹고, 영화도 보러 가고 그냥 뭐 다했잖아.’
언제나 조카인 세나도 함께.
런던은 차 한 모금을 음미하며 입가에 자그마한 호선을 그렸다.
‘이렇게 따스하고도 맛난 음식도 대접해주고 말이야.’
그래서일까?
인구의 맨시티행이 세 사람은 진정 기쁘면서도, 이런 따스함을 더는 맛볼 수 없다는 데서 아쉬움이 엄습했다.
그럼에도 런던은 마주 보고서 인구에게 이 말만은 꼭 전하고 싶었다.
스윽-
곧 입가에 호선을 띤 그대로 런던은 인구를 똑바로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고마워.”
“고마웠어요.”
“고맙다.”
아추와 예들린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거의 동시에 말했다.
“아니?”
“뭔?”
“내가 먼저 말했...!”
흠칫한 세 사람은 서로를 당황한 눈길로 보고는 그만 픽하니 웃어버렸다.
반면 인구는 대답 없이 후루룹 대추차를 마시며 생각했다.
‘이 새끼들.’
아까부터 눈빛부터가 서글픈 게 이상하다 싶더니. 이 세 놈 모두 아예 자신의 이적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던 거다.
그렇듯 인구는 세 사람을 향해 남은 대추차를 몽땅 비우고는 진실을 알렸다.
“염병하네. 이놈들아. 어디 뭐 이민이라도 가냐? 표정들 풀어. 그리고 나, 맨체스터 시티행 거절했어. 적어도 한 시즌 이상은 뉴캐슬에서 EPL 시즌을 치러보고 싶어서.”
* * *
맨체스터 시티 감독 집무실.
호샙 과르디올라는 중역 의자에 앉아 창밖 노을 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옅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참.”
그도 그럴 게 하루 전.
인구는 자신의 제안을 거절했다.
선수 이적료를 떠나 뉴캐슬에서지급하는 연봉의 두 배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해당 소식은 아직 기사화는 되지 않았다.
호샙이 전날 인구의 집으로 직접 찾아갔다는 사실까지도.
흔치 않지만 때때론 감독이나 구단주가 한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설득 차 직접 찾아가는 경우가 있긴 했다.
과거 퀸즈 파크 레인저스의 구단주만 해도 이적 전의 선수의 집에서 함께 게임을 하며 이적을 성공시킨 사례가 있고 말이다.
호샙으로선 그만큼 인구의 영입을 열망했었다.
‘제공권 장악력에다가 빠르고, 결정력까지 갖춘 선수가 아니던가.’
오랜 시간 축구판을 누빈 호샙은 알 수 있었다.
그의 가치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낮다는 것을.
더불어 어렵지 않게 영입을 성공하리라 자신했었다.
맨체스터 시티는 EPL을 떠나 세계 최고 중 하나였으니까.
허나, 아니었다.
문득 호샙은 전날 인구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차려놓은 게 너무 아까워서요.]
[차려놓은 게 말입니까?]
인구의 차림이란 새로운 선수들과 주전 경쟁에서 이겨낸 선수들을 말함이었다.
마주한 인구는 자신을 마주하고도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예. 거의 뭐 구첩반상을 차려놨는데, 수저로 밥 한 번 안 떠보고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는 건 너무 아깝잖아요? 거기다...,]
말끝을 늘어뜨린 인구는 씨익 웃으며 자신의 배를 한 손으로 쓰다듬었다.
[너무 굶주렸어요.]
호샙은 지금 당장은 뉴캐슬에서의 생활이 만족스럽다는 것이라 받아들였다.
‘나아가 뉴캐슬에서 유종의 미라도 거두고 이적하고 싶다는 건가.’
간혹 선수 중엔 한 팀에 진득한 애정을 보이는 이들이 있었다.
‘인쿠도 그중 한 명일지도.’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변방 리그라는 K리그. 그것도 K리그에서도 하부 리그에서 뛰는 선수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 게 바로 뉴캐슬이었다.
‘선수로서 팀에 보답하고 싶은 거지.’
어쨌거나 딱 잘라 말해 맨체스터 시티행을 거절한 것이다.
그 순간 호샙 과르디올라는 오히려 더욱이 인구가 탐이 났다.
하지만 더는 손을 뻗지 않았다.
‘애초에 이적 자체를 염두에 두지 않았어.’
그런 게 인구의 강직한 표정과 두 눈에서 읽혔다.
그때, 인구는 특유의 사나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말했다.
[올 시즌은 그렇고. 내년 시즌이라면 한 번 고려해보죠. 그때 가서는 마음이 확 바뀔 수도 있으니. 아아, 물론 이적료나 주급은 지금보다 훨씬 쳐줘야 할 겁니다.]
거만한 발언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호샙은 오히려 그 모습이 너무나 어울려 보여서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도 당시의 일을 떠올리자 호샙의 입가엔 자그마한 미소가 걸렸다.
‘확신하다 못해 당연시하게 여기고 있잖나.’
자신의 가치가 지금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더욱이 치솟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이는 호샙도 같은 생각이었다.
< 116. 빅클럽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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