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21. 빅클럽 (9) >
아빠는 축구를 너무 잘해!
121화 빅클럽 (9)
울레 군나르 솔사르는 뉴캐슬전에 앞서 치러진 경기에서 승리한 후 인터뷰에 임하고 있었다.
그는 특유의 착한 미소를 띠며 기자들과 담소를 주고받듯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여름 이적시장은 굉장히 바쁘게 흘러갔는데요? 알랙시스 산체스, 크리스 스물링, 마태오 다르미안, 로맬루 루카쿠 등을 대거 방출하며 팬들의 우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거로 알고 있습니다만.”
“맞습니다. 그랬죠. 하지만 우린 곧장 충실한 보강에 성공했습니다. 스완지 시티에서 발 빠른 다니앨 제임스를. 크리스탈 팰리스에서 아룬 완비사카를. 그리고 레스터 시티의 해리 맥과이어를.”
솔사르는 덧붙였다.
그들의 영입에 만족한다고. 기자들도 긍정 어린 반응이었다.
세 선수 중 아룬 완비사카와 해리 맥과이어는 솔사르 체제에서 완전히 핵심으로 비상했으니.
다니앨 제임스 또한 로테이션 멤버로서 쏠쏠한 활약을 펼쳐주고 있었고 말이다.
“또 기존 자원인 빅토르 린댈로프, 마커스 래시퍼드, 브루노 패르난데스가 굉장히 좋은 활약을 펼쳐주고 있지요.”
선수들을 칭찬하면서도 힐끗 힐끗 솔사르는 기자들의 눈치를 살폈다.
속으론 생각했다.
‘내 전술 칭찬도 좀 하라고.’
비록 순위 6위일지라도 현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3연승을 달리고 있었다.
단순 경기력만 놓고 보자면 빅6 중에서 상위권에 속했고 말이다.
그리고 솔사르는 겉과 달리 이 모든 게 자신의 덕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선수들을 맛깔나게 버무린 게 바로 나란 말이다.’
그 덕에 오랜 꿈이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정식 감독으로도 부임했다.
비록 1년 반짜리 단기 계약이었지만.
‘개같은 우드워드...!’
단기 계약만 생각하면 단장인 우드워드의 면상이 떠올라 짜증이 치솟았다.
‘그 역겨운 능구렁이같은 놈...!’
사실 여름 이적시장에서의 선수 영입 건도 애드 우드워드가 일방적으로 주도한 거였다.
그건 다가올 이번 겨울 이적시장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내 의사는 묻지도 않고 영입하다니...!’
영입 권한 자체가 없는 헤드코치로의 계약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전인 감독인 조제 모리뉴 또한 헤드코치로의 계약에 틈틈이 불평을 토해냈었고 말이다.
그것도 잠시, 솔사르는 이어진 기자의 질문에 두 눈을 빛냈다.
“저희가 알아본 바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이번 시즌, 챔스권인 순위 4위로 마감을 짓게 된다면 감독님의 공헌을 인정해 재계약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하던데요. 사실입니까?”
사실이었다.
일전에 솔사르는 애드 우드워드와의 면담을 통해 해당 이야기를 접했었다.
[우승은 이미 물 건너간 거 같고..., 딱 잘라 챔스권에만 팀을 끌어 올려주십시오. 그렇게만 해준다면 최소 3년 재계약을 진행하도록 손 써볼 테니.]
우드워드는 이런 식으로 항상 딜을 거는 녀석이었다.
‘동기부여라면 동기부여겠다만...,’
솔사르로선 기분이 매우 언짢았다.
물론 지금 마주한 기자들을 향해선 세상 착한 미소로 화답해주었다.
“지금으로선 딱 잘라 무어라 답변하기가 어려운 질문이네요. 허나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굳이 그런 재계약 목표가 아니더라도 저는 이 팀이 챔스권에 진출하기를 간절히 희망하고 있습니다.”
솔사르는 보다 두 눈에 힘을 주어 덧붙였다.
“더 나아가서는 리그 우승 경쟁도 바라고 있습니다. 맨체스터 시티, 리버풀이 강세이긴 하지만..., 우리 레드 데빌스 또한 그들과 비교해 어느 하나 부족하지는 않으니 말이죠.”
자리한 레드 데빌스(맨유 서포터즈) 기자들에게선 적지 않게 감탄이 터져 나왔다.
그들이 보기엔 솔사르의 두 눈에서 선수들을 강하게 신뢰하는 게 느껴졌던 거다.
어쨌거나 머지않아 있을 뉴캐슬전은 솔사르에게 있어 굉장히 중요한 경기였다.
’일단 뉴캐슬을 끌어내리고 5위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그래야 장기 계약에 더욱 가까워질 테니.
* * *
맨유전을 며칠 앞둔 현재.
툭, 툭, 툭!
뉴캐슬 유소년 센터에서 양갈 머리를 한 어여쁜 여자아이가 볼 리프팅에 한창이었다.
“어머, 어머.”
“쟨 어쩜 저렇게 잘할까?”
“우리 아들도 저 아이처럼만 하면 원이 없겠네~”
자식의 경기를 관전하고자 오늘 처음 방문했건만, 학부모들의 시선은 일제히 여자아이에 집중되어 있었다.
작은 몸뚱이에도 불구하고 볼 리프팅이 아주 자연스러웠으니까.
거기다 일반적인 볼 리프팅이 아니었다.
툭, 탓, 툭, 탓, 탓!
인사이드에서 오른발 아웃사이드, 아웃사이드에서 무릎으로!
마치 공과 한 몸이 된 거마냥 유려한 볼 컨트롤을 뽐낸 것이다.
한편 그들 옆에서 팔짱을 낀 채 서 있던 여자아이의 아빠, 인구는 아까부터 입꼬리를 씰룩였다.
히죽, 히죽.
자신의 딸, 세나를 향한 부모들의 칭찬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으니까.
학부모들의 칭찬은 끝나지 않았다.
“누굴 닮아서 저리 또 예뻐어?”
“그러게. 배우해도 되겠다!”
“이미 아역배우 아니야? 저렇게 귀엽고 예쁘면.”
“우리 아들은 이미 반한 것 같은데?”
인구는 학부모들에게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가 말고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암! 누구 딸인데.’
이어 인구는 슬그머니 그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속으론 생각했다.
‘날 봐요. 내가 바로 저 아이의 아빠니까. 저 귀엽고 사랑스러운 세나에게 훌륭한 유전자와 나랑 똑 닮은 외모를 선물했다니까? 흐허헣.’
허나 거의 반걸음까지 바짝 다가갔을 때, 한 학부모가 이쪽을 쳐다보고는 화들짝 놀라며 즉시 거리를 벌렸다.
마치 몬스터라도 본 것마냥.
인구는 그런 그녀를 향해 피슬피슬 웃었다.
‘왜, 축구선수 처음 봐?’
이제 인구는 뉴캐슬을 넘어 영국 전역에서 명성을 쌓고 있는 레벨에 이르렀다.
단연 뉴캐슬 내에서 인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있다고 한다면,
‘그건 간첩이지.’
인구는 미리 품속에 준비해 둔 용지와 펜을 꺼낼까 싶었다.
‘사인 필요하죠? 전 다 알고 있습니다. 흐흐흐.’
스스로 생각해봐도 인구 그는 자신이 뿌듯했다.
‘나처럼 팬들을 위해 이렇게 사인 용지에 펜까지 준비해두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다음도 생각했다.
사인 후 세나와 함께 단체 기념사진 한 장을 찰칵 찍는 것으로.
‘이건 정말 흔치 않은 기회지. 후훗.’
허나 거리를 벌린 학부모는 같이 온 또 다른 이의 귓가에 이런 말을 작게 속닥였다.
“무, 무서워! 누, 눈빛 좀 봐.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것 같잖아...!”
그 소리에 인구를 돌아본 또 다른 학부모도 그만 어깨를 흠칫하더니 마주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뭐, 뭐야? 왜 우리 보고 웃는 거야? 품속에 손은 왜 집어넣는 거고...?”
“설마 총...?”
“미친놈인가?”
인구의 표정은 그대로 썩었다.
‘씨발. 다 들린다. 이것들아.’
* * *
인구의 울적함은 금방 치유되었다.
여지없이 세나가 유소년 경기 중에 리오넬 매시 놀이를 한 것이다.
툭, 탓-!
오른발 아웃사이드로 공을 가볍게 때렸다가 말고 재빠르게 인사이드로 방향을 틀었다.
휘익-!
불과 한 걸음 거리에서 남자아이가 휘두른 왼발 끝은 애먼 필드만 쓸었다.
투웅-!
그보다 한 템포 빨리 세나는 남자아이의 좌측 배후를 빠르게 파고들었다.
“오옷...!”
펜스 바깥에서 구경하던 인구의 입에서 절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
또 다른 남자아이가 좌측면에서 몸통박치기를 가하듯 어깨 푸싱을 구사했지만,
스윽-!
세나는 부딪치기 직전, 유려하고도 날렵한 크루이프턴으로 회전문마냥 남자아이를 흘려보냈다.
“그렇쥐 그렇쥐!”
인구는 팔짝 뛰며 즐거워했다.
타아앙-!
촤라악-!
“예에에에에!”
이윽고 세나가 왼발 감아 찬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자 두 팔 벌려 환호를 내질렀다.
“고오오오오오올!”
심판으로 뛰고 있던 유소년 코치 리키 제임스 또한 휘슬 대신 팔딱거리며 외쳤다.
이후로도 세나의 원맨쇼의 연속이었다.
하프라인에서 동료의 패스를 받은 세나는 대뜸 오른발을 휘둘렀다.
타아앙-!
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공은 기어이 앞으로 튀어나왔던 골키퍼의 머리 위를 지나쳐 골망 속으로 쏙 떨어졌다.
촤라악-!
불과 3분 뒤엔 세나가 좌측 사이드에서 단독 드리블 질주를 강행했다.
투욱, 투욱, 투욱-!
그러다 전방에서 풀백이 막아 세우면,
츠윽-!
속도가 붙은 그대로 우측면으로 방향을 틀어 언더래핑을 시도.
사이드에서 하프에 접근하자 또 다른 센터백이 깊숙이 프런트 태클 가했으나 그마저 세나는 벗겨냈다.
투욱-!
단순히 측면으로 공을 길게 차내는 것으로.
타앙-!
직후 빠르게 굴러가는 공에 누구보다 잽싸게 달라붙어 오른발을 휘둘렀다.
밸런스가 채 잡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공은 세나가 노렸던 왼쪽 포스트 하단으로 쏙 들어가 물결쳤다.
촤라악~
구경하던 학부모들은 감탄에 겨워했다.
“무슨 때리면 다 들어가?”
“5살이랬나? 진짜 5살 맞아?”
“와..., 우리 아들이 제일 축구 잘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천재네. 천재야!”
얼마의 시간이 지나서였을까.
“나와써어~”
필드에서만큼은 유려하고도 마치 표범처럼 뛰던 세나가 그새 해맑은 미소로 아장아장 걸어왔다.
인구는 부드러운 웃음을 입가에 띤 채 두 팔을 벌렸다.
“오셨어요, 우리 사랑스럽고 세상에서 제일 예쁜 딸?”
“웅, 와써.”
“어땠어 오늘은?”
“움, 모. 그냥 그래써. 그냐앙 씨원하게 땀 좀 빼는 정도? 헷.”
큰 눈망울을 데구르르 굴리며 답하는 세나에 인구는 그 머리칼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랬겠지.’
최종 스코어만도 9 : 1이었다.
이 중 7골을 세나 홀로 넣었고, 2골 역시 세나의 어시스트가 결정적이었다.
‘이 정도면 그냥 그랬을 정도가 아니라 시시한 수준이잖아.’
그만큼 세나의 축구 실력은 날로 발전하고 있었다.
‘코치랑 월반에 관한 이야기도 좀 나눠봐야겠어.’
순수 실력만 놓고 보면 이미 월반을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럼에도 아직 u-6세 레벨에 머물러 있는 건 인구, 그 스스로의 걱정이 가장 컸다.
‘아직 세나 체격이 이 이상 레벨에서 뛰기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단 말이지.’
어릴 땐 한 살, 두 살 차이도 큰 법이 아니던가.
‘지금도 죄다 세나보다 머리 반 뼘, 한 뼘 이상 큰 애들이랑 붙고 있잖아.’
그 이상 차이가 나면 혹 세나가 자칫 피지컬적으로 크게 밀리지 않을까 우려되었다.
‘그런 덩치들을 상대로 몸싸움 하다가 다치면 어째.’
상상만으로도 화가 치밀었다.
그러다 문득 인구는 세나를 품에 안고서 힐끗 옆을 보았다.
어느덧 자신과 멀찍이 거리를 벌리고 있던 학부모들은 하나같이 적잖게 충격받은 얼굴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인구는 승리자의 미소를 띠며 생각했다.
‘훗, 내가 얘 아빠야.’
여지없이 조금 전 귓속말을 가장한 앞담을 퍼부은 학부모 두 명은 작게 속닥였다.
“저 얼굴에 저 딸이 나올 수가...”
“말도 안 돼. 이건 영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야!”
“...”
사인은 절대 안 해줄 거다.
기념 촬영도.
< 121. 빅클럽 (9) > 끝
ⓒ 강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