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빠는 축구를 너무 잘해-135화 (168/200)

=======================================

< 135. 빅클럽 (23) >

아빠는 축구를 너무 잘해!

135화 빅클럽 (23)

잉글랜드 머지사이드주 리버풀에 위치한 축구 공영 방송국.

스튜디오에 자리한 한때 리버풀에서 활약한 레전드들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해맑았다.

“1990년 이후니까..., 거의 30년만이군요.”

한때 리버풀의 심장이라 불리던 스티븐 재라드는 푹신한 소파에 다리를 교차하고 앉아 흥에 겨워 덧붙였다.

“그 이후 우리 리버풀은 리그 우승컵과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죠.”

“스티븐. 당신이 리버풀에서 활약하던 시절에도 우승에 근접했던 순간이 있었는데요. 기억하십니까?”

맞은편에 앉은 또 다른 레전드, 존 봔스가 장낭스레 물었다.

이는 재라드에게 있어선 치부라 할 수 있었다.

2013-2014시즌 아주 간만에 우승 문턱에 도달했건만, 하필 36라운드, 재라드가 아군 디펜스 지역에서 동료의 패스를 놓쳤으니까.

이를 상기한 재라드는 피식하니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땐 정말 힘들었어요. 당시 팀 동료였던 사쿠의 패스를 놓치면서, 첼시의 공격수 댐바 바가 이를 낚아채 그대로 선제골을 가져갔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36라운드, 첼시전에서 패배를 당한 리버풀은 끝끝내 맨체스터 시티에게 추월당해 좌절을 맛보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 재라드는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젠 괜찮습니다. 리버풀 서포터즈들의 끊이지 않는 열정적인 응원에 힘입어, 지금 리버풀은 아주 중요한 순간에 도달했으니까요.”

재라드의 두 뺨은 발그랗게 달아올랐다.

선수 시절, 이뤄보지 못한 리그 우승을 이젠 한 명의 레전드이자 서포터즈로서 목전에 두게 됐으니.

재라드는 설렘을 감추지 못하며 말을 이었다.

“모하매드 살라, 사다오 마네, 호배르투 피르마누는 환상적인 공격수들입니다. 그 외에도 파비누, 버질 판 다이크, 배이날둠, 재임스 밀너 같은 선수들이 없었다면..., 리버풀이 지금 이 자리까지 오기란 힘들었겠죠.”

비록 은퇴를 선언한 뒤 감독으로서 제2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였지만 여전히 재라드는 리버풀을 사랑하고 있었다.

35라운드까지 치러진 동안 맨체스터 시티를 승점 4점 차로 따돌리고 1위 자리를 수성하는 이 순간엔 더없이 기뻤고 말이다.

그건 자리한 다른 레전드들도 같은 마음이었다.

농담을 건넸던 존 봔스 또한 뒤쪽 스크린 화면 속 모하매드 살라의 플레이를 보며 감탄을 터뜨렸다.

“그는 이집트의 왕을 넘어 이곳 머지사이드주의 왕입니다!”

이스탄불의 기적의 주인공 중 한 명이었던 골키퍼 예지 두텍은 확신에 차 말했다.

“다른 매체에선 우리가 기어코 맨체스터 시티에게 역전당할 거라 하지만..., 그건 개소리에요. 말도 안 되는 이변이 없는 한은 우리가 우승할 겁니다! 일정상으로도 딱히 문제 될 건 없으니까요.”

사실상 리버풀은 뉴캐슬전만 조심하면 되었다.

이후 2경기는 하위권 팀과의 대결이었으니까.

물론 리버풀을 적대시하는 매체에선 때때로 약팀에 약한 면을 보이는 리버풀의 패배를 바랐지만 말이다.

그에 반해 리버풀의 레전드들은 팀의 선전을 바랐고 또 그러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세 레전드는 36라운드 상대인 뉴캐슬과 관련해 심층 분석에 들어갔다.

라파엘 배니테즈의 전술적인 특징부터, 개개인 선수들의 플레이 등.

리버풀 및 이 세 레전드들에게 있어서 라파엘 배니테즈는 의미가 남다른 감독이라 할 수 있었다.

스티븐 재라드는 동경심이 가득한 눈길로 스크린 화면 속에 떠오른 라파엘을 보며 설명했다.

“그는 리버풀에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선사한 명장입니다. 비록 지금은 적장이지만 그는 존경받아 마땅하죠.”

라파엘과 함께 이스탄불의 기적을 만든 골키퍼, 존 두텍 역시 동조했다.

“저를 비롯한 리버풀은 여전히 라파엘을 지지합니다. 라파엘이 떠난 이후 리버풀이 긴 암흑기에 빠졌던 만큼, 그는 리버풀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존재였죠!”

그러면서도 두텍은 단호히 선을 그었다.

지금에 이르러 그는 한 명의 적장일 뿐이며, 반드시 무너뜨려야 할 상대라고.

“나아가 현재 우리 리버풀을 이끄는 위르갠 클롭은 라파엘 이상 가는 명장이지요!”

주제 중 단연 메인은 마 인구였다.

스티븐 재라드는 조금은 표정을 굳히며 말을 이어나갔다.

“인쿠 마의 득점력은 경이적인 수준입니다. 단 한 시즌만에 EPL에 새로운 득점왕 역사를 써 내려간 선수에요. 그를 무시하는 건 무지와 같습니다.”

당장은 적이지만 재라드는 인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존 봔스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뉴캐슬이라는 수준의 팀에서 혼자서 39골의 득점을 올린 스트라이커입니다. 경기를 보시면 알겠지만 팀의 도움과 별개로 개인 역량만으로도 손쉽게 득점을 기록할 만큼 타고난 골잡이죠.”

두텍은 신중한 얼굴로 거들었다.

“우리 리버풀엔 버질 판 다이크가 단단히 버티고 있지만..., 확실히 인쿠는 조심할 필요가 있지요. 골키퍼 알리손도 이에 만반이 대비하고 있을 테지만요.”

치열한 EPL에서 20골의 고지만 밟아도 스트라이커로서 최고의 반열에 올랐다 칭할 수 있다.

한데 인구는 자그마치 39골을 기록한 골잡이였다.

그것도 시즌이 채 끝나기도 전.

그렇듯 리버풀 레전드 뿐만 아니라 이젠 대다수가 인구를 리그 내 최고의 공겨수라 인정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재라드는 확고히 말했다.

“고작 한 시즌이라고 해도, 인구는 그 한 시즌 내에서 자신을 완벽히 증명해냈습니다.”

이에 절대로 방심해선 안 된다고도 덧붙였고 말이다.

그때였다.

“인쿠가 멘션을 하나 올렸다는데요?”

갑자기 존 봔스가 PD의 눈치를 보더니 화제를 전환했다.

“멘션?”

“또 도발인가?”

제라드가 의문을 표한 반면 두텍은 설마 싶은 얼굴로 물었다.

멘션은 개인 SNS 상에 게시하는 단문 메시지를 말함이었다.

올 시즌부터 인구는 경기 전 도발과 조롱으로도 유명했기에 그새 세 사람은 호기심이 동한 얼굴이 되었다.

곧 존 봔스는 대표로 품속에 있던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으음.”

동시에 살짝 벌어진 입 밖으로 짧은 신음이 새어나왔다.

호기심으로 가득했던 두 눈은 살포시 구겨졌다.

“뭔데 그럽니까?”

“울레 군나르 솔사르가 인쿠의 도발에 곧잘 반응하곤 했었죠. 하지만 리버풀은 다릅니다.”

제라드는 피슬피슬 웃으며 독촉했고, 두텍은 짐짓 강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반면 봔스는 눈동자만 굴려 그런 두 사람의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이내 휴대폰을 카메라 정면에 비쳤다.

“은근 기대가 되네요.”

피슬피슬 웃는 낯 그대로 재라드는 소파 등받이에서 등을 떼 뒤쪽 스크린 화면을 보았다.

그리고 확대된 휴대폰 액정 속엔 아주 짧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훔바훔바의 재림.]

“....”

훔바훔바란, 지난 2013-2014시즌 리그 36라운드.

아군 지역에서 사쿠의 패스를 놓친 뒤 미끄러진 재라드가 개처럼 사족보행으로 공을 꿰찬 댐바 바를 쫓는 모습에서 나온 별명이었다.

어느 해축 유저는 댐바 바가 사족보행을 하는 재라드의 목에 목줄을 채우고 산책하는 듯한 편집본을 올리기도 했었다.

이는 한때 라이벌 서포터즈들이 콥(리버풀 서포터즈)들을 조롱하고자 영상으로 수없이 활용하기에 이르렀고 말이다.

그래서일까?

지난날의 기억에 재라드는 웃는 낯 그대로 굳었다.

*       *       *

인구의 멘션이 업로드되고 몇 시간 뒤, 단연 콥(리버풀 서포터즈)들은 분노를 터뜨렸다.

동시에 콥들은 인구의 SNS를 찾아가 온갖 욕지거리를 쏟아냈다.

- 인쿠 이 줫빱아. 너는 내일 경기에서 우리 판 다이크한테 90분 내내 발목이 붙들릴 거야!

- 이 새끼는 항상 입이 근질근질한 건가? 아니면 마조야? 욕 먹는 걸 좋아하는 거 맞지? 응? 그래서 끊임없이 도발하는 거지?

- 파비누가 이 새끼 다리를 좀 부러뜨렸으면 하는데...,

ㄴ 다리가 아니라 이빨을 털어야 함.

ㄴ 아니지, 아니지! 혀를 뽑아버려야지!

한국의 콥들마저 인구의 개인 SNS를 찾아가 분통을 터뜨렸을 정도다.

- <캐리거> : 인구씨. 인구씨. 우리 최강 리버풀 건드리는 건 선 넘었다는 거 알죠? 그것도 구단의 레전드를 감히 건드려?

- <노란머리토래스> : 훔바훔바..., 시발. 언제적 훔바훔바냐. 인구야. 한 번 허리 동강 나서 사족보행으로 아웃되볼래?

- <이스탄불의기적> : 같은 한국인이지만 한 명의 콥으로서 인구는 결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이 새끼는 진짜 아가리를 털어야 해요!

그러거나 말거나 같은 시각.

인구는 경기 하루 전을 앞두고서도 개인 훈련에 열중이었다.

타아앙-!

촤라악-!

밤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구는 꽤 먼 거리에서 슈팅 훈련에 집중하고 있었다.

오늘은 세나가 가은이와 온전히 함께 하는 날이었으니까.

타앙-!

오른발 아웃프런트로 때린 공은 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좌측 포스트 방향에서 우측 포스트로 크게 휘어져 골망을 물결쳤다.

촤라악-!

“이야아~”

이를 반대편 디펜시브에서 예들린의 크로스를 헤더로 직접 골을 노렸던 런던이 보고 감탄을 연발했다.

그건 러닝 크로스를 구사했던 예들린도 다르지 않았다.

“거의 하프라인에서 때린 슈팅인데 저렇게 휘어져 들어가...?”

보면 볼수록 인구의 결정력과 공에 실리는 힘, 스피드는 경이적, 그 자체였다.

인구는 동료들의 감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일렬로 늘어뜨린 공을 때려 찼다.

타아앙-

촤락-!

퍼어어엉!

촤라아악-!

인프런트, 아웃프런트.

왼발 인스텝, 아웃스텝 가리지 않고.

때리는 족족 공은 정확하고도 강력하게 골망을 시원하게 물결쳤고 말이다.

집무실 창문 너머론 라파엘 배니테즈가 그런 인구와 다른 선수들의 개인 훈련 장면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 옆엔 다른 누구도 아닌 단장인 댄 라셀스가 뿌듯한 얼굴로 인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환상적이지 않습니까?”

댄 라셀스로선 인구의 활약이 지속할수록 어깨가 치솟았다.

인구를 영입한 일등공신은 스카우트 로보트 파이기지만 최종 승인 한 건 자신이니까.

문득, 라셀스는 힐끗 대답 없는 라파엘을 보았다.

‘달라졌군.’

인구를 바라보는 눈빛부터가 완전히 달라졌다.

처음 인구를 데려왔을 땐 의구심을 넘어 분노를 토해냈던 라파엘이었다.

‘당시엔 듣도 보도 못한 20대 후반의 동양인 선수를 데려왔으니 당연한 반응이지.’

하지만 지금 그는 누구보다 인구를 신용하며 중용하고 있었다.

‘매 경기마다 기자회견장에 데려갈 정도가 아닌가.’

어째 주장인 자말 라셀스보다 더 경기 전 기자회견장에 데려가는 횟수가 많았다.

‘매번 논란성 멘트를 날리는 데도 말이야.’

이제 epl 20개팀 중 뉴캐슬을 제외한 나머지 19개팀들은 인구를 악동이라 칭할 정도였다.

‘그뿐인가? 코치 회의에도 참여시킬 정도지.’

코치들 사이에서 인구의 또 다른 별명은 플레잉코치였다.

거의 열에 여덟 번은 코치 회의에 참여해 의견을 피력하곤 했으니까.

라파엘이 인구를 코치 회의에 참여시키는 이유야 간단했다.

‘코치로서도 뛰어난 역량을 지녔다라...’

다시 생각해봐도 인구를 영입한 건 아주 잘한 일 같았다.

‘내 모든 선택의 순간을 꼽아도 세손가락 안에 들 만큼...!’

그때, 라셀스가 혼자 상상에 빠진 채 히죽 웃는 와중, 라파엘은 인구를 뚜렷이 직시하며 자기도 모르게 이런 말을 내뱉었다.

“질 거, 같지가 않군.”

< 135. 빅클럽 (23) > 끝

ⓒ 강로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