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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5. 빅클럽 (33) >
아빠는 축구를 너무 잘해!
145화 빅클럽 (33)
경기 이틀 전 저녁.
뉴캐슬 어폰타인 내 위치한 한 한인 음식점은 분주했다.
가게 사장인 올해 40대 후반에 이른 ‘김들이’는 주방에서 생고기를 일일이 썰어내며 물었다.
“파채는?”
“예. 방금 막 완성했어요.”
“계란찜도 바로 올려.”
“넵.”
“아아, 된장찌개도 같이.”
“알겠어요~ 여보.”
김들이의 지시에 부엌에 자리한 와이프부터 올해 스무 살이 된 아들 및 식당 직원까지 일사천리로 움직였다.
가족과 함께 약 2년 전 영국으로 건너온 그는 이곳에서 터를 잡았다.
소고기, 돼지고기 및 갈비탕 등을 팔며 뉴캐슬 어폰타인 내 나름 인기 음식점으로 비상한 것이다.
그런 그가 오늘 이리도 분주한 이유는 간단했다.
꿀꺽!
그는 도마 위 소고기를 신중히 썰어내면서도 긴장감에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오늘은 다름 아닌 뉴캐슬 유나이티드 선수들의 회식이 있는 날이었으니까.
문득 김들이는 전날 예약 전화를 떠올렸다.
[거기가 뉴캐슬 어폰타인 내 가장 맛있는 한인 식당입니까? 듣기론 소고기가 혀에 닿기만 해도 놓아 내린다던데?]
[아핫, 맞습니다. 소고기가 막 혀에 닿기만 해도 놓지는 않지만..., 자부합니다! 어느 유명 식당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고.]
[그걸로 충분합니다. 한국의 맛만 보여줄 수 있다면요. 그러면 예약 좀 할까 해서요. 인원은 코칭 스태프까지..., 40명 정도입니다.]
인원수가 40명인 것만으로도 대박이었다.
그런데 김들이가 더욱 놀란 건 바로 다음이었다.
[아, 네! 혹 예약자 성함은 누구로...,]
[마인구요.]
[....예?!]
[마인구로 예약 좀 부탁드릴게요. 계좌 불러주시면 예약금도 미리 드리겠습니다.]
현재.
서걱, 스걱-!
김들이는 두 눈에 힘주어 가며 최대한 마블링 분포도가 좋은 고기를 썰어내며 생각했다.
‘진짜 마인구야...!’
혹 장난 전화인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전날 밤 인구가 직접 딸과 함께 이 가게에 들리기까지 했으니까.
‘사전 답사 차 소고기 먹고 갔다고...!’
이어 인구는 딸이 잠깐 화장실을 간 사이 진심어린 찬사를 건넸다.
[존나 맛있어요.]
김들이는 어린 시절부터 축구에 미쳐있었다.
지금도 주에 3회, 4회는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기 축구회를 나갈 정도로.
특히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는 인구의 팬이었던 만큼 그 설렘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은근한 바람도 있었다.
‘사진 촬영은 덤이고..., 어쩌면 유니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 * *
사전 인구는 감독인 라파엘 배니테즈에게 요청했다.
리그 폐막전을 이틀 앞두고 선수단 회식을 하면 어떠냐고.
인구로선 이런 시간도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간 일정이 너무 팽팽했잖아.’
살짝은 느슨하게 풀어 줄 타이밍이라 판단한 것이다.
나름 회식을 통해 선수들 간의 유대감, 단결력도 높일 겸.
라파엘은 술을 마시지 않는 조건으로 이에 흔쾌히 응했다.
그렇게 현재.
치이이이이이익-!
넓은 한인 식당 안, 옆자리에 앉은 살로몬 런던이 소고기를 구우며 우쭐하니 말했다.
“이게 뭐냐면, 치맛살이라는 거야.”
“치맛살?”
한국식 바비큐를 처음 접하는 소피안 부팔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런던은 금세 구워진 치맛살 두 점을 집게로 집어 부팔의 빈 접시에 내려놓았다.
“저 파채랑 같이 먹어봐. 계란찜도 맛보고.”
“양념은 별도로 없는 거야?”
부팔로선 양념 하나 발라지지 않은 고기가 조금은 낯설긴 했다.
영국에서 먹어왔던 소고기는 대부분은 약하긴 하나 양념이 처져 있었으니까.
또는 곁들임이나.
스테이크 앤드 에일 파이나 깍둑깍둑 썰어내 만든 코니시 파스티같은.
그러거나 말거나 런던은 피식하니 웃으며 권유했다.
“한 번 잡숴봐.”
“으음, 그래 좋아.”
살짝 망설이던 부팔은 곧 포크로 콕 집어 치맛살 두 점을 입안에 조심스레 넣었다.
그리고 두 번째 고기를 씹자마자 부팔의 두 눈은 크게 떠졌다.
“오옷...?!”
런던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인구는 의자 등받이에 편히 등을 기대며 여유로운 미소를 띠었다.
속으론 생각했다.
‘맛이 없을 리가 없지. 투플이니까. 흐헣.’
“맛있지?”
인구를 통해 수많은 한국 음식을 섭렵한 런던은 인구가 묻고 싶은 질문을 대신해주었다.
부팔은 그새 또 불판 위에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는 치맛살을 한 점 콕 집어 입으로 가져가 맛보곤 감탄했다.
“크으...! 달달한데? 그리고 입안에서 막 녹아. 대박...!”
부팔만이 아니었다.
“와. 이렇게 먹는 건 또 처음인데.”
“난 안심이나 등심만 먹어봤지. 여기가 무슨 부위라고?”
“이건 부채살이야.”
“부채살?”
“소의 앞다리 위쪽 부분이지. 크흠!”
우물우물~
런던과 마찬가지로 인구를 통해 한국 음식을 마스터한 디안드루 예들린이 동료들에게 친절히 설명했다.
한 번 고기를 맛 본 동료들은 하나같이 긍정 어린 반응을 보였다.
“오 마이 가쉬...! 이렇게 맛난 고기는 또 처음 먹어봐!”
“한국인은 음식을 먹을 줄 안다니까? 적어도 영국인 보다는 훨씬!”“그거 칭찬이지?”
“그럼 칭찬이지!”
“나 지금 무지 진지해. 이 한국식 바베큐, 집에서도 해 먹어야겠어. 그러니까 여기가 어느 부위라고?”
“이거 불판도 파는 건가? 구매했으면 하는데...,”
다른 한쪽에선 크리스안 아추가 동료들을 앞에 두고 계란찜에 관해 설명하고 있었다.
“이건 치즈인가?”
“아니, 계란찜이라는 거야. 계란이랑 물, 그리고 소금도 적당히 넣어서 만든 거지. 여기는 살짝 치즈도 가미되어 있네.”
멀지 않은 테이블에 자리한 주장인 자말 라셀스는 고기 세 점을 한 번에 집어 입에 넣고는 말했다.
“와우, 우리 아빠가 정육점 하시는데 나 그 부위 알아. 보통 영국에선 부채살이나 사태는 덜 연해서 큐브 스테이크로 인공적으로 조리해 먹는다고. 근데 이건..., 대박인데? 덜 연하긴커녕 진짜 소피안 말대로 입안에서 살살 녹잖아! 이 된장 수프는 또 어떻고! 너무 구수해! 구수해서 중독성이 있어!”
감탄에 감탄이 이어지면서 인구의 입꼬리는 아까부터 자꾸만 씰룩거렸다.
‘나도 한국인이라 이건가. 이런 게 국뽕이라는 거고?’
유럽 각국에서 건너온 동료들이 이리도 한국 음식을 마음에 들어하니 어깨마저 샘솟았다.
고기뿐만 아니라 갈비탕, 냉면을 접했을 때도 같은 반응이었다.
부팔과 암라바트는 오히려 소고기보다 갈비탕의 국물 맛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크으으...!”
“이거 갈빗대에 고기 좀 봐...! 국물이랑 같이 먹으니까 더 맛있어!”
인구는 훈련장에서와는 다른, 일상에서 보여주는 동료들의 모습에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짜식들. 이렇게 보니까 그냥 동네 친구들끼리 식당에 방문한 것 같네.’
결전을 앞두고 긴장할 법도 했건만, 오늘만큼은 누구 하나 긴장하는 이 없이 이 순간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 정도 포만감이 찬 인구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음료 잔을 집어 들었다.
“자자, 여러부운-!”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이쪽으로 기울었다.
인구는 동료들을 하나하나 찬찬히 살피며 입을 열었다.
“이제 단 한 경기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이 경기에서 승리하면 우리는 자력으로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획득하게 되고요.”
중요 경기를 앞두고서 간혹 감독 또는 주장이 선수단을 불러 모아 연설을 통한 파문을 일으키곤 한다.
이는 강한 연대를 유지하거나 더욱 심어주고자 위함, 나아가 경기의 중요성을 알리고자 함이었다.
물론 자칫 과한 요구는 도리어 선수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기도 하는 법.
하지만 인구는 똑똑히 보았다.
‘이 새끼들은 안 그래.’
누구 하나 두려워하는 이 없이 뜨거운 눈길로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인구는 보다 두 눈에 힘주어 말했다.
“하필 38라운드 상대는 맨체스터 시티입니다! 반면에 우리를 2점 차로 바짝 추격 중인 아스널은 하위권 팀과의 경기만을 남겨두고 있죠.”
인구는 덧붙였다.
맨체스터 시티전에서 패하고, 혹 아스널이 승리한다면..., 우리의 챔피언스 리그 진출은 실패할 것이라고.
“뭐, 일부 언론이나 여론은 유로파 리그도 나쁘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만.”
인구는 말을 하다 말고 살포시 미간을 찡그렸다.
“염병, 탈모 오는 소리 하지 말라 그래요.”
인구의 간결하면서도 찰진 욕설에 자리한 일부 선수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구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힘들게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최종전에서 패해야겠습니까? 예? 패해서 챔피언스 리그도 아닌, 고작 유로파 리그에 만족할 겁니까? 뭐, 누구는 애초에 강등권 팀인 뉴캐슬이니까.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 아니냐? 라고 의문을 표합니다만...! 아주 줫같은 소리죠!”
푸흡!
푸핫-!
또다시 일부 선수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인구 또한 슬그머니 하얀 이를 드러내며 덧붙였다.
“힘들게 올라왔잖아요. 사력을 다해 지금의 위치까지 올랐단 말입니다. 더욱이..., 우리는 자격이 있습니다. 충분히 챔피언스 리그에서 노닐 레벨에 올랐다고요.”
한순간 인구의 두 눈에서 불길이 화르륵 일었다.
모든 게 진심이었다.
그는 지금의 뉴캐슬이라면 충분히 챔피언스 리그에 도전할 만한 레벨이 된다고 보았다.
‘개개인의 수준이 크게 올랐어.’
올 시즌 경기를 뛰면 뛸수록 동료들의 레벨은 올랐다.
팀플레이에 있어서도 눈에 띄게 늘었고 말이다.
특히나, 처음 인구가 왔을 때는 발견하지 못한 강한 승부욕이라는 게 생겼다.
‘리버풀전만 해도 그래.’
자리한 이들은 어떡해서든 이기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몸을 사리지 않았다고.’
안면에 공을 맞든 말든 일단 몸부터 던지고 봤다.
이를 악물며 상대 선수보다 두 걸음, 때로는 세 걸음 더 뛰기까지-!
그렇게 자리한 모두가 스스로 빅4에 들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였다.
고로, 인구는 보다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외쳤다.
“한데 아직도 우리를 얕잡아보는 놈들이 있습니다. 꿋꿋이 최상위권 순위에 발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끝에선 우리가 패하며 무너지리라 예측하는 병신들이 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똑똑하게 보여주자고요.”
그의 외침 한 마디, 한 마디에 자리한 선수들은 어느덧 웃음기 대신 세상 열망 어린 두 눈을 빛냈다.
인구는 그런 선수들을 재차 뜨겁게 훑으며 말을 이었다.
“뉴캐슬이 얼마나 강한지! 우리가 왜 신흥 강자인지! 과거, 앨런 시어러가 뛰던 뉴캐슬 이후 오랜 시간 침묵했던 이 팀이..., 우리 대에 다시금 최전성기를 맞이했다는 것을 말입니다!”
“맨체스터 시티전? 어려울 거 없어요. 그저 늘 해왔던 대로만 하면 되니까! 리버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했듯이. 평소처럼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될 뿐-!”
끝에서 인구는 오른 손바닥으로 자신의 가슴을 탕탕 치며 외쳤다.
“뉴캐슬은 지는 법을 잊었잖아? 안 그래?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가 이 팀의 선수로 있으니까-! 우리가 곧 역사라고!”
< 145. 빅클럽 (3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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