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69. 새로운 뉴캐슬 (14) >
아빠는 축구를 너무 잘해!
169화 새로운 뉴캐슬 (14)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찬스는 후반전 44분이 되어서야 맞이했다.
삐이이이이이이-!
밀란 진영 페널티 아크 바깥 부근, 주심은 곧장 휘슬을 불며 달려왔다.
“아윽! 아아악! 아으으아아악!”
네이마르에게 다시금 드리블을 지시하자마자 녀석이 사이드에서 중앙으로 쇄도하는 과정에서 프리킥을 얻어낸 거다.
발을 뻗었던 밀란의 센터백 시몬 키에르는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살짝! 분명 살짝 닿았어요! 저렇게 오버 떨 일이 아니라니까?”
“으아아아! 어어엉! 크아아악!”
그러거나 말거나 네이마르는 바닥을 온몸으로 절구통처럼 뒹굴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새끼...”
파울 지점으로 다가가던 인구는 은근 걱정스레 그런 네이마르를 바라봤다.
얼마나 아프면 저리 고통에 몸부림친단 말인가?
메디컬 닥터가 직접 다가와 두 손으로 어깨를 붙들어서야 절구통 몸부림은 멈췄다.
“괜찮냐?”
인구는 네이마르 앞에 다가가 물었다.
발목을 부여잡은 채 찡그린 표정을 보아하니...,
‘나가리네.’
최소 발목 염좌가 아닐까 싶었다.
거의 1분 넘게 고통을 호소하고 있잖은가?
‘처음 비명 소리 듣고는 뼈 부러진 줄 알았다만.’
허나 예상은 철저히 빗나갔다.
“내가 차도 돼?”
“응?”“아니, 내가 얻은 프리킥이니까... 헷.”
언제 고통을 호소했냐는 듯 네이마르가 기대 어린 눈을 빛내며 열망을 드러냈다.
인구는 두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왜?”
“이것도, 팀플레이의 일환 중 하나라고 생각해!”
새끼가, 뜬금없이 팀플레이를 들먹이며 프리킥 우선권을 가지려 하다니?
언제는 개인플레이만 일삼다가 처맞은 놈이.
허나 인구는 세나를 제외하고선 양보를 잘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곧 그는 검지로 네이마르를 가리켰다.
“너.”
“...?”
“그리고 나.”
인구는 검지로 자신의 가슴팍마저 가리키곤 슬그머니 미소 지었다.
“이렇게 연결되는 게 팀플레이인 거지. 너, 너로 끝나면 그게 팀플레이냐?”
“아니. 그런 억지가...”
무슨 소리인가 싶어 잠자코 듣고 있던 네이마르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은 이 프리킥 찬스는 자기 거라는 소리가 아닌가!
인구는 이에 쐐기를 박았다.
“우리 환상의 팀플레이를 한 번 발휘해보자. 이 찬스는 고마워. 꼭 골 넣을게. 못 넣으면 뭐..., 욕 잠깐 먹고 마는 거지.”
그러다 문득 두 눈은 가늘어졌다.
그러고 보니 이 새끼...,
방금까진 오른 발목을 붙들고 있었는데 지금은 왼 발목을 붙들고 있다.
“...”
카이저 소재가 분명하다.
허나 함구하기로 했다. 이 녀석의 할리우드 액션은 지금처럼 앞으로도 팀에 도움이 될 테니까.
스윽-
그렇듯 인구는 네이마르 부근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공을 한 손으로 꽈악 집어 들며 덧붙였다.
“이다음에 찬스 하나 더 나오면 너 준다. 아아, 이번 거 내가 못 넣는다는 가정하에.”
* * *
[추가시간 3분이 부여됩니다!]
[네이마르가 얻어낸 프리킥 찬스를 준비 중인 뉴캐슬 유나이티드...!]
[인쿠가 차려는 모양인데요!]
골문과의 거리는 정확히 24M였다.
[해당 거리에서 몇 차례 골이 터진 바는 있지만..., 상당히 힘든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모릅니다! 상대가 인쿠니까요! 올 시즌 EPL에서 가장 많은 프리킥 득점을 성공시킨 사나이가 아닙니까?]
[가히, 골게터! 그 자체죠!]
[추가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뉴캐슬로선 판을 뒤집고자 이번 찬스가 굉장히 중요할 텐데요!]
인쿠우! 인쿠우우! 인쿠우우! 인쿠우우우우!
홈 서포터즈들은 공 뒤로 딱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인구를 향해 그 이름을 연호했다.
“후우-!”
인구는 특유의 사나운 눈을 한 채 짧게 숨을 토해냈다.
불과 몇 미터 앞엔 밀란의 높다란 수비벽이 세워졌고, 좌우로는 양 팀 선수들이 언제든 튀어 나갈 채비를 갖췄다.
퍽, 퍼억-!
양 팀 모두 마지막 공격이라는 것을 아는지 프리킥 신호가 울리기도 전에 어깨 푸싱을 가하기까지!
삐이이이!
그러다 한 차례 주심이 휘슬을 불며 런던과 프랑크 캐시에 간에 구두 경고가 주어지기도 했다.
우측 하프와 사이드 사이에선 네이마르가 여전히 아쉬운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여기로 패스해줘! 라고 무언의 시선을 보냈다.
스윽.
하지만 인구는 그 시선을 가볍게 외면하며 수비벽 너머의 골문을 바라봤다.
골키퍼, 돈마룸마가 골키퍼 장갑에 침을 퉤 하고 뱉으며 두 손을 비비는 게 보였다.
“왼쪽! 조금 더 왼쪽으로!”
이어 녀석은 수비벽의 위치를 조정했다.
인구의 눈매가 더 날카로워졌다.
‘이거, 무조건 넣어야 한다.’
실패 시 역습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데다, 혹은 이대로 경기가 종료될 가능성이 컸다.
원정길에 오른 밀란으로선 3 : 3 무승부 스코어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성과일 테고 말이다.
더욱이,
‘우리 세나 볼 면목이 없잖아.’
이미 해트트릭을 작성한 만큼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인구 입장에선 달랐다.
오직 승리만이 세나에게 멋지고 든든한 아빠로 비치리라···!
즐라탄보다 더욱 멋진!
삐이이이이이-!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주심이 드디어 프리킥 휘슬을 울렸다.
밀란의 수비벽은 바짝 긴장했다.
그 너머 돈마룸마는 골라인을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며 언제든 다이빙할 태세를 취했다.
꽈악-!
퍽, 퍼억!
수비벽 좌우에선 더욱더 신랄한 자리싸움이 벌어졌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났던 인구가 왼발을 힘껏 내딛자마자 활시위처럼 뒤로 당긴 오른발을 휘두른 것도 그때였다.
뻐어어어어어엉-!
발등으로 우측 측면을 강하게 때리자 대포 소리와 함께 공은 인사이드로 크게 감기며 날아갔다.
폴짝!
우측 수비벽이 공이 날아오는 것을 보자마자 동시에 뛰어올랐으나 손바닥 한 뼘 차로 가볍게 넘어섰다.
멀지 않은 거리, 펜스 가까이 자리한 한 중년 팬은 두 손을 꼬옥! 쥔 채 기도했다.
‘제발, 제발 골이기를...!’
오옷...!
반면 두 눈 끝까지 뜨고 지켜본 상당수 팬의 입에선 고조 높은 짧은 탄성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게-!
쐐애애애액~!
“씨발, 진짜...!”
골키퍼, 돈마룸마의 입에서 절로 욕지거리가 새어 나왔다.
우측 포스트 바깥으로 날아오던 공이 갑자기 인사이드로 크게 휘어져 좌측 포스트 방향으로 들어온 게 아닌가?
그렇듯 돈마룸마는 급히 공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상체를 비틀었다.
투웅-!
직후 몸을 던져가며 두 손을 뻗었다.
몸을 돌린 그 순간, 공은 이미 삽시간에 페널티 스퍼트를 넘어 손 한 뼘 차 거리까지 도달했으니까.
‘뭐 이리 빨...!’
라, 라는 끝말은 채 이어지지 않았다.
촤라아아악~!
손끝에도 닿지 못한 공은 기어이 포스트 상단 구석으로 빨려 들어갔으니.
철푸덕!
돈마룸마가 볼품없게 옆으로 넘어진 직후엔 홈팬들에게서 실로 어마어마한 함성이 쏟아졌다.
이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
수비벽 부근에서 인구의 슈팅과 동시에 박스 안으로 뛰어들었던 뉴캐슬 선수들은 그새 뒤돌아 인구를 향해 미친개처럼 달려갔다.
“인쿠우우우우우!”
“이리와, 내 사라아아아아앙!”
“대박! 대박! 대바아아악!”
극장 골과 다를 바 없는 득점에 아쉬움을 삼키고 있던 네이마르마저 이 순간엔 기쁨에 겨워했다.
“오옷! 인쿠우우우우우!”
간만에 프리킥 골을 성공한 인구는 세상 잘난 얼굴로 제자리에서 고개를 주억대는 세레머니를 선보였고 말이다.
속으론 생각했다.
‘이쯤 했으면..., 우리 세나도 이제 즐라탄보단 날 인정하겠지? 크흐흣.’
고개를 주억대는 세레머니는 잠깐에 지나지 않았다.
퍼억, 퍼억!
거의 몸싸움을 방불케 할 만큼 동료들이 앞뒤 좌우에서 자신을 거하게 껴안아 버렸으니까.
빠악-!
와중에 누군가가 기회를 틈타 뒤통수를 때렸다.
“어떤 새끼가...!”
* * *
[뉴캐슬 유나이티드! 홈에서 밀란 상대로 4 : 3 승리!]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벌어진 두 팀의 명승부...! 경기 종료 내내 쫄깃한 싸움의 연속!]
[인쿠! 챔피언스 리그에서 커리어 첫 포트트릭 작성!]
경기 종료 후 기사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실시간 경기를 시청했던 한국 팬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 <인생은구만리> : 역대 아시아 선수 중에 챔스에서 포트트릭 기록한 선수 있음?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 <내이름은밥줘용> : 우리는 지금 마인구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 <이재송도잘함> : 여기가 인쿠 마의 나라입니까? -리오넬 매시 아들-
- <홍빈손레알가자> : 경기 보는 내내 소름;;;; 인구는 진짜 한국인 선수가 맞나 싶을 정도로 잘하더라.
ㄴ <디에구포를란> : ㅇㅇㅇ 인정. 가만 보면 유럽인 유전자랑 브라질리언 유전자 합친 듯함. 유들유들하고 강력하기까지 하니까.
- <점심은한식> : 인구 이번에 발롱도르 타는 건가? ㅋㅋㅋㅋㅋㅋㅋ 지금 폼이면 닥 발롱도르인 거 같은데.
ㄴ <국뽕충> : 솔직히 인구만한 폼 보여주는 사람 전반기에 아무도 없었음. 더 솔직히 말하면 후반기에도 지금의 70% 폼만 보여줘도 발롱도르 타 먹을 듯? 국뽕 빼고 봐도!
- <네이마르가짱> : 네이마르도 진짜네. 거친 EPL에선 좀 안맞을 것 같더니만 금새 적응해버렸어 ㅋㅋㅋㅋㅋ
- <내안의작은아이> : 사실상 네이마르가 네 골 다 어시스트한 거나 다를 바 없지. 진짜 인구랑 네이마르는 미친 조합이다!
* * *
경기 다음 날 오후.
“흐헣, 흐허헣, 흐허허허헣.”
가은이가 세나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 뒤, 인구는 소파에 앉아 한동안 빙구웃음을 흘렸다.
손에든 새하얀 도화지가 쥐어져 있었다.
조금 전,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세나가 자신에게 건넨 것이었다.
[아빠아~! 나 오늘 그림 그려쪄!]
[오, 그림? 무슨 그리이임?]
[움, 선생님이 최근에 가장 좋았던 일을 간략하게 그려보래서!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그려봐써! 자 선무울!]
[오옷? 아빠한테 주는 거야?]
[웅! 아빠 생각하며 그렸으니까. 헤헷.]
[이야~ 감동인데? 어디 한 번 우리 세나 그림 좀 봐볼까아? 그새 얼마나 늘었는지!]
[헤헷. 민망해!]
직후 해당 그림을 접한 순간부터 인구는 빙구 모드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게 도화지 속엔 AC 밀란 엠블럼 위, 자신이 걸터 앉아 씨익 웃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으니까.
‘누가봐도 승리자의 미소야, 이건...!’
반면 앰블럼 옆엔 즐라탄으로 추정되는 꽁지머리가 실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말이다.
물론 사람 현상이 쫄라맨 버전에다가 엠블럼도 처음엔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지만.
세나를 처음 본 순간부터 콩깍지가 제대로 씐 인구의 눈엔 그마저 예술적으로 보였다.
“어쩜 이렇게 그림도 잘 그리는 건지...!”
< 169. 새로운 뉴캐슬 (14) > 끝
ⓒ 강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