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자폭 벌레 붐(boom)
끔뻑―
꿈이길 바라면서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떠봤다.
소설 속 세계관을 보여주는 지도만 덩그러니 보이자,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하,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아니, 진짜 장난질일 수도 있다.
신들의 장난.
진짜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를 거다.
솔직히 말이 안 되잖아?
그저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을 뿐이다.
소설 속 세상을 동경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건 소설 속 먼치킨 주인공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을 때고.
이런 경우라면 죽으라는 말과 같았다.
그만큼 눈앞에 닥친 상황이 최악이란 뜻이었다.
죽음.
현실에선 내일 뭘 하고 뭘 먹을지를 고민하지, 죽음을 걱정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아니었다.
수틀리면 죽는다.
그것도 아주 높은 확률로.
‘그 많고 많은 캐릭터 중에 왜 하필 암살자냐?’
‘악당들이 강해지면 벌어지는 일’에서 암살자는 악당에게도, 영웅에게도 양 귀싸대기를 처맞는 희생양이었다.
호구 중의 상호구 포지션.
무협 소설에선 지나가던 산적, 판타지 소설에선 처음 등장하는 고블린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암살자라도 사전에 대비한다면 죽음을 피할 수 있겠지만,
‘표적 암살, 공자 카멜.’
죽음의 수레바퀴는 이미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이런 미친, 그 카멜을 암살하라고?
이대로 끌려가면 무조건 죽는다.
‘생각해라. 생각해.’
첫 번째로 도주를 떠올렸지만, 바로 계획을 접었다.
임무 중이라고 들었다.
도주한 순간 정보 누출 방지를 위해 개떼처럼 추격할 테고, 붙잡힐 거다.
‘그럼, 죽겠지.’
신체 능력이 전의 몸보다 압도적으로 좋다고 한들, 난 싸움 경험 한 번 없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게다가 주변 지리도 잘 모른다.
추격을 따돌릴 자신이 없었다.
다행이라면 이 몸뚱이의 기억이 천천히 각인되며 떠오른다는 것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조금 전에 암살자들이 자리를 비우지 않았더라면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의심해서 죽였을지도 모른다.
암살자들은 변수를 싫어했으니까.
하루 정도면 기억이 어느 정도 회복될 테고, 직장인 눈치 짬밥 정도면 의심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업데이트가 왜 이리 느려?’
다른 소설에선 주마등처럼 기억이 스쳐 간다는데, 이 몸뚱이의 기억은 더디게 떠올랐다.
이제 막 유년 시절의 기억이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고아.
굶주림, 폭행.
불쾌한 감정이 불쑥 올라오는 유년 시절을 받아들이며 나는 소설의 내용을 떠올렸다.
‘카멜이면 1챕터인데.’
‘악당들이 강해지면 벌어지는 일’은 각 챕터가 존재했고, 그 챕터마다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달랐다.
물론, 후반부에는 모든 악당이 등장하며 서로 죽고 죽이는 각축전이 벌어지지만, 초반에는 각 악당의 성장 과정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그중 카멜은 첫 챕터의 대표적인 악당이었다.
카멜과 관련된 스토리.
그 내용을 떠올리자 암담함이 몰려왔다.
‘미치겠네.’
난 이 소설의 대략적인 스토리를 알고 있다.
문제는 그 스토리가 주인공을 중심으로 흘러간다는 점이었다. 나 같은 조무래기 암살자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는 건 불가능했다.
즉, 스토리를 토대로 내 운명을 추리해야 한다는 건데.
‘공자 신분이라고 했어. 그럼 카멜이 아직 후계자 신분이란 뜻이야.’
카멜 블레이저.
전 대륙을 피로 물들인 폭군 중의 폭군.
그는 블라이어 영지를 기반으로 세력을 키운 후 학살자의 길을 걷는다.
공자 신분이면 영지를 물려받기 전이니 스토리 초입 부분이었다.
‘그리고 내가 속해있는 암살 조직은 카멜을 암살하려고 한다.’
악당에게 적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들에게 암살자는 껌딱지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공자 시절의 카멜을 노리는 암살 조직이라면 하나뿐이었다.
‘암살 단체 크룩스!’
크룩스를 떠올린 순간, 전 몸뚱이 주인의 유년 기억이 청년으로 넘어갔다.
크룩스와 관련된 기억 하나가 또렷이 각인됐다.
노예 상인에게 잡혀 노예 시장에 끌려간 뒤 누군가에게 팔려 가는 장면.
그 누군가가 단검 한 자루를 선물했다.
“단검?”
나는 단검 손잡이 끝부분을 살폈다.
포효하는 늑대 문양이 각인되어 있다.
크룩스의 문양이었다.
소설 속에 빙의된 몸뚱이의 신분이 파악됐다.
호구 중 상호구인 암살자 집단 중에서, 세력은 최약체이며 악명만 드높은 비양심적인 암살 단체, 크룩스의 신입 암살자.
“시발.”
삼국지 속 엄백호의 수하의 수하도 이것보단 낫겠다.
욕설이 흘러나온 순간,
끼이익―
창고 문이 열리더니 후줄근한 후드를 걸친 사내가 안으로 휘적휘적 걸어 들어왔다.
그는 나를 발견하곤 멈칫하더니 살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사람이 있었군요. 실례합니다.”
공손한 말투.
하지만 난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답을 했다.
“저도 마구간인 줄 알았습니다.”
암구호였다.
등줄기로 땀이 흘러나왔다.
때마침 크룩스 조직에 관한 기억이 떠올라서 다행이지, 그냥 흘려들었다면 그는 나를 죽였을 것이다.
암구호를 대자마자 놀라던 사내의 표정이 무표정하게 바뀌었다.
‘시발, 순간순간이 살얼음 길이네.’
사내는 주변을 빙 둘러보더니 나무판자에 걸터앉았다. 그는 연초를 물더니, 불을 붙이며 물었다.
“다른 형제는?”
“주, 주변 조사를 나갔습니다.”
“못 보던 얼굴인데?”
“신입입니다.”
“아, 그렇군. 신입.”
신입이란 말을 듣자, 그가 반응을 보였다.
다른 의미로 나를 알고 있는 듯했다.
사내가 연초를 스윽 내밀자, 나는 빠르게 다가가 공손히 연초를 받아 피웠다.
쿨럭―
더럽게 독했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연초를 물고 사내 앞에 섰다.
눈앞의 사내가 누군지는 모른다. 하지만 덜덜 떨리는 몸뚱이가 말하고 있었다. 사내는 함께 온 셋을 다 합친 것보다 위험한 인물이라고.
사내는 연초만 조용히 피울 뿐 다른 말을 건네지 않았다.
한동안의 침묵.
10초가 10년 같았다.
그 침묵에 심장이 쪼그라드는 압박감을 느꼈을 때, 사내가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열린 상자에는 벌레가 꾸물거리고 있었다.
이건 설마…?
“씹지 말고 삼켜.”
“네?”
“삼키라고. 앞으로 내 입에서 똑같은 말이 두 번 나오면 네 혀를 뽑아버릴 거다.”
“네, 네!”
“벌레가 죽어도 마찬가지야.”
“알겠습니다!”
난 우렁차게 외치며 벌레를 집어 들었다.
끽끽끽끽―
…무슨 벌레 사운드가 호러물도 아니고.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크기.
다리 수십 개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습이 마치 돈벌레를 연상케 했다.
꾸물거리는 모습이 참으로 혐오스럽다.
내가 방송 BJ고 백만 원의 별풍선을 후원받아도 먹을 자신이 없는 극강의 비주얼.
하지만 이 벌레는 천만 원이 아니라 억대를 줘도 절대 먹으면 안 된다.
“뭐 하는 거지? 기다리게 할 건가?”
그런데 눈앞에 나를 죽일 수 있는 사내가 빤히 나를 올려다보고 있고, 단검을 만지작거리고 있다면?
꿀꺽!
울며 겨자 먹기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벌레를 산 채로 삼키자, 구역질이 올라왔다.
나는 연초를 쭉 빨았다. 몇 번 길게 빨았더니 정신이 몽롱해졌다가 이내 퍼뜩 돌아왔다.
‘마약류인가?’
“받아라.”
사내는 임무 중에 필요할 것이라며 연초 한 보따리를 내게 넘겼다.
사내는 입에 물고 있던 연초를 퉤 뱉더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러곤 내 몸을 잠시 살폈다.
심장 부근을 확인하던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짓더니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가 지도 한 장을 내게 건넸다.
“표적의 암살 실행은 사흘 후, 저택 경비가 무력화되는 순간이다. 표적이 머무는 방을 따로 표기해 두었다.”
저택 지도였는데, 경비 위치까지 상세히 표기되어 있었다.
“신입.”
“네, 네!”
“첫 암살 의뢰에 꼭 성공하길 바란다. 조직에서 널 눈여겨보는 형제들이 많다는 것을 기억해.”
“여, 영광입니다!”
영광은 시발, 이 개새끼들아.
크룩스 조직은 수하를 부속품으로 소비하는 조직으로 유명했다. 즉, 신입의 사망률이 타 암살 조직과 비교해서 압도적으로 높다는 말이었다.
벌레를 보자,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럼 나중에 웃으면서 보자고.”
어깨를 두드리던 사내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눈앞에서 사람이 사라지는 신비한 광경을 목격했지만,
“허허허….”
난 세상을 해탈한 노인처럼 헛헛하게 웃고만 있었다.
망했다.
죽더라도 차라리 도주를 감행했어야 했었다.
하지만 벌레를 삼켰으니 이젠 빼도 박도 못했다.
‘…설마, 내가 처먹게 될 줄이야.’
붐(boom).
내가 삼킨 벌레를 가리키는 은어였고, 붐이란 이름처럼 벌레는 사람을 숙주로 삼은 뒤 신호에 맞춰 폭발한다.
뼛조각과 살점으로 표적을 타격하는 인간 폭탄이 된다는 의미였다.
자살 테러는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서나 보던 거 아니었어?
난 벌레가 자리 잡은 심장을 만지작거리며 울적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이젠 도망을 쳐도 죽고, 표적 앞에 서도 죽는다.
“웃으면서 보자고? 다음에 보면 그 입부터 찢어주마.”
소설 속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늘어나는 건 원망이요, 욕뿐이다.
소설의 제목은 ‘악당들이 강해지면 벌어지는 일’인데 어째 나에겐 ‘악당 세상 속 서바이벌’로 바뀌어 있었다.
‘그런데 이번이 몇 번째 암살 시도지?’
암살 횟수가 늘어날수록 카멜 주변은 강력한 호위들로 채워진다. 즉, 뒤쪽 순서로 갈수록 뒈질 확률이 올라간다는 뜻이다.
이를 어떻게 타개할지 막막했다.
* * *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아!”
창고에 홀로 남겨진 인간의 처절한 외침.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펜싱 종목 박상영 선수가 ‘할 수 있다.’로 스스로 암시를 건 후 금메달을 쟁취한 모습은, 좌절로 포기하는 이들로 하여금 용기를 얻게 해주었다.
내가 지금 딱 그 처지였다.
가만히 있어봤자 누가 대신 내 목숨을 살려주는 상황이 아니었다.
스스로 살길을 헤쳐 나가야 한다.
‘용기를 다오!’
벽에 이마를 콩콩 찍으며 평소에 굴리지도 않는 머리를 한계까지 굴렸다.
그렇게 살 방도를 고민하고 있을 때, 나를 쥐어팼던 놈들이 돌아왔다.
‘벌써 하루가 지났다고?’
사흘의 시한부 인생이 이런 기분일까.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다행히 몸뚱이 주인의 대략적인 기억이 주입된 상태다.
지금 상황을 보건대,
‘이들의 눈 밖에 나서는 안 된다.’
기회를 잡기 위해서라도 충직한 신입의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난 빠릿빠릿하게 그들을 맞이했다.
“수, 수고하셨습니다!”
“신입, 창고 잘 지키고 있었어?”
“네!”
“배고프니까, 나가서 먹을 것 좀 사와.”
“맡겨주십쇼!”
떠날 땐 셋이었는데, 머릿수가 여섯으로 늘어나 있었다.
임무 시기에 맞춰 합류한 암살자들이라고 했다.
원래 암살자는 조용하고 냉혹한 이미지 아니었어?
하나같이 무슨 동네 건달 같은 비주얼이다.
들어보니, 나까지 포함 이곳 일곱 명이 표적 암살에 투입된 머릿수였다.
…어? 잠깐만, 일곱이라고?
밖으로 나가려던 나는 흠칫했다.
메인 악당의 첫 등장 신.
카멜 블레이저가 소설 속에서 처음 등장했을 때, 그는 암습을 당하고 있었다. 그때 암살자의 수가 딱 일곱이었다.
이거 설마…?
그리고 강렬했던 한 장면.
[쾅!]
‘기습적인 자폭 공격!’
주인공에게 온몸을 날리며 자폭했던 한 암살자를 보며 개쩐다고 생각했는데.
시발, 설마 그게 나야?
알고 보니, 난 카멜 블레이저의 퍼스트 킬 캐릭터로 당첨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