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얼른 다녀오라고. 배고프니까.”
“넵!”
난 식량을 구하기 위해 창고 밖으로 나왔다.
한적한 시골 마을.
목조 건물은 하나같이 허름했고, 눈에 띄는 큰 건물은 몇 채 보이지 않았다.
바깥세상을 처음으로 구경한 셈이지만, 설렘 따윈 없었다.
그런 감정은 여유가 있을 때나 느끼는 것이고, 벌레, 붐(boom)을 삼킬 때 예상은 했지만, 설마 거기서 자폭할 운명이었다니.
난 무거운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음식점으로 보이는 건물로 들어갔다.
“빵과 수프, 마실 것 좀 포장해주세요.”
“얼마나 드릴까요?”
“이 짐 가방에 가득 들어갈 만큼요.”
단장이 며칠분의 식량도 지시했기에 난 큰 가죽 가방을 통째로 가져왔다. 음식을 주문한 뒤 난 식당 안을 살폈다.
각 테이블에 드문드문 앉아 수다를 떠는 사람들이 보인다.
평범한 일상 속의 풍경이다.
하지만 난 그 풍경 속에 스며들지 못했다. 내 눈동자는 문밖을 향하고 있었다. 표정에는 짙은 갈등과 망설임이 흘러나왔다.
‘지금이 도망칠 마지막 기회인데.’
원래 도주할 계획은 없었다.
그런데 신입 암살자의 기억을 얻으면서 도주 가능성을 점쳤다.
눈썰미와 생존 경험이 생긴 것이다. 이 주변 지리도 어느 정도 떠올랐다.
‘블라이어 영지에서도 아예 살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하지만 그 방법은 되도록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죽을 확률이 너무 높았거든. 시도하기 전에 죽을지도 몰랐다.
‘나설 때 의심하는 낌새는 없었어. 감시자도 붙지 않았고.’
음식점 건물 뒤쪽에 우거진 숲을 확인했다. 도주로로 괜찮은 장소였다. 도망친 후 추격만 따돌릴 수 있다면 살 방도가 있었다.
심장에 붐(Boom)이 기생 중이지만, 붐을 해제할 인물을 난 알고 있었다.
‘해? 말아?’
우유부단한 성격이 절대 아닌데, 한 번 선택으로 목숨이 왔다 갔다 하니 망설임이 생겼다.
‘그래. 이게 살 확률이 높아.’
그렇게 엉덩이를 들썩이며 도주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졌을 때였다.
“손님, 포장한 음식 나왔습니다.”
식당 주인이 빵빵해진 가죽 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이거 가지고 튀는 거다.
난 가방 안을 확인하곤 가방 문을 닫으려고 했다. 그런데,
‘응?’
순간 내 시선이 가방 안쪽 한 곳에 고정됐다. 그것을 본 순간 머릿속에 경종이 울렸다.
“1골드 20실입니다.”
“아… 네.”
친절한 태도를 보이는 식당 주인에게 동전을 건네곤 난 음식점을 바로 나왔다.
조금 전 갈등이 무색할 만큼 내 걸음은 창고로 향하고 있었다. 도주로로 봐두었던 숲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심장이 쿵쿵쿵! 거칠게 뛰었다.
‘골로 갈 뻔했다.’
수프용 간이 수저가 ‘일곱 개’다.
식당 주인이 넣어준 것인데, 난 음식을 주문했지, 그에게 몇 명이 먹을 것이라 말한 기억이 없었다.
음식 주인이 창고의 존재를 알고 있다?
물론, 우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신입 암살자의 기억에 크룩스의 숨겨진 비밀 거점에 관한 정보가 있었다.
‘창고로 돌아온 뒤 암살자들의 행동에 여유가 넘쳤어.’
임무 중에 그런 여유가 드러났다는 건 이곳이 무척 안전하다는 말이었다. 이 마을이 그런 비밀 거점 중 하나라면 도망치는 순간 발각당한다.
“빌어먹을,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네.”
평화로웠던 작은 마을이 이젠 달리 보였다. 힐끗거리며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감시자처럼 느껴졌다.
일단 행동은 보류다.
난 이를 악문 채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 * *
‘더럽게 맛없네.’
자본주의의 빵 맛에 길들여진 나에게 이 빵은 돌덩이 같은 맛이었다. 그나마 빵을 수프에 찍어 먹으니 목구멍으로 넘어가긴 했다.
맛은 없지만, 난 억지로 빵을 삼키며 최대한 먹으려고 했다.
체력은 국력이란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으니까.
“신입.”
“넵!”
한곳에 모여 식사 중이었는데, 단장이 멀찍이서 나를 조용히 불렀다.
입 속에 빵을 욱여넣으며 난 단장에게 후다닥 달려갔다.
“사람이 왔었나?”
내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자, 단장의 시선이 내 심장에 잠깐 머물다 사라졌다.
그 시선을 놓칠 내가 아니었다.
‘이 새끼….’
[신입은 창고에 남겨둬. 쓸데가 정해져 있으니까.]
하루 전, 저자가 나를 내려 보며 했던 말이다. 그땐 흘려들었는데, 당해보니 그 뜻을 이젠 알 것 같았다.
저 단장 새끼는 내 심장에 기생 중인 붐(Boom)의 존재를 눈치챘다. 내가 이 지경이 될 것이란 사실을 미리 안 것이다.
“전달 사항은?”
난 사내에게 건네받은 저택 지도와 연초 보따리를 건넸다. 작전에 관해 전달받은 내용도 함께 보고했다.
“사흘 후 시작이라….”
단장은 날짜를 중얼거리며 연초 보따리를 살폈다. 그러곤 나를 잠시 빤히 바라봤다.
재수 없게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어째 불안감이 느껴지는 시선이다.
“그가 내게 따로 남긴 말은 없었나?”
“없었습니다.”
“그래? 알았다.”
단장은 더는 사내에 관해 묻지 않았다.
그 반응에서 난 그 의문의 사내가 단장보다 더 높은 직급의 인물임을 눈치챘다.
단장은 저택 지도에 시선을 돌리며 손짓으로 나를 물렸다.
제자리로 돌아온 난 주변을 둘러보며 눈치를 살폈다. 각자 자리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암살자들이 보인다.
‘저들은 얼마나 강할까?’
기억 속에 저들의 무력이 어느 정도인지 정보가 없었다. 물론, 이곳의 모든 암살자는 악당을 위한 한 줌의 희생양일 뿐이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진짜 궁금한 건 나 자신의 무력이다.
신입 암살자이자, 버려지는 패.
실력이 형편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기억을 더듬어보니 또 그런 건 아니었다.
아니, 내 기준에선 실력이 무척 뛰어나 보였다.
‘한 번 쓰고 버리기엔 아까운 패 같은데.’
내 목숨이 걸려서 그런 게 아니라, 크룩스에서 이 캐릭터를 제법 공들여 키운 흔적이 보였다.
조직 내에 무슨 사정이 있든가, 아니면 이 정도 무력은 이 세상에서 별것 아니든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저들의 무력이 더더욱 궁금해졌다. 비교할 데이터가 될 테니까.
“집합.”
잠시 후, 단장이 암살자들을 소집했다.
“이틀 안에 표적이 머무는 블라이어까지 도착해야 한다.”
“바로 움직입니까?”
“당장 짐을 챙겨라.”
단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암살자들은 출발 준비를 위해 부산히 움직였다. 난 식량이 든 짐 가방과 약초 보따리를 챙기고 그들 뒤를 쫓았다.
새벽이 된 시간.
마을은 조용했다.
암살자들은 음식점에 붙어 있는 마구간으로 들어갔다.
일곱 마리의 말이 준비되어 있었다.
말을 모두 바깥으로 꺼내고, 마을을 벗어날 때까지 그 누구 하나 밖을 내다보는 이가 없었다.
그 모습에서 확신했다.
이 마을은 크룩스의 비밀 거점이 맞았다.
행동을 보류한 판단이 옳았다.
푸르릉―!
어둠으로 흩어지는 말 투레질 소리를 끝으로, 암살자들은 숲속으로 빠르게 스며들었다.
* * *
‘휴, 큰 고비 하나 넘겼네.’
난 경마장에서 말 구경은 해봤지만, 말을 직접 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말 한 마리가 내 앞에 떡 놓이고, 암살자들이 말을 탄 채 나를 모두 내려 보는 상황이 펼쳐졌다.
‘못 탄다고 하면 죽일 것 같았지.’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나왔다. 자칫 이곳이 무덤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지만, 희망이 있었다.
바로 신입 암살자가 가진 승마 경험.
그리고,
“하얏!”
지금 나는 그 경험을 빌려 말을 능숙하게 타는 신기한 경험을 하는 중이었다.
숲속을 거침없이 질주하며 나는 말 위에 몸을 실었다.
익숙한 듯 몸이 움직였다.
그렇다면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암살 능력도 익숙하게 펼칠 수 있을까?
생존 확률이 발톱의 때만큼 올라간 것 같았다.
두두두두―
일행은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시간 외에 쉬지 않고 움직였다.
온종일 정신없이 달려도 끝나지 않는 숲길을 달리는 건 나름 신선한 경험이었다.
이토록 넓은 숲이라니, 나중에 이 숲의 이름이 ‘라웁’이란 것을 듣고 기겁했다.
‘공포의 라웁 숲!’
메인급 악당 중 하나인 미치광이 마법사 하나가 숨어 있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 악당의 눈에 띄면 몰살 각이었지만, 그럴 일은 단연코 없을 것이라 스스로 위안 삼았다.
이 파티는 그 미치광이가 아니라 카멜의 먹잇감이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이동은 순조로웠다. 다만, 휴식을 취할 때마다 단장의 지시로 난 매일같이 불침번을 서야 했다.
오직 나만 불침번을 홀로 섰다.
‘졸려 뒈지겠네.’
피로한 두 눈덩이를 부라리며 난 선두에 선 단장을 노려봤다.
저 단장 새끼는 상도덕이 없었다. 다음에도 불침번을 시킨다면 확 들이받으려고 했다.
“이곳에서 잠깐 쉰다. 신입!”
“네, 넵!”
“불침번을 서라.”
“맡겨주십시오!”
개뿔.
그게 말처럼 될 리가 있나?
여긴 군대보단 더 빡세다. 항명은 곧 죽음이었으니까.
난 얌전히 단장이 시키는 대로 이튿날도 불침번을 섰다.
‘괴롭히는 느낌은 아닌데 말이지.’
날 바라보는 눈빛에는 어떠한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의도적으로 잠을 재우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뭐, 상관없었다.
어차피 나에겐 살 방도를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고, 불침번은 좋은 구실이 됐다.
실제로 밤을 뜬눈으로 보낼 때마다 쓸만한 계획 몇 가지가 머릿속으로 그려졌고, 세부적인 내용도 차곡차곡 쌓이는 중이었다.
나는 결국 숲을 통과하는 내내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리고 이튿날 저녁.
캬아아악!
“전투 준비!”
난 처음으로 이 세계의 몬스터와 조우했다.
* * *
소설 속은 다양한 몬스터가 사는 세상이었다.
우거진 넝쿨에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말들을 기습한 몬스터는 짙은 회색 털을 지닌 ‘놀’이었다.
두상은 하이에나를 닮았고, 인간 덩치로 이족 보행을 하며 도끼를 휘둘렀다.
히이잉―!
“신입! 말을 지켜!”
“아, 알겠습니다!”
말 두 마리가 놀이 던진 도끼에 맞고 쓰러졌다. 그중 단장이 타던 말도 있어서 왠지 모르게 속이 시원했다.
콱 죽어버리지.
아쉽게도 단장은 말에서 구른 후 곧장 암살자들을 데리고 놀들을 공격했다.
수는 엇비슷했다.
난 놀을 응원했다.
제발 다 죽여버려라.
하지만 그 기대는 희망에 불과했다.
투투투퉁―!
일제 사격한 석궁에 놀들은 삽시간에 쓰러지며 무력화됐다.
진형이 무너진 놀들 사이로 암살자들이 순식간에 파고들어 단검술을 펼쳤다.
이들의 실력을 이제야 볼 수 있었다.
민첩한 단검술, 정확히 급소를 찔러 넣고 목숨을 끊었다.
몸놀림도 무척이나 날렵했다.
일반인 서넛은 눈 깜짝할 새에 죽일 실력자들이었다.
하지만,
‘강하다는 생각은 안 들어.’
비교 데이터를 통해 확실해졌다.
이 신입 암살자는 확실히 한 번 쓰고 버리기엔 아까운 패였다.
‘거기서 그렇게 찌른다고?’
말들을 지켜야 했기에 난 전투와 관심에서 배제됐다. 도망칠 생각은 하지 못했다. 너무 순식간에 끝나버렸거든.
전투를 지켜보면서 암살자들의 손동작을 작게나마 흉내 내봤다.
어째 익숙하다.
왠지 머릿속 동작을 전부 흉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마음가짐이었다.
“……음.”
잔혹하게 죽은 놀의 사체들이 눈앞에 밟혔다.
죽은 몬스터는 처음 보지만 뭐랄까. 이상하게 혐오감이 들지 않았다.
암살자의 기억과 섞이면서 내 성격에 변화가 생긴 것일까?
만약 인간의 시체를 보고도 이런 감정이 든다면?
‘썩 좋은 느낌은 아닌데.’
일개 회사원이었던 내가 사람을 죽인다?
상대의 눈을 마주하고도 단호하게 단검을 휘두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상황에 놓인다면 난 단호해지기로 했다.
죽고 싶지 않았으니까.
다음 날 아침, 나는 악당 카멜 블레이저가 머무는 블라이어 영지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