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당에게서 살아남는 법-6화 (6/130)

6화 구원자의 존안을 뵙습니다!

카멜 블레이저.

챕터1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메인 스토리의 악당.

그리고,

“…이게 무슨!?”

카멜이 시선을 돌리자, 그와 함께 있던 청년도 놀란 표정으로 우릴 바라봤다.

카멜과 묘하게 닮은 청년.

카멜의 형인 윌리엄 공자였다.

병사 복장을 했지만, 석궁과 단검을 움켜쥔 수상함에 윌리엄은 대로하며 검을 뽑아 들었다.

“네놈들은 누구냐!? 감히 이곳이 어딘 줄 알고!”

암살자들은 윌리엄 공자를 발견하곤 잠시 멈칫했다. 조금 전 기사들이 급히 찾고 있던 인물이 왜 이곳에 있는 것일까.

의외의 인물이 표적 근처에 있자, 암살자들은 잠시 주춤했다.

같이 제거하기엔 너무 거물이었기 때문이다.

그 찰나의 순간,

“……!”

그 고민을 덜어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카멜이 윌리엄 뒤쪽에서 미소를 지었다.

손에 들린 단검이 벼락처럼 움직였다.

푸욱―!

“끄어어어억! 너… 너!!!”

“금방 끝날 겁니다. 형님.”

“끄아악!”

절망 섞인 비명과 함께 두 사내의 검은 머리카락이 차가운 바람과 뒤섞이며 흩날렸다.

윌리엄의 심장을 냉혹히 꿰뚫고 나온 한 자루의 단검.

카멜은 그 튀어나온 검 끝을 천천히 비틀며 우리를 바라봤다.

씨익―

그 섬뜩한 미소에 소름이 올라온다.

미친놈.

그 미소가 신호가 됐다.

단장이 이를 악물곤 외쳤다.

“표, 표적 제거!”

암시가 떨어졌다.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난 주저 없이 일행을 지나쳐 카멜에게 질주했다. 내가 맹렬히 다가오고 있음에도 카멜의 표정에는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

난 카멜의 왼손에 들려 있는 구슬에 집중했다.

보호 권능이 깃든 마법 구슬.

하지만 정보와 다르게 구슬은 하나가 아니다.

무려 ‘다섯 개’였다.

그리고 형을 앞세운 인간 방패까지.

소설 속에서 읽은 내용과 똑같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를 거다.”

카멜의 입에서 흘러나온 대사까지.

나는 그대로 수직 낙하하듯 카멜 앞에 바짝 엎드리곤 외쳤다.

“항복하겠습니다!!!”

굴욕적이라고?

지금 상황에선 나 같은 인간 폭탄이 트럭째 몰려와도 카멜을 죽일 수 없었다.

아마 크룩스의 마스터가 와도 안 될걸?

왜냐고?

아까 들었잖아.

이번에는 다를 거라고.

‘회귀자’ 카멜 블레이저.

저놈은 현재 상황은 물론 향후 10년 이내 벌어질 사건을 모두 알고 있는 대악당이었다.

회귀한 악당이란 얘기였다.

그는 악당이 10년 전으로 회귀하면 얼마나 판타스틱(?)한 세상이 펼쳐지는지 알려주는 인물이었다.

그는 탐욕을 위해 지배를 즐기는 독재자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명예나 명분, 양심은 개한테 줘버린 인간이었다.

눈앞의 그림만 봐도 딱 답이 나오지 않나?

형을 뒤에서 찔러 죽였다.

개 같은 놈.

그런데 이건 내 속마음이고,

“구원자의 존안을 뵙습니다!”

난 카멜을 향해 이마를 쿵쿵 찍었다. 내 입에선 카멜을 향한 꿀 같은 드립이 흘러나왔다. 어쩔 수 없잖아?

나도 살아야지.

“뭐지?”

“무, 뭐냐!”

내 갑작스러운 행동에 앞뒤에서 똑같은 물음이 튀어나왔다.

카멜과 단장이었다.

자폭하라고 보냈더니, 암살자가 표적에게 항복을 선언하는 황당한 상황이다.

카멜은 자신이 아는 미래와 달라진 상황에 미묘한 표정을 지었고, 단장은 신입의 돌발 행동에 당황한 듯 입을 벌린 채 경악하고 있었다.

난 고개를 살짝 틀어 단장을 바라봤다. 두 눈이 마주친 순간, 단장이 아차 하는 표정으로 이를 갈았다.

이제야 속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미 늦었어.

난 그동안 단장에게 담아온 내 진심을 처음으로 입 밖에 표출했다.

“시발, 단장 이 개새끼야!”

단장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이밀자, 암살자들의 표정이 종잇장처럼 일그러졌다.

“저놈과 표적을 죽여!”

단장의 사나운 외침에 암살자들이 앞으로 쇄도했다.

나는 다급히 고개를 돌려 구명줄이 될 카멜을 올려다봤다.

그는 나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생각을 읽을 수 없는 눈빛.

확실히 이 녀석은 상대하기 어려운 놈이었다.

난 계획한 대로 생각해둔 말을 내뱉었다.

“‘그’가 보내서 왔습니다!”

“그?”

“저, 저도 그가 누군지는 잘 모릅니다. 그는 당신을 ‘다시 태어난 구원자’라고 불렀습니다!”

“…….”

그 말이 끝난 순간,

콰작―

카멜이 손에 들고 있던 구슬 하나를 파괴했다.

구슬에서 빛이 터져 나오더니, 카멜과 나를 부드럽게 감쌌다.

둥글게 만들어진 보호막.

카앙― 캉―! 쾅!

그 위로 암살자들이 석궁을 쏘고, 단검을 찔렀지만, 보호막은 불꽃만 토해낼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카멜은 보호막 바깥에서 발악하는 암살자들을 한 차례 훑어보곤 가볍게 턱짓을 했다.

작은 신호.

신호가 떨어지자, 통로에서 대기 중이던 기사들이 벼락처럼 들이닥쳤다.

매복이었다.

“……!”

푸른 휘장을 어깨에 단 정식 기사들.

그 수가 무려 열 명이다.

파앗―

최소 오러 3성급.

기사들의 몸에서 붉은빛이 터져 나왔다. 두 눈을 깜빡인 순간,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빠르다.

그리고,

“크, 크억!”

“끄아아악!”

도륙이 시작됐다.

내 눈에 정말 강해 보였던 단장이 고작 다섯 번의 칼질에 목이 날아갔고, 남은 암살자들에게 시선이 닿았을 땐 그들은 이미 온몸이 꿰뚫린 채 죽어있었다.

몰살하는 데, 10초? 아니 5초도 안 걸린 것 같았다.

‘…시발.’

죽은 이들의 모습이 눈동자에 박히자, 욕설이 절로 흘러나왔다.

두 손이 덜덜 떨려왔다.

왜냐고?

태어나서 살인 장면을 처음 보는데 솔직히 무섭잖아.

그나마 다행인 건, 정신줄을 끝까지 안 놓은 거다. 암살자의 기억이 확실히 내 멘탈을 강하게 만들어준 모양이었다.

피 묻은 검을 겨누며 기사들이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꿀꺽―

난 마른침을 삼키곤 카멜을 찾았다.

카멜은 형인 윌리엄의 시신을 질질 끌고 첨탑 창가로 향하고 있었다.

형을 부축하듯 세운 카멜은 죽은 윌리엄과 함께 창가에 섰다.

차가운 바람을 타고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님, 저 드넓은 블라이어의 영지가 보이십니까? 부친도 영지민도 모두가 저것이 형님 것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닙니다.”

카멜은 윌리엄의 심장에 박힌 단검을 뽑았다. 단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그는 말을 이었다.

“블레이저 가문을 위해 이 영지를 제게 주십시오. 전 이곳에 만족하지 않고 왕좌를 세울 겁니다.”

그는 윌리엄의 시체를 첨탑 밑으로 밀어버렸다. 빠르게 추락하는 형의 시체를 응시하며 카멜은 작게 중얼거렸다.

“제 왕좌의 첫 발판이 되어 주십시오.”

“…….”

와, 살벌한 새끼.

그리고 자신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미친 또라이였다.

모든 것을 갖기 위해 혈육을 죽인 행위는 그 어떤 핑계를 대도 정당화할 수 없었다.

물론, 놈은 곧 그것보다 더한 짓도 할 새끼였다.

“끌고 와.”

기사들이 우악스러운 손길로 내 어깨를 붙잡고 카멜 앞에 던져놨다.

일단 여기까진 생각대로 흘러갔다. 이제부턴 진짜 긴장해야 했다. 말 한마디에 목이 날아갈 수 있었으니까.

“다시 묻지, ‘그’는 누구지?”

“저, 정말 모릅니다!”

“그가 나를 ‘다시 태어난 구원자’라 말했나?”

“그렇습니다! 전 그가 보낸 전달자로…….”

“아니. 그걸로는 부족해. 그가 내 ‘비밀’을 알고, 내 상황을 파악했다면 너에게 더 확실한 단어를 알려줬을 거야. 내가 이 자리에서 너를 살려줄 수밖에 없는 단어.”

“…….”

“죽여.”

이 새끼야! 깜빡이 좀 켜고 들어와!

바닥에 비친 검 그림자가 하늘로 솟구쳤다.

죽는다!

난 울부짖듯 외쳤다.

“피, 피를 마시는 잔!!!!!”

“잠깐.”

카멜은 손을 든 채 잠시 침묵했다.

그 모습에 기사들은 의문 섞인 눈빛을 보냈다.

주군은 적에게 자비가 없는 냉혹한 사람이었다. 한 번 내린 지시에 주저가 없는 분인데, 저리 갈등하는 모습이라니.

‘피를 마시는 잔’이 무엇이길래?

잠시 후, 카멜이 고개를 젓자 기사들은 살짝 놀란 표정으로 검을 치우곤 물러났다.

주군이 명을 번복하는 경우를 처음 봤기 때문이다.

나는 바짝 타들어가는 입술을 적시며 거친 숨을 토해냈다.

뒷덜미가 서늘했다.

칼날이 닿았다가 떨어진 흔적.

1초만 늦었으면 목이 뎅강 잘렸다.

‘이 개 같은 시키가….’

진짜 욕밖에 생각이 안 났다.

내 생각을 알 리 없는 카멜은 내 앞에 앉아 단검으로 카펫을 콱콱 찍었다. 시선은 여전히 나를 빤히 노려보고 있었다.

감정 하나 없는 눈빛.

섬뜩한 기분이 들었지만, 놈이 날 죽이지 못할 것이라 확신했다.

‘피를 마시는 잔은 카멜의 역린이니까.’

피를 마시는 잔은 회귀 전 카멜을 죽인 대악당의 별명이었다. 그 이름을 듣고도 나를 죽일 수 있을까?

카멜의 입가에 비틀린 미소가 그려지자,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뜻대로 안 될 때 짓는 놈의 미소다.

살았다.

“‘그’라… 계획에 없는 놈이 나타났어. 미꾸라지에 불과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

“심문할 것이 있으니 놈을 지하 감옥에 가둬놔.”

“충!”

“형님을 죽인 암살자다. 그렇게 공표하도록.”

“아, 아니! 그게 무슨…!”

“살린 김에 써먹어야지.”

난 억울한 표정으로 카멜을 바라봤지만, 사실 아무렇지도 않았다.

내 목표는 처음부터 ‘생존’이었다. 사람을 죽였다고 누명을 쓴들 지금 상황에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중요한 건 놈이 내가 던진 미끼를 물었다는 것이다.

날 살린 것이 그 증거다.

이제부터 놈의 행보를 떠올리며 그 틈을 이용해 벗어나야 했다.

‘놈을 속일 수 있을까?’

첨탑 지하에 자리한 감옥으로 끌려가는 동안, 내 머릿속은 팽팽히 굴러가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영업 교육을 마스터한 월급쟁이의 말발이 얼마나 먹힐지 모르겠다.

각오는 했지만, 무서운 건 어쩔 수 없었다. 현실과 소설이 피부로 느껴지는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컸으니까.

* * *

“…….”

카멜은 첨탑 꼭대기 창가에 홀로 서서 시뻘건 화마(火魔)로 뒤덮인 영지를 바라봤다.

영주관 다음으로 보안이 철저하다는 광물 저장 창고가 모조리 불타고 있었다.

핵심 요충지였기에 영주성 사람들은 창고 불을 끄기 위해 제 목숨처럼 달라붙었다.

아마 다른 곳으론 시선도 주지 못할 것이다.

“시원하게 잘 타는군.”

하지만 카멜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다. 저 광물 창고를 태운 것이 자신이었으니 당연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영주가 되는 길을 앞당겨야 했으니까.

형이 죽었으니, 이제 자신의 앞길을 막는 이는 한 명뿐이다.

불이 잡히기 전에 모든 것을 끝낸다.

카멜은 탑을 천천히 내려왔다.

그가 향한 곳은 영주관이었다.

“문안을 알려라.”

블라이어의 주인, 리암슨 자작의 처소에 카멜이 도착했다.

카멜이 문 앞에 다가섰지만, 이를 막아서는 이는 없었다. 기사들은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물러났다.

“아버님, 저입니다.”

“우, 윌리엄이냐?”

문 너머로 1공자 윌리엄을 찾는 자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멜이 이곳에 나타날 리 없다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에 카멜은 미소를 짓고 처소 안으로 성큼 들어갔다.

문을 닫기 전, 그는 기사들을 한 차례 바라봤다.

그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곤 문을 닫는 순간, 기사들은 검을 뽑아 들고는 복도를 거닐기 시작했다.

잠시 후, 저택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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