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사과해라.
“…….”
퀴퀴한 약 냄새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병환으로 몸져누운 지 한 달.
리암슨 자작의 몸은 앙상한 뼈밖에 남지 않았다.
노환이라, 약이나 축복으로도 호전이 힘들어 보였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자작은 눈앞에 나타난 아들이 윌리엄이 아닌 카멜이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네, 네가… 어찌! 윌리엄은? 쿨럭!”
“제가 못 올 곳을 온 모양입니다. 아님, 죽었어야 했나요?”
“우, 윌리엄! 윌리엄을 불러라!”
“형님은 암살자들에게 죽었습니다.”
“이, 이……!”
“아버님이 제게 보낸 암살자들에게 말이죠.”
“이놈!!!”
자작은 호통을 내지르며 기사들을 불렀다. 하지만 그 누구도 방문을 두드리는 이가 없다.
카멜은 자작의 침대 앞에 섰다. 그리고 베개를 집어 들었다.
그런 카멜의 모습에 자작은 허탈하게 웃었다.
“왜 저는 안 됩니까?”
“네가 지워버린 마을들을 잊은 것이냐? 무려 여섯 곳이다!”
“세금은 가문의 존속에 필수적인 겁니다. 본보기를 보였을 뿐입니다.”
“네놈은 악마다. 이 영지를 피로 물들게 할 거야!”
“그럼, 더 철저하게 준비하시지 그랬습니까?”
“그 전에 죽였어야 했어. 내 망설임이 모두를 죽게 했구나…….”
“망설임이 없었더라도 불가능했을 겁니다. 왜인지 아십니까?”
카멜은 베개로 자작의 얼굴을 거칠게 짓눌렀다. 그리고 온몸으로 베개를 누르기 시작했다.
카멜의 몸 밑에서 미친 듯이 버둥거리는 자작.
그런 자작을 내려다보며 카멜은 미소를 지었다.
“전 모든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자작의 두 팔이 축 늘어졌다.
구겨진 옷을 탈탈 턴 카멜은 더는 자작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문밖으로 나왔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기사들이 보인다.
복도는 이미 피바다였다.
집사를 포함한 리암슨 자작을 따르던 시종들은 모조리 도륙된 상태였다.
피로 물든 복도를 차박차박 걸으며 카멜은 지시를 내렸다.
“아버님께서 형님의 암살 소식에 충격을 받아 돌아가셨다. 모든 성문에 부고 깃발을 달고 장례식을 준비해라.”
“충!”
“화재가 진압되는 대로 기사 단장과 그를 따르는 기사들을 포박해라. 내성 책임자로서 광물 창고를 태운 책임을 물어야겠다. 이 모든 지시는.”
카멜의 인장이 찍힌 서신을 건네자, 기사들은 공손히 한쪽 무릎을 꿇고 서신을 받들었다.
“나 카멜 블레이저가 블라이어 영주의 이름으로 명한다.”
“충!”
기사들이 자리를 비우자, 카멜은 영주관을 나와 어디론가 걷기 시작했다.
급한 일은 전부 끝났지만, 진짜 중요한 확인이 남아 있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를 뒤틀어버린 존재.
그 암살자 놈.
원래는 자폭으로 터졌어야 할 놈이 용서를 구하며 나타났다.
이번 계획의 유일한 오점이자 변수였다.
‘내 회귀 사실을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라….’
암살자가 ‘그’라고 칭했다.
암살자를 보낸 그가 누군지 궁금했다.
미래의 기억을 뒤적거렸지만, 딱히 떠오른 인물이 없었다.
자신 외에 미래를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는 건 무척 치명적인 일이었다.
회귀 후 몇 년을 웅크리고 고심하며 계획한 대륙 정벌의 밑그림이 모두 어그러지기 때문이다.
“암살자 놈을 먼저 만나봐야겠어.”
카멜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첨탑으로 향했다.
암살자에 대한 처우는 일단 보류였다. 물론, 죽일 확률이 아주 높았지만 말이다.
* * *
첨탑 지하 감옥.
음울하고 칙칙한 철창 사이로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퍽―!
“끄어어!… 쿨럭!”
난 꽉 막힌 속을 토해내듯 피를 한 움큼 게워냈다.
발끝에 고인 피 웅덩이를 보니, 제법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내가 얼마나 맞았지?
낮이야, 밤이야?
살아서 잡혀 온 것까진 좋았는데, 예상치 못했던 복병이 숨어 있었다.
바로 지하 감옥 고문관 새끼.
그는 하루라도 사람을 패지 못하면 무좀이 난다는 변태 새끼였다.
‘누구냐?’라는 말에 ‘암살자다!’라고 답했더니, 그때부터 복날의 개처럼 쇠사슬에 매달려 처맞기 시작했다.
‘방금은 살짝 위험했다.’
조금 전 맞은 부위는 복부였는데, 충격이 더 가해졌다면 내장에 심한 손상이 올 뻔했다.
싸움꾼도 아니고 이딴 지식을 평범한 회사원이 알 리 없다. 크룩스에서 배운 암살자의 지식이었다.
‘더 맞으면 살짝 위험한데.’
온통 피로 물든 방 안.
눈앞의 살벌한 돼지 새끼.
지독한 고문까지.
공포에 질릴 만도 한데 난 침착하게 상황을 바라봤다.
못이 박힌 고문관의 몽둥이를 보고도 두려워하기보단 최대한 빗맞으려고 몸을 틀었다.
정신이 공포와 패닉에 삼켜졌지만 버틸 만했고, 통증으로 미칠 것 같다가도 참을 만했다.
뭐랄까.
자극이 일정 한계를 넘어가면 리셋이 된다고 해야 하나.
이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지금은 썩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 새끼가! 눈깔 안 치워!”
퍽―!
“끄으으….”
내 무던한 반응이 고문관의 성질을 건든 모양이다.
처음에는 놈의 비위를 맞춰주려고 했다.
난 평화주의자니까.
그런데 놈은 그저 나를 패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삐걱삐걱 흔들리는 쇠사슬 아래, 난 피 섞인 침을 퉤 뱉어내고는 고문관을 빤히 바라봤다.
“사과해라.”
“뭐? 사과? 푸하하하! 이런 정신 나간 새끼를 봤나.”
고문관은 끅끅거리며 배를 잡고 웃었다. 나름 신선하게 들렸나 보다. 그래. 내 목숨을 쥔 위치니, 내 말이 웃겨 뒈지겠지.
그런데 넌 모를 거야.
네 목숨을 움켜쥔 인물이 나란 사실을.
“살고 싶으면 ‘잘못했습니다.’를 외치고 먹을 것 좀 가져와.”
“아직 덜 맞았구나.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내가 혀를 놀리면 넌 죽으니까.”
“그 혀를 뽑아버리면?”
“감당할 수 있겠어? 난 중요한 심문 대상인데, 혀를 잘못 뽑았다가 네 목이 뽑힐 수도 있어.”
“…….”
얼굴을 살짝 일그러트린 고문관은 한쪽에서 불로 달군 쇠꼬챙이를 들고 다가왔다.
“한쪽 눈 정도면 괜찮겠지.”
“이 돼지 새끼가…….”
“죽여달라고 빌게 해주마.”
어이? 적당히 하지?
하지만 고문관은 ‘적당히’가 없었다. 돼지 새끼라고 한 게 그렇게 싫었어?
새빨갛게 달궈진 꼬챙이가 다가왔다. 그 섬뜩한 열기가 내 뺨을 타고 눈으로 올라오려는 순간, 난 ‘좆됐다.’를 속으로 외쳤는데, 고문관이 움찔하곤 뒤를 돌아봤다.
타이밍 한번 죽이네.
설마, 악당 새끼를 내가 반기게 될 줄은 몰랐다.
“비켜라.”
“허, 헉! 카멜 공자님.”
카멜이 문을 열고 나타났다.
기사 하나를 대동했는데, 고문관은 그 둘과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전형적인 강약약강의 모습.
기사는 고문관을 무심히 내려다보며 말했다.
“공자가 아니라 영주님이시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카, 카멜 영주님 오셨습니까!”
“거칠게 다뤘군.”
신발이 피로 물들자, 카멜은 미간을 구겼다. 더러워진 신발 때문에 심기가 불편한 게 분명했다. 내 모습은 보고도 있지 않았으니까. 그 모습에 고문관은 넙죽 엎드렸다.
“바, 반항이 심해서 교육을 하고 있었습니다! 놈에게 뭐든 물어보십시오! 다 불게 만들 테니.”
반항? 시발아, 배고파서 밥 달라고 한 거밖에 없는데 무슨 반항.
이걸로 네놈의 운명은 정해졌다.
크흠, 목을 한 번 풀었다.
그리고 억울한 얼굴로 크게 외쳤다.
“고문관님! 정보는 이미 다 불지 않았습니까? 제발 풀어주십시오!”
“뭐?”
내 말에 반응을 보인 건 카멜이었다. 당연히 고문관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무, 무슨 소리냐!? 난 네놈에게 정보 따윈 들은 기억이 없어! 어디서 수작질이야!”
“당신이 고문하면서 다 불라고 했잖아! 난 전달자라고! ‘그’에게 들었던 것을 전달하기만 하는데, 숨길 게 뭐가 있어!”
“…아니야! 아닙니다, 영주님!! 이 녀석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고문관.”
“네, 네! 영주님, 말씀하십시오!”
“고문은 왜 한 거지?”
“…그건!”
그러게, 그냥 네 방에서 잠이나 처주무시지. 왜 악취미를 살려보겠다고 부지런히 날 고문하냐고. 이 두툼한 엿가락 같은 새끼야.
차마 손이 근질거려서 고문했다는 말은 할 수 없었나 보다.
고문관이 우물쭈물한 순간, 그의 운명은 정해졌다.
내가 어중이떠중이 죄수였으면 그냥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카멜의 민감한 ‘약점’을 알고 있는 그의 전달자다.
“리옹.”
카멜이 나직이 이름을 부른 순간, 기사의 검이 벼락처럼 뽑혀 나왔다.
“제, 제발… 살려…! 커억!”
기사의 검이 고문관의 심장을 꿰뚫고 들어갔다. 주저앉은 고문관이 간절한 눈빛으로 올려다봤지만, 기사는 검을 뽑은 후 가차 없이 그 목을 날려버렸다.
데구르르―
목이 굴러와, 내 발밑에서 멈췄다.
공포의 한순간이 굴러온 얼굴에 담겼다.
당한 것을 되돌려 준 것뿐인데, 기분이 더럽다.
확실히 난 악당 타입은 아닌 모양이었다.
기사가 검을 털며 내게 다가왔다. 그는 품에서 붉은 병을 꺼내더니, 내게 먹였다.
회복 물약.
품질이 좋은 것인지, 컨디션이 빠르게 회복됐다.
그래도 한동안은 움직이기 힘들 것 같았다. 고문관 새끼의 손속은 그만큼 잔인했다.
잘 죽인 건가?
기사는 의자를 가져와 내 앞에 놓았다. 카멜은 의자에 앉은 후 나를 올려다봤다.
내 시선은 카멜에 닿기 전에 잠깐 기사에게 향했다.
브론즈색 머리카락에 무감정한 눈빛. 날렵한 검술을 쓸 것 같은 체구다.
묘하게 분위기가 카멜과 닮았다.
카멜의 입에서 나온 기사의 이름을 분명 들었다.
‘리옹 마트레인.’
학살자의 오른팔.
리옹은 카멜이 지닌 회귀자의 지식으로 일인군단의 힘을 얻게 되는 카멜의 검 중 하나다.
이곳, 블라이어 기사단의 부단장으로 시작했다고 하더니, 이때부터 충성을 맹세하고 신뢰를 받았던 모양이었다.
이 자리에 리옹을 데려왔다는 것이 카멜의 신뢰를 받고 있다는 증거였다.
리옹은 아마 몇 차례의 시험과 숙고 끝에 선택됐을 것이다.
‘호위가 필요한 녀석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겠지.’
카멜은 카리스마형 군주였다. 그는 무력에 큰 재능이 없는 대신 누군가를 지배하는 데 특출난 재능을 보였다.
그만큼 통찰력도 뛰어나고 심계(心計)가 깊어 쉽게 속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런 놈을 속여야 한다.
위험한 도박이지만, 성공만 한다면 크룩스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해볼 만한 도박이었다.
“그럼, 들어볼까?”
“…….”
“‘그’가 너를 왜 보냈지?”
“동맹 제안입니다.”
“동맹? 동맹은 이익이 서로 일치해야 가능한 것인데, ‘그’가 내게 원하는 게 있나?”
“황금입니다.”
“…….”
황금이란 말에 카멜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는 막대한 황금이 필요하고, 당신이라면 충분히 그 황금을 제공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블라이어는 수많은 광산을 소유하고 있지만, 황금 광산은 없다.”
“한 달 안에 생길 것이라 했습니다.”
“흥!”
코웃음을 쳤지만, 카멜은 속으로 상당히 놀랐다.
‘황금 광산의 존재를 알고 있다.’
광산 개발은 카멜의 다음 계획이었는데, ‘그’는 그 사실도 파악하고 있었다.
회귀 전 카멜의 기억 속에 없었던 인물.
대체 어떤 놈일까.
‘설마, 나와 같은 회귀자인가?’
카멜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아니다.
가진 ‘성질’이 달랐다.
카멜은 그를 모른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회귀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상대가 회귀자라면 번거롭게 정체를 밝히고 전달자를 보낼 필요가 없다. 어떻게든 회귀 경쟁자를 죽이기 위해 먼저 수를 썼겠지.
즉,
‘나에 대해 알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는 건데.’
카멜은 일종의 ‘예지’가 아닐까 추측했다.
핵심은 그가 자신을 얼마만큼 알고 있냐는 것이었다.
많이 알면 많이 알수록 큰 위협이 되는 인물.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던 카멜이 미소를 띤 채 물었다.
“동맹을 거절한다면?”
“에토르 가문과 손을 잡겠다고 했습니다.”
“하하하!”
카멜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광산 개발 이후 첫 발판으로 쓸어버릴 에토르 영지와 손을 잡겠다라.
이건 한마디로 카멜의 앞길을 철저히 막겠다는 뜻이었다. 정확하게 자신의 약점을 파고든 선택지.
“내가 아주 큰 착각을 했어.”
카멜은 큭큭거리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는 미꾸라지 따위가 아니었다. 카멜은 이를 환하게 드러내며 웃었다.
그런 표정 변화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시발, 이건 좀 무서운데?’
누군가를 기필코 죽이겠다는 살심(殺心)을 드러냈을 때, 카멜은 웃는다.
바로 저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