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도미닉의 실험체 감옥
“…….”
물가 앞에서 때아닌 캠프파이어가 펼쳐졌다. 물론, 나 홀로 캠프파이어였다.
타오르는 불꽃에 기대어 추운 몸을 녹였다. 따뜻한 온기를 유지하기 위해 바닥에 쌓여 있는 옷가지들을 불꽃에 던졌다.
시원하게 잘 탄다.
오랜만에 불멍이다.
회사 다닐 때는 캠핑에서 불멍을 때리는 게 유행이라 주말마다 캠핑장을 방문하긴 했는데, 평온했던 그때의 불멍과 달리 이곳 불멍은 심란함이 가득했다.
도적들을 돌아가며 심문했는데,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
‘이래서 라웁 숲을 그렇게 피하려고 했는데…….’
가장 피하고 싶었던 장소에 던져졌다.
폭우에 휩쓸려 물길을 따라 이곳까지 흘러들어 온 것이다.
여기까진 괜찮았다.
눈치껏 미치광이 도미닉을 피해 라웁 숲을 벗어난다면 해결될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벗어날 수가 없다니,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도적들이 하나같이 말했다.
같은 방향으로 걸어도 숲 중심부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어느 순간 시야가 변하더니 풍경이 도돌이표처럼 끝없이 반복된다는 것이었다.
라웁 숲에서 도적질하는 놈들이 길을 잃고 헤매는 상황이라.
솔직히 말이 안 되잖아?
그런데 난 이미 라웁 숲의 이런 현상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되도록 라웁 숲과 떨어져 움직이려고 했던 것이고.
“아무래도 ‘거기’에 빠진 것 같은데….”
정보를 취합할수록 한 가지 가정으로 좁혀지는데, 난 정말 이 가정을 인정하기 싫었다.
도미닉의 임시 실험체 감옥.
도미닉이 사로잡은 실험체를 가두는 마법 공간으로, 라웁 숲 일부 지역 몇 곳에 설치됐다고 알고 있는데, 이곳이 그곳 중 한 곳 같았다.
실험체 감옥에는 ‘환상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었다.
환상 마법진은 일종의 어부 통발과 같았다. 안으로 들어오는 건 가능하지만, 나가는 건 불가능한 구조.
만약 이곳이 환상 마법진 속이라면 도망치는 건 불가능했다. 입구는 오직 도미닉만 열 수 있었으니까.
‘돌아버리겠네.’
악어 아가리 속으로 스스로 기어들어 온 것이다. 물론, 자의가 아니라 저 통나무 새끼가 날 데려왔지만,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미치광이 마법사 앞에서 길을 잘못 든 것 같으니 풀어달라고 따질 순 없는 노릇이니까.
지금껏 살아남은 것을 보면 천운이 따르는 것 같은데, 난 왜 재수가 더럽게 없는 것처럼 느껴질까? 이거 마녀라도 찾아서 살풀이해야 하는 거 아냐?
‘이미 배때기 속으로 들어왔다.’
환상 마법진에 갇혔다는 건 내 목숨 줄이 도미닉의 손아귀에 붙잡혔다는 뜻이었다.
곧 마법진 안으로 키메라들이 쏟아져 들어올 텐데.
그 이유는 하나다.
실험체 수거.
도미닉이 번거롭게 잡아 온 실험체를 임시 감옥에 가두고 연구실로 수거해가는 이유는 실험체 수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희생당했다는 뜻이고, 반대로 이야기하면 키메라의 숫자가 엄청나게 많다는 말이었다.
갇힌 공간에서 키메라들을 피할 수 있을까.
‘도미닉의 생체 연구실로 끌려가서 빠져나온 인간이 있었던가?’
시발, 이젠 나도 모르겠다.
난 젖은 육포를 불 위에 올려놨다. 이 상황에서도 배가 고픈 걸 보니, 역시 본능은 위대했다. 노릇하게 구워진 육포를 씹고 맛보고 뜯고 있는데, 물가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덜덜 떨리는 목소리.
도적들이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너무 춥습니다!”
“제, 제발!!”
두 시간 정도 물가에 담가놨나?
물 온도가 차다 보니 저들의 입술이 새파랗게 질렸다. 알몸으로 웅크린 채 내게 용서를 구하는 모습.
겉으로 보면 내가 악당처럼 보이겠지만,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너흰 빌면 살려줬냐?”
“…….”
“조롱으로 답했겠지. 닥치고 턱까지 물속에 묻어라. 피부까지 벗겨주랴?”
한 명씩 돌아가며 심문을 하다 보니 저들이 한 짓까지 알게 됐는데, 주로 했던 일이 여인 납치였다. 소굴로 끌고 간 뒤 농락하고 노예로 팔아넘기는 악질들.
키메라에게 습격을 받으면서 여인들도 사라졌다고 들었다. 저놈들처럼 실험체 감옥 중 한 곳으로 끌려갔을 것이다.
저놈들이야 뒈지든 말든 상관없는데, 잡혀 온 여인들은 무슨 죄일까. 나랑 상관없는 일인데도 열이 뻗쳐서 저리 놔두고 있었다. 심히 기분이 좋은 상태가 아니라서 말이지.
‘이곳에 갇힌 도적들이 더 있다고 했지?’
라웁 숲을 우회하던 중 도적을 붙잡아 전해 들은 정보가 있었다.
대규모 도적단의 실종 사건.
그 사라졌던 도적들이 이곳 실험체 감옥에 모조리 갇혀 있는 것 같았다.
난 재수 없게 그 공간 속으로 제 발로 흘러들어 온 것이고.
‘어떡한다.’
협곡을 탈출한 뒤에 구상해 놓은 몇 가지 계획이 있었다.
나름의 고민을 거쳐 여러 가지 플랜을 짜놨는데 모든 계획이 물거품으로 변했다.
살기 위해서라도 도미닉을 먼저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감옥에 갇힌 이상 놈과 부딪치는 건 피할 수 없을 테니까.
‘미치광이 도미닉과 관련된 이벤트가 제법 많기는 한데….’
문제는 위험도가 너무 높았다.
소설의 주인공인 학살자조차 초반에는 라웁 숲을 기피할 정도니, 이곳 난이도가 얼마나 빌어먹을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헬 난이도 이벤트에 1레벨 캐릭터가 강제로 참가하게 된 꼴이랄까.
도적들이 착각하는 것처럼 내가 5성 이상의 괴물이면 모를까. 지금 실력으로 도미닉과 적대하는 건 자살행위였다.
지금 도미닉은 솔직히 학살자보다 위협적이었다.
도미닉 자체의 능력보단 그가 제작한 키메라 군단의 존재 때문이었다.
‘놈이 존재를 노출하기 시작했어. 키메라 수가 안정권에 들었다는 거야.’
도미닉의 키메라 군단.
소설 속에서 ‘군단’이라 불릴 정도로 그 수가 많고 강력했다. 하지만 도미닉의 진정한 힘은 훗날 제작될 단 하나의 키메라다.
[백 개의 심장, 아레나 후아튼]
도미닉의 광기와 지식이 총집약된 인간 생체 병기. 무력은 5성을 능가한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미완성 단계일 것이다. 동력 원천인 ‘심장’을 얻기 전일 테니까.
“…동력 원천.”
동력 원천을 중얼거리며 잠시 머리를 굴려봤다. 불멍처럼 불꽃을 한참이나 응시했다. 말도 안 되는 계획 하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기존 계획이 모두 물거품이 되고, 도미닉을 피할 수 없기에 할 수 있는 생각.
‘그녀의 동력 원천을 내가 훔칠 수 있다면?’
아니 가능은 하려나?
실패 시 죽음이고, 성공 확률이 극악이라 애초에 계획에 넣지도 않았던 메인급 스토리의 숨겨진 ‘힘’ 중 하나였다.
계승자의 신기이자, 아레나 후아튼의 동력 원천.
“불사자 레토니칼스의 심장.”
현재 도미닉이 광적으로 키메라의 수를 늘리는 이유이기도 했다.
도미닉은 현재 불사자의 심장을 얻기 위해 밑그림을 그리는 중이었으니까.
“그 밑그림이 뭔지 알고 있기는 한데….”
도미닉도 보지 못한 그 완성본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 * *
날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두고 깊게 고민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태양이 저무는 모양인데, 슬슬 이동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일단 간을 보면서 움직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 스펙으로 동력 원천을 훔치는 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나왔다.
도미닉 후아튼은 학살자 파트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캐릭터인 만큼 그 정보가 학살자만큼이나 방대하고 자세했다.
도미닉 당사자조차 모르는 정보를 쥐고 있으니, 정보 우위에선 압도적으로 유리했는데, 문제는 그 정보를 가진 내 무력의 부재다.
어설프게 강해선 어림도 없다.
‘도미닉은 몰라도, 키메라를 상대할 방법이 없어.’
키메라를 상대할 다른 무언가가 생기지 않는 한, 레토니칼스의 심장을 훔치는 건 더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화톳불에 모래를 부어 불을 끈 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부러진 팔을 가볍게 돌렸는데, 약간의 고통을 제외하곤 부드럽게 움직였다. 도적에게 강탈한 포션을 사용했는데, 효과가 있었다.
따뜻한 온기에서 긴 시간을 휴식했더니 컨디션도 회복됐다.
이제 움직일 시간.
그 전에 난 도적들의 처우를 두고 잠시 고민했다.
일단 죽이는 건 하(下)책이었다.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다. 주술사 도네콜린트야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는 상황이라 살수를 펼친 것이고, 살인은 여전히 나에게 거북한 행위였다.
목숨을 구걸하는 도적들의 간절한 눈빛.
물가에 밤새 놔두면 저체온증으로 모조리 뒈질 것 같긴 한데.
잠시 고민하던 나는 가방을 둘러멨다.
전과 달리 가방은 제법 묵직했다. 도적들의 소지품에서 먹거리와 베텔의 독이 담긴 병들을 모조리 챙겼기 때문이다.
도적들을 잠시 바라본 나는 숲 안쪽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도적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난 그들에게 그 어떠한 말도 남기지 않았다.
그저 무시한 채 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 정도면 안 보이겠지?”
우거진 나뭇잎 사이로 도적들의 시야에서 완벽히 사라졌을 때, 나는 주변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나뭇가지 사이에 은신을 한 채 멀찍이서 도적들을 살폈다.
처음에는 서로 눈치만 볼 뿐 도적들은 물가에 덜덜 떨며 머물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도 내가 돌아오지 않자, 도적 중 일부가 눈치를 보며 물가 바깥으로 기어 나왔다.
이래저래 죽을 바엔 내가 사라진 틈에 도망치는 도박을 시도한 이들이었다.
애초에 내가 노렸던 바이기도 했다.
한두 명이 바깥으로 나와 도망가기 시작하자, 분위기에 휩쓸린 듯 남은 도적들도 허겁지겁 물 밖으로 나와 반대쪽 숲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빠른 이는 역시나 두목이었다.
난 그들 뒤를 은밀히 쫓기 시작했다.
저들을 도망치도록 방치한 이유는 마법진에 갇힌 도적들의 전력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알몸이 된 데다 물품마저 모조리 빼앗긴 상황, 게다가 목숨을 위협받고 있다.
그 긴박한 상황에서 저들이 향할 곳은 한 곳뿐이다. 형제라 부르는 도적단들의 집합 장소.
대략적인 정보는 도적들에게 들어서 알고 있지만, 저들과 함께 움직이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내 실력으로 감당할 수 없거든.’
처음에는 5성인 척 연기를 하며 이곳 도적들을 이용할 계획을 떠올렸는데, 도적들의 수준을 모르는 상황에선 위험해 보였다.
영악하고 눈치가 빠른 이가 있을 수 있고, 혹여 3성 이상의 실력자가 포함되어 있다면 인챈트 기운을 눈치챌 테니, 거리를 두고 전력을 살피는 게 먼저였다.
‘꽤 많다고 했는데, 얼마나 잡혀 온 거지?’
잠시 후, 숲 한가운데에 큰 공터가 펼쳐지더니 커다란 산채가 시야에 들어왔다.
목재로 지어진 산채 주변을 살펴보니,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비어있던 산채를 점령하고 머문 흔적이 아니었다.
기존에 자리 잡고 활동하던 도적 떼의 거점인가?
그렇다면 저 산채의 주인은 나만큼이나 재수가 더럽게 없는 놈이었다.
환상 마법진 범위 안으로 산채가 통째로 먹힌 셈이었으니까.
나는 한눈에 산채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나무 위에 숨어 도망친 이들을 살폈다.
“살려…… 살려줘!!!”
“여, 여기!”
소리를 빽빽 지르며 알몸으로 나타난 도적들의 모습에 산채가 시끄러워졌다.
안에서 도적들이 우르르 튀어나왔는데, 그 광경에 나는 짧게 혀를 찼다.
‘뭐 이리 많아?’
눈에 띄는 숫자만 백 명 가까이 되는 것 같았다. 전부 모인 것 같지도 않은데 저 정도 숫자라고?
게다가 제법 강해 보이는 놈들도 보였다.
난 잠자코 숲 사이에서 저들의 행동을 주시했다. 도망친 이들을 통해 5성급 실력자가 근처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통보받았다면 도적들의 다음 행동은 무엇일까.
도망치는 것?
아니, 그건 도망칠 장소가 있을 때 하는 행동이고, 이곳은 환상 마법진에 갇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장소다.
그럼 저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은 한 가지뿐이다.
‘모조리 뭉치는 것.’
마법진에 갇힌 도적들이 모조리 한곳에 뭉칠 것이다.
압도적인 강자가 출현하면 약자들은 뭉치기 마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