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당에게서 살아남는 법-26화 (26/130)

26화 키메라 군단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라서 그런가? 금세 밤이 찾아왔다.

횃불이 사방에 타오르며 산채 주변을 밝혔다.

일단 계획은 성공했다. 내 의도대로 산채에 도적들이 우르르 몰리고 있었으니까.

근데,

“와, 도미닉 이 미친 새끼.”

그 수가 터무니없이 많았다.

발가벗겨 쫓겨난 도적들이 소식을 전달하면서 흩어졌던 도적들이 한곳에 모였는데, 그 수가 이미 5백을 넘어갔다.

지금도 빠르게 늘어나는 중.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숫자가 많아서가 아니라 도미닉의 광기 때문이다.

‘도대체 몇이나 실험체로 쓴 거야?’

이곳은 임시 실험체 감옥 중 하나일 뿐이다. 나머지 감옥들까지 합친다면 2천? 3천? 아니 그보다 더 많을지 몰랐다.

그들 전부가 연구실로 끌려가 키메라의 연구 재료로 소비되는 것이다.

마치 실험쥐처럼.

소설 내용에선 수년 전부터 행해진 연구라고 했으니, 희생된 자들이 얼마나 될지 상상조차 안 됐다.

‘개인플레이로는 학살자보다 더 악질적인 녀석이네.’

그만큼 강력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스케일인가.

학살자와 만찬을 즐길 때가 더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학살자는 말이라도 통했지, 이 미친 사이코패스는 예측이 안 됐다.

수틀리면 그 자리에서 뜯어먹힐지도.

해일 위에서 서핑을 도전하는 마음이 이럴까.

마법진을 파훼할 수 없다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문제는 수거 시기인데, 언제쯤 움직일까?’

키메라들의 실험체 수거 작업.

심문한 도적들이 이곳의 정체를 모르는 것을 봐선 아직 움직이지 않은 것 같았다.

저기 모인 도적 중에 이곳의 정체를 아는 이가 있을까.

없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알고 있다면 저따위로 모이는 짓이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 알 테니까.

정보를 저들과 공유한다면?

고민은 짧았다.

키메라 군단을 떠올린 순간 답은 나왔으니까.

‘달라지는 건 없어.’

도적들을 설득할 자신도 없었고, 희생을 자처할 생각도 없었다.

괜히 나서다 뒈지는 게 아니라, 내 목표는 살아남는 것이다.

저들을 이용하면 이용했지. 불구덩이로 스스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나저나 너무 많은데, 괜찮으려나?’

수가 7백을 넘어 8백에 가까워지자, 슬슬 불안감이 생겼다.

많아도 너무 많다.

도미닉이 본다면 너무나도 먹음직스러운 만찬과 같다.

일정 수가 한데 모이면 반응을 한다거나, 이런 건 없겠지?

애써 가정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지금껏 안 좋은 가정은 신들린 듯이 맞아떨어졌으니까.

“…아.”

순간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서늘한 감각.

난 본능적으로 우거진 나뭇가지 사이로 파고들었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나뭇잎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찌릿한 감각이 느껴졌는데, 그 감각은 곧 섬뜩함으로 바뀌었다.

‘살기다.’

사나운 포식자의 살기.

갑자기 무언가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나타나더니, 사방으로 삽시간에 퍼졌다.

살기의 주체가 하나가 아닌 다수가 뿜어내는 기운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난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시발, 왜 하필 지금인데?”

난 신음을 삼키며 산채를 응시했다.

살기의 방향이 내 시선과 일치했다.

한데 뭉친 수백의 도적들.

저들을 먹잇감으로 보는 존재들이야 뻔했다.

키메라 군단.

안 좋은 가정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다.

이거 알려야 하나?

아니, 이미 늦었다.

쿵. 쿵. 쿵. 쿵. 쿵!

판단할 새도 없이 숲 바깥에서 큰 울림이 터졌다.

숲 전체가 미약하게 흔들린다.

동시에 느껴지는 거대한 압박감.

사방에서 쏟아지는 압박에 나는 이를 악물곤 몸을 바짝 웅크렸다.

들키면 끝장이다!

크아아아아아아―!!!!

“……!”

거대한 숲이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꿀렁이더니, 안쪽에서 괴성을 토해냈다.

도적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우왕좌왕했다.

민첩하게 즉시 도주하는 도적들도 보였다. 소수에 불과했는데, 움직임을 보니 실력자들이었다. 마치 이곳에 지옥이 곧 펼쳐질 거란 사실을 아는 눈치 같았다.

“무, 뭐야? 무슨 일이야!?”

“숲이 움직이고 있어!”

“이거 도망쳐야 하는 거 아니야?”

“도망치는 게 더 병신 같은 짓이야. 우리 머릿수를 보라고.”

“하지만 저들은…….”

“딱 봐도 겁쟁이들이잖아. 신경 끄고 뭉쳐.”

대다수가 도망치는 도적들을 보며 비웃었다. 그들은 곧 무기를 꺼내 들고 똘똘 뭉쳤다.

그 광경에 난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8백이라면 뭐가 됐든 할만하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상대가 나빠.’

오늘 터질 사건이었는지, 나로 인해 벌어진 사건인지는 모르겠다.

이미 엎질러진 물.

감옥 내 세력과 주변 지형을 살필 새도 없이, 사건이 터졌다.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은? 난 빠르게 분위기를 살피며 머리를 굴렸다.

소설 속 한 구절이 떠올랐다.

[실험체의 앞날은 오직 절망뿐이었다. 그리고 그 절망의 시작은 ‘그들’과 조우했을 때였다.]

뚝―

“……!”

출렁이던 숲이 일순간 멈췄다.

지독한 침묵이 주변을 감쌌다. 도적들은 마른침을 삼키고 어둠 속의 숲을 응시했다.

난 주변에서 가장 높은 나무를 골라 빠르게 타고 올라갔다.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붙잡고 작아진 도적들을 내려다보는 그때, 음울한 소리가 가슴을 옥좼다.

으어― 으어― 으어―

숲 사이사이가 쩍 벌어지며 검은 그림자들이 튀어나왔다.

횃불에 비친 그들의 모습에 도적들이 비명을 내지른다.

혐오스러운 괴생명체.

수백의 흉측한 그림자들이 산채를 에워싼 채 쏟아져 들어왔다.

키아아아아아아―!!

“무, 뭐야!! 저것들은…!”

“아악! 도망쳐!!”

실험체 수거를 위해 나타난 ‘그들’.

도미닉의 키메라 군단이 등장했다.

검은 해일처럼 산채를 뒤덮은 악귀들을 보며 난 입술을 꽉 악물었다.

라웁 숲에 떨어진 첫날부터 아주 스펙터클한 이벤트가 내 앞에 펼쳐졌다.

확실히 난 운이 더럽게 없었다.

* * *

전투 가능한 도적 수백 명이면 작은 중소 귀족 군대도 상대할 전력이었다.

똘똘 뭉친다면 상급 몬스터들도 위협할 수 있는 전력.

하지만 그런 전력도 눈앞의 키메라 군단과 마주치는 순간, 오합지졸처럼 뿔뿔이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마주 본 순간 전투 의지마저 꺾어버리는 압도적인 존재감.

그리고 비주얼.

“오, 오우거?!”

“…아니야. 파, 팔이 여섯 개라고!”

“미, 미친! 따라오지 마! 아아악!”

“끄아아악! 살려줘!”

산채 주변을 부수며 짓쳐 오던 흉측한 거대 괴물.

오우거가 돌진해오더니, 도적들의 진형에 뛰어들었다.

여섯 개의 팔이 휘둘러지자, 진형은 순식간에 붕괴되었다.

팔에 잡힌 도적들은 허공에 뜬 채 살려달라 울부짖고, 남은 이들은 혼비백산 도망쳤다.

쿠어어어어―!!!!!!!

오우거의 괴성에 근처 도적들은 풀썩 쓰러졌다. 공포에 짓눌려 머리를 박고 벌벌 떨었는데, 이성이 마비된 것 같았다.

그들 위로,

스스스스슥―

“어억! 크룩!”

“사, 살려……!”

산채 크기의 거대한 슬라임이 미끄러지듯 다가오더니 도적들을 낚아챘다.

슬라임 표면에 붙어 있는 수십 수백의 팔.

그 팔들은 인간의 것을 닮았고, 팔에 잡혀 삼켜진 도적들은 슬라임 몸체에서 허우적거렸다. 숨이 막힌 듯 목을 움켜잡고 발버둥을 쳤는데, 곧 의식을 잃고 안에서 부유하며 둥둥 떠다녔다.

공포스런 광경.

도적들은 패닉에 빠져 비명과 함께 숲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사냥이 시작됐고, 사냥꾼들이 계속 모습을 드러냈다.

황소 얼굴에 악어 육체를 한 괴물, 하늘을 날아다니는 날개 달린 뱀도 있었다.

덩치는 하나같이 거대해서, 인간들이 작은 벌레처럼 보일 정도였다.

후미로 다양한 형체의 작은 키메라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도적들을 덮쳤다.

붙잡힌 도적들은 바닥을 긁으며 절규했고, 곧 키메라에게 질질 끌려 어디론가 사라졌다.

일방적인 사냥이다.

다만, 학살은 없었다.

그래서 비명과 절규가 숲 곳곳에서 처절하게 울렸다.

숲 전체가 공포에 휩싸였다.

어째서 이곳이 공포의 라웁 숲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화아아악―!

“아아아아악!”

난 나무 위에 숨어 밑을 살폈다.

몸통 크기의 큰 눈동자가 허공에 떠다녔는데, 도망치던 도적들이 눈동자 괴물 앞에 선 순간, 눈동자가 붉은빛을 토해냈다.

빛에 노출된 도적들은 머리를 움켜잡고 비명을 질러댔고, 잠시 후에는 멍한 표정으로 눈동자 옆을 졸졸 따라다녔다.

최면에 걸린 듯 보였다.

‘지금!’

나무 밑으로 눈동자 괴물이 지나가는 순간, 나는 단검에 신력을 담고 뛰어내렸다.

눈동자가 퍼뜩 하늘을 올려다봤다. 순간, 확장되는 눈동자의 동공, 그 동공에 내 모습이 비친 것도 잠시, 동공에서 붉은빛이 터져 나왔다.

빛에 노출된 순간, 난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두통과 함께 매스꺼움이 올라왔는데 신물을 삼키며 버텨냈다.

푸욱―

단검은 눈동자에 그대로 박혔고, 난 그대로 단검을 내리그으며 착지했다. 갈라진 눈동자가 피를 쏟아냈다. 난 눈동자 뒤를 잡은 채 두 번째 단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푹― 푹― 푹― 푹―

눈동자 몸에 단검을 미친 듯이 찔러 넣었다. 새하얀 진액이 튀며 온몸을 적셨다. 잠시 후, 부르르 떨던 눈동자가 축 늘어졌다.

“……어?”

괴물이 죽자, 곁에 멍하니 서 있던 도적들이 정신을 차렸다.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잠시, 그들은 꿈에서 깬 듯 공포에 사로잡혔다.

“아아악!”

“살려줘!”

미친 사람처럼 그들은 비명을 지르며 숲 사이로 도망쳤다.

구해준 사람은 보이지도 않은 모양인데, 이해했다.

지금 이곳은 지옥 그 자체거든.

나 또한 홀로 살아남은 게 고작이라, 저들을 챙길 여유가 없었다.

난 눈동자 괴물의 시체를 도축하듯 해체했다. 잠시 후, 엉망이 된 시체 안에서 붉은 보석을 끄집어냈다.

‘정말 있네.’

키메라의 동력 원천인 ‘생체 마석’.

마석의 가치를 잠시 떠올린 나는 마석을 품에 넣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난 다음 사냥감을 물색하기 위해 나무를 타고 움직였다.

한동안 몸을 숨기고 상황을 지켜봤는데, 키메라의 목적은 학살이 아닌 생포에 맞춰져 있었다.

‘기습을 해도 대응이 소극적이란 말이지.’

키메라 군단에 대한 도미닉의 명령 체계가 단편적이란 뜻이고, 지금 상황을 잘 이용하면 키메라 사냥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나왔다.

다만, 잡히면 나도 끝장이라서 사냥 가능한 키메라만 노려야 했다.

처음에 등장한 거대 키메라들은 꿈도 꾸면 안 되고, 조금 전처럼 정신 계열의 키메라는 손쉽게 사냥 가능했다.

특별한 정신 방벽.

여기서도 내게 큰 힘이 됐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상황을 최대한 이용하자.’

일단 목표는 실험체 수거에서 살아남는 것이다.

도미닉은 필요한 수의 실험체만 채워지면 마법진을 다시 닫을 테니 말이다.

물론, 그사이 숨거나 도망 다닐 생각은 전혀 없었다.

생체 마석을 수집하는 건, 내게 아주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난 독한 향을 풍기는 풀들을 모아 짓이긴 후 몸에 덕지덕지 발랐다. 풀독에 피부가 부어오르고 따끔했지만, 후각에 민감한 키메라를 따돌리려면 이 방법이 가장 좋았다.

크아악!

키에에엑!

숲 전체를 휘젓는 키메라들은 무척이나 많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

안전하게 정신 계열의 키메라들을 찾는 방법은 간단했다.

미끼를 쫓는 것.

난 비명을 쫓아 은밀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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