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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에게서 살아남는 법-40화 (40/130)

40화 어디 실력 좀 보자

소녀를 본 용병 단장은 이를 악물었다.

저 여린 외모를 우습게 봤다가 찢겨 죽은 부단장들을 여럿 봤기 때문이다. 맨손으로 갑옷째 생살을 찢어버리는 악력, 저 소녀는 인간의 탈은 쓴 괴물이 분명했다.

“괴물 같은 년!!”

전력을 다한 묵직한 검격!

소녀는 몸을 옆으로 살짝 비틀며 팔뚝을 들어 올렸다.

푸욱―!

왼쪽 팔뚝에 검이 박힌 순간, 소녀는 휘청거리는 몸의 중심을 잡고 용병의 심장을 향해 남은 손을 뻗었다.

잔상이 보일 정도의 속도.

손은 그대로 용병의 심장을 꿰뚫었다.

“커, 커억!”

피를 울컥 토하는 용병을 잠시 바라본 소녀는 천천히 용병의 심장을 뽑아냈다.

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울렸다.

소녀의 얼굴로 피가 튀었다. 그녀가 손에서 펄떡이는 심장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을 때, 용병의 목숨은 완전히 끊어져 있었다.

용병들의 외침은 비명이 되고, 곧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단장이 죽자, 용병단은 패닉에 빠졌다. 그들은 더는 뭉치지 않고, 살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포위망에 갇힌 용병들은 결국 키메라들에게 모조리 붙잡혀 어디론가 끌려갔다.

“아아악―!”

“사, 살려…!”

처절한 풍경을 자아내는 지옥도.

잠시 후, 공터가 된 숲은 끌려간 핏자국들의 흔적만 가득했다.

“아레나, 조심해야지.”

도미닉은 피로 얼룩진 아레나의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그리고 소녀의 꿰뚫린 팔뚝을 살펴보더니 치료하기 시작했다.

팔뚝의 찢긴 살점을 뜯어내고, 파열된 근육을 끄집어냈다.

인간이라면 버틸 수 없는 지독한 고통.

하지만 소녀는 멍하니 멈춰있는 심장만 응시하고 있었다.

치료를 끝낸 도미닉은 소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두 사람이 지닌 갈색의 머리카락은 묘한 위화감을 불러왔다.

“금방 괜찮아질 거다. 사랑하는 내 딸아.”

훗날 레토니칼스의 심장을 얻고 ‘백(百) 개의 심장’으로 불릴 베네타의 재앙.

그의 역작으로, 도미닉은 자신의 친딸마저 키메라로 제작하면서 미치광이의 길을 걷고 있었다.

뼈마저 드러났던 상처가 빠르게 아물어갔다.

재생력이 뛰어난 몬스터, 트롤의 유전자를 신체에 섞어놨기에 보일 수 있는 효과였다.

그것도 잠시, 상처에도 끄떡없던 아레나가 불현듯 축 늘어졌다.

도미닉은 주머니에서 보랏빛 보석을 꺼내 아레나의 입 속에 넣었다.

그녀의 입 안에서 보랏빛이 반짝였다. 빛이 사그라들며 마석이 입 안에서 녹았을 때, 그녀는 언제 쓰러졌냐는 듯, 멀쩡히 도미닉 곁에 자리를 잡았다.

도미닉은 하늘을 바라보며 시간을 가늠했다.

‘마석 유지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나쁜 징조는 아니었다.

육체가 보랏빛 마석으로 더는 유지하기 힘들 만큼 발전했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도미닉이 가진 지식으로는 육체가 완전체에 다다랐다는 뜻인데, 문제는 이 육체를 지탱할 신(新)동력 원천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 전까지 수량을 늘려 시간을 벌려고 했는데,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는군.’

도미닉은 주변을 둘러봤다.

조금 전까지 이곳에는 오백에 달하는 대규모 용병들이 매복한 채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베네타에 이어 에토르까지 자신을 노리고 있었다.

‘에토르의 군주, 톰자엘 자작의 의뢰라.’

구석까지 내몰린 용병들을 구슬려 정보를 얻었는데, 자신에게 큰 위협이 될만한 내용을 접했다.

‘마나 촉매제 악마의 보석이라, 생체 마석의 비밀이 어디서 새어나간 거지?’

토바른 전 지역에 마석의 소문이 퍼진 상태였다.

톰자엘 자작이 어떻게 마석의 존재를 알고 키메라 사냥을 지시한 것일까.

‘부작용은 언급도 안 됐단 말이지.’

누군가 노리고 퍼트린 소문이 분명했다.

대체 누굴까? 이 비밀을 파악할만한 녀석들이.

‘그들인가?’

며칠 전 라웁 숲 서쪽에서 큰 피해를 보고 물러난 키메라들을 떠올렸다. 키메라들이 반수 이상 돌아오지 못했는데, 에토르에 풀린 붉은 마석을 설명하려면 그곳밖에 없었다.

의문의 주술사 집단.

자신이 움직이려고 하자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의도적으로 자신을 피하려는 모습인데, 그 주술사들이라면 생체 마석의 비밀을 알 수 있을지도 몰랐다.

‘대응이 너무 빨라.’

마석의 비밀이 퍼지면서 라웁 숲을 낀 영주들의 움직임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특히 베네타가 가장 문제였다.

용병단 규모를 보내는 다른 곳과 달리 베네타는 군주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타났다.

한 달 정도 생각했던 실험체 수거 계획이 보름도 안 돼서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도미닉의 머리에 후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실험체들을 충분히 확보한 상태에서 굳이 위험하게 충돌할 필요가 있을까.

일정 수의 키메라를 미끼로 던지고 시간을 버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마석의 부작용을 경험한다면 주춤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크리스탈 미믹(Mimic)의 탐욕치가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어. 곧 손을 볼 때이긴 한데….’

십 년 전, 클라크 대공의 추격을 피해 라웁 숲 가장 깊숙한 곳까지 숨어들어 왔을 때, 무너진 절벽 틈새에서 흉물스러운 낡은 상자를 발견했다.

낡은 상자는 자신을 고대 시절 미믹이라 소개했고, 높은 지능을 가진 상자는 도미닉과 말이 통했다.

생체 마석은 미믹이 실험체를 먹고 토해내는 일종의 보상이었다.

이종 사냥을 한 이유이기도 했다.

보랏빛 마석을 보상으로 받으려면 이종의 혈액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덤으로 받게 되는 고대의 지식까지.

크리스탈 미믹이 없었다면 지금의 키메라도, 도미닉도 없었다.

그에겐 구세주 같은 존재.

그리고 사냥할 존재이기도 했다.

‘신(新)동력 원천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크리스탈 미믹이 지닌 ‘그것’이라면 자신과 딸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트린 클라크 대공에게 복수를 시작할 수 있다.

도미닉은 책을 집어 들었다. 책은 고서(古書)를 떠올릴 정도로 두껍고 무거웠지만, 그는 한 손으로 편히 지탱했다.

“아레나, 실험체 감옥들을 폐쇄해야겠다. 마무리 작업을 시작해라.”

그 지시에 처음으로 아레나가 반응을 보였다. 고개를 살짝 끄덕인 그녀의 눈동자가 번뜩이며 빛을 발했다.

동시에,

쿠오오오오오오오―!!!!!

숲 전역이 키메라들의 괴성으로 들썩이기 시작했다.

곳곳에 설치된 실험체 감옥으로 수거책들이 방문을 시작했다.

도미닉은 아레나와 함께 바위에 걸터앉았다.

키메라 군단은 크게 둘로 나뉜다.

수거책과 사냥책.

조금 전 사냥을 끝낸 키메라들이 감옥에서 돌아오면 미끼로 일부를 남겨두고 연구실로 복귀할 생각이었다.

후퇴를 염두에 둔 작업.

아레나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도미닉은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곧 막바지다.”

도미닉은 책을 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 * *

키아아아아아―!

코앞까지 들려오는 괴성.

엘튼을 향해 정지 신호를 보냈다.

나무를 타고 숲 위를 빠르게 이동 중이었는데, 스쳐 가는 나뭇가지 아래로 어지러운 기척들이 느껴졌다.

키메라 떼 사이로 사람들은 혼이 나간 듯 도망치고 있었다.

“고, 괴물…!”

“이것들 뭐야! 갑자기 어디…… 아악!!!!”

거칠게 날뛰며 눈에 보이는 인간들을 낚아채 가는 키메라들.

인간보다 키메라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보니, 잡히는 건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이제 어쩔 거지?”

“뭐가?”

“목적이 있을 거 아니야.”

“목적이라, 있긴 있지. 따라와.”

일단 산채로 가볼 생각이다.

산채 주변에 도착한 우리는 나무 위에 숨어 주변을 둘러봤다.

숲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엄청난 인파가 보였다.

2천? 3천?

저번의 도적 떼보다 훨씬 더 많은 수 같았다. 칼의 말처럼 도미닉이 닥치는 대로 인간들을 잡아 온 모양.

도망치는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주변인들을 미끼로 삼았다.

함께 달리는 일행을 넘어트렸고, 무기로 동료들의 다리를 찔렀으며, 약해 보이는 이들에게 돌을 던져 멈추게 했다.

역시나, 정의는 없다.

가장 먼저 잡혀서 끌려간 이들은 약한 자들이었다.

이전이라면 씁쓸한 마음으로 그 광경을 바라봤을 거다.

필요했다면 도움을 줬을지도.

하지만 이젠 상황을 맞춰가며 받아들이는 태도가 생겼다.

난 잡혀서 끌려가는 인간들의 뒤를 쫓았다. 그 모습에 엘튼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져왔다.

“설마 구하려고?”

“아니.”

전부 구할 수도 없을뿐더러, 저들의 구출은 내 생존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그럼 왜?”

“키메라들이 벗어나는 장면을 보려고.”

“마법진 밖으로 말인가?”

“그래. 본 적 있어?”

엘튼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그가 한 곳을 가리켰다.

결계 끝에 다다른 키메라들이 보였다. 키메라들은 잠시 멈춰서 붙잡은 사냥감을 한입에 꿀꺽 삼켰다.

그러곤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거짓말처럼 허공에서 사라지는 키메라들.

방향 없이 경계 어디서든 똑같은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내가 미간을 좁힌 채 엘튼을 바라보자, 그가 말을 이었다.

“우리도 저곳으로 몸을 날려봤지만, 공간만 바뀔 뿐 나갈 수 없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슬라임에게 잡아먹혀서 죽을 뻔했지.

하지만 키메라는 마법진 바깥으로 사라지는 것 같았다.

“특징이 있다.”

“특징?”

“하나같이 잡은 이들을 삼킨 후 사라진다는 거다.”

“결국, 입구가 아닌 키메라가 마법진 바깥으로 나가는 매개체라는 거네.”

키메라와 우리 사이의 차이가 뭘까.

며칠 전에 마석을 들고 경계를 넘어본 적이 있는데, 실패했다.

마석과는 상관없다는 뜻.

고민도 잠시, 나무 바로 아래쪽에서 이족 보행으로 어슬렁거리는 놀 세 마리를 발견했다. 아니, 놀을 닮은 키메라였다. 양쪽 팔에 각기 다른 몬스터 팔이 붙어 있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소형 키메라는 대부분 놀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라웁 숲 전역에 놀의 개체 수가 가장 많기에 그런 것 같았다.

‘슬슬 간을 봐볼까.’

내 목적은 거대 키메라를 잡아 보랏빛 마석을 수집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어디 실력 좀 보자.’

불꽃검 엘튼.

그의 실력을 직접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난 엘튼을 바라보며 수신호를 보냈다. 놀들을 공격하라는 신호.

그 신호에 엘튼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나한테 명령하지 마라.”

“칼이 마석에 관심이 있는 것 같던데, 아니야?”

“…….”

내 미소에 엘튼은 인상을 구기곤 단검을 꺼내 들었다. 그러곤 날렵하게 나무 밑으로 몸을 던졌다.

엘튼이 움직인 순간, 난 석궁을 꺼내 볼트를 장전했다.

그러곤 엘튼이 막 교전을 시작하기 직전에 방아쇠를 당겼다.

퉁―!

끼에에에에에엑!

볼트에 맞은 놀 키메라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 비명에 숲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키메라들이 몰려온다.

엘튼은 기습으로 한 마리를 태워 죽인 후 나를 올려다보며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미친 짓이냐는 시선이었다.

난 그런 그를 향해 수신호를 날려줬다.

‘버텨.’

“이 미친 새끼가!!!”

그냥 테스트하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아서 말이지.

엘튼 같은 강력한 미끼가 있으면 사냥은 배로 쉬워진다.

‘화내려면 칼에게 화내라고. 그한테 배운 거니까.’

나뭇잎 사이에서 기척을 죽인 뒤 날카로운 눈빛으로 한곳을 응시했다.

멀찍이서 유독 크게 흔들리는 숲 방향.

거대한 놈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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