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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에게서 살아남는 법-59화 (59/130)

59화 쌍둥이 잭과 하우엘 형제

자작은 골동품 창고에서 나뒹굴고 있는 낡은 지팡이를 떠올렸다.

어제 오찬을 함께 하고 골동품에 흥미를 보여 구경을 시켜줬는데, 블라이어 성주는 골동품 중 유독 그 지팡이에 관심을 보였다.

그땐 내키지 않아서 지팡이를 팔지 않았는데, 그 지팡이를 밀 2천 포대와 맞바꾸자고?

자작으로 속으로 비웃음을 흘렸다.

‘멍청한 놈.’

농부 하나가 밭을 갈다가 발견한 골동품인데, 밀 다섯 포대를 포상금으로 퉁친 물건이었다.

마탑에서 마법사들을 초빙해 여러 차례 감정을 해봤는데, 2천 포대는커녕 백 포대의 가치도 없는 물건이었다.

혹여 마음이 바뀔까, 자작은 손을 내밀었다.

“그대의 부탁이니, 더는 거절이 힘들군. 거래하지.”

순간, 카멜의 검은 눈동자가 번뜩이며 빛을 발했다. 그는 조용히 자작의 손을 맞잡았다.

거래 성립이었다.

잠시 후, 자리를 털고 나가려던 카멜은 잠시 멈칫하더니 자작을 돌아봤다.

“어젯밤, 방으로 보내주신 여인들을 데려가도 되겠습니까?”

“여인들? 시중을 거부했다고 들었는데?”

“갑자기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대가는 충분히 지불하겠습니다.”

“됐네. 그 정도는 거래 선물로 줄 수 있지. 영지로 돌아갈 텐가?”

“하루 정도 휴식을 취하고 떠날 생각입니다.”

“집사에게 말해놓도록 하지.”

카멜은 고개를 끄덕이곤 방을 나왔다.

그 뒷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자작은 천천히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카멜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자작은 와인을 음미하며 조소를 지었다.

“어리석은 놈, 네놈이 포기한 마석으로 곧 네 영지를 짓밟아주마.”

오늘 획득한 마석으로 잃은 기사들을 보충할 수 있는 자신과 달리 정예병 2천을 잃은 블라이어는 한동안 전쟁은 꿈도 꾸지 못할 터였다.

‘예산이 빠듯해 보였으니까.’

전력을 더 벌린 뒤 그 약점을 물고 늘어진다면 큰 기회가 찾아올지 모른다.

자작의 머릿속에 블라이어 영토를 손에 넣은 달콤한 상상이 그려졌다.

* * *

카멜은 리옹과 함께 복도를 거닐었다.

적막한 통로를 단둘이 걷게 됐을 때 카멜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상단주들은 모두 호출했나?”

“별관에 모여 있을 겁니다.”

“지시한 작업은?”

“주군의 지시에 상단주들이 따를 수밖에 없도록 작업해놨다고 렌구아가 자신하더군요.”

“좋아.”

별관에 모인 상단주들은 에토르 내에서 대규모 식량을 취급하는 대상인들이었다.

자작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에토르에 유통 중인 곡물들을 천천히 블라이어로 수송시킬 계획이었다.

한 달쯤 식량에 압박을 받을 정도로 말이다.

“지금쯤 마석을 이득을 봤다고 시시덕거리고 있겠지?”

“그럴 겁니다.”

“멍청한 늙은이, 조금 전 목숨줄을 내놓은 것도 모를 테지.”

식량은 전쟁의 중요한 자원이다.

특히, 성 안에서 농성을 하며 버틸 때는 더더욱 중요했다.

방금 전 거래로 에토르는 장기간 공성이 불가능하게 됐다. 게다가 추후 마석의 부작용까지 자세히 알게 된다면 크게 당했다는 걸 깨닫게 될 테지.

‘숨통을 조일 준비는 끝났고.’

톰자엘 자작은 늙은 너구리다.

그런 자를 속이기 위해선 큰 제물이 필요했고, 카멜은 토벌에서 정예병 2천을 키메라 먹이로 던져줬다.

정예병 2천이면 전쟁의 승패를 좌지우지할 큰 병력.

큰 타격을 입은 블라이어가 전쟁을 먼저 일으킬 것이라 상상조차 못 할 것이다.

다만, 실제로 자작이 알고 있는 정예병은 오십 명도 안 되는 소수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단기간 훈련시킨 농노병이었는데, 전원 값비싼 장비들을 걸친 탓에 누구도 2천 병력이 정예병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크게 손해 본 것은 값비싼 2천 명 분량의 장비뿐.

하지만 금광 개발이 끝난 카멜에겐 그 정도 손해는 별것 아니었다.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내가 말인가?”

붉은 카펫을 걷는 카멜의 표정은 무표정했다. 조금 전 자작을 상대했던 거짓 미소와 상반된 표정.

하지만 주군 곁에 늘 머물던 리옹은 주군의 미묘한 변화를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었다.

“예상치도 못했던 물건을 손에 넣었거든.”

“밀 2천 포대와 맞바꾼 물건 말입니까?”

“밀 2천 포대를 포기하고 그 지팡이를 얻을 수 있다면 백배 남은 장사지.”

백배라면 밀 20만 포대의 가치다.

리옹은 순간 호기심이 들었다.

“그 지팡이가 뭡니까?”

“주술사들의 둥지에 큰 힘이 될 물건. 렌구아의 전력이 두 배 이상 늘어날 거다.”

“…두 배 이상 말입니까?”

리옹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렌구아의 전력이 두 배 이상 늘어난다면 자신이 이끄는 친위대조차 위협적이었기 때문이다.

고작 하나의 물건이 그 정도 파급력을 일으킬 수 있으면 보통 물건이 아닐 터였다.

‘기대도 안 했는데 쓸만한 고대 아티팩트를 찾았어.’

전쟁 때 유출이 된 건가?

과거 에토르 영지를 손에 넣었을 땐 발견하지 못했던 물건이었다.

블러드 오크 지팡이(Blood Orc Staff).

훗날 블랙 마켓에 경매로 처음 모습을 드러낸 물건이었는데, 설마 에토르 자작의 골동품 창고에 잠들어 있을 줄은 몰랐다.

블러드 오크의 지팡이는 백 마리의 오크 피를 한데 모아 보름 정도 담가두면 봉인이 풀리는데, 고대 시절 오크 대샤먼이 사용하던 주술사의 지팡이로 알려져 있었다.

주술 효과는 격노(rage).

병사들을 일순간 광전사로 만드는 피의 폭주를 일으킬 수 있었다.

‘주술사 도네콜린트를 대체할 물건을 찾아서 다행이야.’

도네콜린트의 능력인 ‘세이렌의 비명’은 카멜이 앞으로 정복 전쟁을 이끌어가는데, 꼭 필요한 능력이었다.

하지만 광의의 예언자를 통해 고대 문양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세이렌의 찬가라….’

세이렌의 ‘비명’이 ‘찬가’로 바뀌었다.

세이렌의 찬가는 과거 신명의 목록에서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내용이었다.

세이렌의 비명이 바뀐 것일까.

예측하기 어려웠다.

자신은 도네콜린트의 능력만 알고 있을 뿐, 능력 획득 경로에 대해선 듣지 못했으니까.

영입했다면 알 수 있었겠지만, 도네콜린트는 이젠 죽어버린 인간이었다.

즉, 세이렌의 찬가를 얻은 주인은 회귀자인 자신도 알지 못하는 인물이란 뜻이고, 카멜은 그 주인의 정체로 한 사람을 의심했다.

과거 시절에 나타나지 않았던 새로운 인물.

그리고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위협적인 존재.

‘그.’

카멜은 자신의 감을 믿었다.

‘그’라는 존재.

이 신명의 주인일지도 모른다. 아니더라도 신명의 주인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게 분명했다.

무엇보다 사라진 암살자놈의 흔적을 쫓아야 했다. 전달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그’와 가장 가까이 접해있는 미끼였으니까.

즉,

‘전달자와 신명의 주인, 이들을 찾는다면 ’그‘의 흔적을 잡을 수 있겠지.’

방법은 찾았지만, 토바른 내 자신의 영향력으로 언제 이들을 찾을 수 있을지 확신하기 힘들었다. 사방에 자신의 눈을 깔아놔야 한다.

‘영향력을 빠르게 넓혀야 해.’

카멜은 그 첫 단추로 에토르를 선택했다. 그가 톰자엘 자작을 직접 방문해 긴 시간 작업을 펼친 데에는 ‘그’에 대한 부담감이 자리했다.

‘놈은 앞날을 예측하는 능력을 지녔어.’

용아의 망토를 얻을 거란 사실을 편지로 써서 보냈다.

자신이 에토르 영지를 노리고 있을 거란 사실을 파악하고 있다면 방해를 할 게 분명했다.

다른 이는 몰라도, 미래를 예측하는 그가 방해를 시작하면 부담스럽다.

그럼 방법은 하나뿐이다.

‘대비할 시간을 주지 않은 것.’

미래를 알고 있어도, 전쟁 같은 큰 사건을 막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폭풍처럼 몰아쳐서 3개월 안에 전쟁을 끝내버릴 생각이었다.

본래 에토르 점령 계획은 8개월이었다. 그 절반도 안 되는 시간 안에 몰아친다면 아무리 ‘그’라도 막기 힘들 것이다.

‘무리하게 막으려다가 흔적을 드러낸다면 나야 좋은 일이지.’

운 좋게 ‘그’의 흔적이 드러난다면 전력을 풀어 죽일 생각이다. 그러려면 실력 좋은 사냥개들이 필요했다.

“쌍둥이는 수소문 해봤나?”

“잭과 하우엘 형제라면 위치 파악이 끝났습니다. 주군의 말씀처럼 에토르에 둥지를 틀고 있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주인이 직접 오라고 했겠지.”

“잡아 올까요?”

“아니. 직접 간다. 기사들을 다치게 할 순 없지.”

“그 정도입니까?”

카멜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곤 통로로 걸어갔다.

잭과 하우엘 형제는 카멜도 인정하는 사냥개들이다. 독과 암습, 살인 격투에 최적화된 살인귀들.

‘오르도르 숲의 마녀를 상대로 살아남은 녀석들이지.’

상황 판단도 뛰어나고, 영악하기도 해서 쓰임에 따라 리옹에 버금가는 말로 사용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 정도 가치를 지닌 녀석들이니, 자신이 직접 얼굴을 비추고 영입해야 했다.

붉은 카펫이 끝나자 별관으로 이어지는 긴 복도가 나타났다.

“상단주들을 만나시겠습니까?”

“쌍둥이들이 먼저다. 기다리라고 해.”

“알겠습니다.”

내성 출구에 도착했을 때, 에토르의 집사가 카멜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작의 지시를 받았는지, 공손히 예를 표한 집사는 곧 미모의 여인들을 카멜 앞에 데려왔다.

어젯밤 카멜을 시중하러 온 여인들이 한껏 치장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모두 네 명.

“여인들을 준비시켜 놨습니다.”

“자작께 감사하다고 전해.”

카멜은 그녀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다른 마차에 태우게 했다.

마차 앞에 선 카멜이 집사에게 물었다.

“지팡이는?”

“그거라면 떠날 때 드리려고 포장을 해 두었는데….”

“지금 가져와라.”

잠시 후, 시종들이 기다란 상자를 가져오자, 리옹이 직접 그 상자를 챙겨 카멜의 마차에 실었다.

“잠시 나갔다 오겠다.”

“목적지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떠나기 전에 에토르의 명소들을 잠시 둘러볼 생각이다. 받은 선물들도 풀어봐야지.”

“자작님께 그리 전하겠습니다.”

카멜이 여인들이 탄 마차를 가리키자, 집사는 고개를 숙이곤 물러났다.

카멜의 마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인들을 태운 마차를 시작으로 블라이어 기사들이 마차 행렬에 붙어 따라왔다.

마차 안에서 상자를 뜯어 지팡이를 확인한 카멜은 소파에 기댄 채 두 눈을 감았다.

이것으로 준비는 끝났다.

이젠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곧 시작인가?’

도미닉이 백 개의 심장을 얻게 되는 큰 전투가 곧 라웁 숲에서 벌어진다. 그 후 각성한 아레나 후아튼이 토바른 전 지역을 혼란으로 빠트리는 시기, 그 시기가 바로 최적의 전쟁 타이밍이었다.

‘변수는 없을 테지.’

자작의 방심을 불러오기 위해 도미닉의 키메라 군단을 이용했다.

처음부터 도미닉에게 큰 타격을 줄 생각은 없었다.

예상대로 아레나 후아튼은 괴물이었고, 그쪽으로 자작의 기사단을 밀어 넣었다. 변수라면 하루 정도 도미닉의 발목을 붙잡았다는 건데, 그 정도면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두두두두―

리옹은 쌍둥이들이 머무는 에토르의 빈민가로 말을 몰았다.

범죄자들의 뒷골목으로 유명한 빈민가, 하지만 기사단이 모습을 보이자, 빈민가는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 침묵 중심에 카멜이 마차에서 내렸다.

“쌍둥이들은?”

“저곳에 있을 겁니다.”

허름한 술집, 낡은 간판이 바람에 흔들리며 삐걱삐걱 소리를 냈다.

“주인이 왔다고 전해. 그리고 여인들을 데려와라.”

“그녀들을 어찌할 생각입니까?”

“사냥개들을 키우려면 먹이가 필요한 법이지.”

쌍둥이, 잭과 하우엘 형제.

그들은 돈과 여인에 미친 살인귀들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 두 가지를 원 없이 제공해줄 수 있는 존재였다.

‘그’를 떠올린 카멜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광의의 예언자를 통해 ‘그’의 흔적을 희미하게나마 찾게 됐다.

이젠 그 흔적을 쫓을 사냥개를 구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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