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도미닉 후아튼(2)
캉―!
허공에 불꽃이 튀며 단검이 튕겨 나왔다. 미간을 정확히 노렸는데, 허공에 생성된 보랏빛 배리어에 막힌 것이다.
잠시간의 대치, 도미닉은 안경을 고쳐 올리곤 고저 없는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누구십니까?”
“네 안식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
“전 당신을 모릅니다만, 이유가 궁금하군요.”
“넌 몰라서 사람들을 잡아다가 실험체로 썼냐? 이유 따윈 없어. 그냥 죽어.”
도미닉은 허공에 책을 펼쳤다.
내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황금빛을 잠시 응시하던 그가 나지막이 경고를 날렸다.
“이대로 돌아간다면 붙잡지 않겠습니다.”
“미치광이가 몸을 사리다니, 저 심장이 어지간히 신경 쓰이나 봐?”
“…….”
“그건 곤란해. 내 목적은 애초에 네 목숨이 아니거든.”
내가 심장을 바라보자, 도미닉의 뺨이 씰룩거렸다. 눈길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정을 드러낼 만큼 심장에 대한 집착이 대단해 보였다.
“주인이 정해진 심장입니다.”
“그게 바로 나야.”
역린을 건드린 것인지, 도미닉의 표정이 곧장 사납게 변했다.
“하찮은 피조물 따위가….”
“가식 덩어리 새끼. 이제야 본모습이 나오네.”
“인간 따위가 저 힘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 보나?”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난 달라!”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광기에 찬 확신을 드러내는 모습.
염원하던 순간을 내가 부정하고 있으니 열받은 모양인데, 너도 똑같거든?
도미닉이 심장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었다면 챕터1의 주인공은 학살자가 아니라 도미닉이 됐을 것이다. 토바른 지역을 집어삼키고, 엘레토르 성곽 너머에 자리한 대공에게 복수를 시도할 수 있었을 테지.
하지만 도미닉은 아레나를 각성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녀를 완벽히 통제하는 데는 실패했다.
‘폭주한 아레나의 광역기에 갈가리 찢겨나갔지.’
딸이란 존재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한 비참한 최후.
수천수만의 목숨을 유린한 악당에게 어울리는 죽음인데, 내가 나선 이상 그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다.
‘그 전에 죽을 테니까.’
쿠우웅―!
“이크!”
주변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전투로 바닥이 거칠게 출렁이자, 난 서둘러 공격에 들어갔다.
키메라 대 키메라.
아레나 대 펜리.
지금은 팽팽하게 전투가 대치 중이지만, 도미닉이 심장에게 빼앗긴 통제권을 찾아오면 상황은 순식간에 뒤집힌다.
그 전에 승부를 보든지, 견제하든지 해야 했다.
“어리석은!”
도미닉이 책에 손을 대자, 허공에 뜬 책이 붉은빛을 토해냈다. 그 빛에 노출된 주변 키메라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광기의 빛.
마석에 담긴 광기의 부작용을 증폭시킨 빛이었는데, 그 광기를 먹어 치우고 3성에 오른 내게 통할 리가 있나?
번쩍―
고대 문양이 붉은빛을 서서히 밀어내기 시작했다.
남은 단검은 두 개.
그중 하나를 다시 투척했다.
아무 기운도 실리지 않은 평범한 단검.
이번에도 배리어에 무력하게 튕겨 나가자 도미닉은 단검에 신경 쓰지 않고, 내게 붉은빛을 집중적으로 퍼부었다.
잠시 후, 도미닉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스치기만 해도 미쳐버리는 저주의 빛이 놈에겐 안 먹혔다. 키메라조차 지시를 내려도 물러나 버린다.
능력이 전혀 먹히지 않는 상대.
그의 뇌리에 ‘천적’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어디서 나타난 놈이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나타났는데, 하필 가장 중요한 타이밍에 일을 망치려 들었다.
위기감을 느낀 도미닉이 하늘 위로 손을 뻗었다.
퍼엉―!
“……?”
허공에서 폭발음이 터지더니 주변에 검은 비가 쏟아졌다.
피하기에는 범위가 너무 넓었다.
검은 비가 몸에 닿자 내 표정은 빠르게 굳어졌다.
‘키메라 체액?’
키메라 배 속을 경험해 봤기에 체액에 대해 모를 수가 없었다.
미믹을 사냥하기 위해 준비한 것을 나한테 써먹은 건가?
‘이건 골치 아픈데.’
체액은 성력으로 상쇄할 수 없었다. 마비 증상이 찾아오기 전에 상황을 끝낼 수 있을까?
검은 비를 뚫고 도미닉 앞에서 투척 자세를 잡았다.
마지막 단검.
그 모습에 도미닉이 같잖다는 표정으로 배리어를 생성했다. 체액에 노출됐으니, 버티기만 해도 상황이 끝날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를 지그시 깨물곤 단검을 던졌다.
도미닉은 마법사이지만, 마탑의 마법사처럼 대인 전투에 능한 인물이 아니었다.
연구에만 목적을 둔 마법이 대부분이라, 앞서 보인 능력처럼 고대 지식을 바탕으로 한 공격이 전부였다. 그랬기에 그는 항시 강력한 키메라들을 곁에 달고 다녔다.
하지만 지금 도미닉 주변에는 아레나도 키메라도 없었다.
그 말은 즉,
콰작―!
“……!”
눈앞의 배리어만 파괴하면 충분히 제거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두 번의 투척 페이크로 방심을 부르고, 세 번째에 진짜 이빨을 드러냈다.
번쩍―!
인챈트가 실린 단검이 배리어에 박혀 들었다.
부여된 속성은 성력.
예상대로 보랏빛 배리어는 성력에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
박힌 단검이 백광을 뿌리자, 배리어가 거칠게 꿀렁이며 단검을 뱉어내려고 했다.
빠르게 주먹을 움켜쥐고 단검 끝을 겨누었다. 주먹이 새하얗게 물들고,
콰아앙―!
전력으로 단검 끝을 후려치자, 배리어가 흔들리더니, 이내 종잇장처럼 깨졌다.
당황한 듯 두 눈을 부릅뜬 도미닉. 무방비가 된 그를 향해 석궁을 겨누었다.
“잡았다.”
“…….”
코앞에서 석궁을 겨누었는데, 도미닉의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처음으로 위험에 노출됐을 텐데, 위협받은 표정이 아니다.
난 그 이유를 잘 안다.
그를 겨냥하던 석궁은 내 시선을 따라 이동하더니 허공에 뜬 책을 겨누었다.
그 모습에 도미닉의 얼굴에 균열이 생겼다.
“아, 안 돼!”
“돼.”
투투퉁―!
성력이 깃든 세 발의 볼트가 두꺼운 책 표면을 꿰뚫었다. 꿰뚫린 책이 부르르 떨리더니 바닥에 툭 떨어졌다. 뚫린 구멍들 사이에서 핏물이 울컥 흘러나오더니, 바람 빠진 풍선처럼 책이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악―!!!!
도미닉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쭈글쭈글해진 책을 앞에 둔 채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도미닉이 보인다.
난 바닥에 떨어진 단검을 낚아채곤 그를 향해 벼락처럼 질주했다.
시체 바닥 위를 구르는 도미닉.
단검이 울음을 토해내며 백광으로 물들었고, 곧 비틀비틀 일어나는 도미닉의 턱으로 쇄도했다.
조금의 틈도 주지 않았다.
푹―!
“……컥!”
턱 밑으로 단검을 끝까지 밀어 넣고, 도미닉을 거칠게 자빠트렸다. 그러곤 한 손으로 박힌 검 자루를 붙잡고 다른 손으로 도미닉의 머리채를 움켜잡았다.
핏줄이 선 도미닉의 눈동자.
놈이 날 노려보며 손을 허우적거리자, 내 양손이 무참히 교차하며 도미닉의 목을 기괴한 각도로 꺾어버렸다.
우두둑―
목이 반쯤 뜯겨나갔다.
그것도 모자라 턱에서 단검을 뽑은 뒤 심장에 다시 박아 넣었다. 그 위로 성력을 퍼붓자 경련을 일으키던 도미닉이 이내 축 늘어졌다.
세 호흡 정도 안에 일어난 일.
눈 깜짝할 새에 도미닉을 처리했다.
후―
그제야 막힌 숨을 토해내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보랏빛 재 가루가 허공에 흩날리자, 책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책이 있던 자리엔 그을음만 남아 있었다. 재 가루가 되어 사라진 모양.
도미닉의 숨겨진 약점이 바로 책이었다.
‘책은 도미닉의 심장으로 만들어진 것이니까.’
쓰러트린 도미닉이 키메라란 뜻이고, 본체는 따로 있다는 의미였다. 책이 멀쩡히 존재하는 한, 그는 죽지 않았다.
한마디로 책만 없애면 되는 일인데, 이게 쉬운 일이냐.
‘불가능에 가깝지.’
수만에 이르는 키메라 떼를 뚫고, 호위로 있는 아레나를 물리친 후, 도미닉의 능력까지 파훼해야 했다.
“그래도 결국 해냈네.”
도미닉이 죽어서일까.
주변 분위기가 갑자기 어수선해졌다. 키메라들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무차별적으로 주변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통제권이 풀려서 벌어진 일인데, 더 혼란스러워지기 전에 심장을 손에 넣어야 했다.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응?”
순간, 불길한 감각이 온몸을 짓눌렀다.
갑자기 왜 이러지?
본능적으로 심장이 자리한 언덕을 올려다봤다.
막 동이 튼 하늘.
그런데 하늘을 비추는 햇살이 다른 빛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더 짙고 붉은 핏빛.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강렬하게 퍼지며 키메라 떼를 빠르게 집어삼켰다.
키아아아아악―!
키메라들의 움직임이 이상해졌다.
무차별적으로 움직이던 키메라들이 어느 순간부터 군집을 이루듯 뭉치기 시작했다. 분열하던 키메라들이 통일된 움직임을 보인다.
“이, 이런 빌어먹을!”
상황을 깨닫자 다급함이 올라왔다.
도미닉이 죽자, 심장이 그 빈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예측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바로 견제자의 부재.
도미닉의 제거만 생각했지, 도미닉의 부재 시 심장의 영향력이 어디까지 뻗칠지는 생각한 바가 없었다.
스토리에 전혀 없던 내용이니 당연했다.
‘그럼 아레나는?!’
아레나의 통제권이 심장에게 넘어갔다. 다급히 고개를 돌려 아레나 쪽 상황을 살폈다.
멀찍이서 펜리가 움직이는 게 보인다. 상황이 변하자 다급하게 내 쪽으로 오는 모습인데, 표정이 이상했다.
왜 저렇게 다급하게 날 바라보고 있는 거지?
“위험해!”
펜리의 외침이 터진 그 순간,
푹―
“…커억!”
아랫배에서 지진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밑을 내려다보니 피 묻은 손이 배를 뚫고 나와 있었다.
이 손은…… 아레나의 것이 아니다.
더 크고 투박했다.
“도, 도미닉?”
비틀거리며 고개를 돌리니, 목이 기괴하게 꺾인 도미닉이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서 있었다.
동시에 바닥의 사체들이 하나둘 움직이며 내게 기어왔다.
보는 것만으로 소름 돋는 광경.
“…미친.”
설마 죽은 키메라들까지 조종할 수 있는 건가?
심장의 영향력이 내 예측을 완전히 벗어났다.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근데, 몸이 어느 순간 움직여지지 않았다.
‘…체액.’
엎친 데 덮친 것처럼 마비 증상이 찾아왔다.
굳어 버린 몸 위로 도미닉의 손이 흐느적흐느적 움직였다. 심장에 박힌 단검을 뽑아내고 내 목을 노렸다.
“시, 시발… 쿨럭!”
죽는다.
이를 악물고 도미닉을 노려본 순간, 내 그림자가 꿀렁이며 펜리를 토해냈다.
“제길!”
스가가가각―!
욕설과 함께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들렸다.
흩날리는 황금빛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렸고, 머리카락이 천천히 내려앉았을 때 수십 조각으로 잘린 도미닉의 사체가 눈에 들어왔다.
기어오던 사체들마저 모조리 찢어버린 그녀가 다급히 날 바닥에 눕혔다.
상처를 살핀 펜리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하, 약해빠진 새끼.”
배에 주먹만 한 구멍이 생겼다.
핏물이 쉴 새 없이 솟구치는데 치사량을 넘어간 것 같았다.
“쓰지도 못할 포션을 왜 달라고 한 거야?”
그녀는 내 품을 뒤져 자신이 준 포션을 찾은 뒤 상처에 들이부었다. 상처가 빠르게 아물며 나아진 듯 보였지만, 출혈이 멈추지 않았다.
“너, 독까지 당한 거냐? 마비독 때문에 피가 안 멈춰.”
손가락에 힘이 빠진다.
호흡은 가빠지고, 얼굴도 새파랗게 질렸다.
당장 죽을 듯 상태가 나빠지자, 펜리의 표정이 처음으로 심각하게 굳어졌다.
그 순간,
우우웅―!
“……!”
내 가슴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왔다.
펜리는 가슴에 달린 검은 브로치에 집중했다. 욕심났던 보석이라 한눈에 그 물건이 뭔지 알 수 있었다.
베네타의 보물로 불리는 다크 로즈(Dark Rose).
도르네프가 몇 달간 공을 들여 제작한 축복받은 장신구였다. 그 축복이 상처를 감싸며 내 목숨을 잠시나마 붙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