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마녀와 강아지
도르타들은 곧장 대책에 들어갔다.
“북쪽 숲으로 심부름꾼들을 더 보내야 합니다.”
한 도르타의 의견에 장로 메데이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심부름꾼은 마녀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은 실력자를 뜻했다.
릴리와 케로스.
숲을 지키는 핵심 전력이 자리를 비웠으니, 북쪽의 감시 인원을 더 늘려야 했다.
오르도르 숲 북쪽은 대공 베르센 클라크의 영토와 닿아 있었다.
마녀사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마법사 집단.
숲 전력이 약화된 것을 알게 된다면 무슨 수작을 부릴 게 분명했다.
결계가 유지되는 1년 정도는 안전하겠지만, 릴리가 자리를 얼마나 비울지 모르니, 사전에 대비해야 했다.
“근데, 릴리는 왜 숲을 떠난 걸까요? 혼자 움직이는 걸 무척 싫어하는 아이인데.”
“마녀의 진리에 이유가 필요할까.”
마녀의 진리.
마녀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는 뜻이었다.
“엉뚱하고 고집스럽지만, 우리를 부모로 여기던 아이야. 말 잘 듣던 아이가 불현듯 떠난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마녀들을 붙여야 할까요?”
“줄곧 숲을 지키던 파수꾼이 그녀를 따라갔어. 그녀를 중심으로 어떤 운명이 점지(點指)된 거야. 지켜만 보고 모른 척하는 게 맞아.”
메데이아는 마녀 중 가장 오래 산 만큼 지혜롭고 경륜이 깊었다. 도르타들은 그녀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그럼 실력 좋은 심부름꾼을 보내 멀리서 지켜보게만 하겠습니다.”
마법사들이 움직일 수 있으니, 도르타들은 숲을 떠날 수 없었다. 이곳은 마녀들의 최후의 안식처. 절대 잃어선 안 됐다.
다시 금붙이 얘기가 나오려고 하자, 메데이아는 피곤하다는 핑계로 도르타들을 내쫓았다.
홀로 남은 자리, 그녀는 텅 비어버린 보석함을 내려놓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많을수록 좋다고 했더니, 아끼던 금가락지며 보석이며 돈이 될 만한 건 모조리 긁어갔다. 안 그래도 많은 주름이 하루 새 더 늘어난 것 같았다.
괘씸했지만, 한편으로 걱정이 되었다.
“큰일이 없어야 할 텐데….”
어린 시절 ‘마녀 대학살(witch slaughter)’을 경험한 릴리는 도르타의 손길 없이는 잠을 잘 자지 못했다.
해맑은 심성 안에 날카로운 비수를 품고 있는 아이.
보호자 없이 릴리가 바깥으로 나간 적은 처음이었다.
그녀의 눈부신 미모와 금붙이는 인간들의 탐욕을 부르기 충분했고, 그 탐욕이 많은 피를 부를까 우려되었다.
오르도르 숲의 마녀, 릴리 베이스.
숲에는 수많은 마녀가 존재하지만, 사람들은 오르도르 숲 하면 릴리 베이스를 떠올렸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잠재력을 지닌 마녀. 한창 성장 중임에도 도르타와 비견되는 실력을 지녔다.
모든 도르타가 릴리의 부모를 자처하는 이유가 뭐겠는가.
전 마녀들의 계파를 잇는 전무후무한 대(大)마녀란 뜻이었다.
세상이 그녀를 두려워하는 이유였다.
텅 빈 보석함에 미련을 버린 메데이아는 창가로 걸어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번뜩이던 예지가 이번만큼은 안개에 낀 듯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앞날을 몰라도 어떻게 흘러갈지는 예측할 수 있었다.
“두 맹수 새끼들이 숲 밖으로 풀려났으니, 한바탕 시끄러워지겠구나.”
특히, 파수꾼 케로스.
그 괴물이 본모습을 드러낸다면 그 지역이 큰 충격으로 출렁댈 것이다.
지하세계를 지키는 지옥의 파수견, 세 개의 머리를 지닌 케르베로스(Kerberos).
케로스는 그 케르베로스의 새끼였으니 말이다.
* * *
“댕댕, 맛있어?”
“멍!”
“흠….”
릴리는 뼈다귀를 물고 씹는 댕댕을 잠시 응시했다. 딱 봐도 너무 맛나게 먹는 모습이다.
꼬르륵―
배 속이 요동치자 릴리는 일단 뼈다귀를 잡고 댕댕처럼 물고 씹었다. 그러곤 울상을 지었다.
“…맛없어.”
“멍!”
“귀한 건 알겠는데, 맛없다고.”
숲속으로 뼈다귀를 휙 던지자, 댕댕은 배신당한 표정으로 릴리를 올려다보곤 후다닥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녀는 쭈그리고 앉아 땅에 좋아하는 음식들을 그렸다.
숲에서 나온 지 반나절밖에 안 됐는데 벌써 큰 위기가 찾아왔다.
배고픔을 생각지 못한 것이다.
때가 되면 마녀들이 식사를 가져왔으니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장로 할머니가 마녀가 아니라 공주처럼 산다고 타박을 하곤 했는데, 정말 그렇게 살았나 싶었다.
“힝, 배고파.”
홀로 나와보니 자신이 얼마나 편하게 살았는지 알 것 같았다.
다시 숲으로 돌아갈까.
잠시 갈등하고 있는데, 눈앞에 툭― 하고 무언가가 떨어졌다. 핏물 묻은 고깃덩어리였다. 그 짧은 순간 댕댕이가 사냥을 해온 모양이었다.
혀를 헥헥거리며 칭찬을 바라는 모습인데, 그녀는 마냥 좋아할 순 없었다.
“댕댕아, 날것을 먹으면 배탈 난다고.”
“멍!”
“넌 괜찮아도, 난 아니야.”
그것도 잠시, 댕댕이 입을 벌리자 입에서 검은 불이 훅― 뿜어져 나왔다. 고기와 함께 바닥이 새까맣게 타며 연기가 타올랐다.
“…….”
릴리가 익은 고기를 살짝 집어 들었는데, 겉은 바싹, 속은 촉촉이 아닌 겉은 바짝 타고 속은 핏물이 배어 나오자 다시 울상을 지었다.
장로가 거짓말을 했다. 돈이 많으면 뭐든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곳에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일단 인적이 없어서 돈을 쓸 곳이 없었다.
토바른 지역과 맞닿은 경계 같은데, 나무 꼭대기에서 주변을 둘러봐도 성곽은커녕 그림자도 안 보였다.
주술을 쓸까 고민했지만, 주술을 감지하고 도르타들이 찾아올 수 있는 거리라 꾹 참고 있었다.
엘레토르 성곽까지 걸어서 얼마나 더 걸릴지 모르는 상황.
턱을 괸 채 엉망으로 구워진 고기를 잠시 바라보던 그녀는 결심한 듯 탄 고기를 집어 들었다.
배고픈 건 익숙지 않아서 힘들었다.
한숨을 내쉬며 검게 탄 껍질을 벗기려는데, 댕댕이 귀를 쫑긋하더니 고개를 휙 돌렸다.
“댕댕, 뭐야?”
“멍.”
“사람?”
잠시 후, 댕댕의 시선이 닿은 곳에서 중저음의 사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자? 개도 한 마리 있고.”
“내가 뭐라고 했어. 연기가 피어오른다고 했잖아.”
“월척이었으면 좋겠는데.”
사냥꾼 복장을 한 사내들이 우거진 넝쿨 사이로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머릿수가 열 명으로 상당했다.
그들의 무장은 활을 포함해 다양한 장비들로 구색을 갖췄는데, 기세를 보니 상당한 실력자들로 보였다.
릴리는 악취에 인상을 찡그리곤 코를 틀어막았다. 피 냄새가 지독한 인간들이었다.
다짜고짜 릴리에게 성큼 다가온 사내들은 그녀의 챙을 거칠게 들췄다.
“……!”
흘러내리는 흑발, 그 사이로 드러난 백옥 같은 미모에 사냥꾼들은 멈칫했다. 잠시간의 침묵, 곧 그들의 얼굴 위로 흥분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거 신이 도우신 날인가?”
“월척이 아니라 고래가 잡혔어. 크크크.”
노예 사냥꾼으로 활동하면서, 아니 태어나서 처음 보는 엄청난 미녀였다. 그녀의 얼굴을 살펴보며 남은 사냥꾼들이 한마디씩 했다.
“……잘 팔면 인생 끝나겠는데?”
“노예 상인에게 팔면 골드로 천 단위, 아니 만 단위는 받겠어.”
“근데 복장이… 마녀 아니야?”
“마녀 복장을 한 년이겠지. 숲으로 도망치려면 마녀 행세라도 해야 생존 확률이 올라가니까.”
“용케 마녀 복장을 구했네.”
“도망치는 귀족이 뭘 못 구하겠어.”
노예 사냥꾼들은 현재 오르도르 숲으로 도망치려는 귀족들을 추적하고 있었다.
전부 블라이어의 귀족들로, 카멜 성주를 적대하는 핵심 귀족들이었다. 전(前)대 기사 단장이었던 록터 펠리스의 세력을 숙청 중이었는데, 구석까지 내몰린 귀족들이 도망칠 곳이 마땅치 않자, 엘레토르 성곽을 넘은 것이었다.
카멜은 군대를 보내는 대신, 노예 사냥꾼들을 고용해 척살을 지시했다.
“딱 봐도 귀족이지? 블라이어 출신 영애인가? 이 정도 미모면 소문이 났을 텐데?”
“뭔 상관이야. 척살령이 떨어졌는데, 목만 가져가면 되는 거 아니야?”
“그 카멜이란 성주도 멍청한 놈이네. 이 정도 미인이면 취할 것이지, 왜 모조리 죽이는 거야?”
“그 덕에 우리에게 기회가 왔잖아.”
사냥꾼들은 눈빛을 주고받곤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릴리를 본 사냥꾼들의 눈동자엔 끈적한 욕정이 담겨 있었다.
사내라면 참을 수 없는 매혹적인 아름다움.
이미 잡은 먹잇감을 어떻게 요리하든 그건 사냥꾼 마음이었다.
“아, 첫 만남부터 더럽네.”
릴리는 저 시선들에 익숙했다.
10년 전 마녀 대학살 당시에도 수없이 느껴본 역겨움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표정이 서늘하게 굳기 시작했다.
잠시 후, 사냥꾼들이 그녀를 에워싸자, 릴리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 먹을 거 있나요?”
“굶주렸나 보지? 먹을 게 필요해?”
“네. 많이 필요해요.”
“먹을 거야 원 없이 줄 수 있지. 우리가 시키는 대로만 한다면?”
“내가 뭘 하면 되죠?”
“그 펑퍼짐한 로브부터 벗어. 몸매를 볼 수가 없잖아?”
사냥꾼들이 조롱을 날리며 낄낄 웃자, 릴리는 모자를 꾹 눌러쓰곤 나직이 입을 열었다. 더는 말을 섞는 게 무의미했다.
“케로스.”
“멍!”
“태우진 말아. 음식이 타면 곤란하니까.”
그녀의 말이 끝나자, 작은 강아지가 폴짝 뛰더니 사냥꾼 무리를 향해 달려왔다.
사냥꾼들은 달려오는 강아지를 보며 배를 잡고 웃었다. 일부는 활을 꺼내 시위를 당겼고, 사냥꾼의 리더는 히죽 웃으며 바지춤을 풀었다.
“미친년에겐 약이 최고지.”
바지를 훌렁 벗어 던지며 여인에게 다가갔다. 자신들밖에 없으니 알몸이든 뭐든 상관없다는 표정이었다.
낄낄거리며 남은 속옷마저 벗으려고 하는데, 주변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웃음이 갑자기 뚝 멈췄다.
이상함에 동료들을 돌아보니, 사냥꾼들이 새파랗게 질린 채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뭐야?”
시선을 다시 돌리자, 거대한 그림자가 그를 삽시간에 집어삼켰다. 그의 시선이 서서히 위를 향했다. 동시에 경악으로 물드는 눈동자.
“무, 뭐!?”
검은 털 괴물?
거기까지 생각이 떠올랐을 때,
콰직―!
거대한 발이 그를 짓밟으며 지나갔다. 그에게 남은 건 짓이겨진 핏덩어리뿐이었다. 학살이 시작됐다.
“…괴물! 아아악!!!”
“사, 살려줘!”
인적 없는 숲에 비명이 메아리처럼 터져 나왔다.
릴리는 비명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첫 번째로 죽은 사냥꾼의 시신은 무시하고 그 주변에 떨어진 배낭만 챙겼다.
끔찍한 시신의 모습에도, 눈앞에서 죽어 나가는 사냥꾼의 몰골에도 그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약하면 죽는다.
죽으면 빼앗긴다.
빼앗기지 않으려면 강해져야 한다.
강해지려면 죽이고 빼앗아야 한다.
릴리가 마녀 대학살 때 얻은 배움이고, 마녀가 이 세계에서 살아남은 법이었다.
착한 마녀, 멍청한 마녀는 용서할 수 있지만, 약한 마녀는 용서할 수 없었다. 10년 전에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강해지려면 죽음과 친해져야 했다.
지금처럼.
비명이 뚝 멈추자 물건을 챙기던 릴리가 허리를 꼿꼿이 폈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시신들이 주변에 널브러져 있었다. 거대한 족적과 함께 밟혀 죽은 흔적.
생존자는 없었다.
“댕댕.”
릴리의 부름에 저 멀리 숲에서 작은 강아지가 튀어나왔다. 댕댕이 다리 사이로 다가와 얼굴을 비비자, 릴리는 그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얼른 튀자, 할머니가 우리를 잡으러 올지도 몰라.”
“멍!”
“그치? 할머니는 너도 무섭지? 자, 입 벌려.”
릴리는 댕댕의 입 속으로 주운 배낭들을 욱여넣고는 사냥꾼들이 나타난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입엔 달콤한 쿠키가 물려 있었는데, 사냥꾼의 배낭에서 막 꺼낸 것으로 보였다. 단것이 들어가니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멍!”
“안 돼. 넌 뼈다귀가 있잖아. 쿠키는 내 거라고. …뭐? 삐지겠다고? 음, 그럼 도시에 도착하면 먹고 싶은 거 사줄게. 어디로 가냐고?”
댕댕을 응시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린 것도 잠시, 릴리는 저 너머 지평선 위로 흐릿하게 비춘 드넓은 성곽을 응시했다.
엘레토르 성곽이다.
그녀는 성곽을 가리키며 외쳤다.
“블라이어! 블라이어로 갈 거야!”
블라이어를 떠올린 이유는 하나였다.
그녀가 아는 도시는 조금 전 사냥꾼들에게 들은 블라이어가 전부였으니까.
그렇게 한 마녀와 강아지가 토바른 지역에 발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