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당에게서 살아남는 법-80화 (80/130)

80화 왜 후광이…….

후비적―

어떤 놈이 날 씹고 있는 모양이었다.

귀를 후빈 새끼손가락을 후― 불곤 빵빵해진 배를 툭툭 두드렸다.

첫 시식 기념으로 펜케이크 가게 영업을 조기 종료시켰다.

레토니칼스의 심장을 얻고 난 후 큰 변화가 찾아왔는데, 그게 바로 식탐이었다.

먹는 양이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늘었고, 먹어도 먹어도 배 터져 죽을 것 같은 포만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굶주린 아귀가 된 것 같달까.

다행이라면 첫날 빼곤 이성을 잃은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배부르고 등 따시고, 이게 행복이지.”

소화나 시킬 겸 개인 훈련장 바닥에 뒹굴뒹굴하며 독서 삼매경에 빠졌다.

정오쯤 시작한 독서인데, 내용에 몰입하다 보니 주변이 어둑해지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연구 일지가 있어서 다행이네.”

탁―

난 일지를 덮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도미닉의 일지를 살핀 이유는 심장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도미닉이 신(新)동력 원천이라 칭했던 레토니칼스의 심장.

그는 긴 시간 동안 크리스탈 미믹을 연구하면서 동력 원천의 정보를 유추해서 적어놨는데 무척 흥미로웠다.

‘마석 생산, 불멸에 가까운 생명력, 체력 회복, 상처 재생.’

그리고 그 에너지원을 ‘식탐’을 통해 얻는다고 적혀 있었다. 식탐은 레토니칼스의 심장에 빼놓을 수 핵심 요인이란 의미였다.

‘석 달 동안 고갈된 에너지를 채우기 위해 내 이성을 잠시 잠식할 정도로 말이지.’

미믹도 다르지 않았다.

일부로 먹이를 고갈시키니, 바로 공격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적혀 있었다.

잠식의 부작용인데, 도미닉은 이 부작용을 제거하기 위해 아레나에게 ‘영혼 박탈’을 시술했다.

잠식할 영혼 자체를 지워버리는 것.

아레나를 인형으로 만들어 심장을 동력 원천으로만 써먹으려는 의도였는데, 이 방식은 완벽히 빗나갔다.

심장은 키메라 군단을 통제하려고 했고, 아레나를 조종해 스스로를 삼키게 했다.

난 아레나의 신명을 떠올렸다.

‘불사자 레토니칼스의 분신체(分身體).’

분신체란 한 주체에서 갈라져 나온 존재를 말한다.

만약 레토니칼스의 분신체가 완성됐다면 아레나는 어떤 존재로 재탄생됐을까?

심장엔 분명 자의식이 존재했다.

“…괜시리 쫄리네.”

가슴을 만지작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심장에 자의식이라니 갑자기 불안해졌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이 알게 된 정보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베르센 클라크란 인물이었다.

‘어지간히 죽이고 싶었나 보네.’

일지 절반가량이 클라크 대공에 대한 저주로 채워져 있었다.

나도 베르센 대공에 대해 알고 있지만, 지금은 굳이 떠올리지 않았다.

그는 소설 ‘악당들이 강해지면 벌어지는 일’의 챕터 II, 오르도르의 숲과 관련된 두 번째 악당 주인공으로 등장하니 말이다. 릴리 베이스가 숲을 지키는 한, 토바른 지역에서 베르센 대공과 엮일 일은 없을 것이다.

가방 안에 일지를 넣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당장 조심해야 할 건 한 가지 정도인가?”

배불리 먹는 것.

굶주리면 심장이 잠식을 시도할 수 있다.

다만, 이 정도 리스크는 거의 없는 것과 같았다.

내가 굶주릴 일이 있으려나?

차라리 다른 부작용을 찾는 게 더 빠를 것 같았다.

어둡다.

식탁 옆에 가방을 내려놓고 등잔에 불을 붙였다.

흐릿한 공간 사이.

난 잠시 두 눈을 감고 가만히 서 있었다.

온몸을 이완시키고 두 팔을 늘어트렸다.

잠시 후, 눈을 뜬 난 바닥에 돌멩이를 줍고는 천장 세 곳을 향해 돌을 던졌다.

탕― 탕― 탕―

천장 군데군데 돌들이 부딪쳤다가 떨어졌다.

돌이 부딪친 지붕 위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리자, 씨익 웃었다.

정확히 세 명.

은신해 있던 검은 장미의 위치를 잡아낸 것이었다.

“자, 잡히신 분 1골드씩 내놔요.”

“…….”

대답은 없었지만, 천장에서 반짝이는 금화가 툭툭툭 떨어졌다.

모두 3골드.

넬라 때문인지 의외로 쉽게 친해져서, 이틀 전부터 술래잡기 내기를 시작했는데, 슬슬 그만둘 때가 된 것 같았다.

계약서란 블랙 카드가 생긴 이상, 더는 금화에 목맬 필요가 없어졌고,

‘이젠 다 보이거든.’

미약하게 잡혔던 기척들이 어젯밤부턴 선명히 머릿속에 그려졌다.

석 달 동안 멈춰있던 육체가 갈무리되어 활력을 되찾는 순간 마나의 흐름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

어젯밤, 난 4성에 올랐다.

조금 허탈하기도 했다.

알다시피, 이 몸뚱이의 마나 감응력은 쓰레기 수준이다. 적어도 반년 안에 4성은 무리라 판단했는데, 레토니칼스의 심장은 쓰레기 같은 감응력을 무시하고 각성의 벽을 뚫어버렸다.

이 세계에 발 들인 지 1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5성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괴물 같은 성장력은 분명한데…….’

카멜 블레이저, 도미닉 후아튼 같이 챕터Ⅰ에 등장하는 주요 악당들을 다 거치면서 살아남았다.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로 못 할 것 같았다.

제발 이제 꽃길만 걷고 싶었다.

스스스―

지붕 위 미끄러지는 소리.

다시 포지션을 바꾼 모양인데, 난 바뀐 장소에 시선을 두곤 피식 웃었다.

날 감시하기보단 이 주변을 감시하는 검은 장미들인데, 술래잡기가 무료했던 저들의 승부욕을 불태웠나보다.

검은 장미들이 귀엽게 느껴질 날이 오다니.

[10분이다.]

넬리토리 협곡에서 처음 만났을 땐 절대 넘지 못할 벽처럼 느껴졌는데, 살아남으면서 나도 성장한 것 같았다.

주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찾았다.

그래도 돈은 없는 것보단 있는 게 좋았다. 꽁돈을 마다할 내가 아니었다.

한 번 져주고, 두 번 이기는 짤짤이 패턴.

야금야금 장미들의 금화를 갈취하고 있는데, 종업원이 찾아와 소식을 전했다.

“둘이 또 무슨 작당을 하려고 그러는 거야?”

토바른의 정보에 밝은 넬라에게 바깥 정보를 얻기 위해 만남을 요청했는데, 펜리와의 자리가 길어지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 중이길래 늦은 저녁까지 끝나지 않은 거지?

“내 욕하는 거 아니야?”

다시 귀를 후비곤 종업원에게 1골드를 팁으로 던져줬다. 줄곧 뻣뻣하게 굴던 종업원의 허리가 직각으로 굽었다.

이게 돈의 위대함인가.

짤짤이를 더 하고 싶은데, 욕심부리다간 호구들이 눈치챌 수 있었다.

펜리와 헤어지면 곧장 이리로 온다고 했으니, 넬라가 오기 전까지 기운 적응 훈련이나 할 생각이었다.

스르릉―

훈련장에 비치된 검을 꺼내 들었다.

팔 길이 정도의 두꺼운 검날을 지녔는데 나무에 철을 씌운 것이라 무게는 가벼운 편에 속했다.

참고로 난 검술을 모른다.

검술을 훈련하려고 잡은 게 아니라는 뜻.

몇 차례 검을 휘두르곤 지붕을 올려다봤다.

“이번에 잡히면 다음 교대자가 올 동안 자리를 비우는 것으로 하죠.”

“…….”

“쫄리면 말고요.”

“네 녀석이 진다면?”

“한 명당 2골드.”

“좋다.”

승부욕을 살살 건드리자, 바로 미끼를 물었다.

장미들은 내 실력을 어떻게 생각할까.

절대 4성으로 생각지 않을 것이다.

넬리토리 협곡에서 알려진 내 실력은 고작 1성에 불과했으니까.

잠시 후 벌어진 내기는 당연히 내 승리.

이쯤 되면 눈치챌 법도 한데 눈치가 없는 건지, 인정하기 싫은 건지 승부욕만 불타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주변 기척을 살핀 난 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장미들을 멀찍이 보내버린 이유는 기운 적응 훈련이 인첸트였기 때문이다.

이곳은 검은 장미의 본진이다. 즉, 그들의 눈만 피하면 다른 이들의 시선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우우웅―!

두터운 검날 위로 새하얀 빛이 씌워지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거칠고 컨트롤이 힘들다.

관통의 기운을 서서히 늘려갔는데, 그것도 잠시,

쩌저저적―!

“……!”

검날이 기운을 버티지 못했다.

겉면에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콰작―! 터지며 부러져 나갔다. 짧게 혀를 차며 다른 검을 집어 들었다.

“쉽지 않네.”

4성에 오르면서 마나의 질이 짙어졌는데, 평범한 쇠붙이는 그 기운을 버티지 못했다.

참고로 지금 내 수중엔 무기가 하나도 없었다.

자주 애용하던 크룩스 단검들도 기운 적응 훈련 도중 부러져 나갔기 때문이다.

“아티팩트급 장비를 생각할 때가 오긴 했는데.”

펜리의 전용 무기, 먹빛을 띤 두 쌍의 크로우가 떠올랐다.

미친 절삭력을 지닌 고대 아티팩트 장비.

그 정도 최상급 장비를 바란 것은 아니지만, 인첸트를 버틸 정도의 무기가 필요한 건 사실이었다.

“조만간 도르네프를 만나러 가야겠어.”

대장장이의 정원에는 드로네프 가문이 예부터 수집해온 여러 가지 장비들이 잠들어 있다고 들었다. 드워프가 수집한 장비인 만큼 기대가 되는 건 사실이었다.

카장―!

“윽!”

또 파괴됐다.

주변을 둘러보니 부러진 무구 조각이 너부러져 있었다.

넬라가 보면 또 잔소리를 퍼부으며 손해배상을 청구하겠지만, 이젠 무섭지 않았다.

내겐 블랙 카드가 있었으니까.

“돈 걱정 없이 사는 게 이런 맛이구나.”

“무슨 맛인데? 매운맛 좀 보여줄까?”

“…헉!”

갑작스런 목소리에 허둥지둥 뒤를 돌아봤다.

엉덩이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감촉.

고개를 돌리니 허공을 주물럭거리는 손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이 어두워 얼굴이 흐릿했는데, 단박에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이 변태 엘프 년의 손버릇은 여전했다.

“뭐, 뭡니까!?”

내 외침에 그녀는 대답 대신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 엉덩이 탄력이 왜 이래?”

“제 엉덩이가 어때서요?”

“전보다 강해진 느낌인데?”

“…그런 것도 알 수 있습니까?”

“많이 만져보면 알아.”

어지럽다.

설마 엉덩이 탄력으로 실력을 가늠하는 거냐? 장미들이 갑자기 불쌍해졌다.

더 무서운 건 정확하다는 거다.

내가 부정을 하지 않자, 펜리는 씨익 웃고는 손가락 하나를 폈다.

“큰 빚에 빚이 하나 더 늘었네?”

“…….”

무서운 년이 상황 파악도 빨랐다.

심장 덕에 강해진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녀의 얼굴 그림자가 너부러진 장비 잔해들을 살핀 후 창고 주변을 둘러봤다.

“애들 다 어디 갔어?”

“…….”

“아니, 상관없으려나? 어차피 다 보내려고 했으니까.”

펜리가 어둠을 뚫고 다가왔다.

어째 느낌이 싸했다.

넬라가 오기로 했는데, 그녀가 대신 왔다.

펜리가 블랙마켓에서 어떤 정보를 얻어왔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그녀에게 직접 듣고 싶진 않았다. 먼 길 다녀왔으면 쉴 일이지 왜 이리 부지런해?

투덜거림도 잠시, 그녀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난 두 눈을 깜빡여야 했다.

“……응?”

“왜? 내 얼굴에 뭐 묻었냐?”

“아니, 그게…….”

볼륨감 넘치는 몸매.

그 위로 흘러내린 부드러운 금발.

성깔 있어 보이는 눈매까진 전과 똑같았다.

근데, 내 눈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조금 전 만났을 땐 별천지로 꾸며진 5층 VIP실이라 눈치채지 못했는데, 이곳은 달랐다.

‘…왜 후광이?’

그녀의 머리 위로 보이는 은은한 후광.

눈앞의 경험은 전에 한 번 해봤다.

아레나 후아튼이 신명을 각성했을 때.

저 후광이 뜻하는 바는 하나다.

펜리가 신명의 주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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