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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에게서 살아남는 법-100화 (100/130)

100화 그냥 미친 훈련

몽둥이 훈련의 본질은 육체 구성을 변화시키는 데 있다.

흔히들 강철 근육이라고 하는데.

난 불사자의 근육이라 말하고 싶었다.

레토가 바라는 건 그 1단계 근육 수준으로 물리적인 충격에 탄력 있게 반응하고, 유연하며, 회복 능력에 빠르게 반응하는 근육이라고 했다.

키메라야?

그런 근육을 어떻게 만들어?

당연히 레토도 평범한 방법으론 만들 수 없다고 했다.

[훈련 외에 연금술과 주술, 마법적 치료가 병행되어야 한다.]

“우리에겐 없는 건데요?”

[예외는 늘 존재하는 법이다. 너는 가능하다. 내가 있으니까.]

“그럼 지금 하는 이 미친 훈련이…….”

[새로 바꾸려면 기존의 것을 파괴해야 한다.]

기존 근육을 파괴하고 새로운 형질의 근육으로 변환시키는 작업.

그런 이유로 난 오전 내내 훈련장에서 근육을 파괴하는 변태 같은 훈련에 매달려야 했다.

퍼퍼퍼퍽―!

“…끄으으!”

물론, 내가 따로 할 일은 없었다.

내가 할 일은 고통을 참고 버티는 것이다. 내 근육인데, 파괴하는 이들은 따로 있었다.

내 주변을 동그랗게 에워싼 드워프 기사는 모두 다섯.

모두 3성급 기사들로, 그들은 오라로 신체를 강화해 내 몸을 쉴 새 없이 두드렸다.

일반인이 휘두르는 강도로는 도움이 되지 않아 3성급 기사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물론, 몽둥이는 기운이 실리지 않은 통짜 쇳덩어리였다.

버틸 수 있으니 더 아프다.

몽둥이에 기운이 실렸다면 번뜩이는 순간 골로 갔을 테니 말이다.

“크아아아악!”

레토가 주문한 건 무력하게 맞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시’였다.

버티고 다가가서 공격 루트를 눈동자에 담으라는 것.

4성에 오른 내가 마나를 사용했다면 저들을 충분히 위협할 수 있지만, 마나 사용은 훈련 중에 금지되었다.

순수 육체와 정신력으로 극복해야 하는 지독한 훈련.

짐승 같은 발악이 이어졌고, 난 삽시간에 피투성이가 되어 갔다.

마나 사용 없이는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은 게임이었다.

맞고 쓰러지고 맞고 쓰러지고의 반복.

“그, 그만….”

힘없이 중얼거리는 내 신호에 드워프들은 질린 듯한 표정으로 한 걸음씩 물러났고, 난 덜덜 떨리는 몸을 웅크린 채 근육이 회복되길 기다렸다.

죽을 만큼 아프다.

그런데 할 만했다.

훈련의 한계를 낮췄기 때문일까.

빈사 상태 직전에 훈련은 멈춰졌고, 회복도 빨랐다. 레토는 새로 복구되는 근육의 감각에 신경을 기울이라고 했다.

어제는 빈사 상태에서 움직이면서 새로 복구되는 근육을 감각으로 느끼라고 했다. 심지어 회복 속도도 무척이나 더뎠다.

다시 생각해도 내겐 불가능한 훈련이었다.

[변화가 느껴지나?]

“저, 전혀요.”

[한참 부족하다.]

새로 복구된 근육은 이전의 근육보다 성장했지만, 그 변화는 내가 전혀 느끼지 못할 만큼 미세했다.

레토의 도움으로 진행 중인 이 미친 훈련은 종(種)의 진화나 다름없는 작업이었다. 염원의 반지와 레토란 존재가 있기에 가능한 훈련이지만, 하루아침에 근육이 불사자 급으로 바뀌는 건 불가능했다.

조금씩 조금씩 눈곱만큼 진화가 이뤄졌다.

한참 부족하다.

그럼 다시 근육을 파괴해야 했다.

거친 호흡을 내쉬며 비틀비틀 일어났다.

“크아아아악!”

고함과 비명이 섞인 짐승 같은 울부짖음이 다시 훈련장을 가득 메웠다.

솔직히 길어야 사흘 정도 할 훈련이라 생각했다.

펜리가 의식을 차리면 훈련보단 앞으로의 일에 집중해야 했으니까.

그런데, 이 고통의 시간이 안 끝났다.

시바, 펜리년이 안 일어났다.

그렇게 열흘이 흘러갔다.

* * *

“저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뭘까요?”

샤르바딘은 훈련장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아서의 훈련을 구경했다.

첫날에는 놀라운 감정이 가시지 않았는데, 지금은 심드렁하게 구경할 정도가 되었다.

그녀의 물음에 나토네는 어깨를 으쓱였다.

“미련해 보입니까?”

“미련한 사람이 아니라서 더 궁금하네요.”

폐광산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나토네는 조금 전 도르네프의 지시로 손맛이 아주 좋은 기사 한 명을 추가로 데려왔다.

훈련 상대를 더 늘려달라는 부탁을 받았기 때문인데, 어느덧 일곱 명의 기사들이 그를 에워싸고 괴롭히고 있었다.

여섯으로 늘린 지 사흘 만에 일곱으로 늘렸으니 적응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것 같았다.

확실히 첫날과 비교하면 대처가 눈에 띄게 달라지긴 했다.

“큭!”

“멍청한…! 붙지 말고, 견제해!”

“돌아! 돌라고!”

매서운 반격에 주춤 물러나는 기사들이 보였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게 아닌, 뼈를 내주고 목숨을 물어뜯는 무식한 한 마리의 맹수를 보는 것 같았다.

그 기세가 워낙 사납다 보니, 오늘 합류한 기사는 새하얗게 질린 채 연신 물러나기 바빴다.

일방적으로 맞기만 하던 훈련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막고 피하고 때린다.

물론, 여전히 얻어맞는 횟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드워프 인생에서 저렇게 지독한 훈련은 처음 봅니다.”

“엘프도 마찬가지일걸요? 오직 저 사람만 가능할 거예요.”

“그를 특별하게 생각하시는군요.”

“은인이잖아요.”

그를 보며 살포시 웃는 안주인을 보니 어째서 성주가 훈련 상대로 손맛 좋은 드워프들만 골라 보내는 건지 알 것 같았다.

“크아아악!”

짐승을 닮은 외침에 나토네는 사내를 바라봤다.

라웁 숲에서 처음 만난 사내.

그를 볼 때마다 강렬했던 황금빛 물결을 떠올랐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이제 그를 보면 상식 불가의 회복력과 불굴의 정신력을 떠올린다.

그리고 저 미친 훈련 방법까지.

강렬해도 너무 강렬했다.

그래서일까.

나토네는 훈련 장면을 지켜볼 때마다 묘한 떨림을 느꼈다.

이 세상을 지배하고 뒤흔드는 괴물들은 저렇게 탄생하는 게 아닐까 하는 기대감 말이다.

“왜 포식자가 되려고 할까요?”

“살아남기 위해서겠죠.”

“살아남기 위해서?”

“세상은 포식자와 먹잇감, 이 둘로 나뉘지 않습니까.”

포식자와 먹잇감으로 이뤄진 세상이라니.

그녀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어제도 훈련장에 머물렀죠?”

“담당자의 보고로는 그렇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잠을 자지 않았다는 말이네요.”

이틀이 더 지나면 그가 훈련을 시작한 지 보름째다. 그런데, 그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숙소로 돌아간 적이 없었다.

놀랍게도 쉰 적이 없다는 소리였다.

아침부터 오후까진 드워프들과 시간을 보내고, 저녁부턴 처음 보는 신비로운 활과 드잡이를 하며 밤을 보냈다. 이따금 새벽에는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오기도 했는데, 그 통에 성주 전용 훈련장에서 몬스터를 길들이고 있다는 흉흉한 소문마저 돌고 있었다.

“정말 몬스터라고 해도 믿겠네요. 어떻게 보름 가까이 잠을 안 자고 저런 훈련을 견딜 수가 있는 거죠? 나토네 경은 가능한가요?”

“제가 드워프 중에서 터프함으로 손꼽히는 편인데 절대 불가능합니다.”

알면 알수록 신기한 인물이었다.

제단에게 마주쳤던 첫 만남과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살아남기 위해서?

샤르바딘의 눈에 아서는 이미 무척 강한 사람이었다.

* * *

콰직―!

“……!”

쇠몽둥이를 막았던 팔뚝이 기형적으로 꺾었다. 지독한 통증이 뇌리를 찌르자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물러났다.

피부, 근육, 뼈까지 비틀린 감각.

팔목이 완전히 아작났다.

근래에 생긴 부상 중 가장 큰 상처였다.

훈련 사고였다.

“이, 이런 미친놈이!”

“저놈 잡아! 족치라고!”

훈련 15일 차.

나토네가 데려온 신입이 긴장감에 실수를 저질렀다.

살기를 터트리며 눈앞까지 돌진해오자, 본능적으로 쇠몽둥이에 오라를 담아 휘두른 것이다.

팔뚝으로 막아서 이 정도지, 머리를 맞았으면 수박처럼 박살 났을 것이다.

훈련은 바로 멈춰졌고, 실수를 저지른 기사는 ‘…어?, 어?’ 하더니 동료 기사들에게 에워싸여 나 대신 매타작을 맞기 시작했다.

비명이 얼마나 처절한지, 잘못한 사람이 누명 쓴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나저나 정말 찰지게 때리네.

단체로 한 명을 조지는 훈련 경험이 만들어낸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부러진 팔뚝을 흔들었는데 감각이 없다. 부상 정도가 크다. 치유되려면 하루 이상은 걸릴 것 같았다.

난 혀를 차곤 그들을 물렸다.

오늘 훈련은 땡이었다.

“죽을 뻔했네.”

[부러운 소리를 하는군.]

“…….”

죽음을 축복으로 여기는 녀석에게 무슨 말을 못 할까.

“이런 훈련이 의미가 있습니까? 조금 전처럼 한 방에 훅 갈 것 같은데.”

[1단계조차 완성하지 못한 주제에 바라는 게 많군.]

“엥? 나중에는 오라도 방어가 된다는 겁니까?”

[‘견딘다.’가 정확하겠지. 그건 네 녀석의 노력하기 나름이다. 지금 네 수준으론 까마득해 보이지만.]

더 놔두다간 드워프 하나 잡을 것 같아서 서둘러 기사들을 말렸다.

요즘 저 기사들의 ‘악명’이 이곳까지 종종 들려왔다.

일명 참회의 몽둥이.

드워프 여섯 명으로 구성된 베네타의 심판자들로 불렸는데, 범죄자나 악인들 사이에서 공포의 존재감을 흘리고 다녔다.

도르네프가 손맛이 뛰어난 이들로만 구성해서 내게 보냈는데, 그런 그들이 보름 동안 날 상대로 아픈 곳만 골라 때리는 연습을 했다면?

나도 제대로 맞으면 눈물이 나오는데, 보통 이들은 맞는 순간 꺽꺽대며 오줌을 지릴 것이다.

그런 녀석들이 무려 여섯이고, 동시에 한 놈만 팬다면?

악인도 눈물을 흘리며 개과천선한다는 소문이 있다.

의도치 않게 베네타의 치안에 큰 공헌을 한 셈인데, 그런 기사들조차 나를 상대할 땐 치를 떨며 훈련이 얼른 끝나길 빌었다.

확실히 훈련에 성과가 생겼다는 의미였다.

“이런, 치료사에게 데려가야겠네요.”

오늘 심판자가 일곱 명이 될 뻔했는데, 얻어맞은 상태를 보니 여섯에 그칠 것 같았다.

표정을 보니 완전 맛탱이가 갔다.

내일은 못 볼지도.

기사들이 동료를 업고 사라지자, 샤르바딘이 멀리나 나를 불렀다.

“식사하세요!”

도르네프의 우려와 달리, 그녀는 훈련이 끝날 때쯤이면 웃는 얼굴로 찾아와 식사를 준비해줬다.

도르네프가 이 광경을 본다면 나토네경을 내 훈련에 다시 집어넣을지도 모르겠다.

나토네가 바로 베네타의 심판자들을 만든 당사자였으니까.

참회의 몽둥이를 든 우두머리란 뜻이었다.

그만큼 손이 가장 매웠다.

* * *

“샌드위치네요?”

“제가 직접 만들어봤어요.”

“매번 감사합니다.”

“넉넉하게 가져왔으니까. 실컷 드세요.”

피투성이 몰골로 돗자리에 주저앉아 그녀가 건네는 샌드위치를 받아먹었다.

맛으로 먹는다기보단 허기를 때우기 위해 억지로 목구멍으로 집어넣었다.

맛과 상관없이 정신적으로 지쳐있다 보니 맛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차라리 먹는 것보다 몸을 씻고 싶었다.

피와 땀이 뒤섞인 썩은 냄새가 풀풀 풍겼는데, 씻고 와도 금세 피투성이가 돼버리니 어느 순간부터 씻는 걸 포기했다.

훈련이 끝나면 씻으려고 했는데, 레토는 지금까지 쉴 틈 자체를 주지 않았다.

냄새가 지독할 텐데, 그녀는 별 상관없다는 반응이었다. 피 웅덩이에서 단련된 엘프답게 금세 적응해버렸다.

“바깥소식은 어떻습니까?”

“요즘은 조용한 편이에요.”

샌드위치를 오물오물 씹으며 샤르바딘의 말을 경청했다. 그녀의 입에선 많은 정보가 흘러나왔다.

미리 준비한 것처럼 정보의 질이 무척 좋았는데, 넬라가 신경 써서 보낸 티가 났다.

“펜리는 여전히 의식이 없습니까?”

“엘프석이 더 필요할 것 같아요.”

“마력 중독 증상이 원래 이렇습니까?”

“아니요. 중독 증상 외에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 넬라님이 말해줄 수 없는 이유가 있으신 것 같아요. 이유를 물을 때마다 표정이 곤란해지시거든요.”

마력 중독 외에 다른 요인으로 지금껏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펜리.

그녀에게 어떤 변화가 생긴 게 분명했다. 다만, 무슨 이유로 넬라가 샤르바딘의 질문을 회피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신녀가 말해줄 수 없는 질문은 하나밖에 없다.

바로 신명에 관한 정보.

‘펜리의 신명에 변화가 생긴 모양인데.’

손도 망가졌겠다.

이쯤 훈련을 종료하고 숙소로 가봐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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