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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에게서 살아남는 법-103화 (103/130)

103화 변화 그리고 완성(2)

“오늘도 대단했어.”

“아쉬워. 이젠 이 빵을 집으로 가져갈 수 없다는 게. 마누라한테는 뭐라고 하지?”

“그건 그래. 요리사 것보단 이쪽이 백 배는 더 맛있다고.”

드워프들의 품에는 길쭉한 빵들이 안겨 있었다. 하나같이 빵을 보며 아쉬워하는 표정들이다.

출시는 사흘도 안 됐는데, 어느덧 베네타의 시그니쳐가 된 맥주빵이다.

혹시나 하고 밀가루에 맥주를 섞어서 만든 맥주빵인데 버터에 찍어 한입 먹어본 드워프들 사이엔 신이 내린 빵으로 불리고 있었다.

맥주에 죽고 못 사는 드워프들에게 맥주향이 나는 빵이란 중독과도 같았다.

성 요리사가 하도 울고 불며 달라붙어서 레시피를 건네줬더니, 도르네프도 아침엔 저 빵부터 찾는다고 한다.

취미로 배웠던 캠핑 지식이 이리 요긴하게 사용될 줄은 몰랐다.

나중에 생존에도 도움이 되려나?

드워프들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훈련장을 벗어났다.

그들이 나를 돌아보며 웃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부르게. 몽둥이를 들고 벼락같이 달려올 테니.”

“…하하하.”

내 몸을 훑어보며 눈빛들을 번뜩이는데, 난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훠이, 저리 꺼져. 다신 안 부를 테니까.

베네타의 심판자들이 졸업했다.

저 참회의 몽둥이는 이제 베네타의 악인들에게 쓰일 것이다.

드워프들이 훈련장에서 사라지자, 뒷정리를 간단히 하고 여분의 음식은 바구니에 담아 다시 그늘 밑에 놔뒀다.

샤르바딘과 나토네의 것이었다.

요즘은 날 보러 오는 게 아니라, 음식을 맛보러 방문하는 느낌이 강했다.

특히, 나토네.

폐광산 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텐데, 저녁마다 이곳엔 빠짐없이 들렸다.

맥주빵의 위력인가?

하여튼, 그들이 도착하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후―

작게 숨을 내쉬며 빈 훈련장에 홀로 주저앉았다.

훈련에서 생긴 상처들이 식사하면서 호전되긴 했는데, 아직 회복이 완벽히 된 것은 아니었다.

이전이라면 끙끙 앓을 고통인데 이젠 드워프들과 맥주 한잔하며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조용하다.

적막이 흐르는 훈련장 안에서 난 두 눈을 살며시 감았다.

“레토.”

내 부름이 신호가 된 듯 회복 속도가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듯 진행됐다.

팔다리 허리 가슴 등 근육 하나하나가 회복되는 감각에 집중했다.

활력의 움직임, 호흡도 놓치지 않았다.

스스로 자신의 몸과 대화하는 시간, 관조(觀照).

레토가 기감 발달에 도움이 된다며 시킨 훈련인데, 확실히 이 훈련을 하고 나서부터 기운을 통제하는 스킬이 많이 늘었다.

특히, 인첸트 숙련에 무척 도움이 됐다.

[관조 훈련을 극대화하려면 빈사 상태에서 이뤄져야 한다.]

죽기 직전 정신적 각성이 이뤄지며 시간마저 정지된 듯 흘러가는 상태.

숨이 넘어가기 직전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비친다고 하는 얘기가 괜히 들리는 게 아니었다.

그때 무의식으로 이뤄지는 관조 훈련은 그 어떤 기감 수련보다 뛰어나다고 했다.

첫 경험 때 미친 매운맛으로 경험했던 터라 아직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지만, 언제고 해야 할 훈련이라나?

1단계 훈련을 완료해도 내 고통의 시간은 여전히 끝나지 않을 것이란 말이었다.

집중력이 최고조로 올라온 순간 두 눈을 번쩍 뜨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모든 사물이 또렷이 시야에 잡힌다. 이 상태에서 활을 쏘면 백발백중일 것 같았다.

우웅―!

흡혈의 고리를 소환하고 순백의 활대를 움켜쥐자 흡혈이 시작되며 활대가 붉게 물들었다.

흡혈의 고리는 색이 가지는 특징이 존재했는데, 짙게 붉어질수록 화살의 위력이 강력해진다는 것이었다.

내 피를 닮은 완벽한 핏빛.

이때가 최대 출력의 신호인데 시간을 재보니 대략 15분 정도 흡혈을 해야 완성되는 것 같았다.

15분.

첫 기습 때 빼곤 전투 중에는 사용하기 힘들다는 뜻이었다.

활대를 힘껏 쥐어보기도 하고, 기운도 사용해보는 등 여러 방법을 시도했지만 최대 출력의 시간을 단축하지 못했다.

내 고민은 이 시간을 줄이는 건데, 레토는 1단계 훈련이 마무리되면 절로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뭐가 달라지는 걸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스윽―

붉게 그려진 시위를 부드럽게 잡아당겼다.

내가 하는 훈련은 인첸트 숙련을 위한 과정이었다.

흡혈의 고리에 집중하자 화살이 소환되기 시작했다.

한 발이 아니었다.

하나, 둘, 셋….

그 수가 빠르게 늘더니 무려 다섯 발의 화살이 활대에 장전되었다.

‘위력을 줄이면 멀티샷도 가능하단 말이지.’

시위에 다섯 발의 화살을 고정하고 한 곳을 겨눈 뒤 가볍게 놓았다.

콰콰콰쾅―!

거친 폭발이 터져 나왔다.

단발의 화살을 다섯 개로 나눈 거라 위력이 약했지만, 사방이 그을리는 광범위한 피해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일종의 광역기.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다방면으로 위력을 발휘할 것 같았다.

다시 흡혈, 그리고 다섯 발의 화살 소환.

처음에는 두 발로 나누는 것도 어색했지만, 이젠 다섯 발까진 손쉽게 나눌 수 있다.

최소 파괴력인 마력탄 수준으로 나눌 수 있는 한계치이기도 했다.

더 늘릴 수 없을까 고민했지만, 마력탄 수준은 일반인들에게나 먹힐 뿐 강한 녀석들에게 큰 피해를 주기에는 어렵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화살 강화다.

난 화살 위로 각각 인첸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위력이 약해지면 강하게 만들면 된다.

“……음!”

인첸트 기운이 분산되자 감각이 어지러웠다. 눈이 절로 감기고, 얼굴이 찡그려졌다.

집중력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인첸트 부여가 실패했다.

기운이 흩어지면서 불안정한 현상을 보이는 것인데 인첸트가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이때 처음 알았다.

실패의 대가는 바로,

파삭―!

다섯 발의 화살 중 세 발이 먼지처럼 흩어지며 소멸했다.

인첸트 일부가 실패하면서 충격을 받아 사라진 것인데, 이것 나름대로 내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왜냐고?

[네 몸뚱이라고 생각했으면 실패하지 않았을 거다.]

“…….”

시발, 이런 걸 보고도 내 몸에 인첸트를 부여하라니.

시험 삼아 살짝 해보긴 했는데 그 고통에 입이 쩍 벌어졌다.

생살과 근육이 찢어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더럽게 아팠다.

[인첸트 숙련을 더욱 빠르게 올리고 싶다면 네 몸에도 시도해라. 생존했을 때의 고통은 성장의 밑거름이 되니까.]

“…몸이 부서질 텐데요?”

[손가락부터 시작하지.]

손가락 정도는 터져도 복구할 수 있다는 레토의 덤덤한 발언.

레토는 미친놈이 분명했고, 난 이 녀석이 점점 무서워졌다.

육체에 인첸트를 부여하는 건 한참 후의 일이 될 것 같았다.

벌써부터 내 몸이 아작나는 건 보고 싶지 않거든.

[다시.]

“…큭!”

[집중력이 부족했다. 다시.]

“제길.”

[하나가 아니라 전체에 집중해라. 다시]

훈련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뤄졌다.

다섯 개 모두 성공하는 경우는 손에 꼽았다. 평균 성공 확률이 두 발 정도 됐는데 인첸트 없이 다섯 발을 날린 것보다 위력이 훨씬 강했다.

숙달된다면 큰 힘이 될 게 분명했기에 레토의 도움 아래 그동안 잠도 안 자고 인첸트 숙달에 집요하게 매달렸다.

끼이이익―

마찰음 소리에 훈련을 멈추고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두 눈을 깜빡이니, 눈이 따가웠다.

이마를 훔치니 땀으로 범벅이다.

언제 이렇게 땀을 흘렸지? 주변을 둘러보니 밝았던 훈련장이 어느새 횃불을 켜야 보일 정도로 어두워졌다.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훈련에 매달렸던 모양이었다.

샤르바딘이 올 시간이 된 건가?

아니다.

날 찾아온 건 시종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시종이 날 발견하곤 곧장 내게 뛰어나왔다.

“넬라님이 찾으십니다.”

엘프 넬라가 도착했다?

엘프석이 완성된 모양이었다.

성주 전용 훈련장에 시종이 찾아왔다는 건, 도르네프가 보낸 사람이란 뜻이었다.

시종의 안내를 받으며 훈련장을 나왔다. 가는 위치를 물어보니 숙소였다.

그 전에 샤르바딘과 나토네를 찾아 음식 바구니를 건네주려고 했는데, 그들의 소식을 시종이 전해왔다.

“성을 비웠다고요?”

“네. 성주님의 지시를 받고 두 분 다 오전 일찍 바깥으로 나가셨습니다.”

“무슨 일인지 아십니까?”

“전 일개 시종이라….”

도르네프를 만나면 절로 알게 될 일이라 고개를 끄덕이곤 조용히 시종 뒤를 따랐다.

어느새 해가 지고 달이 떠오르고 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오늘 달은 유난히 맑다.

앞서 걷는 시종의 그림자가 선명히 보일 만큼.

* * *

천천히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숙소는 영주성 꼭대기 층에 자리했다.

시종은 성 입구까지만 날 안내했는데, 감사의 의미로 음식 바구니를 건넸더니 무척이나 좋아하며 돌아갔다.

“응?”

꼭대기 층에 발을 디딘 순간 통로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도르네프와 넬라.

이 성의 군주와 검은 장미의 신녀가 날 발견하자 내게 곧장 다가왔다.

근데 도르네프의 복장이 심상치 않았다.

제단에서 미믹과 한판 붙을 때 입었던 전투 무장을 하고 있었다. 손에 쥔 혹한의 망치도 보인다.

뭐지?

그의 성에서 그를 위협할 무언가가 있나?

내가 의문을 담아 그를 바라보자, 도르네프가 날 사납게 노려봤다.

망치를 쥔 손이 부르르 떨리는 데 무섭다.

갑자기 왜 그래?

내가 뭘 잘못했다고?

“아펠의 씨앗, 아주 맛있게 먹었네. 근래에 가장 화끈한 맛이었어.”

“…….”

당해 보라고 넌지시 샤르바딘에게 말했는데, 그녀가 샌드위치에 그 매운 고추씨를 듬뿍 넣어서 도르네프에게 준 모양이었다.

화끈하긴 했겠네.

궁금해서 살짝 아펠의 씨를 맛봤는데, 혀를 후려치는 캡사이신 맛과 비슷했거든.

이 악당의 세계에는 ‘적당히’가 없는 것 같았다. 왜 이리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게 많은 것인지.

그만큼 아펠의 씨앗은 매웠다.

“괜찮았죠? 건강에 아주 좋습니다.”

“오래 살고 싶으면 그녀에게 다시 말하게. 그건 실패작이라고.”

“직접 말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녀가 우는 건 보고 싶지 않아.”

그래서 매일 그것을 먹었니?

이 무식한 드워프 같으니라고.

하지만 표현은 못 하고 어색하게 미소만 지었다.

코앞으로 망치를 들이미는데, 그 망치 위로 푸른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한 대 맞으면 골로 가겠지?

“설마, 절 협박하려고 풀 무장을 한 건 아니죠?”

“…….”

진짜야?

이 미친 난쟁이가 제정신인가?

아니, 그 정도로 맵다는 뜻이겠지.

설마 이 성의 군주를 위협한 것이 샤르바딘이 만든 샌드위치가 될 줄은 몰랐다.

“아니에요. 절 보호하기 위해서 무장을 갖추신 거예요.”

금발의 미녀 엘프가 날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엘프석을 제작하느라 고생했는지 얼굴에 힘이 없어 보였다.

이쁜 얼굴에 초췌함까지 묻어나니 날 향한 미소가 유혹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난 저 미소에 속지 않는다.

당한 게 너무 많거든.

“넬라님, 오랜만입니다.”

“샤르바딘에게 듣긴 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분위기가 더 많이 변했네요.”

“좀 험하게 지냈습니다.”

넬라는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아서의 외모는 외모의 끝판왕이라는 푸른 장미의 눈으로 봐도 뛰어난 편이었다.

다만, 사내치고 유한 느낌이 강했는데, 며칠 새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단단하고 거친 사내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그런데 도르네프님의 도움이라니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마스터께 엘프석을 먹일 거예요.”

“그게 문제가 되는 겁니까?”

“흠, 문제는 아닌데 상황에 따라 위험할 수도 있거든요.”

“위험?”

“일단 마스터께 가요. 당신까지 합류했으니 얼추 안전이 보장된 셈이니까.”

안전 보장이라니.

저번 엘프석을 펜리에게 먹였을 때 문제가 생겼던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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