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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에게서 살아남는 법-116화 (116/130)

#116화 각성 신호탄

콰아아아앙!

내가 사냥조를 노리는 급습 패턴은 처음과 같았다.

관통 인첸트가 부여된 최대 출력의 흡혈의 고리로 기사를 원큐에 보내버린 뒤 반다이크들은 성력이 깃든 화살 세례로 소멸시켰다.

이 둘만 제거하면 주술사들은 식후 운동 거리도 안 됐다.

“끄아아아아악!”

눈부신 황금빛에 자지러지는 흑주술사들이 보였다. 흑주술을 펼칠 때 카운터로 빛을 터트리면 피를 토하며 경련을 일으켰는데 영력에 엄청난 타격이 가는 듯 보였다.

전투는 순식간에 마무리됐고, 숲으로 도망간 주술사 하나를 넬라가 쫓아갔다.

정확히 반리를 보낸 것이었다.

잭과 하우엘 이야기를 듣고 난 뒤부터 적극적으로 반리를 전투에 참여시켰다.

펜리가 아닌 넬라 곁에 머무는 반리의 전력을 파악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의외의 소득도 있었는데, 그건 넬라의 활 솜씨였다.

엘프족의 특성이니 당연한 건가.

보조 전력으로 두면 한 사람 몫은 충분히 할 것 같았다.

가장 베스트는 펜리년을 소환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이번이 마지막인가?”

첫 사냥조를 포함해서 네 팀을 사냥했다.

정보대로라면 라웁 숲 사냥에 뛰어든 주술사들을 모두 정리한 셈이었다.

그래, 이런 날도 있어야지.

허구한 날 도망치는 건 나 자신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잖아.

“읏차!”

반리가 마지막 녀석을 잡아 오는 동안 난 쓰러진 주술사들을 한 장소에 모았다.

기다리는 동안 주술사와의 전투를 복기하며 과거 레토와 대화하던 때를 떠올렸다.

격발로 인한 후유증 시기에는 남은 게 시간이었거든.

‘차이가 뭘까.’

키메라와 흑주술사.

유독 성력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 공통점이 무엇인지 고민해본 적 있다. 아니, 고민은 잠시뿐이고 그냥 족집게 답선생인 레토에게 물었다.

[담고 있는 기운의 차이다.]

“기운의 차이?”

[네 성력은 무질서한 기운을 바로 잡는다. 담긴 기운이 불완전할수록 충격이 심할 수밖에 없지.]

키메라는 여러 신체를 붙여 제작했기에 모든 것이 불안했고, 흑주술사들은 대부분 타인의 영혼을 갈취하여 힘을 얻으니, 그 기운이 불안정했다.

둘의 공통점은 ‘혼돈’이다.

즉, 혼돈의 기운은 내게 쥐약이었다.

다만, 의문 한 가지.

“폐광산의 좀비들은 왜 아무렇지 않은 거죠?”

[죽은 자들을 말하는 거라면 당연하다. 죽은 자들을 농락한 힘은 ‘완벽한’ 어둠이니까.]

“…완벽한 어둠?”

[균열이 전혀 없는 순수 어둠이란 뜻이다.]

“성력과 어둠은 반대되는 속성 아닙니까?”

[네 성력은 어둠과 부딪치는 광신도들의 속성과 다르다. 모든 속성과도 불화가 없고, 조화를 추구할 뿐이지. 네 성력과 부딪치는 건 그 조화를 깨는 존재들이다.]

키메라와 흑주술사는 조화를 깨는 존재들이라 성력에 취약하다는 것이었다.

꼰대의 설명은 어려웠지만, 이해한 것도 있었다.

무질서한 기운을 바로 잡는 힘.

그 조화의 힘 덕분에 내가 심장의 잠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죽음이 비껴갔지 뭐야.

“순수 어둠, 당신의 염원에 힘을 준 그 존재는 누굽니까?”

궁금했다.

레토의 염원은 ‘죽음(Death)’.

잔재라 말했던 찌꺼기만으로 드워프들의 광산을 백 년 가까이 폐쇄시킨 힘.

불사자의 육체마저 소멸시킨 그 어둠은 죽음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내 경우에는 불사자인 레토가 직접 염원의 그릇을 채워줬다.

레토의 경우에는 누굴까?

[죽은 자들의 왕, 제스 밀로(Jess Milo)의 권능을 담았다. 살아있는 이들을 죽음으로 인도하거나 농락하는 녀석이지. 네 녀석이 계속 살아남는다면 언제고 만나게 될 것이다.]

“…왜요?”

제스 밀로(Jess Milo)는 나도 알고 있는 절대자다.

죽음으로 인도하는 걸 유흥으로 삼은 악마 같은 존재.

생존이 목표인 내겐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귀를 씻어내야 하는 기피 대상 1호였다.

그런데 만나? 내가 왜?

이때만큼은 레토가 끌끌끌 웃고 있다고 느껴졌다.

웃어?

설마 제스 밀로와 친한 사이야?

그런 거라면 진즉 말을…….

[나와 앙숙적인 관계거든. 불사자인 나를 유일한 결핍으로 여기는 놈이다.]

* * *

“아, 시발.”

갑자기 팔뚝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몸을 떨며 레토와의 대화를 머릿속으로 지웠다.

불사자 레토니칼스.

죽은 자들의 왕, 제스 밀로(Jess Milo).

죽지 않는 변태와 죽이는 걸 업으로 삼는 변태.

두 변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건 사양이었다.

“이름조차 떠올리기 싫은 존재는 그냥 잊는 게 답이지.”

[제스 밀로를 말하는 건가?]

“좀 닥쳐!”

왕재수를 털어내려고 양쪽 귀를 후비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문득 시간이 상당히 지났음을 깨달았다.

“생각보다 늦네?”

보통 지금쯤 반리가 도망친 녀석을 질질 끌고 나타나야 하는데 소식이 없었다.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넬라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펜리 손에 난도질당할 텐데.

문득 불안감이 들 때, 숲에서 넬라가 모습을 보였다.

근데 형색이 먼지투성이다. 바닥을 구른 흔적인데, 내가 다가가니 난색을 드러냈다.

“저 녀석은 또 왜 저래요?”

“아, 그게…….”

어색하게 웃는 넬라 머리 위로 우비 소녀 반리가 OTL 모양으로 엎어져 있었다. 몹시 좌절한 동작인데, 이 녀석 조금 전까지 가슴을 쭉 내밀며 자신만만하더니 왜 우울해져 있어?

혹시 주술사를 놓친 건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양쪽 팔이 부러진 채 끌려온 주술사가 뒤쪽에 보였거든.

“제가 다칠 뻔해서 그런 것 같아요. 좀 심하게 굴렀거든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저 주술사, 다른 주술사와 달랐어요. 반리의 공격을 받아치고 반격까지 했거든요.”

받아치고 반격까지 했다고?

그 정도면 주술사들의 둥지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정도일 텐데?

“다친 곳은 없습니까?”

“네. 살짝 긁힌 것 말고는 없어요.”

넬라는 상처를 치료하고 반리를 위로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고, 난 잡아 온 녀석을 주술사들이 있는 곳으로 끌고 갔다.

정보 취합 시간이다.

다만, 이번에는 살짝 더 기대가 컸다.

크아아아악―!

성력에 의식을 깬 주술사들은 비명을 질러댔다. 다른 세 팀과 비슷한 질문을 했고, 듣는 답은 엇비슷했다. 다만, 특별한 점이 있었는데 마지막에 잡혀 온 녀석이 사냥조들의 관리자란 정보를 얻었다.

어쩐지 실력이 남다르다 했더니 사냥조 우두머리였냐?

이 녀석의 입에서 나올 정보는 다른 주술사에게 얻지 못한 특별한 정보일 확률이 높았다.

성력을 주입하며 기대를 했는데,

“쿠, 쿨럭! 죽여라!!”

독했다.

핏줄이 터진 눈동자로 날 노려보더니 혀를 깨물려고 하는데, 입에 주먹을 욱여넣어 막았다.

통증에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이빨이 주먹을 파고들어 왔다. 날 죽일 기세로 물어뜯는다.

성력으로 입을 열게 하긴 힘들 것 같았다.

난 쓰게 웃으며 레토에 물었다.

“스무 가지 고문 중 녀석의 입을 열게 할 게 있습니까?”

[입이 제법 무거운 녀석이다.]

레토 입에서 ‘제법’이란 단어가 나왔다. 쉽지 않다는 뜻이다.

잠시 후, 레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첸트를 부여해라.]

“…인첸트요?”

[성력이 적당하겠군.]

정말 괜찮은 건가?

고통 내성에 익숙해진 나조차 인첸트를 버티지 못하는데.

고통에 돌아버린다는 표현이 적당할 만큼, 인첸트 실패 시 반작용은 끔찍했다.

그 고통을 직접 경험해 봤기에 쓰기가 잠시 망설여졌다. 왠지 지독한 악당이 된 기분인데, 흑주술사를 보자 헛웃음이 나왔다.

제물로 힘을 탐닉하는 잔혹한 녀석 앞에서 악당 타령이나 하고 있다니.

놈의 머리에 손을 올려놨다.

“그런 눈으로 노려보지 마. 눈깔 파버리기 전에.”

다른 놈들은 몰라도, 녀석들에겐 악당 소리 들어도 된다.

주먹을 계속 물고 있네?

죽어봐라.

잠시 후, 주술사의 몸에 황금빛이 터져 나왔다.

“……!!!!!!!!!!!!”

턱이 쩍 벌어지며 물어뜯던 주먹이 훌렁 나왔다. 찢어진 두 눈동자, 얼굴 살 전체가 부들부들 떨렸다.

컥컥거리며 숨을 삼키는데 비명조차 나오지 않은 것 같았다.

성공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실패(?)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눈을 두 번 깜빡이며 항복 신호를 보내자, 기운을 서서히 줄이며 물었다.

들었던 정보 중에 가장 궁금했던 정보.

학살자가 비밀리에 에토르 영지로 움직이는 이유를 말이다.

“카멜이 에토르 영지에 가는 이유가 뭐지?”

“레, 렌구아님을 만나기 위해서…….”

“렌구아 필드를 만나서? 그리고?”

“계획…… 실행….”

“그 계획이 뭔지 말해봐.”

힘을 완전히 줄였다.

지옥 같았던 고통이 사라지자 일그러진 주술사의 표정에 일순간 평온함이 돌았다. 그것도 잠시,

“광인을 우……크아아악!”

광인을 입에 담은 순간 주술사가 울부짖으며 몸을 배배 꼬았다.

콰앙―!

“……!”

얼굴에 살점이 튀었다.

멍한 표정으로 피투성이가 된 주술사를 내려다봤다.

뭘 시도하기 전에 머리가 터져 죽어버렸다. 광경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이런 경험은 여전히 좆같았다.

[언어 제약이다. 고약한 것을 걸어놨군.]

“…….”

조용히 피를 털어냈다.

상대가 주술사들의 둥지라는 것을 잠시 잊었다.

방심했다.

짧게 한숨을 내쉬곤 남은 주술사들을 고통 없이 보내줬다.

잠시 후, 넬라가 다가와 걱정이 담긴 눈빛으로 물었다.

“괜찮아요? 무슨 일이죠?”

“별일 아닙니다. 흑주술사들은 역시 방심할 수가 없네요.”

“악독한 자들이라 약한 마음가짐으로는 상대하기 어려워요.”

엘프가 저런 말을 할 정도라니.

더 독해져야 한다.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원하던 정보는 얻었나요?”

“이것으로 확실해졌습니다. 록터 펠리스가 어디에 있는지 알 것 같아요.”

“어디죠?”

“블라이어.”

주술사들의 입에서 록터에 관한 정보는 전혀 얻을 수 없었다.

전부 찾고 있다는 말뿐.

록터의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다는 정보를 들을 때마다 확신이 섰다.

록터는 칼과 함께 있다.

칼 바스타인.

칼에겐 ‘위기 감별사’란 특성이 있다. 도주하는 데는 최적의 능력이라 작정하고 몸을 숨기면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땅굴 파는 스킬이 또 기가 막히거든.

[한 번쯤 믿어보시죠.]

헤어질 때 크룩스에게 복수할 방법을 지나가듯 말해주며 록터를 언급했다. 한 번 믿고 블라이어에서 기다려보라고.

‘내 말을 정말 믿었네.’

생긴 건 산적도 형님이라 굽신거릴 살벌한 면상이지만, 칼은 여우 중 여우였다.

내게 무엇을 보고 미래를 바꾼 것일까.

그게 뭐든 칼이 록터를 이끌고 있다면 익숙한 지리를 이용해 블라이어에 몸을 숨겼을 것이다.

‘헌트 맴버가 두 명으로 늘 수도 있겠어.’

칼 바스타인이라면 땡큐지.

문제는 둘을 살려서 베네타로 데려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잭과 하우엘이 이끄는 사냥개 부대.

주술사들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인데, 사냥개 부대는 지금 이빨을 숨긴 채 웅크리고 있다고 들었다.

록터의 흔적이 드러나면 바로 움직일 태세인데, 최정예들은 대기 중이고 추적자들을 사방에 풀었다는 소식이었다.

‘문제는 크룩스도 사냥개 부대에 흡수됐다는 거지.’

크룩스의 마스터.

칼에게 붐(Boom)을 먹인 존재였다.

이번 일에는 칼의 악연도 엮여 있었다.

불길한 소식이기도 했다.

칼의 흔적을 잡을 수 있는 조직이 사냥개 부대에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통곡의 언덕으로 갈 겁니다.”

“그곳은 이미 검은 장미들이 가 있잖아요.”

“살펴볼 게 있습니다.”

통곡의 언덕.

이름처럼 통곡이 매일 들린다는 블라이어 외곽에 자리한 묘지 언덕이었다.

카멜이 블라이어의 성주가 된 이후 생긴 절망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카멜의 지배 아래 죽어 나갔다.

그리고,

영웅 록터의 소중한 인연들이 묻힌 장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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