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요리? 그게 돈이 됩니까. …되네?(5)
“정말 장군직을 받으실 생각이 없으십니까?”
“…반대로 묻자면 아무한테나 장군직을 줘도 되는 거야?”
“식선께선 아무나가 아니지요. 또한 이번에 세운 공이 워낙 크셔서 과연 무얼 줘야 할지 헷갈릴 지경이니 말입니다.”
“내가 한 일?”
“……식선께선 역시 대범하시군요.”
“??”
당무전은 이 순박한 사내가 진심으로 자신이 이루어낸 일이 별거 아니라 치부하는 것을 보며 쓰게 웃었다.
‘이토록 짧은 기간 안에 봉마림을 뒤바꿔 놓으셨으면서도 자각하지 못하시는군.’
이런 대협의 면모가 있으시니 삼국에서 거물 취급받는 게 아닐까 싶었다.
‘봉마림의 준동을 멈추는 일은 황족께서 나서시지 않는 이상 불가한 일이지. 한데 이분께선 해내었다.’
폭주하는 봉마림을 막아서는 건 아무리 무봉일패와 같은 절대고수가 여러 명 있다고 해도 절망적인 상황이다.
또한 설사 막아낸다고 한들 어느 정도 희생이 나올지 모를 판이며. 자칫 봉마림의 괴이나 마물이 삼국 전역으로 풀려나 천재지변(天災地變)과 같은 참사로 이어진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즉, 식선이 띄운 달은 마냥 병사들만을 구해준 게 아닌, 삼국을 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아시겠습니까? 식선께선 영웅입니다. 그것도 삼국을 구한 영웅!”
“……그냥 금 장식품 받으려고 한 거였는데.”
여명은 황금 거북이와 백금 토끼 받으려 한 자신의 물욕이 그토록 대단한 일이었나 싶어 볼을 긁적였다.
“아무리 거래가 있었다고 한들, 식선께서 해내신 일이 과소평가받을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성과를 내신 거지요.”
“…크흠.”
여명은 자신이 해낸 일을 이토록 장황하게 듣고 있자니 낯간지러울 따름이었고. 더는 못 듣겠다며 손을 휘저었다.
“됐고. 장군 같은 거 안 한다고 해. 차라리 금장식 같은 게 실용적이지, 그런 거 가지고 있어봐야 어디다 써.”
“장군직을 달게 되면 달마다 품위유지비 차원으로 금 10냥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장군에게 충성하는 1만의 병력이 배치될 겁니다. 즉, 식선의 명령이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할 수하들이 생기는 겁니다.”
“……쓸데가 상당히 많구나.”
“핵심적인 부분만 말해서 그렇지, 파고들면 더욱 좋은 것도 많습니다. 어떻게, 원하신다면….”
“…….”
여명은 방금 전처럼 즉각 거절하지 못했고. 설기는 빠르게 말했다.
“월?”
“받으라고?”
“왈.”
“…야망도 크다.”
장군의 아들도 아니고, 장군의 애견은 왜 노리는 걸까?
‘쟤가 무슨 짓을 할까 겁이 나서 못 받겠다.’
최근 미튜브로 군대 예능을 보며 유격 조교에게 유독 눈을 반짝이는 댕댕이의 눈망울을 떠올리며 여명은 병사들에게 미안해서라도 장군직을 빠르게 포기할 수 있었다.
* * *
“아, 맞다.”
여명은 마침 생각나는 것이 있어 당무전에게 요구했다.
“예화 걔는 어떻게 됐어? 나보단 걔를 챙겨줘야 할 것 같은데.”
기예화. 어찌 보면 그녀야말로 특대 달 구름을 만드는 데 기여한 일등공신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자신보다 기예화를 더 챙겨줘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허나 그런 발언에.
“…기 소저께선 이미 충분히 강탈해가셨습니다.”
“강탈?”
“예에….”
“흐음, 걔는 진작 자기가 챙길 거 다 챙겼나 보네.”
여명은 당무전의 쓴웃음을 마주하곤 대충 기예화가 무슨 짓을 했을지 어리짐작이 간다며 피식거렸다.
‘내가 괜한 걱정을 했네.’
하긴 기예화이지 않은가.
마냥 순박한 여인이 아닌, 백록국에서도 손꼽히는 거물 인사 중 한 명이 다름 아닌 그녀일 텐데, 진작 군부와 백룡성에게 본전을 뽑아냈을 터.
무엇을 했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울 것 같으니까 묻지 말자.’
당무전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그러는 것이 아닌, 사내놈이 우는 모습 따윈 보고 싶지 않은 그였다.
그때.
“…그럼, 혹 개인적으로 원하시는 게 없습니까?”
“원하는 거?”
“그렇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대로 보낸다면 성주께서 가만히 계시지 않을 겁니다.”
무봉일패. 그는 현재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봉마림을 안정화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한 번 폭주한 탓에 여러모로 악영향이 퍼진 상태이기에 쉴 틈이 없단다.
그래선지 자신을 배웅하지 못하는 걸 아쉬워한다고 하는 것 같은데.
‘다행이지. 안 만나서.’
‘월.’
이심전심. 여명과 설기는 같이 있기만 해도 속 뒤집어지는 그 양반을 더 이상 만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었다.
다만 당무전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는 불길한 것이었다.
“이번에 제대로 된 보상을 가져가시지 않으신다면 저희도 저희지만. 식선께서도 불편하신 상황이 생길 겁니다.”
“예를 들면?”
“성주께서 천산까지 직접 찾아가 곁에 머무는 그런….”
“……소름 돋네, 진짜.”
“왈.”
이번 해에 들어서 가장 오싹한 얘기를 들었다며 치를 떠는 여명은 잠시 고민했다.
차라리 장군직을 받는 게 어떨까 싶었지만. 이 이상 군대와 엮이는 건 사양인 입장인 여명이었고. 다행히도 원하는 게 없지는 않아 여명의 입은 거침없이 열렸다.
“이번에 내가 무림인들 데리고 사업하는 거 알지?”
“당연히 압니다. 저 또한 잘 먹고 있으니 말입니다. 참고로 저는 개방 반점을 선호합니다.”
“거기 맛은 그저 그럴 텐데?”
“대신 음식의 가짓수가 압도적으로 많고. 무엇보다 배달이 빠르지 않습니까.”
“하하….”
황룡국에서 가장 많은 문도를 보유한 문파답게 인력으로 몰아붙이는 개방의 성향은 확실히 사무실에서 문서 작업만 할 것 같은 당무전에게 딱 알맞긴 할 것 같았다.
“그래도 여유만 되면 다른 반점도 가 봐. 각각 장점이 있으니까.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반점을 좀 관리 좀 해줬으면 한다는 거야.”
“관리 말입니까?”
“언제까지 내가 신경 쓸 수는 없으니까.”
“어떤 관리를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만약 그들이 태만해지거나, 부패할 것 같으면 완전히 짓밟아줘.”
“!!”
“아, 그렇다고 무조건 털라는 건 아니야. 그냥 당신들 눈치만 봤으면 좋겠다는 거지.”
“…무슨 말씀인지 알겠군요.”
당무전은 여명이 군부와 백룡성을 채찍으로 삼았다는 걸 깨달았다.
어느 조직이건 처음에야 활기차고, 성실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태만해지는 경우가 허다하며. 급기야 타락하는 것이 일상다반사이니까.
여명은 그 점을 염두하여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이리라.
신수 황룡께서 나라를 다스리시는 이상 군부와 백룡성이 타락할 일은 없으니, 무협오문과 정경유착할 일도 없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적절한 인선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뜻밖인 것은.
“…식선께선 그들은 제법 신경 쓰시는 모양이군요.”
“내가?”
“그들을 아끼는 게 아니라면 이런 요구를 하지 않으셨을 테니 말입니다.”
그가 보고받기론 식선께선 무협오문에게 그다지 큰 호감은 없었다.
동점심이 있어 도와주는 거긴 하지만. 딱 거기까지일 뿐.
그들을 크게 도와줄 의리는 없을 터인데…?
여명은 당무전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지. 솔직히 이렇게까지 할 의리는 없어. 하지만.”
“하지만?”
“아깝잖아. 기껏 저만큼 키웠는데.”
“…하하! 그 또한 맞는 말이군요.”
여명의 말투와 억양은 마치 잘 키운 분재(盆栽)가 이대로 죽는 게 아깝다는 투였으며. 당무전은 호탕하게 웃고 말았다.
비록 한없이 약해졌더라도 누가 과연 구파일방을 저토록 분재처럼 대할 수 있을까.
“적절히 가지도 좀 쳐내고. 뿌리가 썩지 않도록 잘 키워주기만 하면 돼. 내가 원하는 건 그게 다야.”
“아하하, 이거 참. 인수인계가 부담스러워지겠습니다.”
지금 이 요구를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봉마림이 사라지지 않는 한 반점이란 객잔이 사라질 일도 없다는 것이니 말이다.
‘그야말로 공동운명체라 할 만하구나.’
“식선께서 아주 길고 긴 과제를 남겨주고 가십니다.”
“싫으면 하지 말고.”
“아닙니다.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하도록 하지요.”
“…답변이 너무 빠른 거 아니야? 좀 더 고민하고 말해도 괜찮은데.”
“아닙니다. 충분히 고민하여 말씀드리는 겁니다.”
당무전은 비록 무공이 뒤떨어지지만. 머리 회전만큼은 빠른 이였고. 이해득실을 따져보는 것에 도가 튼 이였다.
“그 반점이라는 것. 잘만 활용한다면 큰 이득을 벌어들일 수 있단 예감이 듭니다. 그러니 믿고 맡겨주시죠. 식선에게도 큰 이득이 되도록 할 터이니.”
“아니, 그 정도까진 안 바라는데….”
“식선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각골명심하겠나이다.”
“……그래, 마음대로 해라.”
이제 제법 무림인을 대하는 방식이 능숙해지는 여명이었다.
* * *
여명이 슬슬 저녁 장사를 위해 떠나랴 그에게 주어진 관사를 향하니 놀라운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게 다 뭐래?”
“으르릉!”
설기는 경계심 가득하게 이를 드러내는 것에 반해. 여명은 마냥 눈만 끔뻑였다.
그도 그럴 게.
“왜 이런 흉물들이 여기 있어?”
흉물(凶物)이란 말로도 부족한 흉측한 것들이 관사에 널려 있었다.
벌레인지 갑각류인지 헷갈리는 거대한 잠자리.
키위처럼 생겼지만. 면도날마냥 오싹한 껍질을 가진 과일.
분명 사슴처럼 생겼는데, 어딘지 소와 같은 생김새를 가진 특이한 짐승까지.
흉물이란 말조차 순환해서 쓴 것이 아닐까 싶은 기괴한 것들의 향연을 마주하며 여명은 현기증이 날 뻔했다.
‘기분 나쁘게 이건 왜 이렇게 잘 정리되어 있어?’
상자 안에 차곡차곡 쌓여 나름 ‘포장’된 상태라고 보면 될까.
여명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한숨을 내뱉었다.
“백룡, 이 양반이구먼.”
“월.”
이런 엽기적인 일을 마음대로 저지를 양반은 한 명밖에 없으니 범인을 추측해내는 것은 쉬웠다.
그나마 악취가 나지 않는 게 다행이지만. 그로테스크한 광경에 면역력이 부족한 여명으로선 도저히 가만히 볼 광경이 아니었음이다.
“후우, 이딴 걸 왜….”
“월.”
“설기야?”
킁킁!
짤막한 다리로 조심스레 흉물에게 접근하며 설기는 코를 벌렁거렸다.
서서히 설기의 꼬리가 꼿꼿하게 서더니, 곧.
“헥헥!”
“…오오.”
여명은 프로펠러마냥 회전하는 설기의 꼬리를 보며 확신했다.
저 흉물들, 아니.
‘식재였구나.’
그것도 저 먹보 녀석이 반응할 정도로 괜찮은 식재일 터.
그제야 여명은 처음 백룡이 여명을 유혹하기 위해 선보였던 기괴한 식재를 떠올렸다.
봉마림의 명물이라고 했었나.
‘맛은 더할 나위 없이 환상적이지만. 대신 생긴 게 개성적이라고 했지.’
전날의 기억을 더듬으며 명물에 대해 떠올리니, 확실히 개성적이긴 하다며 여명은 쓰게 웃었다.
아니, 이 정도면 개성적인 걸 넘어 엽기적인 것 같기도 하고.
다만, 엽기적인 생김새보다 여명은 다른 것에 더 관심이 갔다.
‘…무슨 맛이 나려나.’
처음 보는 식재를 만질 생각을 하니 자연스레 기대감이 드는 건 그가 천생 요리사란 증거일 터.
…뭐, 마냥 순순히 기뻐할 수 없는 건.
‘무슨 목적이라도 있나?’
백룡, 그 음흉한 인간이 마냥 호의로만 봉마림의 식재를 줬으리라 생각되지 않아 의문스러웠다.
분명 무슨 목적이 있을 텐데….
“또 무슨 개수작을 부리려고 이러는 거지?”
“월?”
“아니, 네가 수작 부린다는 게 아니고….”
“왈.”
“……너도 참.”
괜히 머리 굴리지 말고, 빨리 먹자고 보채는 설기였고. 여명은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 집 강아지는 독이 든 성배조차 맛있다고 하면 먹을 것 같아서.
‘언제 한번 크게 탈나는 거 아닌지, 원.’
아무거나 입안에 넣고 보는 아이가 생각나, 어린 자녀를 둔 부모의 심경을 간접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
………
우우웅…!
[확실히 전해 드렸습니다. 그러니 보채지 좀 마십시오, 대부.]
우웅!
[거 참. 그렇게 보고 싶으시면 빨리 나오십시오.]
우우웅….
[그러게 누가 타락하라고 했습니까? 하여튼 간에….]
우우우웅!
[…제가 잘못했으니 화내지 마십시오. 대모께 피해가 가려면 어쩌려고.]
웅…….
[…이런 점까지 참 여전하십니다.]
누가 과연 예상했을까.
백룡이 자리를 비운 이유가 다른 여타의 이유 때문이 아닌, 그저 어느 ‘공처가’의 부탁을 들어주느라 비운 것뿐이란 것을.
백룡은 난감하게 웃으면서도 연못을 향해 여명이 무얼 하고 있는지 얘기해야 했고. 연못은 잔잔하게 떨리며 맑게 빛났다.
마치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표현하듯이.
tmi후기+
-참고로 하나 말하자면 영수에게 성별은 딱히 의미가 없다.
-얼마든지 성별을 변환시킬 수 있다고 보면 된다.
-타락한 영수가 일반적으로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오기 위해선 대략 수백 년의 세월이 걸린다.
-다만, 여러 조건이 충족되고. 타락한 영수의 정신이 또렷해지는 계기가 있으면 시간이 압도적으로 단축된다.
+소제목을 자꾸 바뀌는 이유는, 글에 맞는 적절한 내용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갑작스레 소제목이 바뀌었다고 해도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