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서와요 무림식당-191화 (191/261)

191-잘 키운 강아지 백 사람 안 부럽다(1)

크기와 형태 등이 각기 다른 식재료의 숫자가 무수하듯, 식도(食刀) 또한 딱히 그 형태가 정해져 있지 않은바.

어떤 이는 장인은 도구 탓을 하지 않으니, 실력만 좋다면 무딘 식도로도 모든 식재료를 손질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따지는 이들도 있지만.

‘난 장인 안 하련다.’

서걱서걱.

여명은 기꺼이 장인 호칭을 반납하며 톱날을 움직였다.

과일껍질인지 면도날인지 헷갈리는 봉마림의 과실이 깎이듯 벗겨지며 점차 그 속살이 드러냈다.

“이제야 벗겨지는구먼.”

“그렇지, 역시 도구가 중요하지, 암.”

“…세 분은 어차피 강기 같은 거 있으니까 안 가리고 다 쓰는 거 아니었어요?”

그와 달리 레이저 죽도 휘두르는 초인들에게 도구가 의미가 있나 물으니 어르신들은 고개를 저었다.

“이 사부가 몰라서 하는 소리야. 검강도 좋은 검으로 펼쳐야 나오지. 단순한 철검으로 하면 그냥 모래처럼 부서져.”

“검은 비싼 게 최고지.”

“그러고 보니 옛날에 그런 놈이 있었지. ‘고수는 검을 가리지 않소’ 하면서 덤빈 미친놈이.”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검을 두부마냥 싹둑 잘라줬지. 어찌나 잘 베이던지, 나도 모르게 팔까지 같이 베어버렸지, 뭔가.”

“크하하, 그거 걸작이구먼.”

“세상에, 그런 등신이 다 있나, 어허허!”

“…….”

“음? 자네 갑자기 왜 우릴 노려보나?”

껄껄 웃던 삼존 노인들에게 강렬한 시선을 주는 단골 노인, 별호가 분명 비검일수(飛劍一手)였을 것이다.

그는 맹수처럼 강렬하게 삼존을, 특히 위 노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몰라서 묻나?”

“??”

“자네들이 말하는 그 등신…! 그게 바로 나다, 이 자식들아!”

분노의 일갈을 내뱉는 비검일수의 커밍아웃에 단골들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지금 저 얘기의 등신, 아니 당사자가 바로 여기 있었단 말인가?

“…진짜?”

위현악은 눈을 끔뻑이며 되물었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팔이 달려 있잖은가?”

“의수(義手)네.”

“……아. 그랬구먼.”

“…….”

다시금 찾아오는 적막한 침묵이 어색한 분위기를 자아낼 때쯤, 위현악을 비롯한 삼존 노인들은….

“그 등신이 너였구나, 아하하!”

“세상 참 좁구먼. 설마 자네가 그놈이었나?”

“그거 이제 보니 천강목(天强木)으로 만든 의수구먼. 명검 싫다더니, 팔은 명품이구먼, 어허허.”

“…죽인다!”

삼존에게 달려드는 비검일수였고. 삼존 노인은 재롱을 받아주듯 비검일수와 싸우며 식당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뭔.”

여명은 블랙코미디도 이런 블랙코미디가 없다는 시선으로 일련의 상황을 보았고. 혀를 내둘렀다.

“소란스러워도 이해하게나. 하여튼 저 친구도 못 말리는구먼.”

“못난 놈이지. 그러기에 누가 무딘 철검 들고 싸우랬나. 한심한 것.”

“…….”

역시 장인은 도구 가리는 게 맞는 거라는 깨우침을 주는 대화를 들으며 여명은 쓰게 웃었고. 이제야 모든 손질이 끝난 봉마림의 과실을 내놓았다.

“자요, 드셔보세요.”

“이 사부가 먼저 먹게. 이 사부가 받아온 것이 아닌가.”

“누가 먼저 먹는 게 무슨 상관이겠어요. 그리고.”

“음?”

“독이 있으면 어떻게요.”

“……우리는 중독돼도 상관없는 게고?”

“만독불침이시잖아요.”

“…이 사부가 이제 무림인을 잘 아는구먼.”

그들은 떨떠름해하였고. 여명은 장난스럽게 입매를 올렸다.

“농담입니다. 독은커녕 건강식이더라고요.”

여명은 시범 보이듯 날름 잘 잘린 과일을 입에 머금었고. 노인들은 한 방 먹은 것처럼 피식거렸다.

언뜻 조손간의 가벼운 장난 같은 대화가 끝나고. 여명처럼 과실을 입에 넣으며 그들은 미간을 찌푸렸다.

“너무 달구나.”

“신맛이 엄청나구려.”

“…새콤한 것이 아니고?”

“…??”

과실을 맛본 이들의 입에서 모두 각기 다른 의견이 나왔다.

“신기하죠? 부위마다 맛이 다르더라고요.”

식감은 언뜻 보면 빵과 닮아 있었다. 그나마 닮은 과일의 식감을 찾자면 구운 바나나?

‘어느 부위는 달고, 또 어떤 부위는 새콤하거나 신맛이 강하다니….’

언뜻 이탈리아식 화채가 생각나는 맛이었다.

-여명 옹, 이게 마체도니아란 건데, 한번 먹어봐. 개인적으로 난 한국 화채보다 낫더라고.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것 같은데?

-이 양반아! 요리사란 양반이 과일 본연의 맛에 집중해야지!

-그러니까 이 맛도 저 맛도 아니라고, 이 자식아.

마체도니아의 맛을 표현하자면 과일청에 더 가까울 것이다.

화채는 사이다나 음료를 넣어 인공적인 단맛을 더해준 느낌이라면, 마체도니아는 여러 과일을 설탕이나 꿀 등에 넣어 2시간 이상 숙성을 시키므로 과일의 단맛을 한층 올려주는 느낌이니 말이다.

“월?”

“음? 맛이 없는 거냐고? 아니야. 맛있어, 맛있는데…. 그냥 내 취향이 아닐 뿐이지.”

워낙 한국적인 입맛이라 그런지, 아니면 취향이 그런지 모르겠지만. 여명은 차라리 수박 속을 파서 사이다와 소주, 꿀 등을 넣어 마시는 화채가 더 마음에 들 따름이었다.

“왈…?”

그건 그냥 술맛이 좋은 거 아니냐는 백 선생의 말이었지만. 여명은 시선을 피하며 다시금 과일을 맛보았다.

“…신기하단 말이지.”

아무리 취향이 아니라고 하지만. 마체도니아의 신맛, 단맛, 새콤한 맛 등을 내는 과일인 것이다.

더할 나위 없이 오묘하면서도 색다르니 재밌을 수밖에.

“이 사부 덕분에 이런 것도 다 먹어보는구려.”

“처음 드세요?”

“아무리 우리라고 한들, 봉마림의 식재를 함부로 먹을 순 없으니 말이오.”

무림에서 힘깨나 주는 그들이라 할지라도, 황실의 재산을 건드릴 수는 없는 바이니, 봉마림의 식재를 처음 먹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맛본 이들이 있다면 금천후 정도이리라.

“대단하구나. 나 같은 경우 어마어마한 대가를 지불하고서야 가까스로 한두 개를 건졌을 뿐인데 그것을 그저 덤으로 얻어오다니.”

“백룡 그 양반이 이상하게 절 잘 챙겨주더라고요.”

“그것이 더 신기하구나. 그 괴상한 것이 사람에게 호의를 보이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금천후는 백룡에게 호의를 얻어낸 여명이 신기한 건지 고개를 갸웃거렸고. 여명은 그 실없는 양방과 친해지는 게 그토록 어려운 일인가 싶어 의문스러웠다.

누구와도 쉽게 친해질 것 같은데….

‘아닌가?’

“월!”

“응?”

무언가 괴리감을 느끼는 여명이 고개를 갸웃거리던 중, 설기가 그의 바지 끝자락을 툭툭 잡아당기며 애원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또?”

“멍.”

“바, 밥 먹은 지 아직 한 시간도 안 됐지 않나?”

“왈.”

“…성장기도 참 여러 번 온다.”

성장기에는 원래 배고픈 법이라는 설기의 발언에 여명은 기가 막혔다.

아무리 성장기라고 하지만, 하루 12끼가 말이 되는가 싶기도 해서.

‘이러다 진짜 굴러다니는 거 아닌가 몰라.’

신기하게도 병원에만 가면 너무 건강하고. 골격근도 평균 이상이라고 의사가 말한지라, 비만이라고 뭐라 할 수도 없다는 게 문제였다.

‘이게 바로 견자강인가?’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설기가 그를 보채었다.

“왈.”

“알았어, 성질 좀 그만 부려.”

“월월.”

“린이 것도 같이 만들라고? 네가 웬일로 린이를 다 챙긴대.”

“월.”

“…언제부터 네가 좋은 선배였다고.”

여명은 성격 나쁜 강아지와 투닥거리면서도 밥을 만들어주었다.

항상 대화할 때면 이토록 툴툴대지만. 단 한 번도 대충 밥을 만들어준 적이 없는 여명이었고. 설기는 그것이 몹시 마음에 드는 듯 꼬리를 살랑거렸다.

주인이 만든 밥은 항상 맛있다는 것처럼.

“오늘은 마침 우족이 들어와서, 우족 찜을 만들어봤어. 린이랑 같이 나눠 먹어.”

“월!”

설기는 수북하게 쌓인 우족 찜과 대량의 볶음밥, 그리고 반찬 등을 자기 전용 미니 수레 위로 얹으며 그대로 직원휴게실로 쌩하니 떠났다.

“수레 만들길 잘했네.”

“저 수레는 어디서 난 건가?”

“제가 재료 사서 만든 거죠, 뭐. 제법 그럴싸하죠?”

“…이 사부는 그 강아지한테 너무 무른 게 아닌가 싶구먼.”

“제가요?”

“……허허.”

아마 저 강아지가 하루마다 건방져지는 이유는 저토록 어리광을 다 받아주는 여명이 문제가 있을 것이라 확신하는 자운이었다.

………

………

………

설기가 수레를 끌고 오는 것을 보며 북궁린이 다급히 설기를 맞이했다.

“설기님 오셨습니까.”

“월!”

“아, 준비는 다 끝냈습니다. 이대로 접시를 가져가면 되겠습니까?”

“왈.”

“알겠습니다.”

북궁린은 예의 바르게 설기의 말을 따랐다.

어째 보면 볼수록 성격 더러운 시누이에게 구박받는 불쌍한 아낙네의 모습 같았지만. 북궁린은 불만이 없었다.

도리어.

푹신.

“월.”

“우후후, 오늘은 먼저 올라와 주셨군요.”

몸을 기대오며. 털을 쓰다듬어도 뭐라 하지 않으니,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되었다.

사장님을 제외하면 털을 허락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북궁린이 참으로 싹싹하게 설기를 아껴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북궁린이 설기의 보드라운 털을 만지며 만족감을 느끼던 중, 시곗바늘이 9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 설기님. 시간이 되었습니다.”

“멍.”

북궁린의 말에 설기는 곧장 북궁린의 품을 벗어났다.

그 좋아하는 밥도 먹지 않고,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일까 할 수도 있지만. 지금 이러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설기는 북궁린을 시켜 직원휴게실 침대 밑에 두었던 장비들을 차례대로 꺼내 갔다.

침대 밑에서 나온 것은 놀랍게도.

“늘 그렇듯 ‘세팅’이란 것을 하면 되겠습니까?”

“월!”

카메라와 조명, 마이크. 그리고 노트북과 스마트폰 등등.

일반 식당에 있을 수가 없는 최신 장비들이 등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카메라의 불이 켜지고. 노트북 화면으로 설기가 비추어지기 무섭게….

【‘힐링성애자’님이 10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백설기팬1호’님이 5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설기사랑해’님이 7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월!”

┕꺄악! 기다리고 있었어요!

┕백설기! 백설기!

┕오늘도 뒷발차기로 카메라 뿌셔주세요!

┕…여기 인간들 다 이상해.

“왈왈.”

설기는 채팅을 읽어가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늘은 시작부터 수금이 잘된다며 흡족하게 웃는 것이었으나, 그것을 그저 해맑은 강아지의 미소로 오인한 시청자들은 마냥 ‘귀엽다!’며 채팅을 칠 따름이었다.

“월.”

방송이 시작되었다.

* * *

약 5개월 전.

설기가 늘 그렇듯 여명의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던 중이었거늘, 우연치 않게 사고가 일어났다.

-월?

무언가를 잘못 터치하여 ‘실시간 방송’이란 것을 누르게 된 설기였고. 이게 뭔가 싶어서 설기는 마냥 혼란스러워해야 했다.

한데….

┕미친! 세상에 이런 귀여운 댕댕이가!?

┕보는 것만으로 행복해집니다.

┕와아, 새로운 채널인가 보네.

┕견종이 뭔가요?

-……멍?

운이 미쳤는지, 그것도 아니면 어떤 알고리즘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설기는 첫 방송에서 무려 10명이 넘는 시청자를 사로잡을 수 있었다.

그저 멍 때리고 스마트폰을 향해 짖었을 뿐인데, 시청자들은.

┕눈물 나도록 귀엽습니다!(ㅠㅠ)

┕시, 심장이…!

┕응급실 가는 중.

-…?

세상에는 주접떠는 인간들이 많다고 했던가. 시청자는 설기의 발짓 몇 번에 행복해하였고. 설기를 찬양했다.

-월….

설기는 혀를 찼다.

세상에 뭐 이런 이상한 사람들이 다 있나 하고.

그러면서 얼른 실시간 방송을 종료하며 한 편의 해프닝으로 취급하려 했는데….

-【‘애견사랑486’님이 30,000원을 후원합니다.】

-월!?

┕주인분, 이걸로 강아지한테 맛있는 개 껌 사주세요!

-…….

설기는 일순 냄새를 맡았다.

이건…!

-왈~.

쩐의 냄새였다.

그리고 현재.

“월.”

“지, 지금부터, 배, 백설기님의 먹방을 시작하겠습니다. 차, 참고로 이 음식은 모두 강아지가 먹을 수 있는 재료로만 만들어졌으니, 오,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주인분 음색 미쳤다!

┕여전히 얼굴은 안 보여주시나요? 혹시 진짜 연예인?

어설픈 더빙과 같은 북궁린의 대사가 끝나고. 설기는 우족 찜 하나를 입에 넣어 깔끔히 뼈만 발라내는 묘기를 보였다.

순간.

【‘힐링성애자’님이 50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백설기팬1호’님이 10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설기사랑해’님이 9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월월.”

“후, 후원을 해주셔서, 가, 감사합니다….”

“월.”

“배, [백설(白雪)TV]에 구, 구독과…. 조, 좋아요를 부탁드립…니다.”

설기가 미리 적어 넣은 글자를 힘들게 읽어가며 북궁린은 다시금 어설프게 감사를 전했고. 설기는 흐뭇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월!”

1만 명만 더 구독하면 50만이라며 더욱 열심히 입을 우물거리는 강아지는 밥을 먹으면서 돈을 벌 수 있는 21세기 사회가 한없이 좋았다.

tmi후기.

-나중에 나올 내용이지만. 설기는 방송 수입을 통해 방송장비를 구입했다.

-수익이 발생할 때까지 여명의 스마트폰만으로 방송을 하였다.

-여명은 현재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는데, 이유는 여명에게 스마트폰은 전화기 용도로만 사용될뿐더러, 찾을 것이 있으면 검색하기보단 책이나 컴퓨터를 통해 찾아보는 타입인 덕분이다.

-또한 설기가 북궁린에게 협력을 구하여 이러한 완전범죄(?)가 성립되었다고 보면 된다.

-설기의 지금 수입은 대기업 사원 초봉 정도가 된다.

-물론 한 달 수익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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