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잘 키운 강아지 백 사람 안 부럽다(2)
‘이 안에 사람이 있다니…. 여전히 믿기지가 않습니다.’
북궁린은 자기 몫의 우족 찜을 우물거리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동경(銅鏡)처럼 생긴 것 안에 사람이 있고. 설기님이 밥을 먹는 모습을 6천 명 이상이 보고 있다는 것이 마냥 믿기 힘들다.
‘또한 밥만 먹을 뿐인데도 돈을 벌 수 있다니…. 선계란 곳은 참으로 신기한 곳이 아닐 수 없군요.’
북궁린은 선계를 이미 경험한 적이 있으나. 경험하면 경험할수록 새로운 것이 나오는 것 같다며 마냥 눈을 끔뻑였다.
그때.
┕우족 찜 맛이 어떤가요?
“월.”
“아….”
‘이것도 제가 해야 하는 거군요.’
설기님의 신호가 이어지며 북궁린은 입을 열어갔다.
이런 질문이 오면 설기님께서 그냥 솔직한 심경을 말하면 된다고 했으니 말이다.
북궁린은 최근 사장님과 설기님에게 배운 선계 언어를 어설프게나마 입에 담으며 감상평을 내뱉었다.
“아, 아주 맛있습…니다. 사, 사장님께서 오, 오래 시간 동안 푹 익히셔서 부드럽고, 쪼, 쪽쪽합니다.”
┕쪽쪽?
┕눈치 챙겨. 촉촉하시다는 거잖아.
┕아, 그렇구나.
┕외국 분이신가 봐. 한국말 서투시네. 그래도 예의 바르게 말하는 거나, 목소리가 예쁘셔서 듣기 좋네.
┕진짜 얼굴 공개 안 해주시나? 얼공 하시면 30만원 투척하겠습니다!
“월?”
“…사양하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남들 앞에 서기란 껄끄러워지는지라 정중히 사양하는 북궁린이었고. 모두가 아쉽다며 소란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왈왈.”
설기님께서 슬슬 음식을 다 먹어치우셨는지 방송 종료를 선언했고. 북궁린은 이제 자동반사적으로 입을 열고 있었다.
“이, 이상으로 오늘 방송을 끝내…겠, 습니다. 구, 구독과 좋아요를, 바랍…니다.”
딸깍.
동경이 완전히 까맣게 변하는 것으로 방송이 종료되었고. 설기님께서 네모난 우주경(宇宙鏡)이란 것을 확인하시고 계셨다.
‘광오한 이름이로다. 우주의 이름을 가진 거울이라니….’
듣기론 우주경과 나란히 선계에서 인기가 많은 동경 중에는 사과의 이름을 딴 것도 있다고 하는데….
‘혹시 사과를 생성해내는 동경일까?’
그런 거라면 조금 가지고 싶을 것 같다.
북해 출신인 그녀로선 언제든 신선한 과일을 꺼내먹을 수 있는 물건이 있다면 그것이 곧 비보일 테니까.
그런 실없는 생각을 이어갈 때 설기님께서 그녀를 불렀다.
“왈.”
“아, 부르셨습니까.”
“월월.”
“서, 설기님 언제나 말하는 거지만. 전 남들 앞에 서고 싶지 않습니다.”
“끼이잉?”
“…연기하시는 거 압니다.”
“멍.”
때때로 자신에게 같이 방송이란 것을 같이 하자고 제의하시는 설기님이셨고. 북궁린은 최선을 다해 거절하는 중이었다.
자신이 무슨 재주가 있다고 사람들 앞에 설 수 있냐며 고개를 내젖는 것이었다.
허나 설기님께선 그런 자신이 답답한지 짤막한 다리로 가슴을 탁탁 치셨다.
“왈왈왈!”
“…예, 예쁘면 다 된다니, 어찌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단 말입니까?”
미색이 뛰어나기만 하면 사람들이 돈 주머니를 연다는 설기님의 말은 믿을 수가 없는 발언이다.
그도 그럴 게 어찌 미색이 곱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돈 주머니를 연다는 말인가.
“경국지색의 기녀조차 재주가 없다면 돈을 벌지 못하는 것은 상식입니다, 설기님.”
“월월!”
“신선들은 상식적이지 않다? 설기님, 그 발언에는 설득력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사장님만 보아도 신선들의 인품을 알 수 있는 법이지요.”
“월….”
우리 주인은 특수하다고 말하는 설기는 답답해하며. 언뜻 생각난 것을 발언했다.
“왈!”
“…그, 그 사람은 뭐….”
사장님의 망나니 형제를 떠올리니 확실히 신선이라고 하여 무조건 상식적이고 선한 인물이 아님을 아니 북궁린은 반박이 막혀갔다.
허나 그녀에겐 가장 중요한 최후의 변론이 남아 있었다.
어찌 보며 가장 중요한 문제점이.
“저, 저는 미인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설기님의 말씀에는 오차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예쁘게 봐주신 것은 감사하지만. 마냥 수치스러울 따름입니다.”
“……월?”
설기는 북궁린의 망언이 어처구니없는지 할 말을 잃었다.
“멍.”
…저건 개도 아닌데, 왜 개소리를 하는 걸까?
* * *
북궁린은 객관적으로 봐도 어여쁘다.
원래도 귀엽게 생기고. 현대 배우 못지않은 미모였지만. 올해 갓 스물이 된 만큼 그 특유의 미모가 꽃봉오리처럼 개화하여 청순미모의 역사를 쓰는 중이었다.
솔직히 거리 한복판에 던져놔도 내일 아침이면 화제의 인물이 될 것임이 분명하리라.
한데 저런 망언이라니.
‘월월.’
설기는 북궁린이 사서 적을 만드는 스타일임을 인지하며 혀를 찼다.
“멍….”
뭐, 그래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주인 주변에는 워낙 미녀들이 많으니, 그녀 자신이 볼품없다 느낄 수도 있으니까.
허나 이는 그녀들이 성숙해서 그런 거지. 북궁린도 뒤지지 않는 잠재력이 있었다.
무엇보다 색목인, 그러니까 서양인 핏줄이 아닌가.
“월.”
3년 만 지나도 사람들은 패왕색(色)이 뭔지 알게 되리라.
설기는 그때를 기약하며 짤막한 발바닥을 움직여 편집에 박차를 가하였다.
설기는 스마트폰을 통해 영상 편집을 공부하였으나. 워낙 재주가 좋고 똘똘한 탓인지 영상 편집 두세 번을 하며 감을 잡았고. 현재는 프로 편집자 못지않은 퀄리티를 자랑하는 중이었다.
설기 본인의 생각만 이런 것이 아닌, 댓글만 보아도.
┕편집자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진짜 깔끔하게 잘한다.
┕최소 방송국 관계자일 듯.
┕ㄹㅇ.
라고 찬사가 쏟아지니 설기는 충분히 자신만만해도 되었다.
높은 질을 자랑하는 긴 영상과 1분짜리 짧은 영상. 인★에 올릴 사진 등등.
설기는 할 일이 참으로 많았지만. 이 모든 일에 보람을 느끼는 중이었다.
“월!”
그도 그럴 게 계좌에 꽂히는 수익금만 보면 누구든 보람을 느낄 테니까.
광고 수익금을 비롯한 무수한 후원금 등이 통장에 꽂힐 때마다 일을 하는 보람을 느끼는 건 사람이나 강아지나 마찬가지인 이치.
“왕~.”
설기는 주인이 스마트뱅킹보다 농협이나 은행을 직접 찾아가는 고전적인 사람이란 것이 참으로 좋았다.
그러니 덕분에 가상계좌 하나 만들어서 이토록 몰래 돈을 벌 수 있으니, 완전범죄라 할 만하지 않은가.
물론 설기가 직접 번 돈이니 범죄라고 할 것도 없지만. 주인 몰래 돈을 버는 것이니 아무래도 찜찜할 수밖에 없었다.
“월….”
그래도 훗날 백만 구독자를 달성하게 된다면, 이 사실을 밝히리라 다짐하며 설기는 양심을 잠시 버리기로 했다.
띵!
“왈.”
그러니 지금은 열심히 노를 저을 때였다.
설기는 영상 편집을 끝내고. 추가 업무를 시작했다.
영상편집 말고도 아직 끝나지 않은 업무가 있으니 말이다.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업무라 할 수 있는….
“월.”
주식차트를 보는 일이었다.
* * *
……수상하다.
무엇이 수상하냐고?
‘린이가.’
북궁린. 여명이 아는 요즘 애들 중 가장 참한 애이자, 성실하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운 밥심의 자랑스러운 직원.
지금껏 단 한 번도 여명을 실망시킨 적이 없는 그녀였고. 여명 또한 북궁린에게 실망할 일은 없을 거라고 자부하는 바였다.
그 정도로 그녀는 성실하고도 착했으니까.
한데 그런 그녀가 수상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수상하냐고 하냐면.
“린아.”
“사, 사장님!?”
“…반응이 왜 그래? 무슨 잘못이라도 했어?”
“자, 잘못!?”
“…….”
“저,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린아….”
“처, 청소를 해야 하니 실례하겠습니다!”
“……그러는 게 더 수상하단 생각은 안 드니?”
여명은 쌩하니 사라지는 북궁린이 마냥 귀여우면서도 안쓰러웠다.
거짓말을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저토록 티가 나는데 속아주는 게 더 힘들다 싶은 거였다.
‘무슨 일이지?’
여명이 아는 한 북궁린은 자신에게 무언가를 숨길 일이 거의 없다.
만약 잘못한 게 있다면 솔직하게 무릎부터 꿇으며 눈물부터 글썽거렸겠지.
한데 그러지 않고 저러는 것을 보면 무슨 잘못을 한 게 아니라, 숨기는 게 있다는 뜻일 테고. 순박한 그녀가 저토록 난처해하는 것을 보면.
‘우리 집 강아지겠네.’
북궁린을 저토록 난처하게 만들 수 있는 건 설기나 자신뿐이었으니 말이다.
여명은 쓰게 웃었다.
최근 조용하다 싶더니, 또 무슨 사고를 치나 싶어서.
‘하아, 가만히 있지를 않는구나, 우리 강아지는.’
이걸 어찌 해야 하나….
‘모른 척할까?’
만약 나쁜 짓을 하였다면 북궁린은 결코 설기에게 협력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설기에게 약하다고 해도 북궁린은 잘못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줄 아는 당찬 여성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설기가 나쁜 짓을 한 것은 아닐 테고….
그럼.
‘별거 아니겠지.’
끽 해봐야 게임 하다가 현질 좀 한 수준?
아마 딱 그 정도이리라 여기며 여명은 어깨를 으쓱였다.
“장사 준비나 하자.”
여명은 별 것 아닌 일로 치부하며 장사 준비에 열을 쏟기로 했다.
설마 큰일이야 있겠나 싶어.
탁탁!
“응?”
아직 준비시간이거늘, 뜬금없이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분명 휴식 중이라고 간판도 세워놨을 텐데?’
여명은 혹시나 단골손님인가 싶어 문을 열었고. 뜻밖의 인물을 마주하여야 했다.
“…당신은 또 왜 여기 왔어?”
“건방진 놈. 여전히 집안의 어른한테 막말을 하는구나.”
“염병….”
“…!”
“아, 미안. 속으로만 생각한다는 게.”
“이이…!”
이종명. 그의 무늬만 핏줄이자 형제가 수모를 당한 표정으로 얼굴을 붉혔고. 그의 모습은 마치.
‘이 양반 저번만 해도 머리칼이 있지 않았었나?’
놀랍도록 삶은 문어와 닮은 그였고. 여명은 안쓰럽게 이종명의 머리를 보았다.
잠시 후 여명의 시선을 눈치 챈 그가 더욱 분기가 치밀어 오른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 * *
이미 몇 번을 언급했지만. 여명은 자신의 핏줄들과 사이가 나쁜 것을 넘어 서로를 혐오하는 관계였다.
이렇다 보니 혹시라도 서로 마주칠 일이 있더라도 으르렁거리기 바쁘며. 절대 좋은 소리가 나올 수 없는 게 당연하다는 의미.
한데 그걸 알 텐데도.
“왜 왔어.”
여명은 서늘한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이종명은 움찔했다.
저번에 만났을 때 그를 조금은 어려워했던 같던데, 이제는 길바닥 돌멩이 보듯 무감각했으니 말이다.
“크흠, 큰형이 왔는데 말버릇하곤….”
“진짜 아까부터 개소리 할래? 혹시 머리라도 다쳤어? 그런 거라면 응급차 불러주고.”
“무례한 놈!”
“진짜 무례한 게 뭔지 보여줘-?”
여명은 옷 소매를 걷으며 팔뚝을 보여줬다.
차돌과 같은 이두박근과 대조적으로 이종명의 팔뚝은 두부처럼 새하얗고 포동거릴 뿐이었다.
“이놈이! 손만 대봐라! 바로 콩밥을 먹여줄 테니!”
“부장 판사다 이거지? 참 나. 힘없는 서민은 서러워서 원.”
“!!”
한없이 비아냥거릴 뿐인 그의 말투에 이종명은 다시금 발끈했지만 참았다.
저번에도 그랬지만, 저 놈은 영악했다.
또한 CCTV나 녹음기도 신경 쓰이고.
‘안 그래도 최근 말이 많은데, 여기서 트집을 잡히면 끝장이다.’
이종명은 혼란스러운 시국을 상기하며 뜨거운 머리를 식혔다. 그리고는….
“…나도 모자란 네놈을 보는 게 마음 편치 않다. 그러니 할 얘기만 하고 빨리 끝내도록 하지.”
“당신이 나한테 할 얘기가 있다고?”
“그래, 본의가 아니지만.”
“??”
여명은 자신이 그를 싫어하는 만큼, 이종명 또한 자신을 싫어하는 것을 안다.
한데 일부러 대화를 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는 말인가?
“전화를 하지?”
“번호를 모른다.”
“부장 판사나 되면서 왜 이렇게 정보력이 없어?”
“…네놈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다.”
이종명은 혀를 찼다.
여전히 대화만 해도 속이 뒤집어진다며. 그러니 재빠르게 할 말만 하고 빠지기로 했다.
“네놈이 그런 거냐?”
“……뭐?”
“네놈이 주식…이 아니라, 모른 척 하지 말고 답해라!”
“…혹시 진짜 머리에 문제 생긴 건 아니지?”
뜬금 이게 무슨 말을 지껄이는 걸까 싶어 여명은 진심으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이종명은 여명의 반응에 이를 악 물었다.
나름 유능한 부장 판사인 그인 만큼, 사람의 반응에서 진실과 거짓 정도는 읽어낼 수 있는 그였다.
그리고 지금. 여명의 반응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의 반응이었다.
“그럼 대체 누구냔 말이다…!”
“당신, 진짜 병원 안 가도 돼?”
“닥쳐라.”
“…머리칼이 빠지니 개념도 같이 빠지는 건가?”
“!!?”
이종명은 여명의 망언에 날뛰었다.
그도 머리칼이 계속 사라지는 것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모양.
그렇게 약 5분 간 실랑이를 벌인 끝에 여명은 그를 내쫓았다.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것 같기에.
“나가, 이거 장사 방해야.”
“이놈…!”
“내가 당신 화풀이를 받아줄 만큼 좋은 사이는 아니잖아? 모근은 못 지켜도 양심은 좀 지키면서 살자, 우리.”
“끄으으윽!?”
여명은 끝까지 이종명을 놀리며 던져버렸다.
바깥에서 다시금 날뛰는 그의 성난 소리가 들렸으나, 여명이 친히 나가 다시 던져주려고 하니 이종명은 잽싸게 도망갔다.
“…저 양반, 갑자기 왜 저렇게 추잡해졌지?”
여명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아는 이종명은 비록 인격파탄자이고. 악랄한 인간이긴 하지만. 그래도 머리가 나쁜 양반은 아니었다.
저토록 막무가내에다 이성을 쉽게 잃는 양반은 아니란 의미.
한데 오늘 마주한 이종명은 무언가 얼이 빠져 있었으며. 정신도 오락가락 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고 보니 주식이 어쩌고저쩌고 했던 것 같던데?’
“흠…, 응?”
여명은 문득 휴게실을 보았다.
어젯밤 늦잠을 잔 것인지 휴게실에서 뻗은 설기는 지금까지도 일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평소였다면 그냥 쟤가 정말 상팔자의 삶을 사는구나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저 녀석 혹시…?’
기환학사의 능력일까, 그것도 아니면 견주로서의 직감일까?
여명은.
‘왜 수상하지?’
의심을 품었다.
tmi후기.
-여명의 식당에 대해 하나 말하자면, 식당이 중원삼국에 간다고 해도 전기 사용이 가능한 것처럼, 인터넷이나 TV도 사용가능하다.
-오직 식당 안에서만 가능하며 조금이라도 바깥에서 벗어나면 사용불가하다.
-참고로 북궁린의 생김새는 소피 마르소의 리즈 시절과 닮았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122화 참조).
-또한 닮았을 뿐이지. 소피 마르소 리즈보다 좀 더 미인이며. 슬라브계 백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