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서와요 무림식당-193화 (193/261)

193-왜 너 혼자 장르가 다르니…?(1)

번뜩.

“……와앙.”

백설기란 이름이 잘 어울리는 눈처럼 새하얀 강아지가 크게 하품하며 눈을 떴다.

그 상태로 설기는 온몸을 쭉 늘리며 슈퍼맨 자세를 취하여 온몸 스트레칭을 하듯 몸을 쭉쭉 펴갔다.

만약 누가 이 모습을 보았다면 아마 너무 앙증맞다 못해 귀엽다며 사진을 연신 찍어대지 않을까 싶은 모습.

아쉽게도 설기의 스트레칭을 찍을 사람이 주변에 없다는 게 아쉬운 일이 아닐까 싶었….

찰칵.

“왕.”

설기는 셀카를 찍었다.

인★ 각을 기가 막히게 잡아내는 영리함을 선보이는 강아지에게 빈틈은 없었고. 자신의 일상 자체가 곧 화보임을 아는 것이었다.

“월월.”

셀럽의 일상은 곧 돈과 연결된다는 것을 잘 아는 셀럽견이었음이다.

그렇게 셀카를 몇 개 찍은 후, 시간을 확인하니.

“월!?”

오후 4시.

좀만 있으면 저녁 시간이다.

늦잠도 이 정도면 늦잠이 아니라, 그냥 낮과 밤이 바뀐 정도가 아닐까 싶었으나 정작 설기가 놀란 이유는.

“왈?”

‘주인이 왜 자신을 깨우지 않은 것일까?’ 하는 의문이었다.

잠은 잘 안 깨우지만. 아침과 점심은 꼬박꼬박 먹이고 재우는 주인이었다.

한데 그런 주인이….

“멍….”

혹시 애정이 식은 건가?

“애정이 식기는. 너 삼시세끼 중 두 끼 다 먹었어, 이 녀석아.”

“월?!”

언제 들어온 것인지 주인이 자신을 내려다보며 투덜거렸고. 설기는 기겁했다.

그러나 설기가 기겁하는 것보다 먼저 주인은 어느 방향을 향해 손가락질하였고. 설기는 보았다.

“…왕.”

비어진 밥그릇과 접시 등등을 말이다.

“대단하더라. 잠은 자면서 밥은 꼭 먹어야겠다고 기어이 먹는 집념이.”

“…….”

“누가 보면 내가 널 굶긴 줄 알 거다, 이 녀석아.”

“…월.”

이 대목에서 설기는 약간 민망한지 고개를 돌렸다.

뻔뻔하기론 무쇠와 견줄만한 설기조차 잠자면서도 밥을 원했다는 것에는 기가 막힌 것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으나, 역시 주인은.

“어휴, 그래 이 잠꾸러기야. 이제 잠은 다 잔 거야?”

“…멍.”

“그래, 그럼 얼른 일어나서 산책이나 가자. 오늘은 운동해야지.”

“끼이잉….”

“엄살 부리지 말고.”

“…쯧.”

“너 지금 혀 찼냐!?”

언제 어색했냐는 듯 평소와 같은 부드러운 분위기가 감돌았고. 설기는 주인 몰래 히죽거렸다.

원래도 알고 있었지만. 참으로 상냥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며.

“월….”

그렇게 설기는 져주는 척하며 순순히 바깥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대충 벗어놓은 목걸이를 쓰고. 목줄마저 착용하니 나갈 준비는 끝이었다.

“…무슨 개가 혼자서 개 목걸이도 착용하고 목줄도 걸고 있냐?”

“월월.”

“그래, 새삼스러울 건 없긴 한데…. 하아, 됐다. 네가 언제부터 정상적이었다고.”

“월.”

설기는 남 말하지 말라며 구박했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는데, 주인에게 저런 말을 들으니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었다.

화악!

“?”

바깥으로 나가니 현대의 거리가 아닌, 천산의 장엄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여기서 의문인 것은 아직 저녁 시간까지 멀었는데, 왜 주인이 벌써 천산에 온 건가 하며 의문스러워하니.

“넌 오늘 토요일인 것도 까먹었지.”

토요일의 밥심은 아침 장사만 하고 점심에는 장사가 없었다.

“왕?!”

벌써 요일이 그렇게 흘렀단 말인가?

최근 방송 활동으로 바빠진 터라, 시간감각이 뒤죽박죽이 된 설기는 요일 개념이 사라진 지 오래인 건 알았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설기가 기겁하고 있을 때, 여명은 다정한 손길로 설기의 목줄을 풀어주었다.

“오늘은 실컷 뛸 수 있겠다.”

“우웅….”

앓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설기였다.

* * *

“헤엑! 헤에엑…!”

설기는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뛰었다.

뛰는 걸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다가도 막상 이렇게 달리면 흥분되고 만다.

아마 짐승의 육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수풀과 강물, 대나무 숲을 지그재그로 바람처럼 달리며 공기를 잔뜩 흡입하고 있으니, 온몸의 활기가 감돌아갔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치타와도 같으니!

“…너 혹시 개가 아니라 늑대였어?”

여명은 대나무 숲을 자유롭게 질주하는 설기의 모습이 마냥 신기할 따름이었다.

수많은 무림인을 만나며, 그들이 펼치는 보법이니 신법이니 하는 무공을 경험함으로써, 여명은 무림인의 발이 웬만한 동물보다 더욱 빠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천산에서 가장 약한 무인 취급받는 북궁린조차 나는 참새보다 빨랐는데, 이는 웬만한 네발 달린 짐승보다 빠르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지금, 설기의 질주는 북궁린보다 빨랐고. 바람을 빗대어도 부족하지 않은 위엄이 있었음이다.

대략 30분 동안 전력으로 뛰었지만. 설기는 여전히 활발해 보였다.

운동도 제대로 안 하는 녀석이 저 정도로 체력이 넘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신기할 따름.

“헥헥!”

“…다 뛰었어.”

“월!”

유난히 윤기가 흐르는 털을 보고 있자니, 마치 풍선 같았다.

쭈글쭈글하다가 공기를 불어넣으니 탱탱해지는 느낌 아닌 느낌.

30분만 뛰었는데도 이토록 윤기가 흐르다니….

‘얘는 진짜 뭘까?’

평범한 개가 아니라는 것은 진작 알고 있지만. 한 번씩 비범한 것을 넘어 특별한 모습을 목격할 때면 경악스럽기만 하다.

남들은 자신보고 대단하다느니, 엄청나다고 하지만. 사실은….

‘얘가 제일 대단한 게 아닐까?’

“월?”

“그냥 신기해서 봤어.”

“월월.”

“지쳤다고? 아직 쌩쌩해 보이는데.”

“왕!”

“구, 굶어서 그렇다고? …네가?”

올해 들어 최고의 개소리를 듣고 헛웃음이 3연타로 나왔다.

자면서도 밥을 먹는 녀석이 뭔….

“월.”

오늘의 저녁 메뉴를 묻는 설기의 꼬리가 사정없이 돌아갔다.

여명이 해줄 요리가 기대된다며 눈을 반짝이는데, 그 모습이 상당히 귀엽다 못해 부성애를 자극한다.

여명은 또다시 이 녀석에게 지는구나 타령하며 고개를 젓고는 원하는 답변을 해주었다.

“…해물덮밥인데, 먼저 먹을까?”

“멍!”

고기도 좋아하지만, 가리는 것 없는 강아지는 해물덮밥이란 말에 연신 기뻐하며 군침을 흘렸다.

여명이 해준 해물덮밥이 웬만한 일식 해물덮밥보다 훨씬 더 풍성하고. 맛이 좋다는 것을 알기에.

기대감이 가득 찬 강아지의 눈은 더욱 초롱초롱해졌고. 안 그래도 허기졌던 배에서 아우성이 심해질 때쯤.

“아, 맞다. 너한테 물어볼 거 있었는데.”

“월.”

여명은 툭 지나가는 태평한 어조로 설기에게 말을 걸었고. 설기는 얼마든지 물으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요즘 린이 데리고 방송한다며? 그거 잘되고 있어.”

“월!”

“흐음, 말해 뭐 하냐고? 잘나가나 보다.”

“월월.”

“그럼 말이야, 방송으로 번 돈으로 주식 같은 것도 하고 있어?”

“월.”

“돈은 굴려야 한다는 거구나. …그런데 이종명 그 양반은 왜 건드렸대.”

“월…….”

‘그거야….’라는 답변을 늘어놓을 때. 설기의 몸은 석상처럼 굳었다.

약 3초가 지나고. 서서히 몸이 움직인 설기는 느릿하게 고개를 움직이며 여명과 시선이 마주쳤다.

여명은.

“우리 백설기.”

“…….”

“나한테 할 말 없니-?”

“…….”

…강아지의 목덜미에서 식은땀이 한 방울 떨어졌다.

* * *

흔히 주식을 하게 되는 계기는 단순하다.

그냥 돈만 모아선 절대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주식을 시작하게 되고. 서서히 주식거래를 하게 되는 것이다.

어찌 보면 한 번에 대박을 원하는 사람이 심리와 욕망이 가장 활발한 곳이 주식이 아닐까 싶다.

허나 그런 욕망과 돈에 집착하는 이들과 달리 한국 주식판에 새롭게 등장한 어느 투자자는 딱히 돈을 벌기 위해 등장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월.

주식 시장이란 것을 싫어하면 싫어하였지.

강아지는 주식 차트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흔히 짐승은 후각이 뛰어나다고 하는데, 설기의 후각은 그보다 한 단계 더 진보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으르릉…!

사람의 체취를 넘어 그 너머의 욕망마저 맡는 강아지의 코는 주식 차트를 보며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

세상에서 가장 고약한 취두부가 있다면 이러한 냄새가 나지 않을까 싶었고. 강아지는 마냥 눈살을 찌푸리며 주식이고 뭐고 얼씬도 하고 싶지 않았다.

허나….

-…왕.

강아지는 한 가지 목적이 있기에 주식판에 뛰어든 것이고. 그 목적을 이루어내기까지 조금 참아보기로 했다.

일단은.

-월.

조금 유명해지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한국 주식 커뮤니티 사이트에 새롭게 등장한 [개가최고다]의 데뷔였다.

설기가 돈을 버는 방식은 간단했다.

주식 차트를 보며 욕망의 냄새가 짙은 곳을 찾아보며. 악취가 심하다 못해 썩어갈 것 같은 곳을 찾는 것이었다.

그렇게 설기는.

┕공매도의 신이 또 한 번 사고 쳤다!

┕미친!? 이게 이렇게 된다고…?

┕우와, 진짜 한국에도 이런 투자자가 존재할 수 있구나.

┕한국인 아닐 겁니다. 어쩌면 월가에서 오신 은둔의 투자자이실지도?

┕뭐가 됐든 대박임.

단 3개월조차 걸리지 않아 설기는 공매도의 신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공매도 넣는 타이밍이 예술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별명이었다.

-월.

돈 이렇게 쉽게 벌어서 되나 싶기도 했지만. 설기도 나름 고생 중이었다.

예를 들어.

-설기님, 오늘은 여기서 하시는 겁니까?

-월.

-…어찌 이리 먼 곳으로 오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북궁린의 협력을 받으며 주인의 식당과 멀리 떨어진 공터, 혹은 타지역까지 이동하는 정성을 보이며 설기는 자신의 위치추적을 피해 갔다.

훗날 손을 빼긴 빼더라도, ip추적이라도 당한다면 괜히 주인만 의심당할 테니 말이다.

거기다 추가로 사람의 눈과 CCTV 등을 따돌리며 다른 PC를 통해 거래까지 하며….

빠각!

사용한 PC 혹은 노트북을 철저하게 인멸하는 철저함까지 보였다.

-부, 부셨습니다.

-월월.

-더, 더 잘게 파괴하란 말씀입니까!?

이러한 은밀한 과정을 통해 설기의 투자는 어느 기점을 맞이하며 엄청난 성과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월.

설기는 어느 회사에 대한 공매도를 감행하였다.

┕공매도의 신 떴다!

┕…이런 회사도 있었나?

┕호오, 이거 보게…?

설기는 무작정 돈이 될 곳만 투자한 것이 아니었다.

욕망의 냄새를 맡는다는 것은 곧, 욕망의 방향성을 읽는다는 뜻이 되었으며. 이러한 능력으로 욕망의 흐름을 조작하는 것 또한 어려운 것은 게 아니란 의미였으니…!

-왈.

그야말로 하나의 회사를 목표물 삼아 버리는 악랄한 행위가 아닐 수 없으나, 설기는 무감각했다.

그도 그럴 게 목표물로 삼은 회사 자체가 아주 악랄하다 못해 추악한 곳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주, 주가 조작을 했다고?”

“…멍.”

“그, 그러니까…. 이종명 그 양반 처가댁이 운영하는 회사를 상대로?”

“월.”

“……그게 성공은 했어?”

“…….”

“…성공했구나.”

“…….”

“……얼마나 털어먹었냐?”

“…월~?”

“아무리 봐도 ‘조금’이 아닐 것 같다만….”

여명은 자신이 키우는 개가 주가 조작을 했다는 점도 기가 막혔지만. 그게 성공했다는 대목에서 기함했다.

아니, 이 녀석은 대체…?

‘왜 혼자 장르가 다르지?’

분명 무협물 찍고 있는데, 혼자 경영 느와르 영화를 찍어대는 강아지를 보며 여명은 하염없이 말문이 막혔다.

tmi후기

-하나 먼저 말하자면 설기가 털어먹은 회사 대부분은 한국 경제를 망치는 이들뿐이었다.

-선량한 이들에겐 피해를 주지 않는 정의로운 주가 조작이었다는 것만 알아두자.

-설기는 인간의 욕망을 냄새로 맡을 수 있으며. 이 덕분에 주식의 흐름도 볼 수 있다.

-주식 차트 또한 인간의 욕망이 넘쳐흐르는 공간이기에 직접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맡을 수 있다.

-설기는 주식 차트에 모인 욕망의 냄새를 '10년 묵은 음식물 쓰레기보다 지독하다'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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