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왜 너 혼자 장르가 다르니…?(3)
여명은 다음 날부터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일단 설기 이 녀석이 어떤 일을 벌였는지부터 다 알아놔야 해.’
분명 ‘내가 다 해결해놨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라고 당당히 말하는 설기였지만. 그렇다고 이걸 무작정 믿고 놔둘 순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무엇보다.
‘쟤가 안 그런 것 같아도 맹하단 말이지.’
설기는 이른바 천재과였고. 천재의 사고방식은 제멋대로란 것을 알기에 제 입으로 해결했다는 것을 결코 믿어선 안 되었다.
‘자기 기준에서 해결했다는 거니까.’
아니나 다를까.
“…야, 다 해결했다면서?”
“……멍?”
“이 녀석이…!”
설기가 남긴 파장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불법 정치자금 적발!>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것이나 마찬가지였지.
………
………
─감히 내 뒤통수를 쳐!
최근에는 보기도 드문 구식 폴더폰에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고막이 아픈지 잠시 미간을 찡그린 이종명은 크게 한숨을 내뱉으며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변명을 이어 나갔다.
“우리가 아니라고 했을 텐데요.”
─정황이 바로 너희를 가리키고 있잖아!
상대는 이종명을 끝없이 의심하고 있었고. 이 말에 이종명은 저자세가 아닌 단호한 기색으로 부정했다.
“…정황이라, 웃기는 말을 하는군요.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우리 집안인데.”
오히려 가장 막대한 피해를 입고도 어딘가 하소연도 못 하는 것이 그들의 현 처지였으니 말이다.
허나.
─그럼 우리 비자금만 날아간 건 뭐란 말이냐!
상대방은 냉정하지 못하였고. 그저 한없이 땡깡만 부릴 뿐이었다.
마치 백화점 장난감 판매구간에서 떼를 쓰는 다섯 살배기 아이처럼.
“그거야 의원님께서 재미 좀 보려고 돈을 과하게 많이 넣어서 그런 거지요.”
─상장한다며! 상장한다고 해서 그렇게 넣은 거란 말이다…!
“더더욱 우리 문제가 아니군요. 욕심 좀 적당히 내실 것이지.”
─네놈! 말 다 했어!? 이대로 너희가 무사할 줄 알아!
상대방은 이종명을 협박했다.
억지인 것을 넘어 부당한 분노였으나, 상대방은 이미 이성을 잃었다.
그리고 이런 상대와 싸우는 법은 설득이나 사과가 아니란 것을 이종명은 너무나도 잘 알았다.
“의원님. 제 집안을 공격하시면 의원님도 재미 못 보실 텐데,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뭐, 뭐라고?!
“의원님 자제분, 참 잘 컸더군요. 그런데도 이상하게 계속 신검에서 4급을 받고. 공익으로 빠진다던데…. 참, 아이러니하군요.”
─…….
협박. 상대방이 협박을 한다면 그들 또한 협박을 하면 그만이었다.
이 밖에도 이종명의 손에는 무수한 협박거리가 존재했다.
“의원님. 하나만 물어봅시다. 우리와 적대할 겁니까?”
─…….
“의원님, 왜 대답이 없나요.”
─…내, 내가…. 화내서 미안하네….
“사과해주셔서 고맙군요.”
이종명은 비릿하게 웃었다.
정치인이란 이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건 돈을 잃는 것도, 가족을 잃는 것도 아니다.
저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권력을 잃는 것이며. 하루아침에 서민이 되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가장 참지 못할 일이었다.
‘설득보단 역시 협박이군.’
이성보단 본능대로 움직이는 짐승 같은 자들에게 설득이란 건 무의미하다.
오로지 협박만이 닥치게 할 수단이었으니.
콰직!
그렇게 또 한 명 정치인의 입을 다물게 하며 대포폰을 바닥으로 던져버린 이종명은 한숨을 푹 쉬었다.
“대체 어떤 놈들이지?”
골이 아팠다. 협박으로 어떻게든 입을 다물게 만들긴 했으나, 이건 미봉책에 불과했다.
언제 어디서 또 무슨 폭탄이 날아올지도 모르며. 어디까지 엮일 줄 모르니 피가 바짝 마르는 것이다.
‘쯧, 처가가 문제군.’
이종명은 앓는 소리를 내는 안사람과 처가댁을 떠올리며 연신 불쾌했다.
안 그래도 집안 어르신들도 난리인데, 그들까지 난리이니 한없이 짜증스러운 것이었다.
‘문제가 뭔지도 모르고 날뛰는 꼴이지.’
집안이 관리하는 비자금 중 1/3이 날아간 격이다.
모두가 힘을 합쳐 이겨내야 할 판임에도, 각자의 이득만을 주장하는 꼴이니, 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종명이 앓는 소리 안 내며 당당한 것은 결코 자신들이 약해졌다는 것을 보여주면 안 되기 때문이고…!
“…그 녀석이 가장 의심스러운데.”
어디서 솟아난 건지 모를 개미 세력들과 막대한 자본과 능력을 휘두르며 등장한 어느 구심점까지.
이종명은 이러한 일들을 해낸 이가 여명이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어찌 제 형제를 의심할 수 있나 싶을 수도 있지만. 애초에 그가 여명과의 형제애가 한없이 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의심이리라.
다만.
‘그놈이 그 정도로 능력 있는 놈은 아닐 텐데….’
이종명은 여명이란 놈이 어떤 놈인지 잘 안다.
능력이 한없이 부족한 놈이며. 옛날부터 무능하다 못해 도저히 정이라곤 생기지 않는 못난 동생.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가가 찌푸려질 정도였다.
“…그놈은 확실히 우리에 대한 열등감과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있겠지. 그러니 공격할 명분이야 있지만…. 음.”
아무리 그래도 능력이 부족하다. 또한 전날 만났을 때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이었고.
여명은 무시하면서 본인의 관찰력만큼은 한없이 신뢰하는 이종명다운 편협적인 사고였으며. 이 때문에 여명에 대한 의심을 버리고 있는 이유기도 했다.
“그 어리석은 놈이 아니라면 누구지?”
이종명은 한없이 짜증스럽게 혀를 찰 따름이었다.
허나….
“어리석은 놈이라 미안하게 됐네, 진짜.”
그는 예상이나 했을까.
자신이 어리석다 판단한 사람이 사실은 부처님처럼 그를 손바닥 위에서 훤히 내려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장님, 말씀만 하시면 저자의 목을 분질러도 되겠습니까?”
“…린아, 참아주라.”
“……예에.”
…또한 자신의 목이 위험할 뻔했다는 것도.
저도 모르게 자신이 경멸하는 동생에게 구원받은 이종명이었다.
이종명이 있는 곳에 몰래 숨어드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축지 쓰면 되니까.’
안타깝게도 혈연으로 이어진 사이인지라 그가 가진 기운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여명이었고. 그의 옆방까지 오는 건 손쉬웠다.
누군가는 축지로 몰래 온 것까진 좋지만. 자칫 들킬 위험이 없냐며 물을 수도 있으나….
‘무공 있으니까.’
북궁린의 은신술 덕분에 남들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었고. 이종명의 대화 자체를 엿듣는 행위도 이토록 쉽게 할 수 있었다.
물론….
“조금 무섭긴 하네.”
5층 높이에 매달린 채 있으니 칼바람이 숭숭 불어대며 여명의 볼을 찰싹 때리고 있었다.
다행히 발 디딘 난간이 넉넉하여 떨어질 위험도 없으며. 북궁린이 그를 꼭 잡아주고 있으니 안정성도 보장됐다 할 수 있었다.
“사장님, 굳이 이러지 말고. 안으로 침입하면 안 되는 겁니까?”
“CCTV가 많아서 안 돼.”
“다 파괴할까요?”
“…안 되긴 하는데, 가능은 하니?”
분명 현대에서 무공이 약해진 상태라고 들었는데?
“말씀만 하시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아니면 이 건물 자체를 무너트리는 것 또한….”
“……제발 참아주라.”
북궁린의 진지한 눈빛을 보며 여명은 울상을 지었다.
더 이상 직원들의 일탈은 사양하고 싶은 고용주였다.
* * *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피해 입은 놈들이 쓰레기만 있어서 다행이야.’
일반 서민들 중 피해 입은 이들은 없다시피 한 기적적인 상황.
오로지 범죄만 안 저질렀을 뿐이지. 범죄자 비스름한 놈들만이 족쳐진 것이다.
이 모든 걸 설기가 의도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하늘이 도운 것인지….
‘뭐가 되었건 다행이지.’
여명이 신경 쓰였던 것은 다른 게 아니었다.
만약 자신을 위해 그 어리고 재능 많은 강아지가 손을 더럽혔다면….
“아마 나 자신을 용서 못 했을 거야.”
“……끼이잉.”
설기는 이번만큼은 아무런 반박이나 변명도 하지 못하였다.
여명이 정말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하고 있음을 알았고. 동시에 그의 눈이 너무 서글프게 빛나고 있어서.
“설기야. 네가 나를 위해 힘내준 건 고맙지만. 그렇다고 네가 손을 더럽혀선 안 돼. 차라리 내가 더러워지고 말지.”
“월!”
“넌 아직 어려. 좀 더 커서 성인…, 아니 성견인가? 어쨌든 다 크고 나서는 무엇을 한들 이제 내가 참견하지 않겠지만. 지금의 넌 어려. 보호받아야 할 어린 녀석이 벌써부터 발랑 까지는 꼴은 난 못 본다.”
“……월.”
설기는 ‘꼰대’라고 말하면서도 여명의 진심이 느껴지니 가슴이 간질간질거렸다.
누군들 안 그러겠냐만. 자신을 진심으로 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큰 감동일 테니까.
그렇게 무언가 쑥스러운 분위기가 감돌던 중 북궁린이 궁금증을 보였다.
“한데 사장님. 그 피해 입었다는 자들은 선계의 관리(官吏)라고 하지 않습니까?”
“음? 아아, 그렇지. 그런데 그건 왜?”
“으음…. 혹 선계에선 범법 행위를 저지른 것이 잘못이 아닌 겁니까?”
“뭐?”
북궁린의 물음에 여명은 잠시 멍했으나, 이어지는 질문 앞에서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토록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저들은 본인들이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TV가 있었고. 한창 뉴스를 통한 기자회견이 이어지는 중이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이번에 일어난 일에 대해 심히 안타까움을 금치 못할 따름입니다. 사소한 오해가 있었음을 부정하지는 못하지만. 저 XXX이는! 반드시 이 역경을 극복하고 믿어주시는 국민 여러분의 기대에 보답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러니……!]
“이미 범법 행위가 모두 까발려졌음에도 왜 저리 당당한 것입니까? 저자는 혹 철면공(鐵面功)을 익힌 자입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저토록 뻔뻔할 수가….”
“…….”
“또한 저것은 무슨 의미로 하는 사죄인지 모르겠습니다. 잘못했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 하여 잘했다는 것도 아닌…. 대체 무슨 의도로 저러는 겁니까?”
“…….”
“원래 선계의 관리는 저런 것입니까?”
“……내가 뭐라 할 말이 없다.”
저 인간들이 개판인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무림인마저 의아해하는 현대의 치부였고. 차마 민망하여 한없이 낯부끄러운 한국인이었다.
………
………
파앗! 팟!
배조차 이겨내기 힘든 야밤의 거센 강물 위를 건너는 이들이 있었다.
마치 강물을 잘 닦인 도로처럼 거침없이 걷는 세 명의 인영(人影)은 고즈넉하고도 흉흉한 어둠조차 문제가 되지 않는 듯 여유로워 보였다.
허나 여유로운 것과 달리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대화는 살벌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강마. 만약 네놈의 말이 거짓이라면 내 손으로 반드시 네놈의 숨통을 끊어줄 것이다.”
“이하동문.”
“살벌하게 말하는군. 그럴 거면 따라오질 말던가.”
“…혹시라는 게 있으니까.”
“이하동문.”
“……네놈은 그 말만 할 거면 그냥 입 좀 닫지?”
“불가.”
“…….”
“싸우지 마라. 여기서 싸우면 문제가 생긴다는 걸 모르진 않을 텐데.”
“너희가 시비 걸지를 말던가!”
마교 십칠마종의 일인 강마 단혁세.
그는 자신에게 연신 시비를 거는 두 남녀에게 성을 내었고. 두 남녀는 시종일관 코웃음을 쳤다.
천하의 단혁세를 이토록 무시할 수 있는 이가 누가 있을까 싶었으나. 저 둘의 지위를 생각하면 단혁세가 위협한다고 해서 기가 죽을 이들이 아니었다.
“후우! 내가 미쳤지. 이딴 놈들을 왜 데리고 와선.”
단혁세는 ‘술이 웬수!’라며 쉼 없이 중얼거렸고. 두 남녀는 다시금 코웃음 쳤다.
허나 곧.
“…보이는군.”
“으음….”
그들이 향하는 목적지가 보이는 순간 그들의 눈은 한없이 진중해졌다.
저곳에…!
“소교주께서 있다는 거구나.”
“으음!”
“……경고하는데, 제발 사고만 치지 마라.”
설마 자신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지 몰랐으나, 단혁세는 그들을 단단히 주의시켰고. 그러면서도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미안하게 됐소, 소교주.’
비밀을 지켜주겠다고 했는데, 어째 너무 빨리 들키고 말았기에.
‘뭐, 어떻게든 되겠지.’
전날 산묘에게 덜 두들겨 맞은 것이 확실한 망언을 중얼거리며 단혁세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후우우웅!
…낯선 객을 마주한 천산은 몸서리를 치듯 흉흉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tmi후기.
-무림인은 현대에서 행동반경이 한없이 줄어든다.
-이유를 설명하자면 현대의 오염된 환경과 전자파 등이 그들의 내공을 압박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명산이란 곳을 오르면 그나마 괜찮지만. 그렇다고 한들 힘이 반 이하로 내려간다.
-이런 무림인들이 현대에서 활동하려면 내공을 1할 미만으로 제한해야 한다.
-허나 내공이 봉인되었다고 해도 외공이 봉인된 것은 아니다.
-내공이 강할수록 몸 또한 같이 강해지는 구조이기에, 입신경의 경우 내공이 없다고 한들 혼자서도 폭격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면 된다.
-북궁린은 이종명에게 괘씸함을 느끼고 은신술로 이종명의 뒤통수를 때리며 도망 다니는 일과를 보내게 되지만, 이를 여명은 모른다.
-이종명이 뒤통수를 너무 많이 맞아서 골격이 기괴하게 변하는 건 훗날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