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서와요 무림식당-199화 (199/261)

199-왜 너 혼자 장르가 다르니…?(7)

덜그덕.

화륵!

“…….”

단백설과 무백, 그리고 단혁세는 눈만 연신 끔뻑이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경이로운 일이었다.

다른 이들도 아니고. 일세를 풍미한 절세고수이자, 자존심이라면 그 누구에게도 꺾이지 않는 마인이 다름 아닌 그들이었으니까.

한데 그런 이들이 누군가의 눈치를 본다?

믿지 못할 일이었으며. 혹 머리라도 다친 게 아닌가 의심이 들 만도 했다.

허나.

“몸은 이제 좀 괜찮아요?”

“괘, 괜찮다.”

“으음….”

“…괜찮은 것치고 피가 아까보다 더 새는 것 같은데요?”

“이, 이 정도는 침만 바르면 낫는다!”

단백설은 자존심 탓에 언성을 높였고. 이것이 곧 실수임을 즉각 깨달았다.

“어디서 언성을 높이더냐!”

“고얀 것! 흑원이 너희를 그렇게 가르치더냐!”

“…시끄러.”

움찔!

“……소, 송구하옵니다, 영수시여….”

단백설의 토끼 귀가 축 처지며 금세 기가 죽었다.

평소의 그녀라면 절대 먼저 기가 꺾일 일은 없겠지만. 차마 존경하는 영수에게 기 싸움을 걸 만큼 그녀는 무식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붕대로 온몸을 칭칭 감은 데다, 모습마저 어리니 어딘지 불쌍해 보이기까지 한 단백설이었으나. 이를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주책이군, 주책이야.”

“선배, 제발 나잇값을 하쇼.”

“이것들이…!”

도리어 면박을 받은 단백설은 다시금 욱했지만. 눈을 치켜뜨고 자신을 노려보는 여우와 올빼미, 그리고 웅묘 등에게 찔끔하며 눈을 내리깠다.

마치 최상위 포식자를 앞에 두고 기가 팍 죽은 피식자와 같은 모습이 어쩐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단백설이었다.

“멍멍.”

“너, 너까지 그러는 거야!?”

“월!”

“그, 그런…!”

자업자득을 외치는 매정한 새하얀 강아지였고. 그것이 못내 서러운지 단백설은 기어코 울상을 지었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는데, 설마 이 아이에게 이런 매정한 말을 들을 줄 몰랐다는 충격이 가득한 단백설의 귀는 완전히 꺾이듯 주저앉아버렸다.

자신은 정말 슬프다고 주장하는 것 같은 귀였고. 저것이 실제로 정말 슬퍼하여 저러는 것임을 안 강아지는 한숨을 쉬었다.

하여튼 변함이 없다며.

척.

“월.”

“…이, 이런다고 해서 내 기분이 풀릴 것은 아니다.”

“끼잉?”

“아, 안 된대도….”

“…….”

“크으윽!”

수십 명의 절세고수와 싸울 때조차 무너지지 않던 강철의 여검객은 기어이 무너졌다.

단지 강아지의 애교를 봤을 뿐인데, 도무지 견디지 못하고 함락당한 그녀는 이제 자신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 귀여운 것 같으니…!”

“…월”

단백설은 강아지를 꼭 끌어안고 그대로 볼을 비비적거렸다.

허나 강아지를, 설기를 안은 그 손길은 더할 나위 다정하였으며.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소중한 도기(陶瓷)를 만지는 것처럼 섬세했다.

무언가 정말 소중한 보물처럼.

“흐음….”

“……낑.”

순간 여명과 시선이 마주친 설기가 앓는 소리를 내었다.

“너, 좀 낯설다?”

“월….”

설기도 먼저 애교를 부리는 자신이 어색한지 쑥스러워 보였다.

무언가 느낌이.

‘평소엔 도도한 척하다가 고향에서 내려온 엄마한테 애교 부리는 것 같기도 하고….’

나름 반전이라면 반전인 설기의 모습이 신선하면서도 한편으로 웃긴 여명이었다.

* * *

결론만 말하자면 그들은 휴전하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게.

-이 사부를 노린 것이 아니었다고!?

서로에게 오해가 있었음을 확인했기에.

-…대체 그게 뭔데?

-그럴 수가…. 그럼 왜 그렇게까지 죽자고 달려든 건가?

-너희가 우리의 소중한 이를 데리고 있다고 먼저 협박했잖아!

-우, 우리가 말이오?

-그래!

-……어째 오해가 있던 것 같구려.

그들은 소통과정에서 사소한 오류가 있음을 알며 미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뭐, 사소하다고 보기엔 이미 다 같이 탈탈 털린 상태인지라 애매하긴 했지만.

-그러기에 내가 뭐랬소.

유일하게 입만 산 단혁세가 그리 중얼거리긴 했으나, 다른 이들은 단혁세의 말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단혁세가 얼마나 인망이 없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반대로.

-이제 끝난 거예요?

-…이 사부, 이건 좀 과격한 거 아닌가?

인망이 너무 많다 못해 영수와도 인연이 깊은 사내에게 앓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사람들이었다.

다행히 몸 하나는 튼튼한 고수들이라 산 것이지. 아니었으면 산묘에게 몸이 완전히 눌려 죽을 뻔한 일동이었다.

무려 열 번이 넘도록 깔아뭉개지며. 압착된 오징어가 된 기분을 느낀 그들이 여명에게 불만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뭐, 이런 불만 또한.

-흥, 철없는 것들아. 우리 주인장이 무슨 잘못을 했다는 것이냐. 도리어 마교와 전쟁이 날 뻔한 것을 주인장이 말려준 것인데.

-…으음.

미곡왕의 발언에 의해 불만 또한 집어넣어야 했지만.

-확실히, 덕분에 명분을 안 줘도 됐지.

미곡왕의 말대로 무백과 단백설을 죽이게 되었다면 마교가 전쟁을 일으킬 명분을 만들게 됐을 터.

어찌 보면 본의 아니게 여명이 삼국의 평화를 지킨 것이니 이것은 고마워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을 따름이었다.

-고맙구려, 이 사부.

-크흠.

그나마 인간 됨됨이가 제대로 선 자운이 대표로 감사를 전했고. 다른 이들도 말만 안 할 뿐 헛기침으로 그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정작 고맙다는 인사를 듣는 당사자는.

-으음, 이 상황에 고맙다는 소리 듣는 것도 좀….

뭔가 나이 지긋한 어른들을 폭행하고 감사 인사를 들은 후레자식이 된 기분인지라 여명은 가슴이 쓰라렸다.

-나…. 열심히, 했…어.

-…….

그리고 이렇게 또다시 안기며 자신의 고생을 어필하는 판다에게 과연 칭찬을 건네야 할지 말지도 미묘했고 말이다.

그렇기에 여명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결국.

-…배는 안 고프세요.

밥 얘기로 유야무야 넘어가는 것을 선택하는 바였다.

“자, 이거 드세요.”

“…나, 나도 먹어도 되는 건가?”

“싫으시면 뭐.”

“누, 누가 싫다고 했어!”

“쯧!”

“……잘 먹는다고 말하고 싶었다.”

북극여우가 다시금 혀를 차려 하자 곧장 저자세로 유지한 단백설이었고. 무백은 그저 묵묵히 자신 앞에 놓인 특이한 음식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말(眞末)로 만든 병(餠)인가?”

진말, 그러니까 밀가루는 중원삼국에서 흔한 식재료지만. 진말로 이토록 크고 딱딱해 보이는 병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생소한 것이었다.

중원삼국의 밀 자체가 워낙 뻑뻑하고 맛이 없다 보니 거의 냄비나 화덕 등에서 구워 최대한 고소함을 증폭시키는 게 일반적인데, 이것은 그런 느낌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어딘지 병의 겉면이 균일하면서도 타지도 않게 구워졌으며. 그 사이에 여러 속 재료가 들어간 것이 마치 만두가 생각날 정도다.

“반미(餠?)라고 하는 건데, 일종의 샌드위치, …그냥 이국적인 전병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네요.”

“흐음….”

“드셔 보세요. 입맛에 맞으면 좋겠네요.”

“…입맛이라.”

슬쩍 고개가 돌아간 무백은 조금 전만 해도 세상만사 모든 게 다 귀찮아 보이는 웅묘가 부지런하게 입을 놀리는 것을 보았다.

“더… 줘.”

“벌써요?”

“배, 고파.”

“…10개 넘게 먹고 배탈 안 나요?”

“배탈?”

“……그냥 계속 줄게요.”

저 웅묘가 누구인지 안다.

‘죽웅왕은 안휘에서 움직이지 않는다고 들었다.’

안휘의 게으름뱅이 영수에 대한 일화는 흑원국에서도 유명하였다.

어찌나 움직이기를 싫어하는지 한번 잠들면 수십 년간 깨어나지 않는다고 했던가?

하지만 흑원국에서 죽웅왕이 유명한 이유는 특유의 나태함 때문이 아닌, 그 경이로운 무력(武力) 때문이기도 했다.

육탄전에서만큼은 황룡국 제일이라고 하는 영수.

투쟁을 신성시하는 흑원신교에서 죽웅왕은 단 한 번이라도 싸워볼 수 있다면 영광스러운 존재가 아닐 수 없으리라.

‘상상 그 이상이었다.’

무덤덤한 표정이었지만. 죽웅왕과 마주하며 ‘죽음’을 느낀 무백은 실로 피가 끓는 상태였다.

그 또한 결국 마교인.

강자와의 싸움에서 삶의 보람을 느끼는 부류였으며. 죽웅왕과 같은 말도 안 되는 존재와 싸운다는 것 자체가 영광일 뿐이었다.

“다시 싸워보고 싶군.”

“싸우긴 개뿔. 그냥 두들겨 맞은 것밖에 없는데.”

“…….”

“하여튼 입만 산 양반이야.”

이미 자신 몫의 반미를 모두 먹어 치운 단혁세는 입도 닦지 않은 채 무백의 말에 코웃음 치며 무백을 자극했다.

무백은 그가 원래 이런 인물인지 알기에 자신을 자극한다 하여도 비교적 무덤덤했지만. 그가 자신의 접시를 가져가는 것을 보며 기어이 감정이 담긴 말을 내뱉게 되었다.

“뭐 하는 짓이지.”

“뭐 하는 짓이긴. 안 먹는 것 같아서 내가 대신 먹어주려고 그러는 거지.”

“…….”

“…말로 해. 강기 꺼내지 말고.”

“…후우.”

무백은 죽웅왕에게 재도전하기 전에 개방 거지보다 뻔뻔스럽기 그지없는 이 상놈부터 죽여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진지하게 고심하며.

“그 접시를 당장 내 앞에 다시 가져오지 않는다면 이번에야말로 죽여 버리겠다.”

진심 어린 살인 예고를 내뱉었다.

* * *

바사삭!

“흐읍!”

이거 뭐야!? 라는 비명이 절로 육성으로 나올 뻔한 단백설은 가까스로 입을 틀어막았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입이 우물거리는 걸 멈출 수 없었으며. 점차 감탄이 더해졌다.

‘이런 병이 존재한다고?’

그녀가 흔히 아는 병보다 수십 배는 고소하고. 엄청난 풍미가 감돌았다.

겉은 미치도록 바삭한데, 새하얀 병의 속살은 떡처럼 쫀득하면서도 모래처럼 부드럽게 으스러져 간다.

그저 이 병만 먹어도 일품(一品)이란 감탄이 절로 나올진대,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안에 든 속 재료였다.

“이게 뭐야?”

“불고기에요. 간단히 말하자면 양념에 재운 고기를 숯불에서 익힌 거죠.”

“겨우 그것뿐인데 이렇게 맛있다고?”

“그것뿐이니까 맛있는 거죠.”

“와아….”

그녀는 감탄했다.

그저 음식만으로도 이토록 감탄할 수 있다는 것에 한 번 놀라고. 미식이란 것이 마냥 무시할 게 아니란 사실에 두 번 놀란다.

‘이 나이가 돼서 이제야 이런 맛을 아네.’

마교에서 음식이란 그저 살아가기 위한 영양소에 불과한 것이었고. 무림행을 했을 때도 그다지 음식을 즐긴 기억이 없는 단백설이었다.

그나마 그녀가 높은 자리에 있었기에 여러 특급 객잔에서 대접받긴 했으나, 그때도 음식에서 감동을 느낀 적이 없던 그녀였다.

오리지 검만을 바로보고 모든 걸 바친 외길 인생이라 할 만했고. 후회도 없었지만, 지금은 감상이 좀 달랐다.

아삭!

“이건?”

“당근(唐根)으로 만든 피클, 쉽게 말해 당근 절임이에요. 입맛을 깔끔하게 해주죠.”

“이것도 가르쳐줘.”

“새우를 다진 마늘과 수유(?油)를 녹여 볶은 거예요. 거기다 추가로 야채도 듬뿍 넣어서 식감이 더 좋을걸요.”

“와아….”

신기했다.

음식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경이로움이 든다고 할까. 처음으로 미식에서 감동이란 것을 느낀 그녀는 반미란 것에 온전히 집중하며 계속해서 먹었고. 어느 순간.

“…다 먹었네?”

손에서 사라진 줄도 인지하지 못한 것인지 마냥 멍했다.

단백설은 세상에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구나 하고 기함했고. 그녀의 옆에서 우물우물하며 열심히 반미를 먹어 치우는 강아지를 보았다.

“……네가 왜 저 사람을 선택한지 알 것 같네.”

“월!”

설기는 마치 ‘내 남자가 이 정도다!’라며 자랑하듯 기세등등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건방진 모습이지만. 그 모습조차 귀여워 연신 흐뭇함을 머금은 단백설은 잠시 목소리를 낮추었다.

“물어볼 게 있어.”

“…왈.”

설기는 순간 몸을 움찔거렸다.

그녀가 저토록 진지한 낯으로 속삭이는 것을 보니 진지한 물음을 던질 것 같았기에.

“……멍.”

잠시 망설임을 보였으나, 설기는 뭐든 물어보라며 고개를 주억였다.

그녀에겐 물음을 던질 자격이 있으니.

그렇게 각오를 다진 설기에게 단백설은….

“저 남자 혼인(婚姻)은 했어? 아직 임자가 없으면 내가 가져도 돼?”

“…….”

“왜 그런 눈으로 봐? 이 언니도 슬슬 혼인해야지, 마침 좋은 남자가 눈앞에 있는 것 같고. 후후.”

“……월.”

설기의 눈은 짜게 식어가며 경멸의 빛을 띠었다.

…고조손자뻘한테 그러고 싶냐며.

“…월.”

설기는 괜히 구했다며 후회했다.

tmi후기.

-흑원국의 식문화는 그다지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다.

-이유는 음식을 해먹을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에 수련을 하는 게 더 이득이기 때문이다.

-또한 과일이나 곡식 본연의 맛조차 삼국에서 으뜸인데, 이 덕분에 그냥 과일이나 채소만 먹어도 충분히 맛있다.

-헬창과 웰빙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알맞은 이상적인 국가라 보면 된다.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흑원국은 식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대신, 국민 대부분이 삼국에서 제일 건강하다.

-10명 중 9명은 헬창이라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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