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서와요 무림식당-200화 (200/261)

200-왜 너 혼자 장르가 다르니…?(8)

밤이 깊어가며. 달 또한 이제 흐릿해질 시간.

여명은 대나무가 보이는 정자 위에 앉아 가볍게 바람을 맞았다.

“음, 만들길 잘했어.”

전날 인테리어를 새롭게 하며 만든 정자는 생각한 것보다 그럴듯하였고. 마음에 드는 것이었다.

특히 현대와 달리 전깃줄과 건물 등이 보이지 않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편했다.

우거진 대나무 숲과 그밖에 자연이 조경한 수풀, 이와 어우러지는 바위 언덕과 웅대한 밤하늘까지.

보는 것만으로 절경이란 말이 절로 나오며 웃음꽃이 활짝 피고 만다.

치익!

“아, 이걸 까먹고 있었네.”

절경에 취하고 만 것일까. 요리사란 놈이 불똥이 튈 때까지 요리를 잊어 먹고 있었다.

여명은 쓰게 웃으며 장작불에서 구워지는 산천어를 뽑았다.

나무꼬챙이에 끼워 은은한 열기에서 구워진 산천어는 다행히 노릇하게 익었을 뿐 타지 않아 함박웃음을 머금게 해주었다.

“됐다.”

껍질이 바삭하게 익은 산천어의 모습은 풍경과는 다른 의미로 장관이었다.

현대의 품종이 아닌, 오직 중원삼국, 그것도 천산에서만 잡을 수 있는 천산의 산천어.

그 매력적인 맛이 얼마나 일품인지 알기에 여명은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생선을 한 입 먹어갔다.

바삭!

“……역시.”

명불허전이란 소리가 절로 나오는 맛이다.

간단히 소금만 쳤을 뿐인데, 이토록 고급스러운 맛이 나오는 것을 보면 자연에서 주는 은혜만큼 위대한 것은 없다는 실감이 났다.

속살을 씹으니 은은하게 퍼지는 수박, 혹은 참외의 향. 그리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소함과 담백함은 도저히 민물생선을 먹는다는 생각을 들지 않게 하는 바였다.

만약 민물 생선 특유의 향을 싫어하여 못 먹는 자들이 있다면 반드시 먹여주고 싶은 맛.

아마 인생의 가치관이 달라지는 경험이 아닐까 싶다.

여기서 가볍게 청주처럼 맑은 술을 마셔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극락이겠지만. 여명은 청주 대신 가볍게 막걸리 한 잔을 따랐다.

“크으윽! 달다!”

그냥 막걸리가 아닌 누구나 쉽게 마실 수 있는 꿀 막걸리.

단맛이 풍부한 막걸리는 그냥 술술 들어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그냥 이렇게 들이키다 보면 어느 순간 취해서 고주망태가 될지도 모를 터.

다만 평소 세심공을 수련하며 간 건강이 웬만한 십대보다 10배 튼튼한 여명의 간은 술기운을 모조리 흩어주며. 취기조차 쉽게 올라오지 않게 했다.

“쩝, 술은 원래 취하려고 마시는 건데, 이제 취하고 싶어도 취할 수가 없네.”

“월.”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고? 그건 그렇지.”

언제부터 있었던 걸까.

정자 한구석에 올라와 하늘을 올려다보는 설기가 조용히 그의 말에 태클을 걸었고. 여명은 이제 깜짝 등장이 새삼스럽지도 않다며 피식 웃고 말았다.

이제는 백색 강아지의 독설을 들리지 않으면 도리어 무언가 어색할 지경이라며 정다운 익숙함마저 느끼며.

“자, 먹어.”

“월!”

앞 접시 위에 가시를 바른 생선살을 따로 분리하여 설기에게 건네주니 기다렸다는 것처럼 설기는 코를 박아가며 산천어 구이를 먹고는 꼬리를 회전했다.

산천어 구이의 맛이 더할 나위 없이 마음에 든다는 듯.

“천천히 먹어, 이 녀석아.”

한동안 여명은 설기가 산천어 구이를 먹는 걸 여유롭게 기다려주며 막걸리를 마셨다.

여전히 깔끔하게 잘 넘어간다.

“멍.”

“한잔 달라고? 어린 녀석이 발랑 까져선!”

“월!”

“…그, 그때야, 뭐.”

여명은 설기의 반론에 찔끔하며 난감함이 서렸다.

다름 아닌 그들의 첫 캠핑, 그러니까 작년 이맘때. 한창 산천어 낚시를 하여 캠핑을 즐긴 그때를 언급하니 차마 말문이 막혀가는 것이었다.

설기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봄날. 그때도 그들은 서로 음식을 나눠 먹으며 막걸리를 마셨었지.

“분위기에 취해서 준 것 가지고 트집 잡으면 안 되지, 흠.”

“…왈.”

핑계도 좋다, 라며 짜게 식은 시선으로 여명을 직시하는 설기였고. 여명은 그 시선을 간단히 파훼하였다.

툭!

“좀 더 크고 마셔라.”

“……낑.”

머리를 다정하게 쓰담 거리니 설기는 노곤한 표정을 지으며 주저앉았다.

봄날의 따스한 날씨보다 여명의 손길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따스하다며.

“…….”

“……월.”

허나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침묵에서 풍류를 찾듯 막걸리 한잔을 훌쩍거리던 여명의 침묵을 설기는 정면에서 깨는 것처럼 물었다.

─왜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느냐고?

“왈.”

“으음.”

여명은 설기의 물음이 도리어 난감한지 잠시 침음을 삼키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기껏 흥이 올라왔는데, 술기운마저 모두 깨지는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뭘 물으라는 건데?”

“멍.”

전부.

설기는 오늘 찾아온 마교의 인물을 비롯하여 지금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여명이 의문을 품는 게 당연하리라 여겼다.

자신이 생각해도 수상하기 그지없고. 의문투성이인 게 당연하니까.

설기는 만약 주인이 이번 사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요구한다면 입을 열 마음도 있었다.

한데 정작 그는 아무런 물음도 없으니 설기의 입장에선 답답하였고.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건가 하는 오해마저 들 정도다.

“월….”

“흠, 그렇게 생각했구나.”

여명은 설기의 속내를 들으며 충분히 합리적인 생각이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선.

“오히려 반대로 묻자.”

“월?”

“너한테 무슨 답을 들으면 우리 관계가 달라지는 거냐?”

“…….”

“혹시 떠날 생각인 건 아니지?”

“월!”

“다행이네. 아니라고 해서.”

단호하게 ‘절대 안 간다!’라는 설기의 말에 여명은 해맑고도 평온한 표정을 그려갔다.

“월….”

설기는 주인의 인자한 미소를 보고 있자니, 이 양반이 어디 깊은 산속에서 공덕을 쌓은 고승처럼 보여 어처구니없어했다.

아니, 무슨 해탈이라도 한 게 아니면 이토록 사람이 호기심이 없는 게 말이 되는가?

“나라고 호기심이 없겠냐. 하지만 대충 예상가는 게 있으니까 별말 안 하는 거지.”

“월!?”

“놀라긴. 솔직히 예상이 안 가는 게 더 힘들 거다.”

사람은 호기심이 많은 만큼, 상상력 또한 무궁무진한 생물인 법이고. 설기와 알게 된 날을 비롯해, 그의 강아지가 보통 강아지와 다른 비범함과 비밀 등을 간직했다는 사실을 안 이후부터 여러 가설을 내놓은 상태였다.

“별의별 가설을 다 생각해봤거든. 하나는 네가 영수일 가능성이었어. 근데 여우님 반응을 보면 네가 영수는 아닌 것 같더라고.”

“…월.”

“그래서 영수가 진화하기 전인 영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고. 그래서 혹시 기환술 익힌 사람이 개로 둔갑한 게 아닌가 의심도 했었지.”

“……멍.”

설기는 조금 움찔거렸다.

틀린 답변이긴 한데, 그렇다고 무작정 틀렸다고 말하기에도 애매한 답변인지라.

설기는 땀을 삐질거렸지만. 여명은 이를 모르며 그저 자신의 가설을 차근차근 내뱉었다.

“알아. 그것도 아니란 거. 그런데 어느 순간 네가 마교인가 뭔가 하는 단체랑 연관이 있고. 마교에 대해서 이것저것 듣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

“혹시 네가 흑원국에 아주 높은 왕족이 아닐까 하고.”

“!!?”

“어쩌면 이 덕분에 특별한 능력을 가진 건가 싶기도 해. 예를 들어 디X니 영화에 나오는 에리얼과 같은, …미안. 이건 좀 너무 갔다.”

“…….”

여명은 자기가 말하고도 너무 말도 안 되는 가설, 아니 망상이라며 킥킥거렸다.

이 나이 먹고 이런 망상이라니, 부끄러운 일이다.

“내가 말하고도 좀 어이없긴 하다. 아하하!”

“…….”

“아하하….”

“…….”

“…왜 안 웃니?”

“…멍.”

“…….”

소 뒷걸음질하다가 쥐 잡은 격이 이럴 때 쓰는 말일까.

설기는 경악한 듯 눈을 부릅뜨며 ‘네가 어떻게 그걸 알아?!’라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고. 여명은.

“…왜 부정을 안 해?”

찐으로 놀라는 설기의 반응에 도리어 경악하고 말았다.

* * *

“다행이야, 자가(自家)께서 무사하셔서.”

단백설은 재회한 자가의 한없이 해맑은 미소를 목도하며 안심할 수 있었다.

아, 자가께선 행복하시구나 하고.

단백설 그녀가 자가를 보는 심정은 충실한 신하가 주군을 보는 것보단, 차라리 제 손으로 키운 아이를 보는 심경에 더 가까우리라.

모시는 분인지라 차마 말로는 내뱉지 못하지만. 그녀에게 있어 자가는 딸과 같은 이였다.

그러니 자가의 행복은 곧 단백설의 행복이었고. 자가께서 웃으시면 그녀는 모든 것이 다 좋을 뿐이었다.

물론.

“자가가 아니라, 소교주 아닌가?”

눈치 없는 놈 때문에 산통이 다 깨지긴 했지만.

“닥쳐!”

“…나한테만 지랄이지.”

단혁세는 투덜거렸다.

이 할망구는 나이에 맞지 않게 입이 너무 걸걸하다면서.

물론 할망구란 말을 입에서 지껄였다간 피를 볼 것을 알기에 단혁세는 속으로만 투덜거릴 뿐이었다.

나름 아슬아슬하게 선은 지킬 줄 아는 그였음이다.

그때.

“그래서, 어찌할 것이지.”

“뭐를?”

“소교주의 존재를 확인했다. 데리고 갈 것인가?”

“그건….”

무백의 직설적인 발언에 일순 말문이 막혀갔다.

차마 무어라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발언이었고. 처음 천산에 오를 당시만 해도 무조건 데려가겠다는 각오마저 희석되어 간다.

“…기껏 자가가 직접 자신이 있을 둥지를 찾았는데, 자가를 데리고 간다고? 난 그럴 수 없어.”

“그렇게 된다면 소교주는 소교주가 아니게 될 것이다.”

“흥, 자가 이상 자질이 뛰어난 후계가 있고? 무엇보다 십칠마종 전부가 자가 편이야. 그런데 무슨 문제가 있지?”

마교의 절대자 십칠마종.

그들 전부가 자가의 편인 이상 소교주의 지위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부동의 반석과도 같으니.

무백의 말은 쓸데없는 걱정에 불과했다.

허나.

“마선오괴(魔仙五怪)가 움직인다면 우리라 할지라도 무시하기 힘든 걸 알 텐데.”

“그건….”

마선오괴.

십칠마종과 함께 마교를 양분하는 권력 중 하나.

기환학사로만 구성된 다섯 노괴들은 단백설조차 감히 무시하기 힘든 이들이었다.

나이로 밀어붙이고 싶어도 마선오괴 전부가 단백설보다 두 배는 더 산 괴물들이니 어떻게 밀어붙일 수조차 없고 말이다.

“끄으응!”

단백설은 불만 어린 표정으로 볼을 부풀렸고. 무백은 그 꼴이 주책이라며 눈살을 찌푸렸다.

하여간 볼 때마다 적응이 안 가는 반응이라며.

한데.

“흠, 중요한 걸 잊고 있는 것 같은데.”

“뭐?”

“무슨 말이지?”

일순 단혁세가 뜬금없는 발언을 하며 그들은 의아하게 단혁세를 보았다.

한데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지극히 정론이었다.

“다른 건 모르겠고. 식선한테서 소교주를 데리고 갈 자신은 있고?”

“…….”

“없지? 솔직히 말해서 십칠마종 전부를 데리고 온다고 해도 난 식선 그 양반이랑 다투고 싶지 않아.”

“…네가 싸움을 마다하나.”

“하, 이거 왜 이래.”

단혁세는 코웃음을 쳤다.

그래 분명 그는 싸움에 환장한 인간이긴 하지만, 그래도.

“개죽음은 사양하고 싶거든.”

‘괴물’과 싸우는 건 사양하고 싶은 바였다.

이렇게 어느새 단혁세에게 괴물이라 인정받은 남자는 현재.

“…넌 왜 혼자 장르가 달라?”

“월….”

“내가 할 말은 아니라고? 참 나.”

서로가 오십보백보인 주제에 서로가 더 이상하다며 논쟁을 벌이는 중이었다.

tmi후기.

-여명은 딱히 화를 잘 내지 않는다.

-이는 막장인 가족들 때문에 어릴 적부터 속병이 생기고. 화병도 많아서인데, 이 때문에 웬만한 일에는 화가 잘 나지 않는 해탈의 경지에 올랐다고 보면 된다.

-웬만한 고승(高僧)도 여명보다 부동심이 세지 않다.

-다만, 가족이 없다시피 하기 때문인지. 자신이 식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끔찍하게 생각한다.

-그러니 설기를 억지로 데리고 가려고 하면 여명이 진심으로 화를 내게 되는데, 마교는 멸망 루트가 열릴 수도 있다.

-영수 세 마리가 동시에 움직이는 것도 움직이는 거지만. 백룡성과 천산의 은거자 전부가 나서기 때문에 아무래도 마교조차 감당하기 어렵다.

-새삼스레 말하자면 현 무림 최강 세력을 일군 사람은 여명이라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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