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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와요 무림식당-201화 (201/261)

201-왕좌의, 아니 본좌(本座)의 게임(1)

“……난감합니다.”

북궁린은 살살 눈치를 보았다.

새벽 일찍부터 농사일을 하러 오는 사장님을 맞이하기 위해 항상 이른 시간부터 대기하는 그녀였으나, 오늘따라 어째.

“이곳이 식선의 영토야? 괜찮네.”

“광활하군.”

“천산이 원래 이랬었나?”

불청객이 있었다.

다만 불청객일지라도.

“그래, 여기서 기다리면 그가 오는 것이겠지.”

“네, 네에, 그렇습니다….”

“후후, 겁먹지 마렴. 그냥 편한 언니라고 생각해.”

“…….”

“생각하라고!”

“…예, 예에….”

감히 누가 저들을 내쫓거나 편히 생각할 수 있으랴.

산군(山君)조차 감히 기를 못 펼 마인(魔人)이자, 삼국을 호령하며 그 이름을 모르는 자가 없다고 전해지는 무림의 전설들.

검마 단백설과 광마 무백.

저 두 마인은 그녀의 조모(祖母)가 활동하던 시기에 이미 강호를 종횡하며 그 명성을 떨쳤던 이들이다.

흔히 노고수라 불리는 천산의 은거자들조차 저들에겐 갓난아이나 마찬가지일 터.

북궁린은 살아있는 무림의 전설들이 자신의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몸이 벌벌 떨리며 기절하고 싶은 심경이었다.

‘사장님…!’

속으로 비명을 지르듯 가장 믿음직한 사람의 이름이 뇌리를 울린 순간.

“당신들, 지금 뭐 합니까?”

“월!”

무림의 전설조차 동네 아저씨처럼 대하는 든든한 아군이 등장했다.

여명의 복장은 단출했다.

장화와 목장갑, 그리고 모자 등을 착용하고. 긴 소매에 체육복 등을 대충 걸친 그의 모습은 마냥 인심 좋고 선해 보이는 총각 청년의 모습이었지만. 북궁린의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믿음직한 내 편일 따름이었다.

“린아, 이쪽으로 와.”

“네에!”

북궁린은 여명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곧장 그의 등 뒤로 달려가 숨듯이 몸을 감추었고. 어째 불한당이 된 기분을 만끽하며 마인들의 표정에는 난감함이 서렸다.

‘우리가 악적이 된 기분인데?’

‘악적인 기분이 아니라, 이미 악적이다.’

마인들은 여명의 눈치를 보며 찔끔했다.

만약 그가 불쾌감을 표현한다면 그들은 당장 천산에서 내쫓길 판이었으니 말이다.

허나 다행이랄까.

“허허, 드디어 왔군!”

평소 눈치를 전당포에 맡긴 것만 같은 눈치 없는 사내가 대화의 포문을 열었다.

“귀 아파….”

“왈.”

확성기를 사용한 것도 아닐 텐데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천산을 뒤흔들 정도로 거세었고. 웬만한 성인 남성보다 세 배가량 더 큰 덩치를 자랑하는 단혁세가 들개의 귀를 쫑긋거리며 여명은 반갑게 맞이했다.

“식선, 오랜만에 보는군.”

“우리가 만난 적이 있나요?”

“새, 생각 안 나나?”

단혁세는 나름 인상을 남겼다고 생각했거늘, 그가 자신을 진심으로 모르는 표정을 지으니 당황했다.

원래 면식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편한데, 이러면 말짱 도루묵인 법이니.

“월.”

그때 타이밍 좋게 설기가 여명에게 무어라 말을 건넸고. 여명은 점차 크게 고개를 주억였다.

“아아! 그 사람이구나!”

“기억났나 보군! 그래 안휘에서….”

“음식 훔쳐 먹다가 산묘님한테 두들겨 맞은 그 양반.”

“…….”

“여전히 목소리 하나는 엄청 크네요.”

“커험…!”

단혁세는 여명이 자신을 어찌 기억하는지 알며 헛기침을 했고. 단백설과 무백은 어처구니없다며 그를 노려봤다.

대체 이놈은 첫 만남부터 어떤 인상을 남긴 거란 말인가?

“어쩐지,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을 안 해주더니. 음식을 훔쳐 먹어? 네가 그러고도 마종이야!”

“강마.”

“크흠, 거 오해가 있는 것 같다만.”

단혁세는 점차 차가워지는 선배 마인들의 시선이 따가운 듯 무어라 변명하려 했으나, 여명은 한 발 더 빨리 말을 이었다.

“어쨌든, 세 분은 왜 여기 있습니까? 우리 애는 또 왜 괴롭히고 있고요?”

“괴롭히다니? 오해가 있는 것 같네. 그냥 우린 식선과 자가를 만나러….”

“월!”

“…흡!”

일순 말실수를 한 단백설에게 설기는 호통쳤고. 단백설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자가는 분명 정체를 숨기고 있었을 텐데.’

실수, 그것도 통한의 실수이다.

자칫 자신 때문에 자가가 정체를 들킨다면…!

‘나랑 말도 안 섞겠지?’

단백설은 저 귀여운 외모만큼이나 자가의 성격이 얼마나 불같은지 안다.

말해 뭐할까, 자가의 유모가 그녀였고. 자신의 교육을 통해 성장했으니 그녀의 성격을 쏙 빼닮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즉.

‘날 닮았는데, 성격이 좋을 리가 없지.’

2백 년이나 살다 보니 자기 객관화가 훌륭한 단백설이었고. 역시나.

“으르르르!”

“…좋은 것만 보여줬어야 했는데.”

뒤늦은 후회와 함께 자신의 안 좋은 성격을 재현하는 자가를 보며 단백설은 크게 한숨 쉬었다.

* * *

“…허, 세상 오래 살다 보니 이런 광경도 보는군.”

“그러게 말일세.”

“……실화야, 이거?”

여명을 알게 모르게 호위하던 삼존은 제 눈을 의심했다.

검마와 광마.

사파를 넘어 백록국에서 무수한 전설을 만들어 지금까지도 화자처럼 전해지는 두 마인이었고. 두 마인에 비해 부족하지만. 악명만큼은 두 마인에게 뒤지지 않는 강마 또한 만만하게 볼 인물이 아니었다.

삼존조차 무시할 수 없는 거물들이 다름 아닌 그들이란 의미인데….

“농사라니.”

“다른 놈들한테 이걸 말하면 미쳤다고 말할 테지?”

“믿는 놈이 더 이상한 거지.”

새벽녘의 천산 농장 한가운데 쭈그려 열심히 과실과 채소 등을 조심스레 수확 중인 세 마인의 모습은 현실감이 없었다.

과거 이 사부가 보여준 강철 거인이 나오는 영화만큼이나 말이 안 되는 광경.

“저 선배가 미쳤나?”

“왜 저러지…?”

천리후와 위현악 등은 단백설과 무백에게 이상함을 느낄 때, 반대로 악진보는 대충 저러는 이유가 짐작 간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 사부한테 점수 좀 따보겠다는 거지, 뭐.”

“점수?”

“딱 봐도 이 사부가 키우는 개가 선배들한테 중요한가 보지. 그런데 첫 만남부터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으니 저렇게라도 하는 수밖에.”

“호오, 확실히.”

악진보는 나름 눈치가 있는 인사였고. 설기와 마인들의 관계를 정확히 짚어냈다.

아니나 다를까.

“…저놈, 생긴 거랑 다르게 눈치가 좋네.”

거의 백 리 이상을 떨어져 있음에도 삼존의 대화를 귀신같이 들은 단백설은 눈을 치켜떴다.

“난 인기척만 알겠는데, 그게 들리오?”

“내가 모자란 네놈이랑 똑같을까.”

“…나도 나지만, 당신도 참….”

입신의 고수일지라도 백 리 이상 떨어진 사람의 속삭임을 들을 수 없다.

오직 타고나기를 초인과도 같았으며, 저 큼지막한 토끼 귀를 가진 단백설만에게만 가능한 재주가 아닐까 싶다.

마교에는 별의별 인간군상이 다 있지만. 아마 단백설만큼 특이한 인간도 없으리라.

“놀지 말고, 일해라.”

“…참 나.”

때마침 단백설과도 쌍벽을 이루는 특이한 인종이 말을 걸어왔다.

‘저 양반은 늘 그렇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단백설은 성 씨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와 같은 단(丹)가의 사람이었고. 비록 전전대의 고수라 할지라도 그다지 어려운 느낌이 없었다.

다만 광마는 달랐다.

어느 가문이나 파벌이 없음에도, 말단에서부터 올라와 십칠마종의 지위에 오르고. 기어이 마교의 2인자까지 차지한 입지적인 인물이다.

교주를 제외한다면 만인지상의 지위를 누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광마이지만. 그는 혼인도 하지 않았고. 딱히 세력도 일구지 않은 특이한 자였고. 이렇다 보니 교주와 검마를 제외하면 타인과의 교류 자체가 없기도 했다.

‘그래서 더 신기하단 말이지.’

어떻게 저런 특이한 양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일까?

‘소교주도 인물은 인물이란 말이지.’

뭐, 지금은.

“하아암….”

저토록 늘어지게 배를 긁으며 누워만 있을 뿐인 소교주긴 했지만.

“…참, 기운 빠지는구먼.”

“손 안 움직이나.”

“…내가 더러워서 움직이지 진짜.”

단혁세는 연신 투덜거리면서도 성실히 농사일을 했다.

이렇게 식선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야지 소교주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는 것도 얻는 것이지만.

‘뭐라도 얻어먹을 수 있겠지.’

쩝….

그저께 먹었던 반미를 떠올리며 입맛을 다시는 단혁세는 자신에게 떨어질 떡고물을 기대하였다.

* * *

“그래서,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뭐예요.”

“…생각보다 협조적이구나.”

“예상보다 빨리 끝났으니까요.”

예상치 못한 쓸 만한 일꾼들이 보충된 덕분일까.

평소보다 한 시간은 더 일찍 농장 일이 끝나기도 끝났지만. 노동의 대가는 정당히 치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으니, 여명도 호의를 내보이는 것뿐이었다.

“합리적이군.”

“당연한 거죠. 그래서 어떤 걸 물어보려고 당신들 같은 비싼 인력들이 농사일까지 한 걸까요.”

“이미 알고 있을 거라고 본다.”

“…흠.”

무백이라 했나. 이 영감님 말투가 너무 단답형이다.

직설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무언가 대화하기 조심스러워지는 유형?

딱 그런 느낌이다.

‘묵직한 양반이네.’

그런 평가를 내리며 여명은 말을 이었다.

“설기를 데리러 왔나요?”

“…그대 또한 상당히 직설적이군.”

“칭찬으로 받죠.”

“흠.”

무백은 말을 아꼈다.

어떤 답변을 주어야 할지 잠시 혼선이 생겼으나, 그는 광마였다.

광인(狂人)이기에 광마라 불린 것이 아닌, 어떤 일에서든 물러섬이 없는 무차별적인 행보 때문에 그는 광마인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렇다. 우린 소교주를 데리러 왔다.”

“왈!!”

일순 설기가 분노하며 소리쳤다.

아직 자신이 밝히지 않은 비밀을 멋대로 입에 담는 무백의 행위가 몹시도 불쾌하고 화가 난다는 듯.

“광마, 너어…!”

“…그다운 대응이군.”

단백설과 단혁세는 그의 거침없는 면모를 알고 있긴 했지만. 저토록 과감하니 아연실색해질 따름이다.

저놈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러나 싶기도 하고.

허나.

“소교주라, 그거 무림 세력의 후계자 같은 거지? 우와, 너 진짜 있는 집 자식이구나.”

정작 충격적인 정체를 들었음에도 여명의 반응은 담담한 것을 넘어 제법 태평해 보이기까지 했다.

“월…?”

“감상이 그것밖에 없냐고? 음, 오히려 어제 대충 얘기 나눈 것들이 더 놀라우면 놀랍지. 이제 와서 후계자라고 해봤자….”

“…….”

“응, 그다지 별 느낌은 없네.”

“…멍.”

“솔직히 놀라기엔 우리가 알고 지낸 지 너무 오래됐다는 생각은 안 드냐?”

“…….”

저 말대로였다.

대략 1년에 불과했지만. 그들 사이엔 이미 평생을 함께하여도 쌓기 힘든 신뢰와 애정이 있었다.

그러니 이제 와서 정체가 밝혀진다고 해도 그다지….

도리어 여명이 관심사가 있다면 그건.

“근데, 저 양반들이 데리러 왔다는 거 보니까, 너 혹시.”

“…….”

“가출했었던 거냐?”

“…….”

“어이, 눈 피하지 말고.”

“……멍~?”

“…….”

…이럴 때만 개인 척이지.

여명은 이 가출견이 참 예나 지금이나 뻔뻔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tmi후기.

-이번 화에 언급된 강철 거인이 나오는 영화는 다름 아닌 트랜스포머이다.

-천산의 은거자들은 과거 영화를 보고 로봇들에게 투쟁심을 느끼는 중이고. 현재도 트랜스포머를 이기기 위한 무공을 개발 중이다.

-참고로 은거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뜻밖에도 로맨스물과 하이틴물이다.

-판타지나 히어로물 영화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이유는 무림의 삶이 오히려 더 판타지 같고 히어로물 같기 때문이다.

-[어바웃 타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클루리스] 같은 종류의 영화를 좋아한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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