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왕좌의, 아니 본좌(本座)의 게임(3)
“오늘도 밥 냄새가 좋네요.”
“마침 괜찮은 쌀을 구했거든.”
“…아니, 그 정도 수준이 아닌 것 같은데요?”
늘 그렇듯 밥심에는 고소하고도 따끈한 밥 짓는 냄새가 풍겼다.
냄새만 맡아도 정겨운 시골 할머니 집에서 지어지는 가마솥 밥 냄새가 절로 연상되는 푸근함은 도시 생활에 지친 사회인에게 그리운 옛 향수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다면.
“우리 할머니 서울 사셔서 밥도 쿡쿡으로 하시는데, 왜 가본 적도 없는 시골집이 보이는 걸까요?”
“…그건 좀 문제가 맞긴 하네.”
여명은 어이없어 하면서도 약간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벌써 오늘만 저런 증상 아닌 증상을 호소하는 이들이 열댓 명은 더 나왔으니 말이다.
‘이것도 기력 때문인가?’
여명은 자기가 지은 쌀밥이 무슨 마약도 아닌데 이런 반응이 자주 나오니 자신의 기력이 문제가 아닐까 싶었다.
‘최근 갑자기 기력이 증가했지.’
여러 곳을 여행하며 그때마다 기력을 수급했던 꾸준한 노력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기력의 양은 작년과 비교하여 대략 열 배 정도 상승한 수준이었다.
전날 만난 기예화는 그런 자신을 보며.
-…오라비,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고 다닌 거예요?
-뭐가?
-아니, 뭔…. 제 기력은 오라비에 비하면 태양빛과 등불만큼 차이가 날 것 같네요. 허어….
-그, 그 정도야?
-오라비도 대충 느끼고 있을 거 아니에요. 정말 말도 안 되는 기력이에요. 기력으로만 봤을 때 오라비는 충분히 신선이라 자칭해도 될 정도네요.
-…….
-참, 터무니없는 사람이라니까.
그때의 시선은 무어랄까.
마치 크루즈 여행을 갔다가 바다를 보는데, 갑자기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대왕 고래를 목도하여 경이(驚異)와 공포 등을 느꼈을 때 지을법한 시선이었다.
-대왕 고래라, 좋은 의미인가?
어쨌든 갑작스레 막대한 기력을 손에 넣으니 기운이 줄줄 새어나오는 느낌이었고. 제어가 될 때까지 당분간 요리를 만들 때 원하지 않아도 선식이 만들어질 것 같았다.
예를 들어 밥을 지을 때나 식재료 등을 다듬을 때도 기력이 들어가니 아무래도 기존보다 더욱 과한 요리가 만들어지기 십상이었고, 지금도….
“우와, 밥만 먹었는데 미치도록 맛있어!”
“이거 쌀 어디서 나신 거예요? 꼭 좀 구매하고 싶어요.”
“밥심이라더니, 밥만 먹어도 맛있어서 이런 이름을 붙인 거였나…?”
밥과 반찬만 먹었는데도 극상의 요리를 먹은 것 같은 반응이 줄지어 나오고 있었다.
단순히 밥을 먹는 게 아니라, 귀한 재료로 만든 보약을 먹으며 실시간으로 몸이 건강해지는 기분, 아니 실제로 건강해지고 있으니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싶다.
‘하아, 세심공 수련을 늘려야겠네.’
수련 시간을 늘려 줄줄 새는 기력을 제어하지 않으면 TV에 당장 보도되어 이상할 것이 없으리라.
‘주변에서 밥 냄새만 맡고 환각 보는 사람이 생기면 그것도 문제일 테니까.’
여명은 음식이 너무 맛있어도 문제가 된다는 사실에 난감해하면서도, 이게 마냥 자신의 실력이 아닌 외적인 요소에 도움을 받은 것만 같아 묘한 찜찜함을 느꼈다.
-월!
“…나도 환각이 보이나.”
일순 자신에게 잔소리를 날리는 강아지의 모습이 보인 듯했다.
‘쓸데없는 고민하지 말고. 네 힘이니까 마음껏 써라’라며 직설적인 단호한 새하얀 강아지를.
“어색하네….”
허나 지금 식당에는 그 강아지가 없었다.
항상 있던 친구 혹은 가족이 갑자기 주변에서 사라졌을 때 느껴지는 빈자리는 생각보다 큰 것이었고. 여명은 드물게 맑은 현대의 하늘을 올려보며 설기를 떠올렸다.
“…밥은 잘 먹고 있을지.”
………
………
“월!!”
“아, 정말! 자가. 대체 몇 끼나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거야!”
“월.”
“…….”
당당하게 하루 열 끼를 주장하는 설기였고. 단백설은 어안이 벙벙하였다.
“…자가 식욕이 원래 이렇게 좋았나?”
자신이 알던 자가는 이토록 먹보가 아니었는데?
“왈.”
언제 적 데이터냐며 단백설에게 혀를 차는 설기였다.
여명의 걱정과 달리 밥을 너무 잘 먹어 문제인 댕댕이였다.
* * *
“하아암…!”
설기는 지루한 듯 하품하며 언제까지 이 양반들이랑 같이 있어야 하냐며 싫증내었다.
이럴 시간에 차라리 미튜브 방송을 몇 번 하면 했지, 너무나도 시간낭비 같았기에.
“월.”
“소교주, 그러지 말고 다시금 생각해 보시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소교주의 지위를 잃을 수도 있단 말이오.”
“왈.”
“…코웃음 치지 말고.”
그것도 협박이냐며 설기는 질려했다.
벌써 똑같은 말을 수십 번 들으며 설기는 거절했고. 그들은 똑같이 아르고 달래듯 설득했다.
같이 마교에 가자고. 그러면 신교를 주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새하얀 강아지에게 그건 다 의미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월!”
주인과 같이 사는 편이 훨씬 더 재밌고. 윤택하다며 설기는 단언한 것이다.
단백설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대체 식선은 자가의 응석을 얼마나 받아준 거야?’
원래도 자기 위주이긴 했지만. 그래도 신교에 있을 적에는 나름 규율과 위엄 등을 지키며. 책임감 또한 있던 자가였다.
한데 지금은.
‘그 모든 걸 놓았구나.’
단백설은 그 어떤 달콤한 말을 속삭여도 자가를 설득할 수 없음을 이틀 만에 깨달으며 절망했다.
이제 허락받은 시간도 얼마 없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단백설은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이틀 전.
세 명의 절세마인은 각고의 노력 끝에 식선의 협력을 얻어낼 수 있었다.
-여러분이 나쁜 의도로 온 건 아니기도 하고. 설기 장래를 생각해서도 중요한 것 같으니, 일단 설득할 시간을 드리죠.
-설득할 시간?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딱 그 정돕니다.
식선은 자가를 설득해주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 방해도 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걸 증명하듯 나흘 간 시간을 주고. 자가를 그들과 함께 살게 해주기까지 했다.
자신감? 혹은 사람이 너무 좋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넉넉한 인심이 아닐 수 없었고. 단백설은 이게 사실상 데려가라 허락을 내린 게 아닐까 싶을 따름이었다.
-자가도 신교가 그리울 거야.
한 번이라도 권력을 누린 사람은 그 맛을 잊을 수 없는 법이고. 자가에게 옛 영광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므로 데려갈 수 있을 거라고 단백설은 확신했다.
…딱 하루만.
-월!
‘권력 그거 먹을 수 있습니까?’라는 이상한 궤변을 늘어놓는 자가였고. 그들은 상황이 쉽게 풀리지 않으리란 것을 깨달아갔다.
-대체 1년 동안 무슨 일이!?
자가가 사라졌던 1년의 시간.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자가는 훨씬 더 뻔뻔해지고. 두 배는 더 나태해져 권력마저 귀찮아하는 경지에 올라 있었다.
이렇다 보니 자가를 설득할 방법은 이제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단백설은….
“…음, 꼭 자가가 소교주여야 할 필요가 있을까?”
“검마!?”
“아, 아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서….”
“…천산 생활이 몸에 맞나 보구려?”
“흠흠.”
도리어 자가에게 설득당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단백설은 민망해 하였지만. 잠시 후 뻔뻔스레 반발했다.
“그러는 지들은…!”
“우리?”
“그래! 너희도 지금 그냥 여기서 살 기세면서.”
“…….”
두 남자는 찔리는 게 있는지라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였다.
당장 단혁세만 해도 최근 식선이 만든 맥주란 이름에 곡주에 푹 빠져 하루라도 맥주를 못 마시면 입맛을 다실 지경이었고. 무백의 경우 포도(葡萄)란 신비한 과실로 만든 자주색 과실주(果實酒)를 다람쥐마냥 매일 챙겨오는 형편이었으니 말이다.
특히 건락(乾酪), 혹은 치즈라 불리는 것을 맛보고 입에 딱 맞는지 지금도 입에 넣고 있는 무백이었다.
“외통수에 제대로 걸렸다, 금적금마, 아니 금적금설(擒賊擒舌)이로다.”
장군을 잡기 위해선 말을 노리란 말이 있듯, 식선은 그들의 혀를 지배하였다.
단 이틀 남짓으로 그들은 식선의 객잔에서 나오는 음식에 헤어 나올 수 없었으며. 숙소 또한 등 따시고, 침상도 푹신거리니 도저히 벗어나기가 싫은 것이었다.
듣기론 천산 은거자들이 머무는 숙소의 집물(什物) 또한 식선이 직접 준비하여 준 것이라는데, 그야말로 가공할 만한 위력이 아닐 수 없었다.
인간에게 필수적인 의식주(衣食住)란 요소 전부를 공략하여 천산을 실존하는 낙원처럼 만든 것이니 이 얼마나 무서운 곳이란 말인가.
공덕 높은 고승이라 할지라도 천산에 오게 된다면 벗어날 마음이 없어질 것임이 분명하다.
“식선, 참으로 무서운 사내로다.”
“지랄 염병하고 자빠졌네.”
“…….”
웬만한 사내보다 더욱 걸걸한 말투로 단백설은 혀를 찼고. 곧이어 적나리하도록 그들의 상황을 말해줬다.
“그냥 너희도 여기가 신교보다 살기 편하고 좋단 걸 인정한 거잖아! 그걸 왜 그렇게 꼬아서 말해? 하여튼 몽둥이 달린 것들 허세는 알아줘야 해.”
“…검마, 소교주 앞이다.”
“자가 교육을 누가 했다고 생각해?”
“…….”
“알 거 다 알아.”
“…너한테 소교주를 맡기는 게 아니었거늘.”
여성에게 희롱당한 무백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러니 저 나이 되도록 단 한 번도 시집을 못 간 것이라며 절로 한숨이 나오는….
“너 지금 속으로 내 험담했지!”
“…….”
“죽는다!”
“…넌 역시 무서운 여자다, 검마.”
무백과 단백설이 다시금 투닥거리며 말싸움을 벌였고. 단혁세는 한 편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시원하게 들이켰다.
“크윽, 진짜 좋군. 천산 녀석들 매일 이런 걸 마신 건가? 부럽네그려.”
“월?”
“응? 나는 왜 적극적으로 소교주를 설득하지 않느냐고? 흐음, 오히려 반대로 묻자면 내가 설득한다고 해서 소교주가 설득당할 것이오?”
“월.”
“…그럴 줄 알았소이다.”
단혁세는 단칼에 거절하는 소교주의 답변을 이미 예상했다며 끌끌 웃었다.
싫다는 사람 억지로 권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냐는 얼굴이었다.
무엇보다.
“안휘에서도 말했다시피, 난 소교주를 강제할 마음이 없소이다.”
“으르르!”
“에헤이, 화내지 마시구려.”
그런 놈이 천산까지 저 둘을 데리고 왔냐며 화내는 설기였고. 단혁세도 이 부분은 할 말이 없다며 볼을 긁적였다.
“술이 웬순지, 뭐.”
“월!”
입만 살았다며 따져드는 설기는 하여튼 도움이 안 되는 인간이라며 단혁세를 연신 구박했다.
그리고는-.
…킁킁!
“…??”
“왜 갑자기 조용해지셨소? 욕할 거 다 한 것이오?”
“……왈.”
잠시 조용히 하라며 말한 설기는 코를 실룩거렸다.
자신의 코가 잘못된 것일까, 이 냄새는…?
“음?”
“이건…!”
뒤늦게 단백설의 귀가 쫑긋거렸고. 무백과 단혁세의 기감은 이백 리 이상 먼 곳에서 무엇인가가 날아오고 있음을 느꼈다.
절대고수들만이 알 수 있는 거대한 인기척이 빠르게 천산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신강의 마인들은 날아오는 인기척이 무엇인지를 단번에 파악해냈다.
이토록 빠르게 하늘을 주파하는 거대한 생물은 그들이 알기로 단 하나뿐이었으니 말이다.
“대붕(大鵬)이다….”
오직 신교의 후계자들만이 움직일 수 있는 신교의 영조(靈鳥)가 움직였다는 것은 한 가지 사실을 의미했다.
다름 아닌.
“소교주, 아무래도 오랜만에 가족상봉을 하겠소이다.”
“…….”
대놓고 불쾌한 티를 피력하는 설기였다.
………
………
“컹!”
휘적휘적.
그것은 기대했다.
좀 있으면….
“커엉!”
누나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짤막한 금색 꼬리를 흔들며 그것은 나름 크게 울음을 내질렀고. 그것을 태운 영조 대붕은 생각했다.
“끼에에….”
참으로 하찮기 그지없는 울음이라고.
tmi후기.
-천산의 주거 환경에 대해 말하자면 여명이 오기 전만 해도 낡은 움막에 불과했다고 한다.
-금천후처럼 재산이 많지 않은 이상 천산에서 생활은 그냥 야생이었다.
-다만 여명이 온 이후 은거자들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보고 가구를 선물해주었다.
-침대나 책상, 흔들의자, 소파 등등을 유럽에서 공수한 것만 주었고. 낡았다 싶으면 바꿔주는 서비스도 해준다.
-또한 최근에는 기력을 가구에 집어넣어 주는 것으로 환경이 더욱 좋아졌다.
-참고로 여명이 기력을 불어넣은 침대에서 자면 불면증·기면증·비염·알레르기·감기 등이 해결된다.
-따스한 구름 위에 누운 것만 같은 감각을 사시사철 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