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왕좌의, 아니 본좌(本座)의 게임(4)
“…저게 뭐래?”
여명은 자기 눈이 잘못됐나 싶어 연신 눈을 비볐다.
현대의 장사가 끝나고 설기가 신경 쓰여 곧장 천산으로 넘어왔거늘, 왜….
‘헛것이 보이지?’
자신이 헛것이 보일 정도로 피곤했나 하고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여명은 곧 이것이 현실임을 인지해야 했다.
그도 그럴 게.
“…그림자 멋지네.”
이제 막 지려는 천산의 노을을 몸으로 가리는 거대한 비행물체는 몸뚱이에 걸맞은 거대한 그림자를 생성하여 천산을 뒤덮었고. 여명은 자신이 보는 저 생명체가 헛것이 아님을 알았다.
저건.
‘시조새?’
순간 6천만 년 전에 죽었을 거대한 새를 연상시키게 하였으나, 점차 가까워지는 비행물체의 모습을 확인하니 시조새보단 솔개가 연상되는 모습이었다.
다만 깃털은 검붉은 흑조(黑鳥)였으며.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두려움을 안길만한 위압감이 있었다.
‘덩치도 어마어마하고.’
후우웅!
천산까지 날아온 거대한 흑색 솔개가 때마침 밥심의 공중을 정확히 지나갔고. 여명은 새의 덩치를 정확히 가늠할 수 있었다.
최소….
‘4층 건물만 하겠네.’
여명은 중원삼국에 살면서 수많은 특이한 생물을 다 목격하였다고 여겼지만. 사실은 아직 멀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우쳤다.
역시.
‘사람은 겸손해야 해.’
“…응?”
나름 삶의 교훈을 되새기고 있던 여명은 문득 어벙한 소리를 내었다.
그에게 교훈을 준 건물만 한 새가….
‘왜 돌아와?’
유턴하는 비행기처럼 자신에게로 날아오는 광경이 보였기에.
짜악!
여명은 본능적으로 손뼉을 치며 기환술로 밥심을 포함한 대나무 숲 일대를 기력으로 감싸 안았고. 이것이 미친 판단력이었다는 건 3초도 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푸화학!
진짜 비행기도 아닐 터인데, 여명의 근처로 착륙하는 흑조 탓에 엄청난 풍압이 한차례 주위를 휩쓸었다.
만약 기력으로 주위를 감싸지 않았더라면 자신도 그렇고 식당도 위험하지 않았을까 싶….
‘아, 아니구나.’
도중 흑조의 풍압이 옅어졌다. 땅으로 내려올수록 풍압이란 말이 무색해지도록 산들바람만이 불었고. 물리법칙을 거스르는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끼에에,”
“피, 피해를 입힐 생각이 없으니 안심하라고?”
“끼에.”
“…하하.”
여명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내뱉었다.
새와, 아니 동물과 소통을 나누는 것 정도야 이제 나름 익숙하여 아무렇지 않은데, 이토록 매너 넘치는 새는 처음인지라 어안이 벙벙한 것이었다.
신사의 품격.
몇 마디 나누지 않았음에도 여명은 흑조에게 ‘품격(品格)’이란 것을 느꼈다.
“…영수는 아닌 것 같은데.”
“끼에.”
“아, 그, 그래?”
흑조는 ‘자신은 아직 영물인바. 영수가 되기 위한 여정을 걸을 뿐인 도전자일 뿐이다’라는, 겸손하면서도 기백 넘치는 답변을 늘어놓았고. 여명을 다시금 벙찌게 하였다.
“끼에.”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하나 묻건대. 혹 그대는 기환학사인가? 그대에게서 맑은 기운이 느껴진다.’
뇌리로 전해지는 흑조의 물음이었고. 여명은 얼떨결에 고개를 주억거리고 말았다.
“본업은 따로 있지만. 일단 기환학사이긴 해.”
“끼에!”
‘대단하군. 이토록 강대한 기환술은 드문 것인데, 그대는 대단한 인간이구나!’
흑조는 여명에게 감탄하며 경의를 표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기력이란 내력과 달리 수련이 아니라 오직 선업(善業)을 통해서만 쌓을 수 있는 기운.
한데 그런 기력이 저토록 방대한 것을 넘어 웬만한 영물조차 가뿐히 뛰어넘을 정도이니 절로 감탄이 나올 수밖에!
“끼에에!”
선인(善人)에 대한 존중을 보이지 않을 수 없다며 날개를 펄럭거리는 흑조였고. 여명은 당혹스럽게….
“컹!”
“…끼에.”
일순 어디서 들린 건지 모를 작디작은 울음소리가 흑조의 흥분을 멎게 했고. 여명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저 흑조의 크기가 너무 거대하여 미처 알지 못했는데, 이제 보니….
‘등에 뭐가 타고 있었네?’
흑조의 등에는 아주 작은 밤톨 같은 것이 꾸물거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도저히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았고. 꾸물거리는 밤톨이 서서히.
“커엉!”
“……미친.”
일순 여명은 가슴을 부여잡았다.
세상에 뭔!
‘개 귀엽네.’
4층짜리 새조차 압도하는 임팩트가 아닐 수 없었다.
“컹!”
* * *
휘익!
“왈!”
“자가, 수련을 등한시하지 않았네?”
“월월!”
지금 그게 중요하냐며 질책하는 설기는 다급하게 몸을 날렸다.
짤막하고도 작은 몸뚱어리로 절세고수마저 따돌리는 설기의 질주는 그야말로 질풍과 같았으며. 경공의 대가조차 혀를 내두르게 하기 충분했다.
“으르릉!”
설기는 이를 갈았다.
방심했다. 이런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뒤통수가 아려오는 기분!
설마 이렇게 빨리 교(敎)에서 사람이 나올지 몰랐고. 하필 혈족 중 하나가 대붕을 타고 천산까지 날아올 줄은 예상치 못했다.
“월….”
허나 한 가지 의문인 것은 저들이 자신이 천산에 있다는 걸 특정해냈다는 사실이었다.
단백설이나 무백 같은 거물조차 단혁세가 아니었으면 자신을 찾지 못했었다.
한데 저들이 어찌…?
“저긴?”
“-!!”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자신의 위치를 특정해냈다는 사실이 아닌, 하필 주인이 있는 곳에 대붕이 주저앉았다는 점이다.
“왈-!”
설기는 격노하며 이를 드러내었다.
감히 누구를 건드리는 것이냐며 설기는 분노한 것이다.
만약 주인을 건드린다면 비록 최상위 영물이라 불리는 대붕일지라도 결코 가만두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설기는…!
“커엉!”
“그래, 기분 좋아?”
“컹!”
“어이구, 귀여워라. 자, 이거 김치만두란 건데, 한번 먹어봐라.”
“커어엉!”
“맛있게도 먹네.”
“……월?”
설기는 보았고. 일순 당혹스럽다 못해 혼란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뭐지 지금 이 광경은…?
주인은 어떤 토실거리는 인절미와 놀아주고 있었다.
인절미는 주인의 손길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지 녹은 인절미가 되어 있었고. 주인은 몹시 사랑스러운 눈길로 인절미를 흐뭇해하였다.
그렇게 설기는….
“월!?”
자신의 자리가 위협당하는 현장을 실시간으로 목격해야만 했다.
* * *
강아지는 참으로 작다 못해 마치 인형처럼 보일 정도로 아기자기하기 그지없었다.
이제 막 태어난 새끼 강아지가 성인 남성 손바닥과 겨우 맞먹는 크기인데, 이 강아지 또한 그러하다 보면 되었다.
어찌나 작은지 보고 있노라면 자칫 물풍선처럼 터지지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 되는 게 아니었다.
“컹!”
“그러니?”
자기는 약하지 않다며 연약하고도 하찮은 반론을 내뱉는 강아지의 모습은 절로 아빠미소가 나오기에 충분했다.
마치 복슬복슬한 금색 털은 골든리트리버가 연상되게 했으나. 어쩐지 둥글둥글한 다람쥐를 연상케 하는 외형이다.
‘그런데, 어딘지 좀….’
여명은 다람쥐와 같이 조그마하고 사랑스러운 강아지가 어쩐지 누군가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래!’
설기, 여명이 친애하는 강아지와 닮은 것만 같았다.
분명 외형 자체는 다르지만. 눈매나 풍기는 분위기 등이 닮아 있다는 느낌.
‘왠지 정감이 가더라니….’
여명은 제법 낯을 가리는 편인지라, 아무리 귀여운 생물일지라도 일단 경계심을 가지는 게 일상이었다.
한데 이 인절미 다람쥐처럼 생긴 녀석한텐 이상하게 정감이 갔으며. 어딘지 모르게 밥을 먹여주고 싶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 먹어.”
“컹!”
여명이 김치만두를 먹여주니 오물오물하며 아주 잘 먹었다.
워낙 입도 작아 먹는 양조차 하찮았으나, 그 귀여움만큼은 위대했다.
보고 있노라면 행복을 주는 먹방.
“컹!”
반대로 강아지는 지금껏 인생 헛살았다며 투덜거렸다.
만두는 지금껏 많이 먹어보았지만. 이토록 살짝 매콤하면서도 맛이 풍부한 만두는 처음이라며 헤실거렸다.
“끼에에….”
“아, 너도 줄게.”
“끼에!”
흑조, 아니 이름이 대붕이라고 하였던가?
인절미 다람쥐만 김치만두를 주니 섭섭해하는 대붕에게 왕만두를 스무 개가량을 쪄서 주니 대붕은 한입에 왕만두 스무 개를 입에 넣고 삼켜 버렸다.
씹지도 않았는데, 맛이 느껴질까 싶었으나.
“─!”
파아앗!!
순간 대붕의 입에서 미친 듯이 거대한 함성이 울렸다.
사자후, 아니 봉황후(鳳凰吼)라 하여도 이상할 것이 없는 포효였으며. 거대한 포효는 거센 돌풍을 발생시켰다.
파드드득!!
구우우!
새들 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새이자, 영조(靈鳥) 중에서도 최상위 영조로 인정받는 대붕이 기쁨과 감동을 느끼며 봉황후를 내뿜으니 순간 천산의 새들마저 공명하듯 날갯짓을 하고 함께 울부짖었다.
“…이야, 멋지네.”
“잘됐구나. 대붕의 인정을 받는 것은 어려운 일일 텐데, 너에겐 별것 아니었구나.”
“백효님?”
새하얀 올빼미가 언제 그에게 다가온 것인지 어깨 위로 올라와 있었다.
“대붕은 자신이 인정하는 자가 아니면 등에 태우지 않지. 귀한 탈것을 얻었음이야.”
“귀하다고요?”
“날갯짓 한 번으로 천 리를 간다고 알려진 새이니라. 마음만 먹는다면 9만 리를 쉬지도 않고 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
“…….”
현실감이 없는 설명에 여명은 잠시 눈을 끔뻑였다.
천 리를 한 번에 간다니…. 분명 은유적 표현이긴 할 테지만. 저게 반만 맞아도 웬만한 비행기보다 빠르다는 의미이리라.
어쩌면 음속으로 날 수 있을지도?
‘천 리면 부산에서 서울 거린데….’
그리고 9만 리면….
‘지구 한 바퀴 도는 데 10만 리(40,075km)라고 했으니, 하. 지구 한 바퀴를 쉬지 돌 수 있는 새라는 거네.’
중원삼국에는 특이한 생물이 많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면 역대급이 아닐까 하고.
“한데, 저 어린 것은 왜 저러고 있는 것이냐?”
“네에?”
“‘저거’ 말이다. 저거.”
“…??”
여명은 백효의 날개가 향한 방향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르르르…!”
대나무 잎 하나를 손수건처럼 물고 대나무에 찰싹 달라붙은 설기가 자신의 손 위에 누운 인절미 다람쥐를 보며 질투를 불태우고 있었고. 단백설과 단혁세 등은 난감하게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쟤는 또 왜 저래?”
“컹?”
여명의 나지막한 읊조림에 반응한 인절미 다람쥐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커어엉!!”
“어?! 야아!”
여명은 기겁했다.
인절미 다람쥐가 갑자기 번지점프를 하듯 손바닥을 벗어난 것이다.
다칠까 조마조마해하는 여명과 달리 인절미 다람쥐는 진짜 하늘다람쥐처럼 사뿐히 바닥에 내려앉아 짧다 못해 앙증맞은 네 발을 열심히 움직여 설기에게 뛰어갔다.
“커엉!”
“월!?”
와락!
설기가 일순 기겁해하며 몸을 피하려 했지만. 인절미 다람쥐는 날쌨고. 설기의 품에 다이빙을 하듯 안겼다.
풀썩!
“컹컹!”
“월월?!”
설기가 반가운 것인지 연신 울부짖는 인절미 다람쥐였고. 설기는 연신 당혹스러워 했다.
‘네가 왜 여겨 있냐?’고 따지는 설기와 ‘와, 누나다!’ 하고 반가움을 표하는 두 강아지의 반응은 상이한 것이었다.
여명은.
“누나?”
순간 번역기가 잘못된 게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처럼 눈을 끔뻑였다.
누나라니?
“설마….”
“맞다.”
“네?”
백효처럼 소리 없이 다가온 무백이 치즈 하나를 입에서 우물거리며 여명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교주의 핏줄 중 막내인 금천주교(金天主敎)다.”
“주교(主敎)?”
“교주의 자식들은 대대로 주교의 지위에 봉해지지. 참고로 소교주의 지위는 백천주교(白天主敎)다.”
“…혹시나 싶어서 물어보는 건데, 다른 주교도…?”
“흑천주교와 청천주교가 있다.”
“…….”
“음? 왜 그러지?”
“아, 아니요. 그냥 빨강은 없나 싶어서요.”
“음? 어찌 알았나? 교주의 털은 적색이거늘.”
“…….”
…여명은 갑자기 마교에 가보고 싶어졌다.
‘주교전사 도그 포스라….’
다섯이 모였을 때 광경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여명이었다.
tmi후기.
-대붕은 마하의 속도로 날 수 있으며. 자기 등에 탄 사람은 기압의 영향을 받지 않게 할 수도 있다.
-대붕은 마음만 먹으면 한국에서 미국까지 세 시간이면 갈 수 있다.
-먹이도 산소를 먹고 살기 때문에 극강의 가성비를 자랑한다.
-마교가 유통업으로 중원삼국에서 1위를 하고 있는 이유는 이런 대붕 덕분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교주는 대붕보다 큰 거대한 사모예드라고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