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서와요 무림식당-208화 (208/261)

208-왕좌의, 아니 본좌(本座)의 게임(8)

마교.

누군가에겐 두려움의 대상이자, 황룡국의 백성들은 마귀들이 우글거리는 마굴이란 이름으로도 부르는 세력.

물론 어른들이 무림인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 아이에게 겁을 주기 위해 하는 거짓이 대부분일 뿐이며. 마교 자체는 그다지 두려운 곳은 아니었다.

인신공양을 하는 것도 아니며. 피를 가지고 수상한 의식을 자행하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도리어 황룡국에 드문드문 존재하는 사이비 조직 같은 것이 그런 짓을 하면 하였지.

다만 그렇다고 해서 마교가 만만한 곳이란 의미가 아니었고. 종교의 색채를 가진 군벌이나 다름없기에 마교에 가는 자는 긴장을 해야 하는 것이 옳을 테지만….

“음, 오늘 김밥 간이 잘됐네.”

“월.”

“컹.”

…여명 일행에겐 하등 상관없다는 것처럼 그들은 여유로운 피크닉 분위기를 내는 중이었다.

“린아, 넌 무슨 김밥 먹을래?”

“저는 맹물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아직도 긴장해 있네. 자, 이거. 치즈김밥 좋아하지?”

“가, 감사합니다.”

“월!”

“그래, 넌 참치랑 닭갈비 김밥이라는 거지?”

“멍~.”

…참으로 마교를 가는 것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여유로움이 아닐 수 없었다.

* * *

여명이 어릴 적만 해도 바깥나들이를 하거나, 혹은 소풍을 갈 때 김밥은 국룰과도 같은 것이었다.

집집마다 김밥의 맛은 다르기 일쑤이니 그걸 나누어 먹는 것도 일종의 묘미였으나, 여명의 집안은.

‘우리는 김밥 같은 거 안 했지.’

해당이 되지 않는 묘미였다.

모친 되시는 분께선 요리란 것을 전혀 못 하였고. 가정주부를 고용하여 집안의 살림을 모조리 맡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애초에 가족 나들이란 것을 간 적도 없을뿐더러, 소풍 때도 분식점 등에서 사 먹은 기억만 나기에 여명에게 있어 김밥의 추억은 분식점 김밥이었다.

다만, 초등학교 시절 친했던 어느 여자아이가 나눠 먹자며 준 김밥을 먹고 여명은 그제야 가정 김밥이 가진 참맛을 알 수 있었다.

분식점에서 만드는 것과는 다른, 조금은 어설프지만 정성만은 가득했던 터지기 일보직전인 김밥을 말이다.

“이것도 그때 김밥 맛을 재현한 거야. 속 재료는 야채까지 모두 볶고. 밥의 간은 참기름이랑 소금만 좀 썼지.”

“월?”

“재료를 볶으면 훨씬 더 맛있어지거든, 특히 당근이.”

얇게 채 썬 당근을 볶으며 단맛도 단맛이지만. 소금을 뿌려 간도 알맞게 해주어 밥이랑 같이 먹으면 그게 그토록 맛있을 수가 없다.

당근을 싫어하는 사람도 당근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맛.

물기를 뺀 오이도 그렇고. 시금치도 그렇고.

기름을 두른 팬에 한 번씩 살짝 볶는 것만으로도 그 풍미나 식감, 맛 등이 완연하게 달라지니 김밥이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면서도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맛있게 만들 수 있는 간편한 음식이 아닐 수 없으리라.

“요새는 당근을 볶아주는 김밥집이 얼마 없어서 아쉬워. 한 번 볶는 것만으로도 참 맛있는데.”

“컹?”

“안 볶는 이유? 손이 더 많이 가고. 말았을 때 모양이 그다지 예쁘지 않다는 모양이야. 뭐, 그 밖에도 김밥집 나름 전략이 있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볶는 게 최고고.”

근래에 보기 드문 재료 볶은 김밥을 찾을 게 아니라, 직접 만들어 먹는다는 마인드가 참으로 요리사다운 마인드일지도 모르겠다.

“컹!”

“그래, 맛있어.”

“컹컹!”

밤톨이는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 마음에 드는 것인지 연신 싱글벙글 웃었고. 아기 새처럼 먹이를 원하듯 김밥을 먹여 달라 보채었다.

“식탐이 딱 네 동생이다, 진짜.”

“월….”

설기는 낯부끄럽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여튼 누나 망신 다 시키는 동생이라는 듯.

그러나 그런 설기도.

“월.”

“…부러웠었냐.”

“왈왈.”

차별하지 말라는 호통과 함께 입을 벌리는 설기였고. 여명은 쓴웃음을 한 번 짓고는 설기의 입안에 닭강정을 넣어주었다.

추억의 나들이 도시락처럼 김밥과 닭강정, 과일과 꿀떡 등을 준비한 여명이었고. 설기와 밤톨이는 아주 야금야금 도시락을 먹어댔다.

물론 두 강아지 말고도.

“끼에에!”

“그래, 너도 입 있는 거 아니까 진정해.”

“끼에.”

“참 나.”

새한테 동족을 먹여도 되나 싶기도 했지만. 여명은 자신의 동족은 다섯 마리밖에 없다 선언하는 대붕의 말에 김밥과 닭강정을 입에 넣어주었다.

“─!”

입맛에 맞는지 다시금 봉황후를 토해내는 대붕이었고. 일순 대붕의 몸이 흔들렸다.

“조심해, 이 녀석아. 그러다 나 넘어진다.”

“끼에?”

대붕은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며 호언장담했다.

아무렴 그가 괜히 영조(靈鳥)라고 불릴까.

펄럭!

대붕은 더욱 높게 날갯짓을 하며 보여주었다.

아무리 빠르고 높게 날아도 탑승자가 떨어질 위험은 없다는 것을 증명하겠다며.

“…아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

상공(上空) 10,000m.

하늘 위에서 여명의 떨리는 읊조림이 나지막하게 울렸으나. 강한 강풍 탓에 누구의 귀에도 닿지 않았다.

* * *

중원삼국에서 수많은 절경(絶景)을 보았다고 자부하는 여명이지만. 이러한 광경은 어떤 의미에서 지금껏 보았던 모든 절경을 압도하는 강렬함이 있었다.

후우우!

하늘을 올려보아야만 보였던 구름이 이제는 자신의 발아래 깔린 융단처럼 즐비하며. 창공은 푸르고도 어딘지 모르게 검게 빛나는 보석을 보는 것 같았다.

가끔씩 구름의 융단이 사라진 하늘 아래에는 산과 숲, 강줄기가 마치 모형처럼 보여 손바닥을 펼치니 세상이 내 손 안에 있는 전능감이 들 따름.

일종의 전율적인 쾌감이 전두엽을 강타하며 목부터 척추까지 한번 짜릿한 흥분감이 덮쳐온다.

“…잘못하면 중독되겠어.”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의 등 뒤에 다소곳하게 앉은 채 여명과 같은 광경을 바라보는 북궁린은 살며시 여명의 옆구리를 잡았다.

“무서워?”

“…이런 높은 곳까지 올라오는 건 처음인지라.”

“혹시 고소공포증이야?”

“그, 그 정도는 아닙니다만.”

“흠.”

담담히 말하고 있지만. 여명은 그녀의 손에서 떨림을 느꼈다.

괜찮은 척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전혀 괜찮지 않은 게 느껴졌다.

“지금이라도 집으로 돌려보내 줘?”

축지만 이용한다면 그녀만 따로 집으로 되돌려 보내주는 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싫습니다.”

“그, 그래.”

“안 갈 겁니다.”

“…음.”

단호하다 못해 드물게 고집을 부리는 북궁린이었고. 여명은 난감하게 볼을 긁적였다.

이 애가 생긴 건 순둥이지만. 성격은 누구보다 고집스럽다는 걸 아는 아는 것이었다.

‘돌려보내면 무조건 울겠네.’

여명은 그녀를 돌려보내자는 발언을 다시 하면 난리가 나리라 직감하며. 설득하는 대신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따악.

“이 정도면 아마 기분이 좋아질 거야.”

“아, 가, 감사합니다, 사장님.”

여명의 기력을 감싼 그녀는 상쾌해진 기분을 만끽하며 고도의 하늘이 주는 위압감을 조금이나마 떨쳐낼 수 있었다.

“…수치스럽습니다.”

무림인이 이런 것에 무서움을 느끼다니, 이러한 창피가 어디 있을까.

“수치는 무슨.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아무리 열심히 운동을 하고. 평소 야생말처럼 드센 인간도 고소공포증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솔직히 상공 1만 미터가 그냥 높은 것도 아니다. 그가 알기로 국내선만 해도 7-8천 미터를 난다고 하는데, 지금 그들은 무려 2천 미터나 더 높은 고도에 위치한 것이다.

떨어지면 즉사(卽死)가 확정된 높이이거늘,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는 건 당연한 노릇이리라.

“그러니까 창피하다고 하지 마. 차츰 적응하면 괜찮아질 거야.”

“…사장님께선 이미 적응이 끝나신 것 같습니다.”

“나? 나는 적응이 끝났기보단, 그냥.”

아직 현실감이 없어 막상 높은 상공에 있을지라도 별 느낌이 없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바람 한 점 안 스치니까 오히려 미묘해.’

분명 엄청난 속도로 날고 있는 것 같은데, 전혀 바람의 영향이 오지 않을뿐더러, 추위도 느껴지지 않는다.

또한 대붕이 깃털이 최고급 침대처럼 푹신하고 안정적인지라 불편한 느낌조차 없다.

‘떨어지고 싶어도 떨어지지 않게 하는 안전벨트가 있는 것 같기도 해.’

대붕이 지닌 미증유의 힘이 그를 감싸며 지붕과 벽이 되어준 감각.

기력 덕분인지 보다 선명하게 벽의 존재감을 느끼며 여명은 이것이 일종의 공기의 막으로 이루어진 벽이 아닐까 예상했다.

‘대붕이라, 최상위 영물이라고 하더니.’

전날 대붕이 자신의 등 뒤에 올라오라고 하여 조금 불안한 감이 있었지만. 영수들은 한 입 모아 그에게 말했다.

-그대여, 대붕의 등에 탈 수 있는 기회는 얼마 되지 않는다. 본녀 또한 타본 적이 없을 정도이거늘.

-천하에서 가장 안전한 비행(飛行)이라고 여기거라. 부럽구나. 여도 타고 싶거늘.

-…어디 감?

…마지막 판다는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어찌 됐건 영수들이 그토록 호언장담한 이유를 알겠다.

‘다치고 싶어도 절대 못 다치겠네.’

자해라도 하지 않는 한 다치지 않으리라 여길 때쯤, 여명은 슬쩍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 양반들은 잘 따라오고 있으려나.”

마교에서 온 삼인방.

무백과 단백설, 단혁세 등은 대붕의 등에 타지 못하고, 결국 두 발로 뛰어오는 중이었다.

면적이 넉넉하여 다 같이 타고 가면 될 테지만.

-끼에!

대붕은 까칠했다. 아니, 정확히는 여명과 설기 등을 제외한 모두에게 까칠했고. 함부로 등을 내주지 않았다.

-대붕은 천년의 세월만 지나면 영수의 격을 획득하는 것이 거의 확정된 영조이지. 그런 만큼 자존심은 십칠마종에게도 뒤지지 않는바.

-타려다가 죽는 녀석들이 수두룩했지.

-설사 억지로 올라타는 데 성공해도, 공중에서 떨어지는 게 거의 확실하지.

그렇기에 교주의 핏줄을 이어받거나, 그도 아니면 대붕의 인정을 받은 사람만이 대붕을 탈 수 있었고. 대붕의 등에 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교에선 용장(勇將) 취급을 받는다고 한다.

…다만.

-응? 그런데 린이는 왜 태워주는 거예요?

-대붕은 젊은 여자아이를 좋아하니까. 특히 순수하면 순수할수록 더욱 좋아하지.

-순수?

-…그런 게 있다.

-??

…아직도 북궁린이 탑승을 허락받은 이유를 잘 모르겠으나, 어찌됐건 간에 대붕을 탄 덕분에 수천 리 이상 떨어진 먼 신강을 향해 단숨에 날아가고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상쾌하였다.

“세 시간도 안 걸려서 간다는 게 진짜 엄청나네.”

“컹.”

“더 빨리 갈 수도 있다고?”

“컹컹.”

“그, 그래…?”

밤톨이의 말을 들으며 여명이 떨떠름한 기색을 보이니, 북궁린이 살며시 물음을 던졌다.

“강아지님께서 무어라고 하신 겁니까?”

“…대붕이 살이 쪄서 느리게 가는 거래.”

“예에?”

“원래는 더 빨리 갈 수 있는데, 최근 살이 쪄서 느린 거란다. 원래는 세 시간도 아니고. 일각(15분)이면 갈 수 있다는 데, 살이 쪄서 느리게 가는 거래.”

“…….”

“하하….”

이게 느린 거란 사실에 어안이 벙벙해하는 북궁린이었고. 반대로 여명은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다 나왔다.

이놈의 무림 동네는 정말.

‘놀라다가 지치겠다.’

질리지 않는 깜짝 박스와 같은 세상이 아닐 수 없다며 혀를 내두르는 여명이었다.

………

………

저벅저벅.

“…여긴 여전하구먼.”

치렁치렁한 옷을 입은 어느 노인이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며 힘들게 발걸음을 옮겼다.

대략 상수(上壽), 백은 거뜬히 넘었을 법한 주름이 가득하고. 뼈마디가 약해 보이는 늙은 노인이었지만. 이상하게 그의 걸음에는 힘이 넘쳐 보였다.

그리고 노인이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은 정중히 고개를 수그리며 노인에게 예의를 표하였고. 노인은 그러지 말라며 연신 손사래를 쳤다. 마치 과도한 규율이 딱 질색이란 것처럼.

그러던 순간 노인은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 것인지 서서히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敎主殿]

교주전. 그렇게 적힌, 10척이 넘는 거대한 석문으로 이루어진 문을 바라보며 노인은.

“교주, 늙은 노인네에게 이 무거운 문을 열게 할 셈인가?”

……쿠구궁.

“허허, 역시 교주가 뭘 좀 아는구먼. 노인공경을 참 잘해준단 말이야.”

자동으로 열리는 것 같은 석문을 유쾌하게 보며 노인은 석문의 틈 사이로 들어갔다.

허나 석문의 안쪽에 존재하는 건 그저 고요한 어둠뿐.

있는 거라곤.

스으으읍…! 후우우-!

거대한 무언가의 들숨과 날숨의 소리뿐이었다.

“좀 밝게 있게나. 이렇게 어두우면 눈만 침침해진다네.”

-후우욱….

“흘흘, 교주 자네도 늙으면 다 알게 될 게야. 지금이야 젊어서 그런 게지.”

-스으읍.

“알겠네, 잔소리는 그만하고 본론을 말하라는 거 아닌가. 하여튼 늙은이 대화상대나 좀 되 줄 것이지.”

-스으읍!

“보채긴, 흠…. 소교주가 오고 있다네.”

-…….

쿠드득…!

“흘흘, 이제야 좀 반응이 좋구먼.”

지금껏 묵묵히 들숨과 날숨만 반복하던 거구의 무언가가 몸을 일으키며 눈을 떴다.

마치 불꽃과 같은 홍염(紅焰)의 갈기가 인상적인-.

“구왕.”

거대 개가 처음으로 눈을 떴다.

tmi후기.

-중원삼국은 종교 집단에게 의외로 관대하지만. 개인이 종교 집단을 창설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일정한 기준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현대로 따지면 기술사 자격증 열 개 정도를 따는 것과 맞먹는 난이도라고 보면 된다.

-이렇게 힘들게 종교 집단을 창설하고도 사이비가 되는 이들이 많은데, 그들은 엄벌에 처해지고. 중원삼국에서 종교를 이용한 범죄는 사형으로도 부족하여 평생 고문형에 처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신강 같은 경우는 마교란 유일 종교가 있는 덕분에 사이비가 생길 수가 없는데. 이유는 마교의 복지가 어마어마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교인 인정만 받아도 장애가 있을지라도 평생 무상 지원을 받을 수 있고. 교인들이 모두 힘을 합쳐 도와주기 때문이다.

-중원삼국에서 가장 이상적인 종교 집단이라고 불리는데도 마(魔)교 소리를 듣는 것은 타 집단에게 공격을 받으면 더할 나위 없이 호전적이며. 잔인하게 복수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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