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서와요 무림식당-210화 (210/261)

210-왕좌의, 아니 본좌(本座)의 게임(10)

마교, 아니 신강 혹은 십만대산(十萬大山)이라 불리는 흑원신교의 총본산은 말만 산이지, 거대한 산맥 그 자체를 영토로 삼은 거대한 국가나 마찬가지였다.

농담이 아니라, 만약 걸어서 신강까지 온다면 평범한 인간으로선 아무리 노력해도 1년을 공들여야 황룡국에서 신강까지 도착할 수 있을 것이고. 정작 마교가 있을 십만대산의 산봉우리들을 오르게 되면 망망대해에 온 느낌을 받을 것임이 분명했다.

“만마전(萬魔殿), 혹은 흑원신전(黑猿神殿)으로도 불리는 마인들의 성지에 가기 위해선 십만대산에 존재하는 무수한 산들을 넘어야 합니다. 하지만 십만대산은 무수한 신령의 힘으로 인해 생태계 자체가 미로(迷路)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지요. 그러니 괜한 객기를 부려 십만대산을 오르는 순간 미아가 되어 죽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합니다.”

“…그냥 오를 생각을 하지 말라 이거네.”

여명은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자신들이 정말 편하게 온 거라는 사실을 인지했다.

대붕 덕분에 만마전 근처까지 온 것이 아니겠는가.

“월!”

“응? 아니라고?”

설기는 이곳이 만마전의 근처도 아니라며 단언했다.

어디까지나 교인들이 살아가는 하나의 마을에 불과할 뿐.

“…대붕이 우리를 엉뚱한 곳에 내려줬다는 거야?”

마교를 가야 한다며 그들을 데리고 온 것이라더니, 정작 마교가 아니라는 것에 의문을 표하자 설기와 밤톨이는 고개를 저었다.

“월.”

“커엉!”

“…한 명만 말해라.”

“사장님, 저분들이 지금 무어라고 한 것입니까?”

“으음, 만마전은 땅에 있는 게 아니래.”

“예에?”

순간 여명이 자신에게 농을 던지는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였고. 여명은 손을 저으며 발로는 땅바닥을 툭툭 쳤다.

“만마전은, 그러니까 마교는 이 안에 있대.”

“…혹시 은유적인 표현입니까?”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네.”

“…….”

“그렇지? 못 믿겠지.”

하긴 현대인인 자신 또한 들으면서 마냥 현실감이 없는데, 그녀라고 뭐가 다를까.

오히려 더욱 큰 문화충격, …아니.

‘이 정도면 문명충격이지.’

지저도시(地底都巿).

마교는 이 거대한 산맥의 지하에 있다는 사실이 지금도 믿기 어려운 여명은 고개를 저었다.

하여튼 간에.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나만 피곤한 동네라니까.’

* * *

만마전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교인들이 사는 특정한 마을마다 존재하며. 대붕이 내려준 이 마을도 그중 하나라고 보면 되었다.

다만, 마교를 흑원의 대리자로 생각하며 신성시하는 교인들 입장에선 외지인을 함부로 마교의 입구로 데려다주지 않고. 도리어 십만대산을 빙빙 둘러 가게 하니, 마교를 찾으러 온 사람들은 그저 허무하게 발걸음을 돌리는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다만.

“천세! 천세! 천세!”

“백천주교와 금천주교를 뵙습니다!!”

“와아아아아!!!”

그들에겐 치트키가 있었다.

━신교불패(神敎不敗)! 만마앙복(萬魔仰伏)!

━흑원에게 영광 있으리라!

“…와, 살이 다 떨리네.”

분명 조금 전만 하더라도 조금 운동 좋아하고. 평범한 마을주민으로밖에 안 보이던 사람들이었다.

한데 지금은 달랐다.

광신도(狂信徒), 그러한 이름이 문뜩 떠오를 정도로 그들의 눈은 환희에 물들어 있었고. 감동의 물결이 넘쳐나 울먹이는 이들이 속출했다.

세계적인 인지도를 지닌 월드 스타가 내한을 하더라도 이토록 열광적일 수는 없을 터인데, 이들은….

‘진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충성심이네.’

기력을 다스리며, 타인의 감정에 민감한 기환학사이기에 더욱 그들의 심정이 잘 느껴진다.

저건 순수한 존경과 사랑에서 나오는 맹목적인 충성심이라는 걸.

“…설기, 너희 집안 진짜 끝내주는구나.”

“……월.”

설기는 자신도 부담스럽다며 고개를 숙였고. 여명은 왠지 설기가 가출한 원인 중 하나를 알 것만 같았다.

“설마 주교 두 분을 동시에 모시게 될 날이 올 줄이야. 문지기의 인생에서 이런 기쁜 일은 없을 겁니다.”

한 장년의 남성이 눈물을 글썽이며 몸을 들썩이자 바닥마저 흔들렸다.

정중한 말투와 달리 몸집이 무슨.

“…혹시 이 양반도 영수 혼혈이야?”

“아닙니다, 사장님. 그저 흔한 외공의 고수일 뿐입니다.”

“흔…해?”

전혀 흔하지 않을 것 같다. 대략 10척(3미터)의 신장을 자랑하는 거인이 어찌 흔하단 말인가.

“외공의 특성입니다. 경지가 깊어질수록 신장과 뼈 등이 크고 우람해지지요. 아마 저 장년인은 절정급 외공 고수일 겁니다. 엄청나군요. 저러한 고수가 겨우 문지기일 뿐이라니….”

“허허, 고수는 무슨. 신도님들에 비하면 저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만마전의 마인들에 비하며 자신을 별것도 아니라 폄하하는 장년 남성이었으나, 일순 그의 우람한 근육이 꿈틀거리며 문을 여는 모습에 여명 일행은 다시금 할 말을 잃었다.

“흐읍!!”

콰드득!

대략 성인 남성의 허벅지만 한 밧줄을 있는 힘껏 잡아당길 때마다 땅이 지진이 난 것처럼 들썩이더니, 곧 땅바닥에서 무언가가 솟구치며 두더지처럼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건….

“계, 계단?”

“후우! 이 장 모가 잡고 있는 동안 들어가시면 됩니다. 한 시진은 버틸 터이니 부디 안심하고 들어가시길!”

“…….”

여명은 저 양반이 잡은 밧줄과 이 계단의 통로 자체를 떠받드는 그의 괴력을 마주하며 마냥 할 말을 잃었고. 문득 알 것 같았다.

‘왜 최강인 줄 알겠네.’

마교는 정말 (물리적)최강이 맞다고.

* * *

계단으로 내려가는 순간 공기가 달라졌다.

나쁜 의미로 달라진 게 아니었다.

지하로 내려가게 되면 공기가 텁텁하고 먼지도 가득하며. 여러 부정적인 영향이 오리라 여겼는데, 그러긴커녕.

‘공기가, 달다?’

숨을 쉬는 게 이토록 달콤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숨을 들이켜는 게 행복했다.

“기, 기가 이토록 충만하다니, 대, 대단합니다!”

북궁린은 천산도 기가 풍부한 환경이긴 하지만. 여기에 경우는 천산의 기보다 약 세 배가량 많다고 단언했다.

무림인도 그렇지만, 일반인에게도 이상적인 환경이 아닐 수 없다며 감탄하는 그녀였고. 여명은 자신이 별천지에 온 것만 같은 느낌 아닌 느낌마저 받았다.

“지하로 들어온 건데도 밝네.”

“월.”

“위?”

위를 보라는 설기의 말에 넓은 천장을 보니 어둠 속을 자잘하게 비추는 별과 같은 것이 있었다.

저건 무엇일까?

“월월.”

“저. 저게 다 보석이라고!?”

“왈!”

“세상에…!”

여명은 입을 떡 하니 벌렸다.

별의 바다와 같은 은하수처럼 펼쳐진 저 빛들이 전부 다 보석이란 사실에 기함하고. 저 보석들이 풍부한 기의 영향으로 자연발광하며 이러한 신비한 광경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두 번 감탄한다.

“매장량이 대체 얼마나 되는지 가늠이 안 가네, 이거.”

“월.”

설기도 추산 불가라며 흘흘 웃었고. 저토록 많은 보석을 보고 있으니 현실감이 들지 않아 도리어 욕심조차 들지 않는 여명이었다.

그렇게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부터 놀라 지칠 것 같을 와중.

“사장님, 앞에.”

“…?”

자동반사적으로 시선을 앞에 두니, 여명은 몇몇 무리가 자신들 앞을 막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이 앞부터는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소교주님.”

“…월.”

귀찮은 녀석들이 왔다며 혀를 차는 설기였고. 여명은 슬쩍 물었다.

“누구야?”

“소교주의 충실한 종이라고 여기시면 됩니다, 식선.”

그의 작은 목소리를 들었는지 빠릿한 자세로 답변하는 그들은 마치 군인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소마(小魔) 일호라고 불러주십시오.”

“…여기 개성적인 인간들 겁나 많네.”

이제 어떤 사람이 등장할지 조금 궁금해지기까지 하는 여명이었다.

………

………

소마들은 이른바 만마전의 병사이자 하인으로서, 아직 정식 마인으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하나같이 일류 무인으로 구성된 정예집단이었다.

훗날 흑원신교를 이끌어나갈 마도의 젊은 후기지수들이기도 했고.

그리고 이러한 칭호를 가진 이들답게 오만하기 그지없으며. 웬만한 교인들과 겸상도 하지 않는 그들이었으나, 지금만큼은 긴장감을 유지하고 호흡을 조절해야만 했다.

약 1년 만에 돌아온 백천주교 때문에 이토록 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이토록 긴장하는 다름 아닌.

“있잖아.”

움찔!!

“얼마나 더 가야 해?”

“조,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약 일각 정도면….”

“그래, 음, 그럼 이 주변을 좀 구경해도 될까. 좀 더 보고 싶은데.”

“…식선께서 원하신다면.”

“고마워.”

연신 다정한 낯을 유지하는 식선의 발언에도 그들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반대로 식선은 그런 그들이 이상한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쟤들 왜 저래?”

“월?”

식선과 백천주교께서 자신들만의 대화로 바빠지며 그들에게 관심을 한결 떨어트리니 드디어 소마들은 답답했던 숨을 크게 쉴 수 있었다.

‘천외(天外) 등급을 모시려니 피가 마르는 기분이구나.’

흑원신교로 찾아오는 객들에겐 각각 등급이 매겨지며. 총 십 단위로 나뉘는데, 이중 대표적으로 마교에게 위험시되는 등급은 칠(七)급이라 할 수 있었다.

대략 사파의 지존 패군이나 곤륜의 장문인 태허일검과 같은 절대고수들이 칠급에 해당된다고 보면 되었다.

허나 그런 고수들조차 칠급 이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신교의 자부심이자, 그들의 강함을 증명해주는 지표이리라.

하지만 십(十)급부터는 얘기가 달랐다.

팔급과 구급은 어떻게든 신교가 총력을 기울이며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십급부터는 신교의 모든 저력을 기울여도 절대 감당하지 못할 존재란 의미였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그들을 천외. 하늘에서 벗어난 자들이라 했다.

대표적으로 십급에 위치한 이들은 위대한 만물의 주인 ‘영수’가 있었으며. 이는 즉 인간 따위가 십급으로 분류될 일은 절대 없다는 의미였으나….

‘그 절대불변의 상식이 깨졌지.’

지난 1년, 영수가 아님에도 천외로 부류된 인물이 있었으니! 즉, 인간이 최초로 신교에게 영수와 동급 판정을 받은 괴물이란 뜻이었다.

‘천산식선 이 사부(師傅).’

무려 천산의 은거자들에게 사부의 별호를 받으며. 무수한 황족들의 비호를 받고. 그 백룡성마저 그에게 빚이 있다고 하는 거물.

자칫 잘못 건드리면 흑원신교는 정파 무림만이 아니라, 황족에게마저 공분을 살 수도 있는 노릇이기에 결코 잘못 건드려선 안 되는 거물이 다름 아닌 그였음이다.

그러니 아무리 오만한 소마들일지라도 긴장감이 드는 게 당연했고. 혹시라도 그의 기분을 거슬리게 하는 건 아닐까 하며 긴장감이 들 따름이었다.

그때.

“소마 일호라고 했나?”

“부, 부르셨습니까!”

“…군인처럼 그렇게 반응 안 해도 돼. 그보다 일(一)호라고 하는 거 보면 네가 대장인가 보지?”

“지, 직책상 제가 최고 서열에 위치해 있긴 합니다.”

“그렇구나. 그럼 이거 너한테 줄 테니까 네 밑에 사람들한테 잘 분배해서 줘.”

“…이건?”

“아, 혹시 꿀이나 설탕 같은 거 안 먹으면 먹지 않아도 돼.”

“그, 그런 건 아닙니다만.”

강건한 육체를 키우는 것을 중시하는 문화 탓인지 당분을 멀리하는 이들이 많은 신교였으나, 극단적으로 당분을 멀리하다 병이 나거나 몸져누운 이들이 속출한 적이 있어 당분에 대한 경계심을 한결 낮춘 상태인 그들인지라, 꿀과 설탕에 대한 경계심은 적은바.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구잡이로 먹는 것이 아닌, 적정량을 먹는 자제심은 필수였지만.

“그럼 다행이네. 이게 그러니까, 타락봉밀(駝酪蜂蜜)이라고 할까?”

“타락…봉밀?”

짐승의 젖과 꿀을 섞은 음식이란 의미인 것 같았고. 소마 일호는 조심스레 식선이 건네는 타락봉밀을 챙겼다.

그가 무슨 의도로 이런 걸 준 건지 모르겠으나, 천외 등급 객이 준 것을 함부로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일단, 내가 먼저 먹어 독의 여부를 확인하자.’

소마 일호란 호칭은 모든 소마의 우두머리란 의미.

우두머리로서 책임감을 발휘하며 식선이 건넨 것을 먼저 먹어 위험 여부를 판별하는 소마 일호였다.

그렇게 언뜻 호박(琥珀)처럼 생긴 자그마한 것을 입에 넣는 소마 일호는 순간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크흑!!”

“일호? 왜 그래!”

“호, 혹시 독이라도 있어?”

“…….”

“…일호?”

“??”

뜬금 몸을 가누지 못하는 소마 일호를 보는 소마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소마 일호는 제정신을 차릴 수 없다며 몸을 벌벌 떨었다.

아니, 어찌 이런…!

‘타락, 그 이름대로 사람을 타락(墮落)시키는 맛이로다!’

소마 일호는 저도 모르게 행복한 미소가 그려지려는 자신의 입매를 부여잡으며 가까스로 이성을 유지해야만 했다.

“캐러멜이 입맛에 안 맞나?”

여명은 제법 자신작이라고 생각한 밀크캐러멜이 저들의 입에 맞지 않는 건가 싶어 볼을 긁적였다.

처리하기 골치 아픈 선물을 준 게 아닐까 하고.

“월….”

“아, 역시 골치 아픈 선물이 맞구나.”

“월월.”

설기는 말했다. ‘주인이 아주 나쁜 선물을 준 게 맞다’고.

그도 그럴 게.

“왈.”

이제 저놈은 주인 음식 없이 못 사는 놈이 될 테니 말이다.

설기는 고개를 저었다.

일평생 삶은 닭 가슴살만 먹던 놈이 치즈 가루 뿌린 치킨 맛을 안 격인데, 어찌 끊을까 하고.

때론 선의의 행위가 누군가를 타락시키는 행위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시였다.

tmi후기.

-현재 소마들의 상황을 적절히 알려주자면 이등병부터 상병급 병사들이 몰래 내한한 미국 국방부 장관을 모시는 격이라고 보면 된다.

-입 한번 잘못 놀리면 영창이 문제가 아니라, 사형당할 판이니 긴장하는 건 당연하다.

-설기와 밤톨이의 지위는 주교라고 하지만. 사단장 아들 느낌이기 때문에 소마들의 긴장도 조금은 낮은 편이다.

-참고로 과거 만마동은 산 위에 있었지만. 흑원과 백모의 잦은 부부싸움 때문에 지하로 만마동을 옮기게 되었다.

-또한 만마동을 지을 초거대 땅굴을 판 것은 소마들이었다.

-현대의 소마들은 피라미드를 본 사람처럼 ‘이걸 인간이 지었다고?’ 의심하는 상황이며. 지저도시를 만들어라 시킨 그 당시 천마도 ‘이게 되네?’라며 놀랐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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