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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와요 무림식당-213화 (213/261)

213-취중진담(醉中眞談), 삼자담화(三者談話).(2)

“흑천과 금천, 이 두 개의 하늘께선 절대로 식선을 조롱할 의도가 아니었음을 다시금 말하는 바입니다. 그러니 부디 노기를 가라앉히시길.”

흑의여인, 사마윤윤이 고개를 조아리며 여명에게 사과하며 연신 식은땀을 흘렸다.

만약 그가 이대로 오해하게 놔둔다면 그땐 성화고 뭐고 없이, 일을 그르칠 수도 있는 노릇이기에.

그런 사마윤윤의 필사적인 사죄 덕분일까. 여전히 싸늘한 낯이었으나, 여명은 변명할 기회를 주었다.

“만약 나를, 그리고 내 소중한 직원을 조롱할 생각으로 부른 거라면 각오하는 게 좋을 겁니다. 나도 선호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내가 가진 힘과 인맥을 활용하지 못할 정도로 내가 머저리는 아니니까.”

“기, 기억하겠습니다….”

저토록 경고하지 않더라도 이미 잘 안다.

사마윤윤은 식선의 뒤편에 자리 잡은 노인들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삼존과 산왕, 거기다 곤륜의 자운이 겨우 그를 호위하려고 여기까지 따라왔다니.’

삼국의 시대가 열리기 전 황제라 칭하던 오만한 자들도 저러한 거물들을 호위로 거느리진 못했으리라.

허나 정말 문제는.

‘저 노괴들이 끝이 아니란 것이지.’

교의 첩보부대인 뇌마동에서 들은 정보가 정확하다면 지금 저 뇌괴들조차 식선이 가진 지인 중 몇몇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사실이 오싹하다 못해 소름이 돋는 사마윤윤이었는데, 가장 소름이 돋는 것은.

‘끝이 안 보여….’

기환학사로 이제야 발돋움한 그녀는 어설프게나 기력을 느끼는 단계였지만. 신교의 기환학사인 마선오괴에게 직접 사사받는 제자이기에 나름 눈이 높은 편이었고. 눈이 높은 만큼 식선이란 인물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인간인지 깨달아갔다.

‘스승님들보다, 아니 어쩌면….’

신성하고도 위대한 존재. 영수에 근접하는 기력이 아닐 수 없다며 그녀는 몸을 떨었다.

전설적인 기환학사인 자허가 장강의 물줄기를 뒤집었다는 얘기가 있듯. 식선이 나쁜 마음을 먹고 십만대산을 무너뜨리고자 하면 얼마든지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식선 자체만으로도 괴물이구나.’

사마윤윤은 천하가 넓음을 깨달으며 최선을 다해 입을 털어갔다.

어떻게든 괴물의 상한 기분을 풀어주기 위하여.

* * *

“나도 대신 사과할게. 설마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백설 님이 사과할 건 아니죠.”

지저(地底)에선 시간조차 가늠하기 어려우리라 여겼지만. 예측과 달리 낮에는 은하수처럼 빛나던 보석이 이제는 그 빛의 세기가 줄어드는 것으로 지저도시에는 밤이 찾아왔고. 단백설이 속한 마전으로 오니 그들은 웅대한 대접을 받으며 저녁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돌연 사과를 건네는 단백설이었고. 여명은 그녀가 사과할 일이 아니라며 고개를 저을 따름이었다.

“그래도….”

“됐어요, 정말. 잘못은 저것들이 한 건데. 쟤들이 사과해야죠.”

“으음, 그것도 그러네.”

슬쩍 단백설은 시선을 돌리자 한편에서 발이 후들거리는지 밥도 제대로 못 먹는 두 마리의 강아지를 보았다.

“크릉!”

“커엉….”

여전히 여명에게 엉덩이를 맞은 것이 억울하고 수치스러운지 분해하는 흑천이었고. 반대로 금천은 이토록 혼난 것이 처음인지 침울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긴 교주의 핏줄로 태어난 신성한 혈족이 다름 아닌 그들일진대, 아무리 잘못한 게 있더라도 누가 과연 저들을 혼낼 수 있으랴.

십칠마종조차 주교보다 강인한 권력이 있을지라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게 교에선 상식과도 같은 것이거늘.

‘교의 상식을 가차 없이 깨버리는구나.’

그야말로 논외(論外). 천외의 등급을 받은 객이란 게 실감이 나는 바였다.

“…백 살만 적었으면 노려보는 건데, 아쉽네.”

“월!”

“흥, 원래 좋은 남자를 노리는 건 좋은 여자의 특권인 법이야.”

“……왈.”

뜬금 투닥거리는 설기와 단백설을 놔두고 여명은 가볍게 식후 차를 마셨다.

뭐 때문에 저리 싸우는지, 원….

“어, 이거 뭐야? 향도 향인데 맛도 깊네?”

“워, 원하신다면 백목철관음을 챙겨드리겠습니다.”

“…어쩐지 이름부터 그냥 철관음은 아닌 것 같은데, 귀한 거예요?”

“벼, 별거 아닙니다. 그저 일반 철관음과 다르게 찻잎을 키우려면 3년 이상 걸리는 차입니다. 황금 1관과 가격이 비슷하다고 하지요.”

“…참 별거 아니네요.”

반대의 의미로.

여명은 저런 귀한 걸 염치없이 챙길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고. 그냥 지금 마시는 것으로 만족했다.

대신.

“그만 좀 떨어요. 지진 나겠네.”

“아, 알겠습니다.”

조금 전부터 겁먹은 토끼처럼 울상을 짓는 그녀에게 “그만 좀 떨어”라고 부탁했고. 그런 부탁에 사마윤윤은 여전히 군기가 잔뜩 들어간 군인처럼 뻣뻣하게 답했다.

“하아….”

“!”

“…한숨도 제대로 못 쉬겠네.”

여명은 그녀의 반응에 혀를 절레절레 저으며 떨떠름해하였다.

어쩐지 자신이 나쁜 놈이 된 것 같은지라.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사장님. 저들은 결국 사장님을 만만하게 대한 이들입니다. 오히려 크게 노하셔도 상관없을 터.”

“…부, 북궁 소저. 낮에도 말씀했다시피 오해입니다.”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소저…….”

착하다 못해 무림판 백의선녀(白衣仙女)의 모범인 북궁린에게 저토록 미움을 받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단단히 밉보인 사마윤윤은 억울한 듯 토로했고. 북궁린은 새초롬한 표정을 지은 채 ‘흥!’ 소리를 내었다.

‘얘가 그래도 많이 화난 건 아닌 모양이네.’

만약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면 북궁린은 대답조차 하지 않았을 터.

지금의 투정 또한 어찌 보면 불만의 표시일 뿐, 아마 약간의 심술을 내는 걸 거다.

‘확실히 마냥 욕하기도 뭐한 상황이 맞으니까.’

후르륵.

여명은 철관음을 홀짝이며 사마윤윤의 변명을 회상했다.

-북해빙궁과 신교는 대략 반년 전부터 교류를 시작했습니다. 정확히는 신교에게 빙궁이 일방적으로 매달리는 상황이라고 보면 됩니다.

-북해가 그럴 리가 없습니다!

-확실히 북해가 폐쇄적인 곳이지요. 하지만 이번 대 궁주는 신교의 지배하에 들어가길 원했고. 이는 지극히 진실만을 말하고 있다 단언하겠습니다.

-그, 그럴 수가….

북궁린은 크게 놀라다 못해 믿기 힘들다며 몸을 휘청거렸다.

마교와 교류한다는 것만으로도 아찔한데, 한술 더 떠서 매달리는 상황이란 것에 현기증을 느낀다는 것처럼.

여명이 그녀를 걱정하며 무어라 하기 전 북궁린은 진노하며 한 사람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북궁제…! 그 망할 자가 기어이-!

원한이 서린 그녀가 재촉하듯 사마윤윤에게 강렬한 시선을 주자, 사마윤윤은 몸을 움찔거리면서도 말을 이어갔다.

-…계속 말을 잇자면 북해궁주가 이곳에 있는 것은 우연에 불과하며, 저희는 딱히 북궁 소저에게 무례를 끼치려는 의도로 그를 부르거나 한 게 아니란 겁니다.

-그런데 왜 언질 한번 주지 않았지요.

-그건….

-흥, 알 만합니다. 만약 북궁제 그자가 마교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사장님이 오지 않으리라 생각한 거군요.

-……맞습니다.

-그것이 농락이란 겁니다!

북궁린은 마교의 교인 앞에서 대놓고 마교란 호칭마저 쓰며 사마윤윤에게 언성을 높였다.

결국 그들은 여명이 오지 않을까 싶어서, 북궁린과 현 북해궁주 사이에 원한을 알고 있음에도 숨긴 것이었다.

이것이 어찌 농락이 아닐 수 있으랴.

-…그 건에 대해선 할 말이 없습니다.

-크릉.

-흐, 흑천?!

고개를 숙이려는 사마윤윤에게 흑천은 고개를 조아리지 말라고 했다. 결국 이 모든 사태를 허용한 것은 자신이라며, 화를 낼 거라면 자신한테 내라는 듯.

-크릉.

-월.

설기는 그런 흑천에게 어디서 개수작이냐며 언성을 높였다.

그도 그럴 게.

-넌 손, 아니 앞발 들고 있어야지.

-……크릉.

차라리 엉덩이를 맞는 건 잠시뿐이지, 이토록 앞발을 들고 서 있는 건 수치라며 ‘본좌에게 감히…!’ 라는 소리만 치고야 마는 흑천이었다.

-커엉.

‘형, 어서와.’ 하며 같이 앞발을 든 두 형제 견은 이상하게 여명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고 순순히 벌을 받았고. 사마윤윤의 안색은 더욱 창백해져만 갔다.

그리고 현재.

“-용서한 건 아니야. 아무리 어떤 사정과 목적이 있었다고 해도. 거짓으로 사람을 기만한 건 불쾌한 거니까.”

“……네에.”

“이것만 기억해. 난 오늘부로 이 마도라는 단체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는 걸. 그걸로 용서해줄게.”

“…차라리 때리고 욕을 해주시면 안 될까요?”

신의(信義).

이것만큼 무림에서, 아니 삼국에서 중대한 힘이 어디 있을까.

개인의 힘이 강한 절대고수라 할지라도 신의를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중원삼국에서 신의란 절대적인 것이었다.

한데 지금, 다른 누구도 아닌 식선이 신교에게 신의를 잃었다고 하니 사마윤윤은 울고 싶어질 따름이었다.

‘흑천이시여….’

흑천이 괜한 반발로 북궁린과 북궁제를 언급한 것이 이렇게 비수로 돌아오니 조금의 원망마저 들 따름인 사마윤윤이었다.

“…크릉.”

그제야 심각한 분위기를 감지한 흑천도 어쩐지 침울한 기색이었다.

타인이 자신을 원망하고 신의가 무너지는 일이야 몇 번 있었지만. 이상하게 식선이 그들에게 실망의 시선을 주니 흑천은 가슴이 저몄고. 심장마저 철렁였다.

마치 무어랄까.

“끼잉….”

“…….”

조막만 한 막내의 말대로 왠지 얼굴도 본 적이 없는 ‘엄마’란 존재에게 버림받은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침울한 기색이 역력해진 두 강아지가 우울한 분위기를 내고 있자, 그것이 신경 쓰였음일까.

설기는….

“푸훗…!”

낄낄대며 웃기 시작했다.

형제가 서글픔에 젖어 있는 게 아주 즐겁다며 웃는 모습이 마치 소악마처럼 보일 따름이었고. 흑천은 분기 어린 기색으로 설기를 노려보았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기는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모습을 본 것처럼 즐거워했고. 스마트폰이 있다면 당장 저 모습을 찍어 평생 저장하고 싶다며 말하였다.

“…네가 제일 나빠, 이것아.”

여명은 설기의 사탄도 울고 갈 행동에 다른 놈들보다 네가 제일 질이 안 좋다며 기어이 한 소리를 하고야 말았다.

* * *

“하아….”

두 명의 주교가 돌아가고. 단백설의 마전은 이제 완연한 밤이 찾아온 듯 고즈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침실도 사장님이 주시는 침구류보다 못하지만, 충분히 상질의 침구류인지라 잠도 잘 올 테지만. 이상하게 북궁린은 잠이 들지 못하고 마전 한구석에 마련된 연못 근처에 몸을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면 안 될 터인데.’

“…분하구나.”

까득…!

지금 마교에 북궁제가 있다는 사실에 북궁린은 당장이라도 그자를 찾아가 목을 분지르고 싶었다!

북궁제는 그녀와 불구대천의 원수.

같은 하늘 아래 살아 숨 쉬는 것만으로도 인정할 수 없는 자가 다름 아닌 그였고. 북궁린은 금방이라도 원수를 갚으려 뛰쳐나가고 싶은 본능을 애써 억눌렀다.

지금 자신이 찾아가서 싸워봐야 그것은 난초와 같은 결말을 맞이할 것임을 알기에.

‘내 목이 도리어 잘릴 터.’

상대는 북해제일인이라 불리는 북궁제였다.

아무리 그녀가 지난 1년간 급격히 강해졌다고 한들, 그와 자신 사이에는 결코 메울 수 없는 격차가 있었음이다.

…물론, 그 격차를 메울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사장님에게 말한다면 기꺼이 도와주시겠죠.’

그러나 이는 절·대 언급해서도 안 될 일이다.

자고로 무림에서 복수행(復讎行)은 오로지 개인의 힘만으로 완성해야 하는 것이 암묵적인 약속이자 의무였으니…!

타인의 힘을 빌린다는 것 자체가 복수행 자체를 부정하고. 무림인으로서의 인생을 끝낸다는 선언과도 마찬가지였으니, 이는 북해를 다시금 되찾고 싶은 북궁린에게 있어 금기와 같은 행위일 따름이다.

그러니.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 했습니다.’

군자보구 십년불만(君子報仇 十年不晩).

북궁린은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참을성과, 사장님과 함께하며. 수많은 기연이 넘쳐나는 천산에서 다가올 성장의 시간을 계산했고. 10년이 아닌 5년만 더 수련에 박차를 가한다면 북궁제와 싸우는 것도 멀지 않은 일이라 직감했다.

허니 지금은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할 때이다.

그러나

“…후우!”

“참기 힘들구나.”

“!!??!”

북궁린은 기겁하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거기에는.

“린이, 너도 참 답답하다.”

“월.”

“……사장님, 설기님.”

따스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봐주는 두 가족이 있었음이었다.

tmi후기.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여명은 방대한 기력 덕분에 영물이나 영수에게 친근감을 얻기 쉽다.

-흑천과 밤톨이가 여명에게 혼이 나도 이렇게 얌전한 이유도 여명에게 엄마를 보는 것 같은 친근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설기를 비롯하여 주교들에겐 친모라는 존재가 없고. 오직 아비밖에 없는데, 이유는 다름 아닌 아비 혼자서 아이들을 낳기 때문이다.

-교주로 임명되는 순간 자가생식능력이 생긴다고 보면 된다. 참고로 알을 낳는다.

-피콜로 같은 존재라고 보면 된다.

-174화 tmi에도 언급된 무봉일패와 같은 자웅동체는 아니지만. 자식을 낳을 때만 딱 한 번 알을 낳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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