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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와요 무림식당-214화 (214/261)

214-취중진담(醉中眞談), 삼자담화(三者談話).(3)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월.”

북궁린의 성격을 잘 안다고 자부하기에 그녀가 청승을 떨고 있을 거라 예상을 했고. 아니나 다를까.

‘얘도 사서 고생하는 타입이라니까.’

아닌 밤중에 저토록 멍하니 있는 게 안쓰럽게 보일 지경이었다.

여명은 직원 케어 차원에서 그녀의 옆자리에 앉으며.

“린이 넌 머리는 좋은데 가끔 보면 안 좋은 것 같기도 해.”

“사, 사장님.”

북궁린은 열이 오를 대로 오른 머리를 식혀주듯 머리를 토닥거리는 여명의 손길에 눈을 끔뻑였다.

다른 이가 자신의 머리를 건드린다면 불쾌한 것을 넘어 죽이고 싶겠지만. 사장님이 이토록 다정하게 토닥여주니 북궁린은 쑥스러운 것도 쑥스러운 거지만. 기분이 몹시 상기되어 갔다.

특히 그의 손길이 닿을 때면 이상하게 머리의 열기가 점차 식어가며 상쾌함마저 주었다.

“…사장님의 손은, 마치 약손 같습니다.”

“기력을 불어넣었으니까.”

“그,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닌데….”

“하하, 알아.”

“……짓궂으십니다.”

“그럼, 그만할까?”

“…조금만 더 해주시면, 조, 좋을 것 같습니다.”

북궁린은 퉁명스러운 티를 내면서도 그가 주는 손길을 포기할 수 없는지 부끄럽게 부탁했고. 여명은 답변 없이 마냥 한참을 그녀의 열을 식혀주었다.

소중한 그의 직원이 만족할 때까지 말이다.

* * *

지저도시, 만마전의 밤하늘을 신비롭기까지 한 것이었다.

풍부한 지하의 기운은 아침에는 양기(陽氣)가 넘쳐 밝게 빛나고. 반대로 밤에는 음기(陰氣)가 강하기에 빛의 세기가 약해지는 원리.

하지만 빛의 세기가 약해졌다고 해서 그 아름다움이 퇴색되는 게 아니라는 것처럼 만마전의 빛은 어느 순간 한 점으로 모이며 무언가를 형성했다.

화아악.

신월(新月).

보석의 빛들이 한 점으로 모임으로 형성된 초승달이 은은하게 빛나며 지저도시의 천장을 빛내주었다.

일반적으로 가능할 리 없는, 자연의 상식에서 벗어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진법 같은 거네.’

허나 기환학사의 눈에는 보였다.

초승달이 만들어지는 흐름과 원리가.

만마전에 거주한다는 기환학사가 만든 진법이 아닐까 예측이 되었고. 보석이 가진 기운을 인위적으로 모아 형성한 것이리라.

“…누군지 모르지만. 운치 있는 양반일세.”

“월?”

“혼잣말이야. 그보다 린아 내 손 이제 놓아주면 안 될까.”

“싫습니다.”

“…….”

단호한 것이 식칼보다 더 날카로운 것 같다.

여명은 자신의 손을 캣잎처럼 대하며 애지중지하는 그녀를 보며 허허롭게 웃었다.

그녀가 이렇게 투정 부리는 모습을 처음 본 것도 있지만. 왠지 모르게 이런 모습이 반가운지라.

‘너무 어른스러웠지.’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지만. 나이에 맞지 않게 너무 똑 부러지고. 남의 눈치를 얼마나 보는지 안쓰러울 지경이었던 북궁린이다.

한데 그런 북궁린이 이토록 무언가를 원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도리어 반갑게 느껴지는 건 이상한 게 아닐 것이다.

오히려 더할 나위 없게 기쁜 일이었지.

“그치?”

“월.”

설기는 저 한마디만으로도 여명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 알았다. 척하면 척이라고. 수십 년 같이 산 부부보다 마음이 더 잘 통하는 여명과 설기였다.

그때.

“…이제 좀 괜찮아진 것 같습니다.”

한결 맑아진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는 북궁린이 나지막하지만, 고른 목소리를 읊조렸다.

30분 전만 해도 불안증세가 엿보이던 것이 완전히 없어진 그녀는 은혜를 입었다는 것처럼 촉촉해진 눈망울로 여명과 설기를 보았다.

“두 분을 만난 것은 제게 있어 인생 최고의 행운임이 틀림없을 겁니다.”

“뭘 그렇게까지….”

“머엉.”

“푸웃.”

오버하지 말라는 설기였고. 작게 웃음이 터진 그녀는 입을 가리고 어깨를 들썩였다.

싱그럽게 피어나는 눈웃음 사이에 보이는 푸른 눈이 마치 작은 네모필라를 연상시켰다.

“꽃말이, 가족에 대한 배려심이었나….”

“네에?”

“…이것도 혼잣말이야.”

웃는 게 마치 꽃을 연상시킨다는 표현을 여자한테 하는 건 왠지 작업 멘트 같았기에 여명은 고개를 저었다.

앞길 창창한 애한테 무슨 오해를 심을라.

“월월….”

설기는 여명의 생각을 또다시 미리 읽은 것인지 답답한 듯 고개를 저었다.

하여튼 융통성이 없다며.

“사장님, 설기님. 혹, 제 얘기를 좀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얘기?”

“예에. 제 개인적인 얘기입니다.”

갑작스러운 물음이었고. 여명과 설기는 잠시 서로를 마주 보며 눈을 깜빡였다.

지금껏 그들은 그다지 과거 얘기를 하지 않았다.

서로를 불쾌해하지 않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으나, 서로가 숨기고 싶은 비밀 한두 개쯤은 있을 법도 했으니.

한데 이토록 먼저 그녀가 다가와 주니 왜 이리 고마운 걸까. 여명과 설기는 단박에 답했다.

“……밤을 새우더라도 들어줄게.”

“월!”

“후후, 그렇게 긴 얘기는 아닐 겁니다.”

………

………

북해(北海).

사시사철 눈이 내리며, 얼음으로 뒤덮인 천혜의 빙벽이 인상적인 세상.

그리고 북궁린에게 있어 단순히 차가울 뿐인 눈과 빙벽, 그리고 거대한 북해의 호수는 세상의 모든 것이라 할 만했다.

“천하가 넓은지를 모르고. 마냥 좁은 세상을 모든 것이라 여겼지요. 그야말로 정중지와(井中之蛙)라 할 만하지요.”

우물 안 개구리.

당시의 그녀는 그러했으며. 언젠가 자신의 천하(세상)나 마찬가지인 북해를 다스릴 후계자가 되리라 확신했다.

하지만….

“아니었지요. 저는 얼마든지 대체 가능한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북해는 마교 못지않게 강자존을 숭배하는 집단이며. 강자가 아니면 따르지 않는다는 의미도 되었고. 핏줄 따위로 정해지는 것이 아닌 개인의 강함만이 모든 것이었다.

그리고….

“저는 오만함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기억한다.

북궁제, 그자가 자신의 수하들을 이끌고 궁으로 쳐들어왔을 때를.

-궁주, 소궁주. 그 자리에서 내려오시오. 그곳은 오로지 북해제일(北海第一)만이 앉을 자격이 있으니!

북궁 씨의 핏줄을 이은 친척이었으며. 무공에 대한 재능이 천부적이라 전해지던 남자.

음기 계열이 북해 비전의 빙공을 남자의 몸으로 극성으로 익히는 기염을 토해내며, 기어이 자신의 어미를 꺾은 남자.

“어머니는 패하셨습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요. 그분은 북해제일이었고. 그분을 꺾을 자는 누구도 없다 여겼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 생사결(生死決)은 그 누구의 간섭도 없는 정당한 결투였으며. 그 패배를 어머니도 겸허히 받아들였습니다.”

애초에 생사결이었음에도 북궁제가 어미의 목숨을 살려준 것 자체가 하나의 자비임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얼마 가지 않아 밝혀진 것이 있었다.

-북궁제…! 네놈! 빙공뿐만 아니라, 마공 또한 익혔구나…!!

-그것이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어쩌자고 북해의 순수성을 더럽힌다 말이더냐!

어미를 패퇴시킨 남자가 사실은 마공을 익혔다는 것. 그리고 북해의 절대규율인 타 문파의 무공을 익혀서는 안 된다는 규율을 어긴 북궁제는 북해빙궁주가 될 자격이 없었음이다.

이 때문에 어머니는 분노했다.

무림인으로서 패배한 것은 겸허히 받아들일 일이지만. 북해빙궁의 전통과 규율을 어긴 자가 빙궁주가 되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으니…!

하지만.

-그것은 패자의 변명일 뿐입니다. 강해지자고 하면 무엇이든 해야 하는 것이 무림의 법도이니! 또한, 당신은 이미 내게 패배했고. 빙궁의 무공은 시대에 뒤처졌다는 걸 증명하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그러니…, ‘퇴물’은 이제 사라져야겠지요.

-!??!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북궁제가 저희 모녀를 살려둔 이유는 마공을 익힌 혐의를 저희에게 덮어씌우기 위해서임을. 그리고 저희 모녀는….”

-가거라, 린아!

-어머니!!

-이 어미를 밟고 가거라. 북해 무공의 시작은 엽사(獵師)에서 시작된바. 철저한 엽사가 되어 사냥하거라. 설사 그것이 부모의 시체를 밟는 것일지라도.

-아아아….

-울지 말거라. 이 어미는 죽지 않는다. 그러니 살아라.

-……예에.

-다시 만나자꾸나.

그것이 그녀와 어미의 마지막이었다.

자신을 빙궁에서 빼내 주며 곤륜에게 도움을 청하라는 말을 끝으로.

이후 어미의 생사는 불명.

북궁린은 북궁제가 보내는 추격자들을 피해 가까스로 천산까지 도착하였고, 그 이후에는….

“사장님에게 은혜를 받고. 현재가 될 수 있었습니다.”

“…….”

“후후, 정말 별것 없는, 흔해 빠진 얘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흔하긴 무슨.”

…여명은 차라리 그녀에게 울라고 말하고 싶었다.

………

………

확실히 긴 얘기는 아니었다.

다만 그렇다고 하여, 그 짧은 얘기가 가진 ‘한(恨)’만큼은 도저히 가벼운 게 아닐 테지만.

“…음.”

여명은 뭐라 말을 잇기가 힘들었다.

“아버지는…, 없으셔?”

“아버지께선 제가 어릴 적에 돌아가셨습니다. 아, 참고로 전혀 슬프게 돌아가신 게 아닙니다. 워낙 나이가 많으셨던 분인지라, 천수를 누리고 가신 경우지요.”

“그, 그래?”

“예에, 어머니와 나이가 반갑자 정도 차이가 나셨습니다.”

“…그 정도면 손녀뻘 아닌가.”

“북해에서 자식을 늦게 보는 경우는 많으니 말입니다.”

“무, 문화의 차이라고 생각할게.”

여명은 평소처럼 대화를 나누면서도 여전히 그녀에게 무어라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살았는지, 혹은 죽었는지도 모르는 친모.

그리고 같은 하늘 아래를 살아갈 수 없는 원수.

북해의 정당한 후계자로서 그를 꺾어야만 하는 사명.

이 중 한 가지 사항만 해도 보통 사람은 견딜 수 없는 부분이거늘, 그녀는 그것을 지금껏 티 내지 않으며 항상 밝고도 순수한 면모만을 보여주었다.

여명은 그녀가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하네, 정말.”

“왈….”

여명과 설기는 북궁린이 대단하다고 여겼다.

스물의 나이.

한국이었으면 이제 막 성인이 되었을 나이이며. 아직 학생 티를 벗어나지 못한…. 성인이라고 하지만 아직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미성숙하여 학부모의 보호가 필요한 나이가 아닐 수 없다.

한데 그녀는 그러한 미성숙함을 전혀 티 내지 않으며. 도리어 서글프게 맺힌 한을 감당했다.

저 연약해 보이는 어깨로.

대견한 것을 넘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따름이었고. 여명과 설기는 그녀를 위로해주지 않기로 했다.

위로란 것은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기에 하는 입바른 말이지만. 그녀에게 그런 입바른 말은 필요 없을 테니까.

하지만.

“린이 네가 너무 대단해서 내가 무어라 할 말이 없네.”

“아, 아닙니다. 저와 같은 사람이야 무림에 널렸을 터인데.”

“네 말대로 널렸다고 해도 그건 ‘북궁린’이 아니잖아? 그리고 우리한테 너는 대체 불가한 유일한 사람이고. 안 그러냐?”

“월!”

“사, 사장님….”

“그런 의미에서 묻고 싶다. 린아, 혹시 내가 도와줄 게 없어?”

“…….”

“이래 봬도. 네 사장님이 능력이 있어.”

“사장님….”

여명이 무슨 뜻으로 저리 말하는지 알기에 북궁린은 나지막이 그를 불렀다.

북궁린은 그가 몹시도 다정한 인물인 것을 안다.

그런 만큼 북궁린의 사정을 듣고 몸이 달아올라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것이리라.

‘감사하신 분.’

천산에서 처음 만났을 적부터 현재까지.

그는 자신을 항상 떠받쳐주는 고마운 분이었고. 그녀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신 분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알고 계십니까. 제가 지금 이토록 버틸 수 있는 버팀목이자, 삶의 이유는 당신이란 걸.’

북궁린은 지금은 고백하지 못하는 속내를 애써 숨기며 울컥거리는 심경을 참았다.

지금 울면 계속 기대기만 할 테니.

그러니 지금 그녀가 내뱉을 말을 이거였다.

“…마음은 감사하지만. 이것은 오로지 제힘으로 해내야만 할 일입니다. 그러니, 마음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여명은 저리 말할 줄 내리 짐작하고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듣게 되니 괜히 입안이 씁쓸했다.

그녀가 좀 더 기대주길 원했는데, 그건 아직 무리였나 싶어.

그러나

“대신, 제가 힘들 때마다 조금 기대게 해주십시오.”

“?”

“전 그것만으로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

다정하기 짝이 없는. 어딘지 쑥스러워 보이는 얼굴로 속마음을 표현하는 북궁린의 진심이 왜 이리 가슴을 간질거리고 뭉클하게 하는지, 원.

여명은 고개를 힘차게 주억거렸다.

“얼마든지, 얼마든지 기대.”

난 언제든 너의 편이 되어줄 테니.

여명은 자신의 진심을 전했고. 북궁린은 여명의 답변에 환하게 웃어 보였다.

저 밤하늘에 뜬 초승달보다 더욱 아름다운 미소를 머금는 그녀였다.

“월.”

“응?”

한창 분위기가 좋은 와중 설기가 대뜸 얼렁뚱땅한 발언을 내뱉었다.

“‘썰 좀 뱉어봐라’라고? 그게 무슨 뜻이야.”

“월월.”

“아아, 그런 뜻이구나.”

설기의 말을 해석하자면 이런 것이었다.

북궁린이 저토록 힘들게 자신의 과거를 모두 말해주었는데, 여명이나 자신도 가슴에 품은 얘기를 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며.

충분히 납득할 만한 얘기였으나, 다른 누구도 아니고 설기가 먼저 이런 발언을 하는 게 참으로 어색했다.

가장 숨기는 게 많은 녀석이 무슨….

‘얘도 오늘은 작정하고 속에 깃든 한 좀 풀려는 모양이네.’

하긴, 타인에게 아픔과 슬픔을 드러내므로 위로를 얻는 것이 사람이니 이상할 일은 아닐 터.

여명은 그렇게 설기의 돌발적인 얘기를 기껍게 여기며 잠시 제 턱을 쓰다듬었다.

“으음, 난 솔직히 린이나 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과거밖에 없어서 별로 할 말이 없긴 한데….”

“월!”

“아니, 진짜 얘기하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야. 진짜 별게 없어서 그래. 있어 봤자 유치원 때 ‘사흘간’ 창고에 갇혀서 굶은 거나. 초등학교 때 잘못 ‘맞아서’ 보름간 의식이 없던 정도?”

“…….”

“으음, 진짜 별것 없는데….”

“……왈.”

‘그게 어떻게 별게 아니냐?’며, 설기는 벙찐 반응을 보였다.

허나 가장 충격적인 건.

“이게 그 정돈가…?”

……여명은 정말 진심으로 별거 아닌 일로 치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tmi후기.

-여명은 분명 자신의 어린 시절이 가혹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지만. 이미 과거의 겪은 악몽 정도로만 생각하기에 덤덤히 얘기하는 중이다.

-다만 그렇다고 하여 여명이 부모와 형제들을 용서했다는 것은 아니며. 그들을 경멸한다.

-또한 여명에게 있어 정말 가혹했던 시절은 다음 편에서 나오기에 부모와 있었던 일을 ‘별거 아니 일’로 치부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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