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서와요 무림식당-218화 (218/261)

218-판이 개판이면, 뒤엎으면 그만(3)

“있을 거 다 있네, 여기도.”

권력자가 곁에 있으니 좋은 점이 있다면 필요한 물건을 부탁만 한다면 알아서 척척 내온다는 점이리라.

또한.

“와아, 이런 게 있다고?”

기대 이상의 물건을 보여 주기에 더욱 좋았다.

여명이 부탁한 것은 맷돌과 나무 채반, 가마솥 이외에 기타 물품이었는데, 단백설은 아예.

“두부 공방(工房)을 줘 버리네.”

“월.”

“그렇지? 이 정도면 두부 백 모는 그냥 나오겠다.”

고전적인 형태의 두부 공방은 여명에게 장난감 코너와도 같았다.

물레방아의 원리로 돌아가는 대형 맷돌과 최상급 숯, 어떤 것으로 만들어졌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비범한 금속으로 제련된 것임이 분명한 가마솥.

그 밖에 나무 주걱과 뜰채, 채반 등등이 하나같이 비범하지 않은 것이 없었고. 여명은 행복한 비명을 질러야 했다.

“흑원국은 삼국 중에서도 가장 귀금속 매장량이 풍부한 곳이지요. 덕분인지 모르지만 웬만한 곳에서 보기 드문 한철이나 묵철, 그리고 금오석(金烏石)과 같은 신비한 것들도 많지요.”

“금오석?”

“태양의 기운을 머금었다는 전해지는 금속입니다. 정말 태양의 기운을 머금었는지는 모르지만, 태양 빛을 쐬어주는 것만으로도 알아서 열이 오른다고 하지요.”

“오오.”

“그 밖에도 이 채반의 경우-.”

여명은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소마 일호의 설명을 들어주었다.

자기 나라의 장점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니.

‘이거 장비 탓을 할 수도 없겠네.’

이런 곳에서 장비 탓을 하는 놈이 있다면, 그놈은 그냥 바보 천치이거나 사기꾼일 게 분명할 것이다.

또 이 말을 해석하자면 바보 천치나 사기꾼이 될 것이 아니면.

“무조건 성공해야겠네.”

원래도 실패할 마음은 없었지만. 더욱 칼을 가는 마음으로 소매를 걷어 올리는 여명이었다.

* * *

여명이 자칫 볼품없을 수도 있는 ‘두부(豆腐)’를 선물로 고른 이유는 흑원국과 잘 맞는 특색의 음식이란 점도 있지만. 단지 그런 심플함이 아니더라도 두부는 충분히 상위(上位) 요리로 취급받아도 손색이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윽! 그으윽!

“두부의 역사는 오래됐어. 서기전 2세기경에 언급되었다는 얘기도 있을 정도니, 그 역사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설명하기 입 아픈 거지.”

“월.”

물에서 잘 불린 대두가 맷돌에서 돌아가며 흥겨운 리듬을 탔고. 설기는 운치를 즐기는 것처럼 대두가 갈리는 소리와 여명의 설명을 자장가 삼아 몸을 뉘었다.

“또 서양에 치즈가 있다면, 동양에는 두부가 있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두부란 건 역사적·상징적 가치를 충분히 지녔다고 할 수 있겠지.”

당장 두부와 치즈를 만드는 방식이 비슷한 면이 있는 것만 보아도 신기한 우연. 혹은 요리의 유사성이란 게 이런 거지 않을까 싶다.

탁탁.

“그리고 치즈가 유럽의 각 지방과 나라마다 만드는 방법과 특색이 다른 것처럼, 동양도 그런 면이 있거든.”

흔히 두부를 대표하는 강자는 중국과 일본, 한국을 꼽으며. 이중 한국의 두부는 한때 중국의 황제조차 극찬하며 칭송받던 경력이 있었으나.

“아쉽게도 시간이 흐르며 여러 이유로 두부 만드는 기술이 많이 유실됐지만.”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으나, 현재도 수많은 사람들이 옛 두부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니 여명은 나름 긍정적으로 보는 중이었다.

“월?”

설기는 여명의 설명을 듣던 중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결국 두부는 두부인데, 뭐 딱히 비법이랄 게 있나?’ 하는 의문이었고. 여명은 쓰게 웃었다.

역시 아무리 설명해도 문외한은 저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며.

그리고 그 역시 입 아프게 수십 번 설명하는 것보다 더욱 확실한 것은.

“두부의 비법이 없다라…. 지금부터 그게 얼마나 틀린 말인지 가르쳐줄게.”

직접 저 몸에 가르쳐주는 편이 훨씬 더 간편할 터.

그으윽!

여명이 간 대두(大豆)는 여명이 직접 키운 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맛과 고소함, 그리고 단백질이 현대보다 훨씬 더 농후한 품질의 대두였다.

그 증거로 보통 콩을 갈았을 때보다 더한 점성(粘性)이 있었다.

‘이곳은 진짜 축복받은 곳이 맞을 거야.’

여명이 필요하다고 구해 달라 요청한 몇몇 재료 중에는 이게 보통 동네에 있기는 한가 싶은 것도 있었는데, 놀랍게도 이 동네에는 여명이 원했던 모든 것이 있었다.

“식선, 준비해 놓으라 하신 것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아, 수고했어.”

“감읍한 말씀입니다.”

때마침 소마 일호가 실상 지금 만들 두부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를 가지고 왔다.

노수(瀘水), 혹은 간수라고도 불리는 마그네슘과 칼슘이 풍부한 물.

한국에서 간수라고 하면 소금과 식초 등을 일정 비율 섞은 물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이는 일반 대중에게 잘 알려진 흔한 간수를 칭할 뿐이다.

사실 더욱 깊게 파고들면 간수란 것은 결국 풍부한 마그네슘과 칼슘 등이 중요한 것이니까.

“이런 것도 가능하단 거지.”

현재 여명의 앞에 있는 간수는 총 세 가지.

깊은 지하에서 퍼 올린, 특유의 칼슘 함량이 일반적인 물보다 약 스무 배가량 높은 천연 간수.

붉나무, 혹은 염부자(鹽膚子)라고 불리는 소금나무에서 추출한 간수.

해수(海水), 그중에서도 미네랄이 풍부한 곳에서 직접 퍼낸 물을 소금으로 정제하여. 10년 이상 숙성시킨 소금에서 추출한 간수.

하나하나 일반적으로 보기 드문 간수가 아닐 수 없었고. 이 중 염부자나 오미자 등에서 간수를 추출하는 방식은 한국, 그것도 조선 왕실의 두부를 만들 때 쓰이는 방식이었다.

“월?”

“‘첫 번째랑 세 번째는 중국이랑 일본 방식이지’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만 해도 저렇게 만드는 곳이 있어. 찾아보기 드물어서 그렇지.”

음식을 만드는 방법에 내 것 제 것으로 따지는 게 까다롭지만. 일반적인 인식이란 것이 있으니 여명은 설명을 덧붙여가며 곱게 갈린 콩물을 끓여갔다.

마지막에 이 간수가 쓰일 모습을 기대하며.

타닥!

질 좋은 숯에서 나오는 열기가 가마솥을 뒤덮으며, 가마솥은 어마어마한 열기를 발산했다.

누군가는 이곳에 있기만 해도 괴로움에 몸을 부여잡지 않을까 싶지만. 요리사에게 주방의 열기는 애증 섞인 악우(惡友)와도 같은 법.

여명은 장대같이 긴 나무 주걱으로 조심스레 원을 그리며 콩물을 저어주었다.

“이제부터 잠깐 집중 좀 할게.”

“…멍.”

어검이나 기계로 하는 것도 아닐진대, 여명은 소름 돋도록 정확한 움직임으로 콩물을 저었고. 이런 모습은 마치 수십 년간 두부에만 일생을 바친 두부 장인을 떠오르게 할 정도로 숭고한 기술력과 내공이 느껴지는 바였다.

천재도, 그렇다고 두부를 만든 경험도 일천한 여명이 어찌 이런 기술이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여명은 이리 답할 수 있을 거다.

‘노력과 끈기. 그리고 집중력만큼은 내가 어디 가서 안 꿀리지.’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지극한 정성이 하늘을 감동시키듯, 지극한 정성을 곁들인 요리는 그만한 결과를 맞이하는 법이며. 두부는 노력과 끈기가 대략 8할을 먹고 가는 음식이었다.

즉, 여명에게 있어 두부는 몸에 딱 맞는 옷과 같은 음식이라 할 만하니, 어찌 능숙하지 않을 수 있으랴.

화르륵!

“후우…!”

대략 수십 분을 휘저으니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온몸을 적셔가며. 여명의 체력과 정신을 빼앗아 갔지만. 이러한 집중의 과정은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마련일지니.

‘세심공.’

여명이 전수받은 유일한 무공이자, 가장 익숙하게 펼쳐내는 기환학사의 수련법.

여명이 주걱을 젖는 움직임은 언뜻 이러한 세심공의 움직임을 연상시켰는데, 실제로 그는 세심공의 원리인 원심(圓心)의 움직임을 펼치는 중이었다.

또한 아미파의 수장 백미선자가 직접 전수해준 세심공의 깨달음마저 더해지며. 여명의 세심공은 마냥 수련법에 불과했던 세심공의 상식을 타파(打破)하고 자연지기를 움직이는 비범한 무공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

물아일체(物我一體).

웬만한 고수조차 쉽사리 펼쳐내기 힘든 경지를 잠시나마 이루어낸 여명의 세심공은 기어이 처음으로 자연지기를 움직여 단순히 콩물일 뿐인 것을 더할 나위 없이 비범한 것으로 탈바꿈시켰다.

덕분인지 원래는 어느 정도 시간이 더 걸려야 생길 콩비지 등이 생겨나며 두유(豆乳)가 분리되었다.

“…나도 참 특이한 놈이야.”

지금껏 단 한 번도 백미선자의 가르침을 소화해낸 적이 없었거늘, 설마 요리를 하던 도중 그 가르침을 재현하다니….

누군가에게 이 얘기를 한다면 거짓말하지 말라고 욕이나 먹지 않을까?

여명은 어르신들에게 이 얘기를 했을 때 나올 반응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고. 지금이라도 말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지만. 이를 참고 오로지 두부 만들기에만 집중하려 했다.

“사, 사장님! 나머지는 제가 할 테니 깨달음을 정립하십시오! 이러한 기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식선. 어, 얼른…!”

그때 여명을 한편에서 보좌하던 북궁린과 소마 일호 등이 기겁하며 여명을 말렸다.

대체 어떻게 기환학사인 여명이 무공을 펼친 것인지 모르겠으나, 지금 느껴진 방대한 기운은 틀림없이 무공의 편린이었으니…!

‘물아일체를 통해 얻은 깨달음은 당장 그 자리에서 몇 날 며칠을 좌선하여도 부족하거늘!’

저 깨달음을 소화해내는 것으로 분명 그의 무공은 수십 발자국을 더 나아갈 수 있으리라.

…한데.

“됐어. 그런 건 나중에 해도 돼.”

“예에…?”

“나한테 이게 더 중요하거든.”

“…….”

여명은 그 나아갈 수 있는, 어쩌면 평생에 다시 오지 않을 기연을 기꺼이 버리며 비지를 걸러내고 있었다.

오로지 두유만을 걸러내는 과정이었고. 두부를 완성해내기 직전인 가장 중요한 상태.

이를 초보자 둘에게 맡길 수 없을뿐더러.

“주객이 전도가 되면 안 되는 거야. 나한테 무공이나 기환술은 1순위가 아니라, 2순위이고 3순위니까.”

1순위. 조강지처를 내버려 두고 한눈판 놈의 끝이 좋은 경우는 없을 터이다.

“그, 그런….”

소마 일호는 그런 여명의 사고방식이 이해가 안 간다며 혀를 내둘렀다.

도저히 무림인이 받아들이지 못할 이단과 같은 가치관이 아닐 수 없다.

소마 일호는 이러한 자신의 생각에 공감을 바라며 북궁린을 보았….

“역시 사장님이십니다! 하긴, 무공 따위보다 사장님의 요리가 더 위대하긴 하지요.”

“월!”

“…….”

…내가 이상한 건가?

소마 일호는 무한 긍정적이다 못해, 해바라기처럼 식선 찬가를 외치는 두 직원을 어처구니없이 바라보았다.

“월-?”

“아, 아닙니다. 아무것도….”

다만 소마 일호의 불순한 시선은 상급자의 말 한마디에 움찔하며 금방 눈을 깔아야 했지만.

묘한 소외감과 더불어 서러움마저 느끼는 소마 일호였음이다.

* * *

“…….”

여명은 소마 일호가 어떤 취급을 받는지도 모른 채 마냥 두부에만 집중하기 바빴다.

간수.

각 세 개의 통으로 나뉜 각각의 콩물이 먹이를 얌전히 기다리는 아기 새처럼 보이는 것은 아마 여명이 이상한 것이 맞을 테지만. 여전히 물아일체의 영향이 남아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보여.’

여명은 결국 무림인이 아닌 기환학사.

세상의 흐름을 읽고 계산하는 그의 천안(天眼)이 만개한 꽃처럼 생명력을 머금고 비지가 깨끗이 걸러내진 콩물의 상태를 완벽히 읽어내고 있었다.

온도와 상태, 간수가 들어갔을 때 생길 조화.

그의 눈은 수많은 정보를 읽어내며 각각의 간수가 들어갈 타이밍과 비율을 완벽히 계산해주었다.

오로지 수십 년 평생을 고련하여 두부에만 매진했을 장인만이 가질 특별한 감각을 기환술의 힘으로 일순간이지만 손에 넣는 데 성공한 것이다.

조르륵…!

간수가 들어간 콩물들을 각각 타이밍에 맞춰 휙휙 저어주니 금세 고소한 순두부가 생겨났다.

각자의 특색이 돋보이는 순두부는 언뜻 단순해 보였으나, 평소에 보던 순두부와 비교 불가한 풍부한 고소함이 물씬 풍기었고. 여명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맛있다, 무조건!’

감히 완벽(完璧)이란 단어를 쓰는 것은 요리사에게 있어선 안 될 표현이겠지만. 지금 이 순간 여명은 잠시 오만해지기로 했다.

이건 지금 이 상태로 먹어도 최고로 맛있을 완벽한 순두부임이 분명하리라고.

그리고 이러한 완벽한 순두부로 만들어질 두부는.

“분명히 맛있을 거야.”

감히 완성되지 않았음에도 맛을 확신했다.

………

………

………

킁킁….

“…….”

“교주시여, 갑자기 왜 그러시는지?”

“……구왕.”

“예에?”

“구왕….”

“무, 무슨…?”

기기련은 교주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여 눈을 끔뻑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오라고 할걸’이라니…. 무슨 뜻이시지?’

혹 자신이 알지 못하는 신묘한 의미가 담긴 것일까 하고 고심하는 기기련이었지만. 거대한 붉은 개는 말 그대로 새벽에 제 자식을 오라고 한 것을 후회했다.

“구왕.”

이토록 맛있고도 매혹적이며, 중독적인 냄새가 풍기는데도 참아야 하다니….

붉은 개, 천마는 자그마한 안달을 느끼며 얼른 새벽이 오기를 바라였다.

tmi후기.

-여명은 한식에 대한 식견이 풍부한 이유는 그의 스승인 강태산 덕분이다.

-강태산의 인맥에는 수많은 한식 장인들이 많으며 덕분에 여명은 어릴 때부터 그런 장인들을 알고 지내는 것으로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 많다.

-여명의 성실함이 좋아 그를 자기 제자로 삼으려는 장인들이 많았는데, 강태산의 근육이 꿈틀거리는 것을 보고 장인들은 얌전히 여명을 포기했다.

-여명이 익힌 자연지기를 이용하는 무공은 잘만 활용하면 현대에서도 충분히 쓸 수 있다.

-숙련도가 높아지면 현대에서 장풍(掌風) 정도는 쏠 수 있을 정도라고 보면 된다.

-참고로 백미선자는 장풍 정도가 아니라, 에네르기파를 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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