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판이 개판이면, 뒤엎으면 그만(4)
단백설과 사마윤윤, 갈지윤 등의 여인들을 비롯해 두 마리의 주교가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고소한 내음을 맡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냄새만으로도 어쩜 이렇게 맛이 느껴지는 걸까?
“신기한 경험이네. 먹지 않는 것으로도 포만감을 느끼게 되다니.”
“역시 식선. 요리의 선인이란 말이 과장된 게 아니네요.”
“전 요리도 요린데, 저분 체력이 더 대단한 것 같아요. 내공도 없고. 그렇다고 외공의 고수도 아닌데 저렇게 하루 온종일 불 앞에 있을 수 있다니, 경이적이네요.”
“…그것도 맞네.”
단백설쯤 되는 고수라면 자신보다 하수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늠하는 것이 가능했다.
특히 단백설은 영수의 핏줄을 이어받은 후손.
상대의 냄새, 몸무게와 건강 상태. 정신력 등을 오로지 감각만으로도 모조리 정보화하여 상대방 본인보다 더욱 몸 상태를 읽어내는 기이한 능력조차 있었다.
그렇기에.
‘오로지 정신력과 기술만으로 해내는 일인가? 보통이 아닌걸.’
뜨거운 불 앞에서, 그것도 대략 세 시진 가까이 일을 한 것이다.
한번 자리를 떠서 쉴 법도 하건만, 그는 수건으로 가볍게 땀을 닦아내거나 물을 마시는 행위를 제외하곤 일하고 또 일할 뿐이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실력이야 대단한 것이지만. 저 정도 실력을 가진 숙수가 흑원국에 없는 것은 아닌바.
도리어 단백설이 눈여겨본 것은 식선의 기술보다 저러한 강직함과 꾸준함, 마지막으로.
‘열의(熱意), 아니 어쩌면 염원(念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어.’
제 손으로 빚어낼 ‘작품’의 영혼마저 갈아 넣고 말겠다는 각오는 단백설마저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절대고수의 시선을 사로잡는 집념이라니…!
만약 그가 숙수가 아니었다면 반드시 제자로 들였을 것이다.
‘남에게 감탄하는 게 대체 얼마 만일까.’
단백설은 그제야 납득이 갔다.
자가(自家)야 모르겠으나. 어찌 천산의 후배들이 그를 총애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거늘, 지금 저 광경을 보니 단박에 이해가 간다.
‘그에겐 우리가 한때 가지고 있던 [그것]이 넘쳐나는구나.’
풍진강호(風塵江湖)를 살아가며 어느 순간 잊게 되는 강호행의 낭만과 열정.
오로지 젊은 시절, 후기지수 불리는 시기에만 느낄 수 있는 낭만(浪漫)의 향수가 식선의 곁에서 살아 숨 쉬고 있음이다.
‘멋지네, 아주.’
단백설은 문득 부럽다는 마음이 들었다.
저러한 이를 항상 곁에서 볼 수 있을 자가와 천산의 후배들이 말이다.
‘…나도 천산에서 은거할까?’
누군가 들었다면 기겁했을 발언을 속으로 중얼거리는 단백설의 눈에는 반절의 진심이 서리고 있었다.
* * *
“사장님….”
“끼잉.”
걱정스럽게 자신을 보는 설기와 북궁린에게 여명은 지친 낯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고 대답해주고 싶긴 한데, 지금은 말할 기운조차 없다는 게 문제 아닌 문제일 터.
‘죽겠네.’
속으로 끙끙 앓을지언정 결코 자신의 괴로움을 티 내지 않는 것은 요리사라면 누구나 공감할 사항이리라.
허나 여명은 칼을 들었다면 무를 써는 것을 넘어, 작정하고 음식 하나를 만드는 끝맺음을 보여야 만족하는 성격이었다.
아무리 피로해도 멈출 수는 없는 법…!
그리고 이상하게도.
‘머리는 멀쩡하단 말이지.’
신기하게도 지칠 대로 지친 몸과 달리 여전히 머리는 맑고도 또렷했다.
아드레날린의 분비라 착각하려다, 이것은 그 정도 수준이 아닌 아예 완전히….
또욱.
“이 나이에 성장기가 오네….”
그래, 이건 성장의 신호였다.
물아일체를 영향일까, 그도 아니면 지금껏 집중력이 최대치를 자랑해서 그런 것일까.
뭐 어느 쪽이건 여명은 현재 자신이 ‘기환학사’로서의 성장을 눈앞에 두었다는 직감이 들었다.
이유? 예측일 뿐이지만, 평소보다 천안을 과도하게 사용하며 어마무시한 정보량을 처리하는 과정 중 일어난 행운이 아닐까 싶다.
‘지금도 또렷하게 보여.’
현재 약 백 모가 넘어가는 두부가 실시간으로 수분이 빠지며 굳어지는 과정이 보였다.
이뿐만 아니라, 숯불의 열기가 두부에 끼치는 영향. 각기 다른 간수가 두부를 어찌 발효시키고. 어떤 식으로 응고시키는지.
우우웅!
끝으로 조금의 부정적인 영향이나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을 미리미리 짚어내어 그것을 기본적인 오행(五行)의 술로 조절하기까지.
요리와 기환술, 그리고 사람(人)의 조화.
여명은 이때 처음으로 기환술(奇幻術)이란 것이 하나의 학문(學問)이란 것을 감각적으로 완전히 받아들였다.
‘아, 이래서 학사(學士)란 호칭에 그렇게 예민한 거였구나.’
자허가 왜 ‘술사’나 ‘선인’ 등 칭호를 질색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토록 자연의 변화가, 오로지 순환의 법칙에 따라 세상이 변화하며 이루어지고 있는데, 어찌 술법이라 폄하할 수 있으랴.
지극히 학문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자연과학이나 물리학과 유사한 학문일 테니.
“그래, 이래서 기환학(奇幻學)이구나.”
후욱, 하고 여명의 몸에서 방대한 양의 기력이 빠져나갔다.
기환술을 쓰기 위해 사라진 것이 아닌, 자연으로 환원되어 사라졌을 뿐이다.
아깝다 못해 모으는 것 자체가 힘든 게 기력일진대, 이토록 허무하게 사라져도 되냐고 할 수도 있지만. 여명은 이제 무작정 기력을 모아만 두는 게 답이 아님을 알았다.
‘내 그릇을 넘치려고 하면 버릴 줄도 알아야 하는 거야.’
또한 양보다 중요한 것은.
질(質).
우우웅.
서서히, 안 그래도 맑고도 강대한 기력이 뭉치며 압축되었고. 환(環)을 이루었다.
기력이 줄어든 게 아닌, 좀 더 효율적으로. 여명이 쓰기 최적화된 기력은 마치 하나의 엔진과 같았다.
“이거, 효율이 엄청날 것 같은데?”
아직 본격적으로 쓰지 않았지만. 알 것 같았다.
이제 여명은 평소보다 적은 양으로도 압도적인 출력의 기환술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는 무작정 석탄을 태워 에너지를 얻었다면, 이제는 마치 하나의 소형 발전소가 몸 안에 생긴 느낌이었다.
‘왜 자허 영감님이 그런 반응이었는지 알 것 같아.’
여명이 아무리 기력이 방대하여도 여명을 애송이 취급한 이유를.
자허 그 영감님이 이러한 성장기를 계속해서 거쳤을 것이지만. 여명은 이제야 겨우 한 번 성장했을 뿐이니, 애송이 취급하는 게 당연할 터.
한편으론 웃기기도 하다.
‘두부 만들다가 갑자기 이런 경우가 어디 있을까?’
어디 가서 말한다고 한들 믿지 못할 황당무계한 이야기.
여명은 제 스스로가 생각해도 참 말이 안 된다고 여기며 마냥 헛웃음을 내었다.
“사장님께서 정말 많이 피곤하신 모양입니다.”
“왈….”
그러한 여명의 변화를 모르는 두 직원은 마냥 걱정스럽게 여명을 보면서도 안쓰러워했고. 설기는.
“서, 설기님, 그런 표현은 너무 심하신 게….”
“월?”
그래서 아니라고?
“…….”
차마 아니라고도 할 수 없어 침묵하는 북궁린이었고. 설기는 여전히 왼쪽 앞발을 들어 올린 상태로 살며시 관자놀이 부근에 원을 그렸다.
우리 주인이 영 맛이-.
“-다 보여 이 녀석아. 나 안 미쳤으니까 앞발 좀 그만 돌려.”
“월!?”
언제 주인은 뒤통수에 CCTV라도 단 것일까.
여전히 두부 앞에 진중히 앉아 집중하고 있는 여명은 마치 뒤가 생생히 보이는 것처럼 읊조렸고. 설기가 기겁하며 일순 멈칫거리니 웃기까지 했다.
설기는 혹시나 싶은 마음으로 두 발로 뫼 산(山)을 표현하여 보았다.
그러자.
“너, 3일간 간식 금지.”
“왈!?”
진짜 보이나 보네?
그런 설기의 반응을 확인하며 여명은 히죽이곤, 이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천안의 상위호완인.
‘천안통(天眼通).’
하늘을, 아니 정확히는 운(雲)의 흐름을 읽어내는 기환술로 기환학사가 비를 내리고. 바람을 불게 한다는 얘기가 나돌게 한 원흉이자, 상위 기환술을 쓰기 위한 필수적인 능력이었다.
그리고 이 말은 즉.
‘내가 상위 기환학사라는 거겠지.’
누군가 들었다면 놀라고 말리라.
기환술의 입문하고 1년. 어찌 보면 단기간에 이러한 성장을 이룬 것이니까.
조금 전 무공의 발전을 포기하고 얻은 성과, 전화위복이란 말이 절로 나오는 성장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성장 속도긴 한데….’
뭐.
“좋은 게 좋은 거겠지.”
화아악.
손끝에서 피어난 기환술이 서서히 두부 틀에 스며들며 수분을 조작하고. 각 두부가 가진 최상의 상태가 되도록 이끌어주는 과정.
누군가는 기환술 낭비라고 할 테지만. 이거야말로 여명이 생각하는 가장 적절한 기환술의 사용법이었다.
“월?”
일순 설기가 그의 눈치를 보며 살며시 곁으로 다가왔다.
다 끝난 건가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설기에게 여명은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어 주며.
“먹어볼래?”
“월?”
벌써? 하고 묻는 설기에게 여명은 대답 대신 틀에서 두부를 꺼내 보았다.
망가지지 않도록 찬물에 첨벙, 하고 담그듯 두부를 꺼내니 탄력적이고도 몽글몽글해 보이는 두부가 춤을 추듯 탱글거렸다.
날이 선 대나무 칼 하나로 적당히 일부분을 깍두기처럼 조각내니 두부가 아니라 마치 치즈처럼 보일 정도.
“자.”
“……월.”
설기는 그다지 기대를 가지지 않으며 일단 맛보았다.
두부 맛이란 게 다 거기서 거기지 싶은 편견 아닌 편견이었고. 영 기대가 가지 않는 것이었다.
다만 이렇게 여명이 직접 입에 넣어주니 어쩔 수 없이 입에 넣어 보는….
사르르!
“-!?!!”
노, 녹았다-?
순간 입에 들어온 몽글몽글한 두부가 입에서 사르륵 녹았다.
무슨 이런…!
“맛 괜찮지.”
“…워, 월.”
이건 괜찮은 정도가 아니었다.
일순 두부가 아니라, 정말 치즈를 먹는 듯한 오묘하고도 깊은 풍미가 입안을 감쌌으며. 식감 또한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럽고도 언뜻 쫄깃한 무언가가 한번 씹히며 사르륵 녹아버리다니…!
끝도 없이 입에 넣어 즐기고 싶은 매력이 넘치는 두부가 아닐 수 없으리라.
설기는 잠시 제정신을 잃으며 여명이 입에 넣어주는 두부를 계속 입에 넣고 말았다.
“린이 넌 어때?”
“…….”
“린아?”
설기가 정신 줄을 놓고 있을 때 두부를 먹인 것일까.
“헤헤….”
북궁린은 이미 반쯤 정신 줄을 잃고 있으며 헤픈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엊그제만 해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모든 걱정을 놓아버린 얼굴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러한 두 여자의 반응에 관심이 생긴 것일까.
“크릉.”
“커엉.”
두 강아지가 낑낑대며 자신들에게 두부를 달라 시위했다.
“너희도 달라고? 흠, 어떻게 해야 하나.”
“…크릉.”
“끼이이잉….”
“하하, 농담이야.”
먹을 것 가지고 차별하는 치사한 짓만큼은 하지 않은 지론인지라, 여명은 두 마리의 형제견의 입에 두부를 넣어주었다.
맛이나 보라는 듯.
한데….
“혹시, 약 같은 걸 넣은 것은 아니겠지?”
“흐, 흑천이여.”
“…음.”
설기에 이어 자지러진 두 마리의 주교를 보며 두부를 신병이기(神兵利器)처럼 보게 되는 교인들은 심각한 얼굴로 토의를 벌였다.
저거 진짜 먹어도 되는 거 맞느냐고.
그리고 이러한 개들의 격렬한 반응에.
“…내가 뭘 만든 거지?”
차마 여명조차 자기가 만든 두부를 보며 어안이 벙벙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음이다.
tmi후기.
-여명이 만든 두부는 아이템으로 따지면 +20강화까지 성공한 물건이라고 보면 된다.
-여명의 기환술 수준이 한 번에 오르며 생긴 부작용 아닌 부작용이다.
-웬만한 두부의 약 20배가량의 고소함을 느낄 수 있다.
-여명은 현재 기환술 수준을 블리치로 따지면 이제 시해를 펼치게 된 수준이다.
-참고로 기환술의 경지는 입산경-등산경-등천경으로 나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