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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와요 무림식당-221화 (221/261)

221-판이 개판이면, 뒤엎으면 그만(6)

“미안합니다, 식선. 평소대로 있다 보니 주의를 덜 하였군요.”

“그걸 변명이라고 하더냐? 허이구 참. 큼큼, 내가 대신 사과하겠네. 워낙 융통성이란 것이 없는 녀석이라….”

“왜 지괴께서 사과하는 겁니까?”

“너는 내 손녀 같은 애가 아니더냐. 그러니 조부가 사과해야지.”

“누구 마음대로 손녀라는 겁니까!!”

“거 까탈하긴.”

“!?!!”

미부(美婦)와 노괴는 다툼을 벌이며 질리지도 않는지 싸워댔다.

벌써 이 광경을 네 번째 보는 건지라 슬슬 질리기 시작한 여명은 속삭이듯 설기에게 물었다.

“원래 저래?”

“멍.”

설기는 그냥 신경 끄는 게 답이라며 조언했다. 자기 또한 저것들은 답이 없다며 징글징글한 표정.

아마 설기에겐 익숙한 광경인 것일 터.

‘독마랑 지괴라고 했지.’

독마, 그러니까 자신을 기기련이라 소개한 여인은 겉보기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북미의 육감적인 톱 여배우를 절로 연상시켰지만. 겉모습만 그럴 뿐이지, 풍기는 기운은 전혀 육감적이지 않아 도리어 사내조차 안색이 새파랗게 질릴 지경.

북미 갱단의 여성 보스가 있다면 아마 저러하지 않을까 싶다.

‘내 착각이면 다행인데, 눈이 계속 쑤시기도 하고.’

“저 여자 앞에서 방심하지 마라!” 혹은 “당장 멀어져!”라고 엄히 경고를 때리는 천안이 욱신거린다.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말이지.’

지금껏 수많은 무림임을 만났지만. 이토록 경고음이 쉼 없이 터지는 경우는 없었다.

만약 설기가 괜찮다고 하지 않고. 옆에 있는 영감님이 굉장한 기환학사가 아니었다면 즉각 그는 축지로 도망가 이곳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을 터.

그렇게 마교에 온 이후 최고로 긴장감을 높이던 중.

“킁킁, 그 보따리에서 아주 좋은 냄새가 나는구나.”

“…아, 이거요? 그, 선물로 가지고 온 겁니다.”

“호, 선물이라. 흐음….”

“왜, 왜 그러시는지?”

여명은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그와 보따리를 번갈아 보는 지괴에게 의문을 보이자 지괴는 시원스레 웃기만 했다.

“허허, 선물치고 과한 것을 가져왔어, 과한 것을.”

“??”

“허허.”

“…월.”

여전히 뜻 모를 소리만 하는 영감이라고 기어이 혀를 차고 마는 설기였고. 여명은 아직 교주를 만나지 않았음에도 진이 빠지려 했다.

* * *

언뜻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것 같지만. 그것은 겉보기만 그럴 뿐.

그들의 ‘진실’된 대화는 어디까지나 은밀하고도 진지했다.

━하독(下毒)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말거라.

━제가 언제 그랬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뻔뻔한지고! 자칫 천산과 신교가 전쟁이 날 수도 있는 일이야.

끝까지 뻔뻔스레 본심을 숨기는 그녀에게 지괴는 경고하듯 심언(心言)으로 몰아붙였음에도 기기련은 여전히 무감각해 보였다.

━저는 여전히 지괴가 무슨 말씀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그러나 한 가지 덧붙이자면, 신교와 천산이 전쟁이 난다고 하여도 그것이 무슨 문제가 날지 참으로 궁금하군요.

━……허허.

지괴는 기기련의 담대함이 위험하다 여겼다.

어릴 적부터 보았던 여아이기에 안다.

이 아이는 신교의 아이들 중에서도 가장 호전적이며, 가장 신교를 맹목적으로 따른다.

또한 신교에 대한 자부심도 과하여 그들이 무슨 일을 하건 승리가 약속되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이 아이는 수많은 신도들 중에서도 감히 광신도(狂信徒)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았으며, 이 아이는 교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무슨 짓이든 하고 만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이 아이가 저 후배 아이를 위험분자로 규정하였나 보구나.’

긍정적인 신호가 아니었다.

원래도 위협하려는 낌새가 보여 나선 것이었는데, 지금 보니 위협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후배는 이를 사전에 눈치챈 것 같긴 하다만…. 후우, 모르겠구나.’

이 아이가 왜 이토록 저 어린 후배를 위험시 여기는지.

아무리 막무가내 같은 아이라고 하지만. 무모하거나 무식하지는 않았는데….

지금 하는 짓만 보면 참.

‘이 나이를 먹어도 여자 마음은 정말 갈피를 못 잡겠구나.’

범람하는 강물의 흐름처럼 예측이 불허하니, 원.

이래서 오래 살면 못 볼 꼴을 많이 보게 되는-.

━저 여자가 저한테 하독, 그러니까 독극물을 뿌리려 했다는 거죠?

━!!?

━뭐, 막아준 건 감사해요. 그래도 괜찮아요. 어르신도 알다시피 기환학사 정도 되면 독은 그다지 통하지 않으니까.

━……호오.

오래 사는 게 반드시 좋은 일은 아니지만. 살다 보면 감탄스러운 일도 많은 법.

지괴는 생각했다.

‘우리 후배도 보통은 넘는구나.’

어느새 그냥 후배에서 ‘우리 후배’로까지 격상되며 지괴는 눈을 반짝였다.

아무래도 소교주가.

‘좋은 반려(伴侶)를 손에 넣으신 모양이구려, 허허.’

……거한 착각을 하는 지괴였다.

* * *

여명은 기기련이라는 이가 자신을 적대하는 것을 넘어 흉악한 짓을 할 것을 알았음에도 그저 의연하게 굴었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겁대가리를 상실한 건지, 원.’

이게 다 영감님들 때문이다.

-기억하게. 얕보여도 괜찮네. 등을 보여도 괜찮네. 얕보이거나 도망치는 것 또한 책략이며. 하나의 수가 될 수도 있으니. 하지만 자신을 적대하는 자에게 만만하게 보여선 안 될 일이야.

-만만하다는 것은 언제든 공격할 빌미를 만들어주거든, 그러니-!

-만만하게 보일 바에야 오만하게 굴게나. 이 사부는 충분히 오만해도 문제가 아니니.

마치 그의 뒤에는 자신들이 있다 말하는 것만 같은 고마운 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영감님들의 조언이 그의 등을 받쳐주었고. 독에 당할 뻔했다는 것조차 마냥 별 수작 같지도 않을뿐더러, 개수작보다 하찮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마치 무어랄까.

‘모기가 물려고 했을 뿐인데, 조금 짜증 내고 말지 뭐.’

그렇게 기기련은 여명의 평가에서 모기와 동급이 되었다.

흠칫!

“…?”

“왜 그러느냐?”

“…아무것도 아닙니다.”

뭔가 이상한 것을 감지한 것인지 의문을 보이던 기기련이었지만. 그녀는 곧 의뭉스럽게 고개를 갸웃거리곤 어느 거대한 석문 앞에 몸을 세웠다.

“여기서부터 교주를 배알할 것입니다. 부디 언행을 조심하시길.”

“알겠으니까 빨리 열기나 해요. 그리고 하나 정정하자면 저는 배알을 하러 온 게 아니라, 설기 부모님을 만나러 온 것뿐이에요. 괜히 이상한 가스라이팅도 하지 말고요.”

“……그, 그러죠.”

단호한 그의 반응에 기기련은 처음으로 표정이 무너질 뻔했고. 설기는 주인의 생소한 언행에 눈을 휘둥그렇게 떴으며. 지괴는 재미지다며 끌끌 웃었다.

그러면서도 ‘가스라이팅이 뭐지?’라는 반응을 보이는 둘이었지만. 여명은 굳이 답해주지 않았다.

쿠구구궁.

대략 4층 건물 높이에 석문이 서서히 열리니 순간 지하에는 지진이 난 것 같은 충격이 전해졌다.

처음 천마전에 입장할 때 던전이란 표현을 쓰긴 했지만. 이러한 광경을 보니 정말 던전의 최종보스를 쓰러트리러 온 느낌이 드는 건 아마 착각이 아니리라.

“왈?”

“…으음, 이제는 조금 끌리긴 하다.”

“지금이라도 레이드 뛸래?”라고 묻는 설기의 물음이 지금은 제법 유혹적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여명은 레이드를 뛸 마음을 빠르게 접어야 하였다.

“──구왕.”

……홍옥(紅玉)이 절로 생각나는 바위만 한 눈이 저와 마주치니 어떠한 생각도 이어 나갈 수 없는 것이었다.

엄청난 위압감이 아닐 수 없었으며. 어둠 속에서 홀로 빛나는 홍옥의 눈동자는 신비로우면서도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력(魔力) 비스름한 것마저 느껴질 따름.

그러던 순간 거대한 공동의 불꽃이 피어오르며 주변을 밝혔고. 드디어 신비로운 눈동자의 주인이 본신(本身)을 드러내었다.

그것은 거대한 눈동자에 걸맞은 거체를 지닌….

“…사모예드?”

쓸데없이 귀엽게 생긴 붉은 적견(赤犬)의 모습은 웅대하면서도 한번 안아보고 싶은 도전 욕구가 생겼으니.

참으로.

‘이런 게……. 종교 교주?’

어떤 의미에서 충격적인 외향이 아닐 수 없다며 놀라움을 표현하는 여명이었다.

* * *

“─구왕.”

부르르르.

건물 크기만 한 사모예드, 아니 마교의 교주 ‘천마’가 입을 열자 순간 공진이라도 온 것처럼 이곳저곳이 떨렸다.

지진이 난 것이 아닌, 말 그대로 한순간의 진동이 몸을 덮치는 느낌.

여명이 여전히 아연실색하며 떨떠름해하고 있을 때, 먼저 입을 연 것은.

“월!”

천마외 비교하면 하찮기 그지없는 흰색 털 뭉치 설기였다.

설기가 하찮은 울음소리를 내며 천마를 향해 짖어댔다.

마치 시비를 거는 것만 같았고. 도저히 간만에 아비를 만난 딸의 태도가 아니었으니.

생사대적을 만난 것 같은 적대감이 아닐 수 없었고. 설기의 울음소리가 좀 더 커지려고 할 때….

“─그만해라. 그를 위협할 생각은 없었으니.”

선언하는 것처럼 웅장하고도 웅대한 음성이 짙게 퍼지며 설기의 입을 다물게 했다.

“…말을 했어?”

여명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라야만 했다. 동물이 말을 하는 것 자체는 그의 주변에서 그다지 놀랄 만한 일은 아니지만. 설기를 비롯해 깜둥이나 밤톨이도 사람의 말을 내뱉지는 못했었다.

그래서 천마도 그런 건 줄 알았는데….

“‘설기’, 그것이 그대가 ‘저것’에게 붙여준 이름인가.”

“!!”

“아, 실례했군. 뜻하지 않게 읽어졌다.”

“……생각을.”

읽힌 건가?

뭐지 이 개는? 외형부터 이미 사람을 대경실색하게 하고도 남는데, 아까부터 자꾸만 놀라게만 만든다.

“놀라게 할 의도는 아니었다.”

“…….”

“아, 또 읽고 말았군.”

“괘, 괜찮아요, 하하….”

여명은 어색하게 웃으며 떨떠름함을 감추었다.

자신의 생각이 읽힌다는 건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지만. 천산 생활 9년 차에 이르다 보면 별의별 특이한 일을 마주하는 짬이 있으니, 조금 특이한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적응력을 선보이는 그였다.

“그대는, 긍정적이군.”

“또 읽으셨네요.”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닌바.”

“그, 그래요? 그럼 차라리 읽힌다는 사실을 숨기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어찌하여.”

“네에?”

“어찌하여 본인의 능력을 숨겨야 하지? 본인은 당당할진대.”

“…….”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받아들이겠다.”

“……아.”

여명은 그제야 알았다.

자신이 한 조언은 이 개한테, 아니 이 ‘사람’한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숨기는 이유는 모난 돌이 정을 맞기 때문이지만. 저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저한테 건방지게 구는 자가 있다면 가차 없이 짓밟으면 그만인데 대체 왜 누군가의 눈치를 보아야 한다는 말인가…!

인식의 차이를 넘어, 아예 관념(觀念) 자체가 일반인과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는 것.

“제가, 말을 잘못한 것 같네요.”

여명은 쓰게 웃으며 잘못을 시인했다.

자신의 상식이나 견해를 누군가에게 강조하는 것은 안 될 일이고. 무엇보다 저러한 존재한테 충고를 한다는 것 자체가 오만한 일이었다.

여명은 그렇게 사과를….

“──사과하지 마라.”

화악!

“…어어?”

“본인은 그대에게 사과받고 싶지 않다. 또한 이후 무슨 발언을 한다고 하여도 본인은 죄를 묻지 않는다 약속하지, 그러니 안심하여라.”

“…….”

“왜 그러지?”

“아니요. 그냥 좀 가깝다 싶어서….”

“싫은가?”

“……이게 참 복잡 미묘하네요.”

어느새 그의 곁으로 다가와 몸을 감싸는 천마의 털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구름에 만약 촉감이 있다면 이러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

다만 사람 마음마저 읽는 무림판 교황 겸, 붉은 털 사모예드가 자신에게 이러한 자비를 베풀고 있으니 뭐라 형용하기가 힘들었다.

‘촉감은 좋은데, 뭐가 이리 부담스럽냐.’

참으로 부담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며 난감한 쓴웃음을 자아내고 마는 여명이었다.

한편, 그러한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설기는.

“……월-!?”

부모가 불륜을 저지르는 광경을 본 사람처럼 마냥 충격과 공포로 얼룩진 얼굴로 경악해야만 했다.

천마는 지금 명백히!

“왈….”

끼를 부리고 있었음이다.

tmi후기.

-독마는 여명이 중원삼국에서 최초로 싫어하게 된 여인이 된 상태다.

-참고로 기환학사와 독공의 상성은 최악이며. 기력이 가진 기운이 워낙 맑아 자연계의 존재하는 대부분의 독은 기환학사에게 통하지 않는다.

-천마의 품에 안기는 기분을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자면 따스한 햇볕에 말려진 푹신한 털 이불에 누운 것보다 다섯 배는 더 기분이 좋다.

-천마가 이토록 여명에게 친근한 이유를 설명하기 앞서, 자그마한 스포가 있으니 후기 보는 것을 멈추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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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과거 여명의 전생과 인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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